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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 (히 12: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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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멋진교회)

2004.6.13. 주일예배

어떤 부자가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아둔 재산을 놔두고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떼를 썼습니다. 자기 재산을 천국에 가져가겠다고 졸랐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못해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재산을 가지고 가되 가방 하나에 담아서 오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궁리했습니다. 재산을 팔아서 금으로 모두 바꿨습니다. 흐뭇했습니다. 하나님도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 못하셨겠지? 천국 문에 이르자 베드로가 지키고 있다가 막았습니다. 천국에는 가방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하나님께 이미 허락받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가방 속이 궁금했습니다. “어디 뭐가 들었나 봅시다.” 가방을 열어본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뭐하려고 금을 잔뜩 가져왔습니까? 천국에서는 금으로 도로를 포장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챙긴 금 덩어리는 천국에서 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무엇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부자처럼 금 덩어리를 바라보고 삽니까? 아니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봅니까?

히브리서 11 장은 믿음장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12 장에서는 믿음의 조상보다 믿음이 주인이신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구약과 신약 두 가지입니다. 구약은 율법의 말씀입니다. 신약은 은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신약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신약의 빛 아래에서 읽어야 합니다. 여전히 구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만 지적할 뿐이요 자유와 해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구약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조명해서 재해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두 개의 산이 나옵니다.

첫 번째 산은 18 절에 나오는 불붙는 산입니다. 흑운과 폭풍과 나팔 소리가 있는 산입니다. 이 산은 신명기 4:11-12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 아래 섰을 때입니다. 그 때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유암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신 4:1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검은 먹구름이 산을 뒤덮어 어두웠습니다. 화염이 무서운 산에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는데 그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큰 불이 자기들을 삼킬 줄 알았습니다. 불 가운데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9 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만 말씀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마 심장이 멎고 기절할 정도가 아니었나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시내산의 위엄은 대단했습니다. 20 절을 보면 짐승도 이 시내산에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21 절을 보면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선포되는 산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도 두렵고 떨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렇게 하나님의 공포 속에서 선포되었습니다. 10 계명을 비롯한 613 가지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계명을 40 일 동안 금식하면서 받았습니다.

율법은 사근사근한 말씀이 아닙니다. 아주 위엄 있고 엄한 말씀입니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겁에 질릴 정도였을 것입니다.

감히 이 율법 앞에 맞설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내려 주신 율법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엄청난 심판과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제사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를 풀어주는 장치입니다. 대제사장은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정기적으로 매번 드려야만 했습니다. 아주 번거로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를 이 두렵고 떨리는 시내산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은 시온산입니다. 22 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시온산은 은혜의 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는 산입니다.

시온산은 은혜를 대표하는 산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율법을 어기면 바로 제사를 드려 죄를 용서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온산에서는 제사가 필요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를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8 말씀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죄의 은총을 통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산은 은혜의 산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는 산입니다.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고, 상처를 싸매 주고, 치유하고 구원해 주는 산입니다.

시내산과 시온산은 아주 대조적인 산입니다. 시내산은 닫힌 산입니다. 거기는 짐승도 올라갈 수 없습니다. 사람도 감히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모세만 불러 올리셨습니다.

시내산은 불덩어리와 흑암이 있는 산입니다. 그러나 시온산은 찬란한 빛이 있는 산입니다.

시편 50:2 말씀에 시온산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하셨도다.” 시온산에는 하나님의 광채가 놀랍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은 죽음과 심판을 상징하는 산입니다. 그러나 시온산은 복과 영생을 주는 산입니다.

시편 133:3 말씀에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했습니다.

본문 22 절을 자세히 보면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시온산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이 무엇입니까? 바로 천국입니다. 시내산은 이 땅에 있는 산이고, 시온산은 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시내산에 거하지 않고 시온산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22 절에 있는 대로 천만 천사가 있습니다. 천만 천사라는 것은 셀 수 없는 천사의 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우리의 구원을 돕고 있습니다. 이 천사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 천사들의 역할은 성도들을 섬기고 돌보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 7장이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늘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도 예배를 드리는 존재입니다. 초대교회 때 천사를 숭배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천사 숭배사상은 오늘날 사탄 숭배와 같은 맥락입니다. 천사는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천사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즉 천사는 우리의 예배를 돕습니다. 천국에는 장엄한 천사들의 찬양이 있습니다. 천사들의 새 노래에 따라 모든 천국 백성들이 함께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23 절에 보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현주소는 하늘의 예루살렘 즉 천국입니다. 그 반열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반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23 절에 보니까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의로 심판을 하시면 우리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24 절 말씀을 보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리한 재판을 받지 않도록 변호하십니다.

요한일서 3:2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에 가면 그 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될 때, 우리의 얼굴이 주님의 얼굴처럼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큰 축복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처럼 영광의 광채를 띠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의 광채가 모세의 얼굴에 비췄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얼굴에서도 광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이 부셔서 모세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사람을 만날 때 너울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얼굴도 빛나게 될 것입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우리가 입을 흰옷도 빛나는 옷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를 뵈면서 우리의 얼굴과 마음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온산의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율법 신앙과 은혜 신앙

그런데 여전히 은혜로 믿지 못하고 율법으로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 오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감격과 기쁨보다는 습관으로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 가고 다른 곳으로 빠지면 화를 당할까봐 두려움으로 오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기술적으로 합니다. 선을 하나 그어놓고 깊이 빠지지도 않습니다. 물러서지도 않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잔꾀에 넘어가는 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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