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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환점을 돌면서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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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원 목사 (대광교회)

2004. 6. 27

  오늘은 6월 마지막주일입니다. 오늘로서 2004년도의 전반기를 끝내게 됩니다. 마라톤으로 말하면 반환점을 도는 셈입니다. 벅찬 기대와 부픈 꿈을 안고 출발한 이 한해의 절반이 빠르고,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 한번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라톤에서의 승리는 반환점을 돈 이후에 결정이 납니다. 아무리 처음에 앞서 나가다가도 끝까지 가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라톤 선수는 반환점 이후부터의 자기 조절을 필수로 연습을 합니다. 마지막 10키로, 5키로, 1키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도 잘해야 하고, 과정이 필요하지만, 뒤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한해의 경주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 달렸습니다. 이제 돌아서서 내려가는 길이 남았습니다. 후반부를 우리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해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반환점을 돌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본문을 통해 그것을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선, 감사부터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는 골로새서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골로새서는 신약성경 가운데 에베소서와 함께 ‘교회’에 관해 가르치는 중요한 성경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세우지 않았지만, 어떤 교회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골로새 교회의 상황을 듣고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무엇보다 ‘감사’를 강조합니다. 골로새서 전체가 감사를 말하는데 특히 1장은 전체가 감사로 온통 덮여져 있습니다. 우선 이 교회 성도들로 인한 감사를 1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또한 12절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다가 본문에 와서 바울은 자신으로 인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이렇게 말합니다. 24절입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 갇힌 것입니다. 바울의 생애 중에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 괴로움을 오히려 기뻐한다,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혹 이런 상황이 계속되더라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면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바울은 지금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을 때의 감사가 아니라,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말을 확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여기에서 바울의 감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여기까지 자신을 인도하고, 교회를 이끄신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이런 때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의 생애는 한마디로 감사의 삶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한해의 반환점을 돌면서 주 앞에 선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시점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지난 반년동안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가 참 크고 놀라왔습니다. 3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로 출발한 우리교회가 1월에 태국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30명이 넘는 성도들과 청년들이 참여했습니다. 태국은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김문수 선교사를 비롯한 많은 선교사를 후원하는 곳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가 깊으면서도 아직까지 자립하지 못하는 태국에서 우리 팀은 여러 지역을 돌면서 태국선교의 열정을 품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우리 교회가 가장 바쁘게 지낸 달이었습니다. 이용걸목사님을 모신 부흥회를 시작으로 임직식과 창립기념주일예배, 홈 커밍데이와, 그리고 명 성가의 밤까지 거의 매주일 우리는 30년의 교회역사와 함께 축제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기쁨이 충만하여 밤잠을 설치며 보내는 기간이었고,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는 감격의 눈물로 지낸 날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이런 것이 감사할 일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감사할 일이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아직까지 나아진 것이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도 회복이 안되었고, 사업도 풀리지 않았고,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 만큼 어려운 상황이 처한 경우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이것은 환경으로 인한 감사가 아니라, 본질의 감사입니다. 자기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언제나 동행하시는 주님으로 인한 감사였습니다. 눈물나며 깊은 한숨 쉴 때, 나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 위로와 용기를 주신 주님으로 인한 감사입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무엇보다도 감사할 조건이 아닙니까!

  여기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반환점을 돌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감사입니다. 바울처럼, 이 시점에서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새로운 삶을 향하여 힘있게 달려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바울은 감사를 시작으로 확신으로 뭔가를 제시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본문의 전반적인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확신을 갖고 전하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 역시 크게 2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예수님을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성도들에게 힘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반환점을 돌면서, 다시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표입니다. 인생의 경주와 신앙의 싸움에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말고, 언제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달려가면서 그분을 바라보며 나가야 합니다. 그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선택한 예수님,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믿는 것에 대해 후회가 없으십니까? 아니면 괜히 믿었다고 생각합니까? 가보지도 않은 천국은 정말 있는 것일까 하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내가 예수에 코가 꿰어서 이렇게 살게 되었는가 하지는 않습니까? 혹 내가 미친 것은 아닐까 말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 우리가 불쌍합니다. 지금까지 믿고 땀흘리며 달려 온 나의 생애가 아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께 대한 확신을 갖는다면 이제 더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분을 위해 내 시간, 물질, 땀과 눈물, 생명까지 투자해도 아깝지가 않아야 합니다. 내가 투자한 것 이상으로 갚아주시고,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늘 힘과 용기를 주시며 도와주시는 그분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결코 후회하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가진 또 다른 확신은 ‘직분’이었습니다. 25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바울은 인생을 달려가면서 먼저 예수님에 대하여 확신을 가졌고, 또한 일군, 직분에 대한 확신도 있었습니다. 직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신 부르심입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사명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 사명이 화려한 경력을 배설물처럼 여겼고, 그의 앞에 당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또한 그 사명을 위하여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으로 초대하여 부르시고, 또 사명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한 평생을 살다가 간 많은 신앙인의 삶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이 단지 부름 받고 이름을 남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바로 그 사명을 위한 그들의 열정이 우리에게 본이 되고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명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와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반환 점을 돌면서 이 시점에서 다시 나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나는 사명에 충실한 존재입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

  셋째는 수고해야 합니다. 본문의 결론인 29절에서 바울은 성도들과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수고하노라’ 이 한마디가 얼마나 자신에게 힘이 되었는지, 성도들에게 얼마나 용기를 주었는지, 성경을 대하는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모릅니다. 이 말은 새로운 반년을 향하여, 아니 우리 앞에 남은 인생의 경주를 경주하며 나가는 우리가 늘 마음에 새겨야 할 말입니다. 수고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 것보다 더 수고하고, 힘을 써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어떻게 수고해야 하는가를 역시 2가지로 강조합니다. 우선,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이 말은 ‘최선을 다하라, do your best'라는 뜻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을 하라는 말입니다. 수고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고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유명한 마라톤 선수들이 많습니다. 이봉주를 비롯하여, 올림픽의 영웅 황영조, 그리고 김완기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마라토너입니다. 이들을 훌륭한 선수로 키운 감독이 ‘정봉수’라는 사람입니다. 독사 조련사로 알려진 이 사람의 철저한 훈련으로 이들 선수가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세계에 우뚝 서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잘 뛰는데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감독은 그 원인을 뒷심부족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 뒷심이 부족한가를 찾는 중에, 그 원인을 위의 팽창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수들이 불규칙적으로 밥을 먹으니까 위가 확장될 때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라톤의 최대 고비인 32키로 지점에선 도저히 뛸 수 없고, 막판 스퍼트를 내야 할 40키로 지점에 이르러선 거의 탈진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뒤부터 정 감독은 선수들에게 음식을 조절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많이 먹고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뛰어도 힘든 것이 마라톤입니다. 그런데 적은 량을 먹고 뛴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주저앉을 것입니다. 그런 각고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선수가 된 것입니다.

  힘을 다하는 수고, 자기를 조절하는 능력, 뼈를 깎는 훈련을 통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신앙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없습니다. 땀을 흘린 만큼,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수고하는 일에 있어서 힘을 다하는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29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냥 힘을 다해 수고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라고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는 철저하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이기에 성령으로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 부분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것이 믿는 자의 자세여야 합니다. 우리는 노력으로 모든 것이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물론 노력이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면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노력 그 이상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노력과 플라스 알파를 믿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해야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인간입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사람이 지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다가도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하다가 종종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를 온전히 세우는 힘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수고해야 우리가 교만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많지만, 대부분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 신앙이 없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얻었다고 해도 금방 없어집니다. 힘을 다하여 수고하면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합니다. 주시기도 하고 빼앗기도 합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하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의 반환점을 돌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나에게 주신 사명에 대하여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다하여 수고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이 신앙으로 후반기에도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잘 달려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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