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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1) :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시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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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세상에서 최고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돈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보배롭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행복이고 사랑이 기쁨이고 사랑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도문에 있는 렴춘희 학생은 저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학생이 되고 있습니다. 저에게 메일을 여러 번 보내왔습니다. “난 목사님을 만난 후부터 왜서인지 그냥 기분이 하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행복해서 일까요?  그리구 겁나는 거 없어요. 관심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구 목사님의 사랑 가운데서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썬 무엇이나 다 잘 할 것만 같습니다. 그리구 목사님이 절 사랑하는 만큼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좀 걱정두 되구요. 하지만 노력을 다 할껍니다.” 어제도 이런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지금 내 인생은 즐겁구 행복합니다. 목사님을 비롯한 후원자 선생님들이 따뜻한 마음도 전해주고 생각도 서로 나눌 수 있구,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구.”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사랑이나 후원자의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고 최고로 귀하고 최고로 행복한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훔 뻑 받은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한번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랑을 느끼지도 알지도 받지도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랑에 감격해서 늘 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사랑을 느끼지도 알지도 받지도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라기1:2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고, 바리새인 시몬이 그런 사람이었고,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고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이 크고 높고 넓지만 그 사랑을 느끼지도 받지도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고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뜨겁게 고백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기의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늘을 바라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양을 치면서 늑대와 사자를 물리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거기 나타나 있었고, 골리앗을 물매 돌로 때려눕힐 때도 하나님의 손길이 거기 나타나 있었고, 자기가 죄를 짓고 울고 또 울면서 회개했을 때 거기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손길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라보아도 거기에 하나님의 신기한 사랑의 손길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감탄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139:14).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그는 자신과 하늘과 우주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찬양했습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His love endures forever.” “그 사랑하심이 영원함이로다.” “His love endures forever.” “그 사랑하심이 영원함이로다.” “His love endures forever.” “그 사랑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는 두 번 세 번 고백하고 그치지 않았습니다. 26번을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고백했습니다. “His love endures forever.” “그 사랑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는 다윗의 사랑의 고백을 26번 다 읽기 전에 마음과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꼈습니다. 자기 몸과 마음과 영혼의 부분 부분에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의 손길이 나타나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의 앉고 일어섬을 하나님이 아시고 감찰하시고 보살피신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시139:1-5). 그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 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4,5). 오늘 아침 다윗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느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첫째 다윗은 자기를 울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신기한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동물도 울기는 하지만 사람처럼 울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통곡하면서 웁니다. 흐느끼면서 웁니다. 슬퍼서 울고 아파서 울고 고통스러워서 울고 남이 안쓰러워서 울고 남이 불쌍해서 울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웁니다. 기뻐서 울기도 합니다. 다윗은 많이 운 사람입니다.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었다고 했습니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4:6).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3). 자기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 눈물이 시내같이 흐른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내 눈물이 시내같이 흐르나이다”(시119:136).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울었고 백성들이 고난과 고통에 처하는 것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더라”(삼상30:3,4). 다윗은 울고 또  울면서 자기를 울 수 있도록 신묘막측하게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살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울음은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비웁니다. 찌꺼기를 제거하는 청소의 역할도 합니다. 마음을 부드럽고 착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합니다. 울음은 사랑과 은혜의 샘물을 솟아나게 합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많이 운 사람입니다. 가난한 어머니의 눈물을 먹고 울면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의 눈물을 먹고 울면서 자랐습니다. 개척교회 시절 주님의 눈물을 먹고 울면서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울면서 눈물의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눈물 속에서 신비를 느낀다. 내가 주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주님께 사랑 받는 종으로 한없는 행복을 느낀다. 내가 내 자신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순간만큼은 나의 내면에서 진실한 인간의 면모를 본다. 내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눈물로 쏟아지는 순간은 애국자가 된다. 내가 교인들을 보며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은 교인들에게 빚진 목자의 심정임을 고백한다. 내가 아내를 향하여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은 가정의 신비를 느낀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내 가슴속에 주신 눈물이다. 내가 또 다시 받고 싶은 은혜가 있다면 주님이 울려주는 감동이요, 내가 주님께 드리고 싶은 보화가 있다면 내 마음의 눈물이다. 눈물은 진실을 담은 고백이다. 눈물은 양심의 이슬이다. 눈물은 사랑의 생물이다. 이 눈물을 고스란히 주의 병에 담아 주님께 드리고 싶어 주님 만날 그 날을 사모하며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산다.” 아름답고 귀한 고백입니다.

  우리를 울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참으로 신묘막측합니다. 다윗은 울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울 수 있는 신비한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살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울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눈물이 메마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눈물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둘째 다윗은 자기를 웃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신기한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동물도 웃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 개가 웃는 것 보았습니까? 소나 말이 웃는 것 보았습니까? 새가 웃는 것 보았습니까? 별로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사람만이 소리를 지르면서 웃고, 배를 움켜 잡으면서 웃고, 깔깔 거리면서 웃을 것입니다. 다윗은 울기도 많이 했지만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사실 많이 운 사람이 많이 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다윗에게 있어서 기쁨의 첫째 원인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시35:9).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인해서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나이다”(시31:7).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시63:3,5,6). 주의 구원을 인해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9-11).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힘이 되시고 자기의 방패가 되시므로 크게 기뻐하며 노래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시28:7).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 다윗은 춤을 추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웃었습니다(대상15:29).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했을 때 다윗은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다윗에게 있어서 기쁨의 첫째 원인 하나님 자신이었고 둘째 원인은 땅에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16:3). 그리고 성도들을 향해서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시32:11).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시37:4). 

  우리를 기뻐하며 웃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참으로 신묘막측합니다. 기쁨과 웃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들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보다 더하니이다"(시4:7). 다윗은 기뻐서 웃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웃을 수 있는 신비한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살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기쁨과 웃음이 끊어진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기쁨과 웃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받으면서 사는 사람은 기뻐하며 웃습니다.


  셋째 다윗은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신기한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서도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동물들도 서로 사랑합니다. 코끼리는 70 평생 자기의 가족과 자기들의 친족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면에서는 동물들의 사랑이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배신적인 사랑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들의 사랑은 자기들과 다른 종족들에게는 미치지 못합니다. 자기들을 해치는 원수들에게는 결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기와 종류가 다른 이방인들이나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원수들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울고 또 운 다윗은, 기뻐하고 또 즐거워한 다윗은, 나중에 자기를 해치는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소서”(시109:4-6).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에게까지 선으로 갚았습니다. 다윗은 결코 사울 왕을 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죽었을 때 다윗은 통곡하면서 슬퍼했습니다. 다윗은 나중에 사울의 집안에 살아 남은 한 사람인 므비보셋에게 분에 넘치는 은총을 베풀기도 했습닌다.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삼하9:7). 다윗의 사랑에 감격한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다윗은 또한 자기를 욕하고 저주하는 사울 가문의 신하 시므이에게까지 선을 베풀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오눌날 그 저주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삼하16:11,12). 

  다윗은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신기한 사랑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주께서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에 층만하게 나타나 있지만 특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 사람에게 신묘막측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 만물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과 비슷하게 만드신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다고 했는데 어떤 사본에는 "우리들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쓰레기 같은 인생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울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을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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