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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 댄 동산과 같은 심령 (렘 3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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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유관지 목사 (목양교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심판 뒤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심판괴 회복,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공식입니다.

오늘 본문은 회복된 이스라엘이 받는 여러 가지 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2절과 13절이 그 복들의 내용인데요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시온의 높은 곳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예배가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참된 예배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영적 예배입니다.
교회에서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다른 것들도 회복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온의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일이 먼저 있어야 그 나라가 잘 됩니다.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우리 나라의 경제가 이 말씀과 같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 각 가정의 살림이 이와 같은 풍성해 지는 복을 받기 바랍니다.

13절 중간, “청년과 노년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우리 나라에서 꼭 이뤄지기를 바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청년 실업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고 또 아직 일할 수 있는 힘과 풍부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장년 세대, 노년 세대에게도 일자리가 주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청년과 노년이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세대간의 갈등입니다.
“청년과 노년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청년들은 미군 철수해야 한다고 하고, 노년은 주한 미군이 필요하다고 피켓 들고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세대간의 갈등이 없이 함께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약속된 복들이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골고루 임하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 나라에 이 회복의 은총과 복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이 여러 가지 복들 가운데 12절 뒷부분에 있는 “그 심령은 물 댄 동산과 같겠고”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이 말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줍니까?

첫째, 우리의 심령이 메말라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는 복 받은 상태를 말할 때는 “물 댄 동산”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사야서 58장, 오늘 성시교독 순서에서 교독한 말씀인데 여기에서는 경건한 생활에 힘쓰며 주린 자와 괴로워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받는 복을 말하면서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성시교독 내용과 설교 본문에 “새 하늘과 새 땅” 같은 말이 나왔는데 오늘은 “물 댄 동산,” 같은 말이 나옵니다.
어디 갔다가 물 댄 동산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를 보았습니다.

물 댄 동산과 같은 심령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저 사람은 참 너그럽다’ ‘저 사람은 참 넉넉하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한시 가운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대표적인 풍경을 각각 다섯 글자씩으로  묘사한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봄의 풍경을 “봄물은 사방 연못에 넉넉하고(春水滿四澤)”라고 묘사했습니다.
겨울 내내 얼어붙고 메말랐던 연못, 냇물, 저수지가 봄이 되어 물이 풍성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지면서 ‘아, 봄이 왔구나!’ 느끼게 됩니다.

저희 교회 뒤에 광교산이 있습니다. 이 광교산 등산 코스가 여럿 있는데 수원 광교 저수지에서 더 가서 버스 종점에서 올라가기 시작하는 가는 코스가 있습니다.
작년에 한 번 그 코스로 해서 정상인 시루봉까지 올라 간 일이 있는데  중간까지 냇물이 소리내며 흐르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냇물과 함께 오르는 곳까지는 별로 힘든 줄 모르겠는데 냇물과 헤어진 다음부터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31장 9절 중간을 보면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사방에 흩어졌다가 돌아올 때 물 있는 길로 돌아오면 피곤하지 않고 즐겁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를 발표하면서 그곳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라고 했는데 배산임수 찾으러 멀리 갈 필요 없습니다.
저희 교회의 뒤는 광교산, 앞은 동막천, 여기도 배산임수입니다.
이 건물을 설계할 때 처음에는 설계를 공모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응모했습니다. 저 밑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심사를 하다가 심사위원들이 한 번 교회를 지을 곳을 가 보자고 했습니다.
여기 와 보고는 ‘참 좋은 곳인데 지금 응모한 설계들은 여기에 지을 건물의 설계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해서 ‘당선작 없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 나라에서 제일 우수한 설계회사라는 말을 듣고 있는 정림건축에 의뢰했는데 설계사들이 현장에 와보고 제일 먼저 한 말이 ‘배산임수의 명당이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정림건축의 사보에서 읽은 일이 있습니다.

물 댄 동산 같은 심령이 되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논에 모를 심으려면 먼저 물을 대 주지 않습니까?

물 댄 동산 같은 심령이 되어야 말씀의 씨를 받아들여 열매를 많이 맺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조용한 기도 시간에 갈라디아서 5장의 말씀을 봉독했습니다.
그 내용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물댄 동산 같은 심령이 되어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물 댄 동산 같은 심령은 이와 같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메말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물 없는 동산과 같은 심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상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상태는 물 없는 동산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사야서 1장 28절에서 31절까지에는 패역한 자와 죄인이 겪는 일들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물 없는 동산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장 29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우리가 택한 동산 때문에 수치를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수치를 당합니까?
30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물 없는 동산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들을 파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악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가만히 보면 우리 주변에는 웅덩이를 열심히 파는데 물을 담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심령이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클클하지 않습니까?
교회에는 ‘답답하다’ 할 때에  ‘클클하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주 쓰세요. 그렇게 하면 사전에 오르고 맞는 말이 됩니다.
이런 것을 언어현상이라고 합니다.

‘주님 내 마음이 메말라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클클합니다. 주여 내 심령이 물 댄 동산과 같은 심령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409장은 “목마른 내 영혼”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내 영혼이 메말라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목마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귀한 영생수를 달라고 주님께 힘써 간구해야 합니다.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 기도 어서 들어주소서

주님은 우리에게 귀한 영생수를 풍부하게 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컵을 내밀어야합니다.
기도라는 컵을 내밀면, 갈망하고 간구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바다 물결 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한량없는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 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 없도다

표현은 다르지만 물 댄 동산과 같은 심령의 소유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의 심령은 너무 메말라 있습니다. 물 없는 동산들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거친 소리가 많이 나옵니다. 극단적인 발언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옵니다.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참지 못합니다. 강퍅합니다.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늘 폭발직전의 상태로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물 댄 동산과 같은 심령의 소유자들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이 풍성함을 누리기 바랍니다.
주변을 부드럽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이 말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줍니까?

둘째, 우리는 생수와 복된 물을 공급 받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저 위에 저수지가 있습니다. 그 저수지 옆을 지날 때 가까운 곳에 저수지가 있다는 것이 고맙게 여겨지면서도 두어 가지 아쉬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이 늘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물이 좀 더 맑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앞의 동막천도 맑은 물이 풍성하게 흐르는 냇물이 될 것입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 조경이 좀 더 잘 되고 주변에 산책로 같은 것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우리 교회의 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냇물을 보고 저수지를 볼 때 자신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의 심령에는 맑은 물이 담겨 있나?’
‘내 마음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나?’ 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푸른 풀밭 맑은 시내’입니다.
그런데 맑지 못한 물이 모여 있고 맑지 못한 시내가 흘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맑은 물을 받아들이는 동산, 맑은 물이 흐르는 냇물들이 되어야합니다.

나의 심령에 공급되는 물은 생수입니다. 이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재작년 사순절 금식헌금을 가지고 방글라데시 찬드라푸르라는 곳에 교회당을 하나 세웠습니다.
그 예배당의 헌당예배를 드리기 위해 작년 2월에 방글라데시에 갔습니다.
도착한 날 저녁에 수도 다카에 있는 다카 감리교회에서 일일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부흥회를 할 때 “성령과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통역이 있어서 저는 한국말로 설교하고 통역이 바로 방글라데시 말, 벵갈어로 통역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에 봉고 버스를 타고 찬드라푸르라는 곳으로 갑니다.
찬드라푸르는 수도에서 일곱 시간 걸리는 곳으로 인도 아쌈 지방과 국경지대입니다.
가면서 머리 속으로 가서 해야 할 설교를 정리합니다. 이번에는 통역이 없기 때문에 제가 영어로 설교를 하면 방글라데시 감리교회 감독님이 방글라데시 말로 통역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부흥회에서 한 설교를 영어로 바꿉니다.
그런데 가면서 보니까 방글라데시의 물들이 너무 더럽습니다. 그리고 메말라서 조금만 고여 있습니다.
겨울에는 강이나 호수가 메말라 있고 여름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물이 많아져서 홍수가 나는 것이 방글라데시의 문제라고 합니다. 중간에 큰 강이 있고 현대건설에서 놓아주었다는 아주 긴 다리가 있는데 불필요하게 길어 보였습니다. 왜 이렇게 기냐고 했더니 여름이 되면 그 전체가 강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이 너무 탁합니다. 우리 같으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물인데 사람들이 들어가서 수영도 하고 고기도 잡아서 그 옆에서 팝니다.
그 광경이 충격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차 속에서 설교 제목과 본문을 바꿨습니다.
요한복음 7장 18절과 19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본문을 하고 교회는 맑은 생수를 풍성하게 흘러 보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꿔서 다시 정리합니다.
차안이니까 메모를 할 수 없고 머리에 입력하기 위해서 애씁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현지에 도착해서는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원래 영어 잘하지 못하지요, 도로사정이 나쁜데 일곱 시간을 흔들리며 왔지요. 덥지요. 무엇보다도 현지에 도착하니까  울긋불긋한 아치를 세워놓고 마을 주민 수백 명이 전통 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을 추면서 환영을 하지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머릿속에 입력해 놓았던 것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한국말로 입력해 놓았던 것부터 다 날아갔으니까 영어는 더 안나오지요.
설교를 안 할 수는 없고, 작은 소리로 우물우물하다가 큰 소리로 “Jesus is the Living Water" 또 한참 우물우물하다가  “Jesus is the Living Water" 이러기를 열 번쯤하고서 설교를 끝냈습니다.
그 날 방글라데시 감리교회 다스 감독님, 통역하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방글라데시 감리교 신학교 채플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는데 견딜 수 없이 피곤했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영어로 원고를 만들었습니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을 복사해서 감독님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런 내용입니다.’ 사전 브리핑도 했습니다. 그 동안은 서구가 기독교의 중심이었다가 이제는 제3세계가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고, 앞으로 이슬람권 선교가 중요한데 방글라데시 교회가 그 선봉에 서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권이면서 기독교 선교가 공식으로 허용되어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특강이 끝난 다음에 감독님이 ‘이번에는 학생들이 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더군요.
저에게는 ‘어제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하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제가 어제, 교회 바로 옆에 있는 더러운 물웅덩이를 가리키고 그 다음에 성경을 가리키며  “Jesus is the Living Water." 했으니까 그 교회 성도들이 느낌으로는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일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실패한 기억은 빨리 잊는 것이 좋습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생수의 강입니다.
생수도 참 종류가 많은데 뭐니뭐니해도 예수표 생수가 최고입니다. 
우리는 그 물에 대어진 동산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그 물을 공급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이라는 동산에 공급되는 물은 축복의 물입니다. 이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36편 7절과 9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8절에 나오는 “복락의 강물” 참 좋은 말이지요. 

여기 9절에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 나오는 “생명의 원천”도 원래는 “생명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생수를 공급해 주고 있는 것, 복락의 강물을 공급해 주고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마음껏 받아 마시기 바랍니다.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이 말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줍니까?

셋째, 우리는 그 물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나누어 주기에 힘써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비손, 둘째 강은 기흔, 셋째 강은 힛데겔, (이 힛데겔은 티그리스 강의 다른 이름입니다.) 넷째 강은 유브라데입니다.
에덴 동산도 물 댄 동산이었습니다.
이 강들은 에덴 동산만 감싸고 돈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0절은 ‘강이 에덴에 있었다’ 하지 않고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강들은 그 주변을 적시며 흘렀습니다.  주로 메소포타미아 평야 일대를 기름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분쟁의 중심지가 된 이라크가 바로 에덴 동산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집니다. 원래는 낙원이었는데 전쟁과 테러의 중심지가 되고 그 불똥이 우리에게까지 튀고, 참 가슴 아프고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 사해가 왜 죽음의 바다가 되었는지 잘 아시지요?
요단강을 통해 갈릴리 호수의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흘러 내보내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힘써 내 보내는 갈릴리 호수는 생명의 호수입니다.

시편 67편에는 하나님의 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편 67편 8절 중간에서 10절까지입니다.

주께서 아침이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강을 가로막고 까다롭게 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강에 가득한 물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품성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대어주시는 물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에 힘써야합니다.
그와 같이 할 때 에스겔서 47장에 있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 동쪽으로 향해 있는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며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나는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도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소돔은 물이 넉넉한 곳이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을 보면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 소알, 소돔, 이 쪽을 바라보니 물이 넉넉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그 곳을 택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그 넉넉한 물을 가지고 풍족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풍족함을 가지고 좋은 일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향락에 썼고 방탕한 일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한 멸망이었습니다.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심령에 주시는 물을 나의 심령 안에 가두어 놓는 것입니다.
그 물 썩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새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축복의 말씀을 전했는데 강가의 동산 같다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24장 6절입니다.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여러분 강가의 동산 같은 존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가서 4장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여러분 동산의 샘과 같은 존재, 샘이 있는 동산과 같은 존재, 생수의 우물이 그 안에 있는 심령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메마른 심령이 아니라 물댄 동산과 같은 심령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시고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는 것을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하면서 내 안에 있는 이 귀한 물을 흘려보내 나누어주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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