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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히 이기리라 (민 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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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신 목사 (양정교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의 목전에 도착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정탐꾼이 돌아와 서로 상반된 보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은 중심의 보고를 하지만 나머지 10 사람은 불신앙에 가득 찬 보고를 하므로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갈렙이 담대하게 외친 말이 이것입니다.
  “능히 이기리라”
  능히 이긴다는 것은 간신히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넉넉히 이기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이 능히 이기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능히 이기는 삶이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1. 소수라도 진리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민주 사회이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존중되어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다수의 의견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의견이 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항상 옳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27-29절 까지를 보면 12사람의 보고 내용 가운데 상황에 관한보고 내용은 같습니다.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그러나 결론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의 결론은 “우리는 능히 그 땅을 얻지 못할 것”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달랐습니다.
  민13:30절에 갈렙은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키며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갈렙의 신앙적인 말보다 다수인 열 사람의 불신앙적인 말을 더 신뢰 하였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낙심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소수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소수일지라도 진리대로 삽시다.

  2. 메뚜기 콤플렉스 즉 열등감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본문 민 13:33절을 보면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을 메뚜기 같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메뚜기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대부분 이 메뚜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힘이 없고 나라가 작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옛날부터 중국을 대국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늘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그런 영향이 국민성에 영향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유없는 메뚜기 콤플렉스를 벗어내어야 합니다.

  자신을 비하시키고 비굴해지는 것이 겸손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비교하여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 이다라고 말한 것 처럼 자신을 격하 시키고 필요 없이 비하시키는 것은 신앙적으로 결코 겸손이 아니며 영적으로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 라고 했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 가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데 자신이 자신을 학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끊임없는 열등의식에 빠져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잘났든 못났든 간에 다 하나님의 섭리요 뜻 인줄 알고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다 다섯 달란트를 받아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모두가 다 두 달란트를 맏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이는 다섯 달란트를 주시지만 어떤이에게는 한 달란트 맡기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주신 것을 얼마나 잘 활용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한 달란트를 남기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상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지만 하나님은 주신 달란트에 비교한다.
  성경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것은 자신과 끊없이 싸우는 것이지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만사는 도토리 키 재보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남과 비교하여 열등의식이나 반대로 교만함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구태어 비교한다면 과거의 자기 모습과 오늘의 자기 모습을 비교하고 오늘의 자기 모습과 내일의 자기 모습을 비교하여 그 의미를 찾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성장하는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열등의식을 버릴수가 있을 까요?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자기 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자꾸만 메뚜기 같이 느껴집니다. 남은 크게 보이고 자기는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장점만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단 점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어떤 책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얌전한 사람은 속이 좁고, 활발한 사람은 덤비고, 씩씩한 사람은 까불고, 듬직한 사람은 미련하고, 착한 사람은 답답하고,  똑똑한 사람은 인색하고, 잘 웃는 사람은 싱겁고, 시원하게 말하는 사람은 약속 이행이 잘 안되고 경우 밝은 사람은 너무 알로 까지고 정확한 사람은 옹졸하다.

  맞는 말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열등감으로 느끼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다 약점이 있고 모자람이 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거민을 보니 성이 강했습니다. 그들은 무기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아낙 자손이었습니다. 아낙 자손이란 거인이란 뜻입니다. 얼마나 거인이었던지를 말해주는 전설이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이 너무 더워서 동굴에 들어가 한 참을 낮잠을 자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굴이 아니라 아낙 자손이 먹고 버린 석류 껍질이었습니다.

  자기 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메뚜기 열등의식에 빠져 좌절하게 됩니다. 자기 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우등감에 빠져 거만하게 됩니다.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과거를 보지 말고 꿈을 가지십시오.
  본문에서 32절을 보면 열명의 정탐꾼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민을 삼키는 땅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말은 한 마디로 “사람을 잡아먹는 터” 라는 의미입니다. 그 땅에 적응하지 못함면 죽고 마는 죽음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까지 이 땅을 침범한 모든 사람들을 모두 삼켜 버린 땅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땅을 침범한 사람들이 모두 실패했으니 우리도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과거에 안됐으니 지금도 안 된다는 생각을 교회 성장학자 지그 지글러 목사님은 벼룩이 의식, 메기 의식, 코끼리 의식이라고 했습니다.
  벼룩이는 자기 키의 70배를 뛸 수 있는 점프의 왕입니다.
  그 벼룩이를 잡아서 병에 넣고 입구를 유리로 덮어놓으면 벼룩이가 몇 번이고 뛰쳐 나오기 위해 점프를 합니다. 몇 번 시도하다가 아무리 뛰어도 병 뚜껑이상 뛸수없음을 알고 스스로 가만이 앉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안된다. 아무리 뛰어 보아야 병뚜껑이다. 수없이 뛰어보았지 않는가?”
  벼룩이 더 이상 뛰지 않고 가만이 있을 때 병 뚜껑을 열어놓습니다. 이제는 병 밖으로 얼마든지 뛰어 나갈수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뛰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쓰지 못합니다. 더 이상 능력을 개발하지도 않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현재를 꽁꽁 붙들어 매어 놓고 있습니다.
  벼룩이 처럼 실패의 과거에 붙들려 살지 말고 이제 다시 뛰십시오. 실패한 과거에 붙들려 있지 말고 소망의 하나님께 붙들려야 합니다. 
 
  자신을 존중하십시오.
  열등의식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존중해야합니다. 어떤 때는 자기 자신을 볼 때 진짜 볼품없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낙 자손처럼 느껴지고 스스로는 메뚜기 처럼 초라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내게도 그럴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보지 말고 주님안에서 자신을 보십시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싼 존재인지 알려면 십자가를 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존재다”
  “천하 보다 더 귀한 존재인 나”를 생각하십시오.
  생명의 가치성에 있어서 귀중한 존재입니다. 막 8:36절에 주님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나” 로서 희소성에 있어서도 귀중합니다. 존중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존중하지 않으면 남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3. 승리의 믿음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능히 이기리라”이 말은 인간의 힘으로 이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열등의식을 극복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외쳤습니다.
  민 14:7-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우리는 믿음을 회복하여합니다.
  10명의 정탐꾼과 2명의 정탐꾼이 본 것은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땅이라는 것에 일치된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비교하면 메뚜기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 두말의 차이는 실로 엄청납니다. 믿음과 불신의 경계입니다. 승리와 패배의 분수령이 됩니다.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눈에는 문제가 밥으로 보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안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될수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역사를 움직여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굳게 믿는 믿음의 사람이 능히 이기는 승리의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절대적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확신이 나의 경험이나 지식에서 출발하면 결국 망하고 맙니다.
  우리의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고 약속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사실상 우리의 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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