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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엣 것을 찾으라 (골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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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피영민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 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니라”

(서론)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가 기록되던 시기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 이단은 바로 ‘영지주의’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최고의 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지주의자들은 최고의 신이 자꾸만 하위 신들을 유출하여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내려 보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신들에 의해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계가 창조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들이 살고 있는 영계는 선한 세계요,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물질계는 악한 세계라고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영지주의자들은 철저한 이원론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신봉하였던 이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예수님도 영계에 있는 수많은 신중에서 하나의 신에 불과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내려오신 메시야가 아니라, 영계에 있는 허다한 신들 중에서 낮은 계층에 있는 하나의 신에 지니지 않는다고 하는 매우 잘못된 사상을 영지주의자들은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오늘 골로새서를 기록함으로써 자칫 영지주의에 의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의 뿌리를 바로 잡아주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하여서 바로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그리스도관을 타파해버리고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시며, 그리스도가 만물의 주인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만물 중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심을 가르쳐 주는 데에 있습니다. 이처럼 골로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높이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렇게 존귀하신 분이라고 한다면 그분을 영원한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만 할까요? 여기에 대하여 본문 3장 1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듭남을 체험한 믿음의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이 땅의 것을 찾지 말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하늘의 신령한 것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거듭남(중생)’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거듭남이란 사람의 뜻과 방법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만 거듭남을 경험할 수 있다고 깨우쳐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물’이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울 때에는 물은 성령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씻어서 정결하게 하고 구원을 길로 인도할 때에는 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이때에 성령은 우리의 심령을 주장하여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역사합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바로 ‘거듭남’(중생)을 체험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중생)’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는커녕 천국을 잠깐 관광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헌금을 많이 하고 예배를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한다고 할지라도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 있어서 거듭남의 경험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원리를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여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3장 1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2004년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도 “과연 나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먼저 갖기를 원합니다. 혹시라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아직까지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한해가 다가기 전에 거듭남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듭남은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저에게 여러분 모두를 거듭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 어떠한 사람에게도 다른 사람을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히 우리 모두를 중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받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어떠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까요?

1. 위엣 것을 찾으라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본문 1절에서는 “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씀하였고, 2절에서는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위엣 것과 땅엣 것을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중생의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위엣 것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상상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들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오, 만유보다 먼저 나셨고, 만유위에 능력과 영광으로 존재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신성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사고는 오로지 땅엣 것만을 추구합니다. 하늘의 큰 영광을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의 만족과 즐거움과 쾌락만을 얻기 위해서 살아갈 뿐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을 지금도 가끔씩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화의 수준이 너무 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심의 초점이 땅엣 것만을 위해서 모아져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조금도 갈망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있는 사업과 물질과 권세와 자녀의 학교문제와 진로에 대해서만 자랑하거나 걱정만 할뿐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다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어린 학생이나 연세가 많은 노인이나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엣 것만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하여 큰 비전과 꿈을 품고 살아가야할 학생들이 오로지 좋은 대학교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공부만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옆에 있는 친구를 눌러서 이겨야만 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서 온갖 좋은 것들을 드시고 계십니다.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육신의 생명을 단 일분일초라도 연장을 시킬 수만 있다면 좋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요에도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 싶네---

” 물론 이 노래는 남진이라는 가수가 부른 유행가지만 여기에도 참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는 바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땅엣 것만을 사모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땅엣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앞에 있는 유행가 가사처럼 길어봤자 한 백년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아무리 좋고 훌륭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땅엣 것은 모든 것이 다 잘못되었을까요?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년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저 푸른 초원 위에다가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것이 무슨 큰 잘못입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훌륭한 직장에 취직해서 많은 돈을 정당하게 버는 것이 큰 죄일까요? 아닙니다. 이 땅의 것들도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밤잠을 설쳐가면서 한 가지 목표를 정해놓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 멋진 집을 짓는 것도 아주 좋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당하게 사업을 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무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이 땅엣 것이 좋다고 할지라도 위엣 것하고 비교를 하면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바둑을 좋아는 하지만 잘 두지는 못합니다. 우리교회에도 바둑에 관한한 상당한 실력에 올라서 있는 분들이 몇분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들들 가리켜서 고수라고 부릅니다. 제가 언젠가 한번은 고수하고 친선으로 바둑을 두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한 번 이겨보겠다는 심정으로 바둑알을 한 곳에다가 집중적으로 쌓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바둑의 고수는 제가 보기에는 전혀 아닌데 엉뚱한 곳에다가 듬성듬성 바둑알을 둡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 신이 나서 열심히 바둑알을 한 곳에다가 집중적으로 모아둡니다. 그리고 남의 바둑알을 한 다섯 개 정도를 빼앗아 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섯 개의 바둑알을 빼앗는데에 정신을 집중하다가 보니까 결론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큰 집을 다 잃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땅엣 것만을 바라보며 살
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의 원리입니다. 저 영원한 하늘위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땅에 것만을 쫓아가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는 정말로 소중한 것을 잃고 맙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큰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육신에 거하는 존재이기에 땅엣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땅엣 것들도 우리들에게 유익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목적이 오로지 땅의 것만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한 축복받은 신령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만 우리의 인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원한 시간이 저 하늘에 있다는 진리를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위엣 것을 추구하는 삶은 어떠한 삶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과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에게 건강이 있다고 한다면 이 육신의 강건함을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는 가운데에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물질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밝은 빛을 세상에 증거하는 귀한 선교의 사역에 쓰일 수 있도록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에게 찬양의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매 주일마다 성가대의 대원으로 봉사하는 가운데에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마음껏 찬양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위엣 것을 추구하는 참으로 복된 인생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위엣 것을 찾으며 추구하는 삶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교회에도 오순절 날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다시 한번 일어나기를 날마다 불철주야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 모든 성도가 전심으로 힘써 뜨겁게 기도할 때에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새벽마다 모여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서 부르짖고 간구할 때에 위로부터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틀림없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듭난 사람은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땅엣 것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이 항상 위엣 것만을 찾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무리 땅엣 것이 좋다고 할지라도 위엣 것하고 비교를 하면 도저히 상대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부귀영화가 제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신 천국의 찬란한 영광하고는 비교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의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주어진 기본구원의 바탕위에 어떻게 하면 하늘의 상급을 쌓아 갈 것인가 하는 건설구원을 힘과 생명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순간에 생명의 부활에 큰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동참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큰사람이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거듭난 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천국의 영광, 영원한 천국의 보화, 영원한 천국의 존귀와 위엄만을 바라보는 가운데에 2004년도를 힘차게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위엣 것을 추구할 세 가지 이유

  그럼, 우리가 왜 위엣 것만을 추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까요?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죽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본문 3절은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증거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영원한 하늘의 생명과 기쁨과 즐거움에 대하여서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삶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사람이 아니요,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임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 말씀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완전히 죽은 자임을 자랑스럽게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자꾸만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땅엣 것을 추구하라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 땅의 부귀영화와 쾌락과 즐거움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속이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담대히 외쳐야만 합니다. “마귀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썩 물러가거라! 나는 이제 세상에 대하여 죽은 존재니라!” 이렇게 담대히 외치는 자들에게는 어둠의 권세가 신속하게 물러가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국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워치만 리’라고 하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분의 신학은 약간 잘못이 있었습니다. 인간에 관하여 영, 혼, 육이라고 하는 삼분설을 주장한 사람이 바로 워치만 리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당시에 유행하였던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의 사상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치만 리는 삶에 있어서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관한 매우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워치만 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돈을 걸고 마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작을 하고 있던 한 사람이 워치만 리를 바라보면서 “당신도 돈이 있으면 와서 함께 합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에 워치만 리가 아주 유명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옛날에 마작놀이를 하던 워치만 리는 이미 죽었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범하였던 못된 죄와 악습을 기억나게 함으로서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본분이요 사명입니다. 지금도 마귀는 이 세상의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믿음의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도 워치만 리처럼 “과거에 살던 그 사람은 죽었소!”라고 담대히 외쳐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우리의 참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중생한 성도의 생명의 기원이 하늘에 있고, 성도의 안전도 하늘에 보장되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작년에 우리교회에 도둑이 들어와서 금고에 보관되었던 돈을 훔쳐갔습니다. 그래서 거금 300만원을 투자해서 아주 튼튼한 금고를 새로 마련을 하였습니다. 이 금고는 얼마나 튼튼한지 최소한 6시간 이상을 노력해야 열수 있는 아주 좋은 장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교회에 들어 온 도둑은 적어도 6시간 이상의 노동의 대가를 치러야만 돈을 가져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금고를 튼튼한 것으로 바꾸자 이제는 도둑이 더 이상 교회에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물질도 튼튼한 금고에 보관을 하니까 얼마나 안전합니까? 하물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성도의 안전이 보장되어져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할렐루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한 사람은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약속의 말씀을 항상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땅엣 것이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람도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가 되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영혼들이 구원을 얻게 되면 틀림없이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내려오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그 때에는 땅에 있는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억만금을 모으고 큰 회사의 회장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재림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권세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재림시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대비하면서 하늘의 영광을 사모하고 하늘의 상급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준비하는 믿음의 사람들에는 반드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과 가치를 안겨 다 줄 것입니다. 자신의 종말이 언제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당하는 종말은 오늘이라도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이든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말미암아 지금 이 순간에도 최후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항상 하늘의 영원한 삶을 바라보는 가운데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영원한 세계를 준비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물론 이 땅의 것들도 나름대로는 가치가 있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하고 비교를 할 때에는 땅의 것들을 존귀성과 영원성과 가치성에 있어서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영광이 그만큼 가치가 있고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땅의 것들을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잘 준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수단을 위해서 목적을 망각하고 있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의 것들을 얻기 위해서 하늘의 것들을 포기하고 실로 안타까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은 오직 하늘의 영원한 생명과 찬란한 영광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잘 얻기 위해서 땅의 것들을 수단으로만 사용하시는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위엣 것을 추구함에 있어서의 방해물 - 땅의 지체

  그럼, 우리가 하늘의 것들이 매우 가치고 있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땅의 것들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땅의 지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오늘 본문 5절은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증거합니다. 우리가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 바로 땅에 있는 지체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성경은 과감히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들까지도 때로는 죽이라고 강조를 합니다. 본문 8-9절을 보시면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땅의 지체들에 대하여 본문의 말씀은 죽이고 벗어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왜 이러한 땅의 지체를 죽이고 벗어버려야만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땅의 지체를 죽이지 아니하면 우리가 죽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는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땅의 지체를 죽이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에 사로잡혀서 사는 자들에게는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의 지체를 죽이고 벗어버려야만 합니다.

  둘째는 땅의 지체를 따라 산 것은 이미 과거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본문 7절은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거듭나기 전에는 땅의 지체를 따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 관하여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3절에서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땅의 지체를 따라 산 것은 지난 과거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현재나 미래에도 땅의 지체를 따라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남을 체험한 하나님이 거룩한 믿음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우리는 과거처럼 땅의 지체를 따라서 살아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선포되어진 말씀처럼 2004년도를 힘차게 출발함에 있어서 땅의 지체를 죽이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땅의 것들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날마다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원합니다. 땅에 보화를 쌓아 두지 마시고 저 영원한 하늘위에다가 여러분의 보물을 차곡차곡 쌓아두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여러분의 보물을 훔쳐갈 도둑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좀과 동록이 여러분의 보화를 해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항상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빛이 비추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중에서 땅엣 것에 더 마음을 품고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시는 분이 계시다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것들은 아무리 좋고 값어치가 있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70년, 길어야 80년 밖에 안 되는 유한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시는 저 천국의 삶은 영원한 시간과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썩어 없어질 이 땅의 것들을 얻기 위해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영혼들이 되지 마시고, 여러분 모두에게 힘과 물질과 생명과 열정이 있는 동안에 최선을 다하여 신령한 하늘의 상급을 사모하는 위엣 것을 준비하는 참으로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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