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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짖는 자의 샘 (삿 15: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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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광호 목사 (영생감리교회)

사사시대를 영적 암흑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에서 왜 그들은 영적 암흑기를 살아야 했습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각각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성기를 맞이하려면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제 생각이 옳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옳은 것입니까?. 그러면 누구를 따라가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해답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후 얻었던 결론입니다.

사사시대가 영적 암흑기였다면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들의 시대는 영적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는 무엇입니까?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옳은 대로 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영적 암흑기가 될 수 도 있고 영적 전성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라기는 성도들의 가정과 우리 영생교회가 영적 전성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더욱 영광 돌려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사 삼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히던 나라는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들은 철기문화가 발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철 무기를 앞세운 블레셋에게 이스라엘은 항상 무기력했고 침략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세우신 사람이 삼손입니다.

이스라엘이 영적 악순환을 계속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고통 중에 부르짖는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쳐주셨습니다. 이유는 언약의 백성이며 택한 백성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떠나지 않으십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시는 주님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며 사랑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나귀턱뼈 하나로 불레셋의 일천 군사를 물리치고 승리한 이야기입니다.
동족의 손에 끌려가는 삼손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절대 절명 위기의 순간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묶었던 삼겹줄이 불탄 삼과 같이 터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귀의 새 턱뼈 하나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삼손의 승리는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할 때 그를 묶고 있던 줄은 힘없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귀 턱 뼈 하나로 일천의 블레셋 군사를 무찌르는 놀라운 능력을 행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결박하고 있는 모든 악한 것들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순간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 채 풀려지고 말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권능이 성도들의 모든 묶인 것을 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로 우리는 위험한 일을 만납니다. 악한 세상의 권세가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갑자기 닥친 재난의 문제 앞에 당황합니다. 모든 세상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우리를 꽁꽁 묶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그 모든 것들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결박에서 풀려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럼에도 극렬한 불이 그들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권능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가 삼키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다니엘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거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친히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니까 보잘것 없는 나귀 턱뼈가 훌륭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니까 들에 뒹굴던 뼈 조각이 블레셋의 일천 군사를 능히 무찌르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사람들의 눈에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능력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손에 들렸던 물맷돌이 그러했습니다. 작은 돌멩이에 불과 했지먄 하나님의 권능이 다윗에게 임할 때 돌멩이는 훌륭한 무기가 되어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그러했습니다. 나무 조각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기적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인도한 지도자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마라의 샘에 던져진 나무 조각이 그러했습니다. 보잘것없던 그것이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기적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그 가운데 임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보잘것없던 우리도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은사와 재능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놀랍게 사용되는 능력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 가운데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위에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영생교회 위에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 능력의 도구들로 쓰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삼손이 블레셋의 일천 군사를 물리치는 놀라운 일을 해냈습니다.
죽은 시체의 더미가 산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능력을 행한 후 삼손은 몹시 지쳤습니다. 기진맥진하여 고통스러운 목마름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레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어찌된 일입니까? 그렇게 용맹스럽던 삼손이 어찌 이 깊은 절망에 빠져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삼손의 깊은 절망의 외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이라는 책을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고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데포우라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그는 절망에 처한 사람의 신앙 경험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평강을 되찾는 내용이 그의 소설의 대부분의 주제입니다.
외딴 섬에 던져진 로빈슨 크루소, 절망할 수 밖에 없던 그에게 한 절의 성경이 생기를 붇돋아 주었습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로빈슨은 이 말씀을 붙들고 그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찾았고 그 말씀으로 인해서 새로운 생명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갑자기 찾아 온 절망 앞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절망을 이기고 새로운 소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 온 절망 앞에 연약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인생을 사는 가운데 탈진의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우리 앞에는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깊은 절망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듣게 될 것입니다. 너무 중요한 말씀이기에 절대 놓쳐서는 안됩니다. 삼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처절한 절망을 맛보고 환란에 처했을 때, 죽을 것만 같은 엄청난 고통을 당할 때에 삼손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처절한 고통의 문제를 호소한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절박한 가운데 드린 진실한 기도였습니다. 절망의 외침처럼 들리는 그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삼손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 땅의 한 우묵한 곳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곧 그곳에 샘이 터졌습니다. 삼손은 절망의 목마름을 해결 받았습니다. 삼손은 그 물을 마심으로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 샘의 이름이 ‘엔 학고레’입니다. ‘엔 학고레’라는 말은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부와 명예를 얻는 것입니까? 지식과 권력을 얻는 것입니까? 행복과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엔학고레의 샘입니다.
엔 학고레의 샘, 부르짖는 자의 샘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절망의 자리에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이김이 있습니다.
둘째, 엔학고레의 샘, 응답의 샘은 오직 부르짖는 자에게만 터진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엔학고레의 샘은 기도하는 자의 샘입니다.
셋째, 항상 기도에 힘쓰면 언제나 엔학고레의 샘은 여러분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멘
시50:15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아멘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결론은 응답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기도하는 것입니다. 앞이 캄캄할 때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11)

기도하면 고난을 헤쳐 갈 용기도 지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에 진정한 도움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슬픔 속에서도 참된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해결 받습니다. 기도의 결론은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의 임종을 지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암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임종의 시간이 자기에게 곧 닥칠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식구들을 불러놓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는 이의 평안함을 가지고 남은 식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은총에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장례식에서 저는 유가족들의 얼굴에 감도는 놀라운 안정과 평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참여한 그 어떤 장례보다 차분하면서도 은혜롭게 그의 장례는 진행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의 위로와 힘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과 모든 조문객들 속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골4:2)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7)
나무에게 뿌리가 필요하듯 성도에게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항상 밥을 먹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영적인 지혜를 얻게 되고 우리들의 삶에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과 육이 무너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처음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쾅하고 터지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먼저 타던 승용차는 대우자동차에서 나온 맵시나라는 차입니다. 중고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도 신나게 달렸습니다. 제 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봅니다. 외제 승용차가 지나 가는 줄 압니다. 그 차는 초록색의 보기 드문 오래된 차였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진해에서 마산으로 가려면 장복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저는 장복터널을 지나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나는 겁니다. 그러더니 차가 빙글빙글 세 바퀴 반을 돌고 길가에 쳐 박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다른 차와 충돌하지 않은 것입니다. 제 스스로 가다가 서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차 뒷바퀴를 돌려주는 대우라는 기어가 있는데 그곳에 윤활유가 있어서 열을 식혀줍니다. 그런데 그 윤활유가 모두 새어버린 것입니다. 눈에 띠지 않게 새어나온 것이 마침내 완전히 말랐고 차가 고속으로 달리자 열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가 열에 붙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을 경험하고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삶에 윤활유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의 윤활유가 새어 버리면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가속이 더해질 수 록 마침내 인생의 파국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쌓이면서 곧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로 바뀌는 것입니다.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적어도 매일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않고서는 이 일들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기도하는데 쓰는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를 외면하고 일하는 것보다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일할 수 있고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가르치러 나가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성가대원은 노래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공부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쌀독에 있는 공기와 주머니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안 것은 어머니가 항상 밥을 짓기 위해 쌀을 꺼낼 때 먼저 성미를 구별하고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의 제일은 기도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기도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시는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

이번 주간은 특별기도하는 주간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여름에 있게 될 교회의 행사를 위해 먼저 기도로 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교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수련회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단기 선교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함으로 무엇이 먼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지의 목적이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함으로 진정 하나님의 도우심을 겸손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먼저 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성도의 영적 준비입니다.

기도하고 계십니까?
고난 중에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먼저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환란 가운데 있습니까?
깊은 절망에서 신음하고 계십니까?
앞 뒤가 다 막혀서 길을 찾지 못하십니까?
낙심하며 슬픔과 탄식으로 지쳐 있습니까?
예수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으십시오. 부르짖을 때에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을 때에 더 이상 슬픔과 탄식이 없을 것입니다. 한숨을 내쉬며 눈물 흘리던 여러분의 위치가 바뀔 것입니다.

환란 날에 삼손처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엔학고레의 샘을 여러분 앞에 터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 샘의 물을 마시고 다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호와 신의 권능으로 능력 있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샘의 물로 삼손의 혼미했던 정신이 다시 회복되었듯이 여러분들에게도 회복의 은총이 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엔학고레의 샘을 소유하십시오. 그 샘은 부르짖는 자의 샘입니다.
절망하며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의 자리마다 회복의 샘, 치료의 샘, 축복의 샘 엔학고레의 샘이 넘치며 솟아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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