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의 지체로서의 그리스도인 (고전 12:12-13)

  • 잡초 잡초
  • 407
  • 0

첨부 1


-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한 가정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가족들의 환영을 받으며 한 가족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개인이 거듭나고 구원을 받는 그 즉시 그는 하나님 집의 한 가족으로 영접됩니다. 본문 성경 13절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 몸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인 것입니다. 나 하나 개인적인 구원이 공동체적인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속한 하나님의 교회의 신비인 것입니다.

더글라스 맥그리거는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X-Y이론을 주장하였는데 X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게으르고, 책임지기가 싫고, 조직목표에 무관심하며, 변화에 저항하고,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통제와 위협과 처벌로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는데 Y이론의 인간은 육체적 노력과 정신적 노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을 통제하면서 목표에 접근하고, 적절한 조건만 주어지면 책임을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상상력과 독창성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지적 잠재력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인 사회는 그것을 바로 세우고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21세기에는 사람들의 능력이 과거보다 뛰어난 시대입니다. 그래서 상상하지 못했던 삶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남과 협조해서 하나 되지 않고는 퇴보되고 마는 것입니다. 21세기형의 나라, 기업, 개인의 생존전략은 합쳐지는데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신앙인들도 합쳐야 합니다. 힘을 하나로 모으라는 것입니다. 서로 물고 물리면 망한다는 것을 성경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하나가 되어 복 받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의 상태를 죄의 상태라고 합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다는 것, 즉 하나님은 필요 없고 나 혼자서 잘 살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또한 사람이 귀신 들리면 정신적으로 분열되어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할머니 소리를 내고, 어른이 아이 소리를 내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귀신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과 영혼을 분열시키고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면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주님과 끊임없이 가까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믿음은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은 서로 합쳐지는 것이고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내가 얼마만큼 하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신앙이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성도 간에도 그렇습니다.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도와주며 살면 그 사람은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좋은 사람은 분리되는 사람이 아니라 합쳐지는 사람입니다. 하나 되어 힘을 발휘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엡4:13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 이르기까지 이르리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신앙이고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그리스도의 영이 계실 때에 내 안의 모습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꿔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 따라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인과 교인이 서로 모여 함께 사는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부부가 서로 아무런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만 언제나 주님 안에서, 신앙 안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모인 곳이 바로 크리스챤 가정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여기서 몸에서 떨어지면 그리스도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우리 안에 영으로 들어오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었고 둘째는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그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한 몸 됨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마치 우리 속에 심장이 있고 오장육부가 있듯이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 계십니다. 또한 우리의 몸의 여러 부분이 있듯이 교인으로서 우리 각자의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주님과 한 몸임을 깨닫지 못할 때 그리스도의 모든 은사는 우리 밖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하면서 그와 우리가 한 몸 되었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와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를 말할 때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교인들이 하는 것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예배드리고 설교 듣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자생활의 전부가 아니고 단지 신앙의 첫 단계일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어느 교회든지 가서 예배만 참석하면 되지 등록할 필요도, 교회 봉사에 참여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교회는 그 이상의 모임입니다.

오늘 성경은 고린도 교회를 소개하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는 개개인이 많은 은사를 받은 교회입니다. 병 고치는 은사, 방언의 은사 등 개인의 능력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만 시끄러운 교회였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비난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소식이 사도 바울에게까지 들린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예언을 하는 능이 있고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 나는 아볼로 파, 나는 그리스도 파, 나는 바울 파 등으로 나뉘어 져서 서로 잘났다고 말을 합니다. 이런 교회가 무슨 능력이 있겠으며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는 그의 지체라고 말입니다. 지체는 눈에 보이는 지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체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체는 손, 팔, 다리, 눈, 코, 입 등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이것이 온전히 있어야 건강하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체가 있습니다. 폐, 간, 위, 심장 등 이런 것들도 모두 중요합니다. 이런 지체들이 모두 지체에 속해 있고 이런 지체들이 모두 있을 때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하나가 되기를 힘써야 하는데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중요시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중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어느 부분이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 돈을 많이 준다고 내 몸을 한 부분 떼어내 팔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하나쯤 빠져도 되겠지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 될 자격이 없습니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이 얼마나 고통하며 제구실을 못하는지 관심이 없어선 안 됩니다. 무책임한 사람은 자기 가정을 돌보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는 수십만 원씩 팁을 뿌리고 처음 만난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집에 들어오면 근엄한 가장이 되고 늘 인상을 찌푸리고 콩나물 값, 기름 값도 내지 않는 한심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삶의 순서를 거꾸로 한 것이며 그 결과는 비참해지는 것뿐입니다. 

정말로 사랑해야 할 자기 사람들은 버리고 엉뚱한 곳에다가 마음을 쏟고 돌아다닌다면 제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 쓸데없는데 시간과 재물을 허비하고 세상일은 빠짐없이 가려하며 모임이 아무리 시시해도 열심히 내고 불평도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덥다고 안가고 피곤하다고 안가고 설교 길다고 안가고 교인들 꼴 보기 싫어 안 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 영혼의 가정입니다. 가정이 없는 자는 고아일 뿐입니다.

서로가 필요함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도 중요하지만 당신도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지체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우리의 존재의 가치가 이만큼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살 수 없는 귀중한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그만큼 중요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콩팥을 바로 누군가에게 주지 않고 하루만 밖에 놓으면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귀중하지만 혼자서 있을 때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지체입니다. 심장, 눈, 손 등 다른 지체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즉 지체라는 것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체는 중요하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 더불어 잘 살아가려고 한다면 서로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그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필요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본문 이후 18절에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 곳에 두었으니 눈이 손더러 쓸 데 없다 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에도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도 우리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중요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도 대단한 능력을 가졌지만 바리새인이나 율법사들은 지식적으로는 율법에 대단한 사람이었고 돈은 물론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권세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이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들은 분리 주의자들입니다. 가진 지식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따로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소위 상류층을 만들어 우리끼리만 친하고, 복 받은 사람들끼리만 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무시하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저주받은 사람들이라고 차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자도 만나셨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도 만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돌보고 고쳐줄까를 생각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바로 하나 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에게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끝나고 나면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당신 없이는 못삽니다. 당신은 내게 참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 얘기를 남편이 아내에게 한다면 존경받는 남편이 되고, 아내가 남편에게 한다면 사랑받는 아내가 될 것입니다. 이 얘기를 부모님께 하게 되면 부모님이 나를 기쁘게 여기고, 자녀들에게 하게 되면 자녀들이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중요시 하므로 힘을 얻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경해야 한다

존경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존경한다는 말은 상대를 높여 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 나 때문에 이 사람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받으려는 사람이 되지 말고, 뺏으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그를 마음껏 높여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언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입으로 하는 말이고, 또 한 가지는 몸으로 하는 육체적인 언어, 몸짓이 있습니다. 누구를 존경한다고 한다면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합니다. 존경한다면 상대를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말의 언어

오늘 내 입의 말이 축복의 말인지, 저주의 말인지 그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축복의 말 대신에 나도 모르게 저주의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 놈 저렇게 커서 뭐가 될까?' 이 말은 축복의 말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 아이가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는 훌륭한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복을 빌어 줘야 됩니다. 우리 성도들 간에도 그렇게 서로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몸짓의 언어

이것은 말은 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만도 알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그 밥 속에 어머니의 희생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희생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는 것입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 내게 밥을 해 준다면 그 밥이 잘 들어갑니까? 잘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밥을 먹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먹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진수성찬이 있어도 잘 먹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사랑을 나의 재산으로, 실력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우리 가정이 하나가 되고 교회가 하나가 되는 귀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할 때 그 자녀들이 그것을 알고 더 잘 자라는 것이고 교회도 지도자가 되는 분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의 희생이 본이 되니 교회가 이렇게 은혜롭게 잘 이뤄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군 되고, 일군 될 사람을 뽑을 때에 이런 것을 기준 삼아야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재산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중요한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돈 많은 부모가 좋은 부모가 아니고 사랑 많은 부모가 좋은 부모인 것처럼, 교회의 좋은 지도자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시간을 바쳐 희생하고, 물질적으로도 못 먹고, 못 입고 자녀들을 키우는 것처럼 교회를 위해 희생을 하고,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교회와 교인들을 사랑할까를 생각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은혜가 될 줄로 믿고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내게 손해나는 일이 있으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비판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지 못합니다. 좋은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늘 순종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야 됩니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일군들을 중추신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의 한 부분이 영광을 받을 때 다른 부분도 역시 그러합니다. 몸의 한 부분이 저주를 받을 때 다른 부분도 역시 저주 속에 있습니다. 머리가 죽으면 온 몸이 다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험을 그대로 우리의 것으로 삼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웁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하는 일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 된 교회도 이 일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이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일을 위해서 고난을 자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은 참된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유월절 양은 뼈를 꺾지 않습니다.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뼈가 상하지 않았습니다. 옆의 강도들은 다리뼈를 꺾어 죽였습니다. 그러나 뼈는 권능을 의미하기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뼈를 꺾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위대한 인물들과 나라들이 일어나고 망했지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지하에서도 감옥에서도 꾸준히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핍박받고 멸시와 천대가 있다 해도 그리스도의 몸은 망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전도도 많이 하지만 결국 그리스도를 배반한다면 그의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갑은 손과 꼭 같이 몸을 위해서 일하지만 마지막에는 불에 던지우고 맙니다. 그리스도의 의복은 수십 년을 그와 함께 다니며 몸을 보호했지만 마지막에는 찢기어 원수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은 찢기어도 그리스도에 붙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고 믿는 이들은 영원히 그와 하나입니다. 신자들은 이 외형적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내면적으로 누리는 그리스도가 외형적으로 더 분명하게 경험됩니다. 그리하여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내리는 축복을 통해서 더욱 더 자기 속에 그리스도를 잘 알고 그 힘을 누리게 됩니다. 마치 아기가 젖을 먹듯 신자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젖을 받아먹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이탈된다면 간단히 마귀의 밥이 됩니다.

많은 신자들은 교회에 가지만 교회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큰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에 참석합니다. 좋은 설교를 듣고 훌륭한 연주를 듣고 돌아옵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아무 의무도 봉사도 할 게 없습니다. 얼마나 편합니까? 그러나 그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닙니다. 몸은 서로 간에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머리의 지시대로 힘든 일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일하면서 오는 아픔도 갈등도 경험하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신앙의 성장도 무리에 붙어 있어야 가능합니다. 몸은 항상 다른 부분을 위해서 일하면서 도움을 받습니다. 운동을 하고 필요한 일을 합니다. 괴로워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가정이 만들어졌으면 가정에 소속이 되었으면 무엇보다도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어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셨습니다. 교회가 이 지상에 두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거기에 속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누려야 영적인 축복에서 멀어지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정말 물이 깊으면 수면이 잔잔합니다. 정말 실력이 있으면 쉽게 가르칩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은 담백합니다. 정말 믿음이 깊어지면 단순해집니다. 정말 깊은 진리는 지극히 평범합니다. 정말 행복한 삶은 가장 일상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특별한데 있지 않고 가장 평범하고 시시한 나의 작은 일상에 있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신앙의 원리, 은총의 원리는 오직 하나 되는데 있습니다. 같은 주님의 몸 안에 하나 되는 지체로서의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 우리는 우리 지식이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