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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되라 (삼상 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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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황요한목사 (평화의교회)

주보에 소개된 한 소박한 글을 먼저 보시면 좋겠습니다.

" '애게~~ 7명 밖에 안 모였어요?'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이젠 7명이 눈에 차지 않는 숫자가 되어 버릴 만큼 훌쩍 커버린 우리 선교회... 다섯이라도 모이는 것이 기도제목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오늘 속회는 김상진집사님 댁. 2년 전 부평으로 거처를 옮겨 가시고는 오히려 섬김의 모습이 더 하신 분이다. 오늘도 일찌감치 퇴근해서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단다. 또 감동을 먹인다. 지난 해 선교회 회장으로 섬기시며 우리에게 감동을 무더기로 주신 사랑하는 우리 집사님... 교회가 필요를 청하면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섬김의 자리를 채우고 아픔의 자리, 기쁨의 자리에서 온 회원들의 위로가 되어주신 우리의 친구 집사님... 우리 일행을 맞으려 분주해 하고 있을 집사님 부부의 기쁜 모습이 갈 길을 재촉한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글인데 일부를 옮겨왔습니다. 얼마나 흐뭇하고 감동을 주는 내용인지 모릅니다. 홈페이지 안에는 이러한 유형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자주 방문하셔서 은혜도 나누시고 리플도 달아주셔서 서로 격려하신다면, 홈페이지가 이름그대로 성도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을 나누는 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소개된 이야기의 주인공 김상진집사님을 소개합니다. (박수)

저는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스바에 모여 오랜만에 기도로 뜨거운 은혜를 나누면서 놀라운 감격과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나 자신에게 삶의 위기가 닥쳤을때 사무엘이라고 하는 능력있는 영적지도자의 요청에 그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미스바로 모였습니다. 과거와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영적 지도자의 권위가 바로 서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8마일 지점에 위치해 있는 '텔 엔나스베'가 당시의 미스바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금식하며 기도하리라" 금식이라는 것은 사실상의 비상상태를 선포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삶의 특별한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간절한 소원의 몸짓이요 간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미스바에서 여호와의 백성들이 금식하면서 기도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말을 블레셋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보통같으면 이러한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두려워해야 할 터인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7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탄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야 하는데 오히려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얼마나 낙담했는지 모릅니다.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기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기뻐할 분도 계시지만 오히려 별로 좋아하지 않을 자도 있습니다. 사탄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투며 시기하고 질투하면 박수를 치면서 내 할 일은 없다며 사탄 마귀는 뒤로 물러 서서 관망하고 지켜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하면 사탄마귀는 무척 바빠집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전도에 불이 붙으면 사탄 마귀는 급해집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전도의 사람을 낙심하고 좌절하게 만들어서 열정이 식게하고 사명의 자리에서 떠나도록 만들어 결국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다른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전 같으면 블레셋의 도전이 두려워 산으로 도망쳐 숨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 번 경우에는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이 그 이전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종 사무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참으로 달라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과거 같으면 어려움이 생길 때 제일먼저 세상 친구 찾아가고, 여기저기 세상 끄나풀 찾느라고 바빴을텐데, 이제는 어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주의 종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요청한 것이 우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참으로 정상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위기가 오고, 자녀들도 때때로 삶의 모습으로 인해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문제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기도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역사를 요청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성도의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능력이 얼마나 많으냐 그런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신뢰하고 의지하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그 요청을 듣고서 9절에 보면 어린양을 하나 취해서 제단에 제물을 번제를 드리는데 거기 보면 아주 특별하게 번제에 대한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 아주 강조되는 우리의 예배에 대한 자세입니다. 어떤 번제라고 그랬습니까?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다고 그랬습니다. 온전한 번제가 있다고 하면 온전하지 않은 번제도 있다는 말입니다. 정직한 믿음을 바울사도가 베드로에게 말했다면 정직하지 않은 믿음도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온전한 예배라고 하나님 앞에 표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여러분들의 모든 영을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어린 양을 취하여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번제를 강조한 이 사무엘상 기자는 하나님께 응답받는 우리의 제사, 하나님께 응답되는 우리의 예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응답받는 예배를 보면 9절에 보면 두 가지의 내용입니다. 하나는 순전한 예배를 준비된 예배라는 것입니다. 어린양을 취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순전한 것입니다. 가장 때가 묻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하셨지만, 우리가 맥추감사절기에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이미 감사의 예배를 준비합니다. 부활주일과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과 성탄감사주일에는 내가 십일조 수준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되겠다. 그렇게 마음을 가지고 준비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있더라도 환경적으로 따라주지 못하는 분들은 마음에 아픔이 있을 거예요. 내가 그렇지 못하는 형편과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마음에 부담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무엘은 어린 양을 취하여 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감사의 모습입니다. 소를 취해서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혹은 비둘기 두 마리를 잡아서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 가운데 보편적인 일반적으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제사의 제물을 그는 취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물, 물론 물질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준비되기 이전에 우리의 드려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물로 드리고 계십니다. 늘 예배시간이 다되면 허겁지겁 들어지는 성도들, 적어도 집사님 이상이면 삼십분 전에 오셔서 교회에서 내가 섬겨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라고 권면을 드리지만, 늘 그것은 귓가에서 맴돌뿐 주일 아침이 되면 예배시간 맞추느라고 헐떡거리기 바쁜 나의 모습, 그것은 신실하고 하나님 앞에 드릴 만한 집사님의 모습은 아닙니다.

집사님의 모습이 그 정도의 기준이라면 권사님, 장로님, 전도사님, 말할 것도 없을 거예요. 우리 꿈지기교회 임원들, 젊은이교회 임원들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예배 30분 전에는 와서 우리가 무엇으로 섬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찾아야 합니다.

오늘 사무엘은 먼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물을 드렸다고 그랬습니다. 온전한 시간이 드려질 때 온전한 제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재능도 소중합니다. 내가 가진 재능을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모든 모습들, 오늘 교회는 대단히 환하고 밝습니다. 지금 밖에는 태풍이 올라오고, 비가 오고 있지만,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은 환할 정도로 여러분의 모습이 밝고 좋아요. 그 말은 여러분들이 정성으로 여러분의 의복을 준비했다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저번 주에 그런 광고를 드렸어요. 오늘 예배는 전부다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의복도 준비해보자. 죄송한 표현이지만 세일즈맨도 그 여름 복더위에 물건 하나 팔기 위해서 넥타이를 메고, 긴팔 정장을 입고 땀을 막 닦으면서 가정 가정을, 회사 회사를 방문하는 그 모습을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예배자의 모습으로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대답이 나오지 않느냐고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우리가 시간이나 우리의 달란트나 우리의 모두 보여지는 모습이나 이런 것들이 연합되어져서 하나님 앞에 드려질때 그것이 온전한 예물이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응답받는 제사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일때 응답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아, 오직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주님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신앙, 이제 이스라엘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지만, 그들은 주의 종을 찾아서 우리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물론 사무엘 선지자만 기도해 달라고 했겠습니까? 당신이 지도자로써 기도하고, 우리의 영적 모든 부분들을 인도해 달라고 하는 요청이겠지요. 당신이 기도회를 인도하면 우리도 참회해서 함께 기도하겠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는 마인드가 생겼습니다. 위기가 닥쳐오면 기도해야 되겠다고 하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겠다고 하는 그런 영적 지혜가 생긴 줄로 믿습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9절 마지막 부분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이제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서 기도회를 요청한 그들 앞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자녀로써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말씀을 권면하고 있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어요.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구하고 있을 때 블레셋이 쳐들어 왔지만, 놀랍게도 10절에 보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지라.’ 너희 앞서 싸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기도해 보지 않고, 무릎 꿇어보지 않고, 함께 믿음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띠를 띄어보지 않고, 두려워하고 놀라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모습은 이제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승리는 곧 여호와의 승리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12절에 보니까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하게 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돌을 하나 큼지막한 것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미스바와 센이라고 하는 사이에 높이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을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여기까지’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여기까지라고 하는 말 속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포함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은혜, 모세를 통한 출애굽의 은혜,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한 가나안 정복의 은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에 대한 과거를 기억하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은혜하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맥추감사주일하면 제일 먼저 시작해야할 시간적인 개념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전반기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 가정을, 우리 사업을 인도하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라고 하는 의미는 과거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위기를 만나서 지금 블레셋에 침략을 받고 있으나 두려워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응답을 사모하면서 그들이 함께 주님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무찔러 주신 그 도우셨던 현재적 은혜를 여기서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까지라고 하신 말씀은 미래에 소망을 내다보게 하는 감사의 표현도 담겨있는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그러하시리라고 하는 확신이 담겨있는 고백이 바로 여기까지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삶 속에, 여러분 가정마다, 여러분 심령마다 에벤에셀의 돌비를 세우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삶 속에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도 도우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신앙고백적으로 마음 속에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은 승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예요. 우리가 사무엘상 3장, 4장, 5장에 오면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몇 번씩이나 보았습니다. 실로에 있는 법궤까지 빼앗기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의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습니다. 법궤를 찾아오면서 시행착오를 하면서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어찌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것들도 에벤에셀에 포함이 되는가? 이것이 중요한 우리들의 관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벤에셀의 감사에는 그 사건도 포함되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은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그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죄의 형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그들은 실패를 통해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실로의 법궤를 빼앗겼던 실패의 현장에서도 계셨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들이 패배한 그 전쟁터에서도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돕고 계셨어요. 외형적으로 승리해야만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의 참담한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승리하기 위해서 어떤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 하나님은 현장에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그러면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에벤에셀은 이렇게 범위가 넓은 것입니다.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6개월동안 전반기를 살아오시면서 때때로 여러분들의 실패와 좌절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있을 것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손해를 보았을 것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아픔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픔의 자리, 그 손해나는 자리에도 하나님이 계셨고, 여러분들을 돕고 계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6개월 후반기도 우리 하나님께서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지난 전반기에도 도우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후반기에도 도우실 뿐 아니라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때때로 채찍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삶을 살기를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후반기의 삶 속에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온전히 표현되시기를, 하나님께서 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그 다양한 은혜들을 언제나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승리의 삶도 있었으나, 실패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고, 손해 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싸움에 실패의 현장에도 계셨던 하나님, 실로에도 법궤를 빼앗겼던 현장에도 계셨던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후반기의 삶도 전반기의 연약함, 부족함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더욱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더욱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주의 뜻 이루어가는 성도의 생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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