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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에게도 시련은 있습니다. (행 21:3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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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바울사도가 가이사랴에 갔습니다. 거기서 빌립 집사 집에 머물렀습니다. 빌립의 딸이 넷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령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예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날 있으니 선지자 야고보가 유대에서 왔습니다. 그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바울의 겉옷 띠를 풀었습니다. 그 띠로 자기 손 발을 묶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령이 말씀 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결심을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각오도 되어 있다고 합니다. 울며 말려도 바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뜻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미 바울사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도 바울의 결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열이 환영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 감독인 야고보에게 갔습니다. 거기는 이미 장로들도 다 모여 있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이방인이 예수 믿고 변화 받은 일을 말했습니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이미 유대인 중에 예수 믿은 사람이 수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모세의 율법 중 할례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제법 시끄러웠습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때 마침 결례 기간이었습니다. 때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모든 사람을 충동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바울은 고약한 사람이다. 모세의 율법을 어긴 사람이다. 그리고 헬라 사람을 거룩한 성정에 들어가게 한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온 믿음이 좋은 유대인들을 선동했습니다. 온 도시가 소란했습니다. 바울은 모세의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칭 거룩하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전하는 바울을 죽이려고 선동했습니다. 유대인의 죄가 어떻다는 것이 이해가 되시지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에 너무 감사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 성경, 성전은 늘 거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사건도 이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Ⅰ.

문제는 또 다시 불거졌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을 괴롭혔던 사람이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바울의 길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전도로 예수를 믿은 드로비모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바울과 드로비모가 길에서 같이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가 나와 지금 길에 같이 있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무리를 선동했습니다. 당시의 성전 구조는 이랬습니다.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1년에 단 한번 대 제사장만 들어 갈수 있었습니다. 지성소 앞에는 제사장들의 뜰이 있습니다. 그 다음 밖에 유대인 남자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유대인 여자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밖에 한 층 낮은 곳이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여기 까지만 이방인들이 올 수 있습니다. 유대인 여자의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는 높은 담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방인이 들어오면 사형에 처한다고 헬라어와 라틴어로 쓴 경고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죄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오늘 선동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울이 헬라 사람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거룩함을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우리들의 일에 힘을 합해 주시오. 저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어디를 가나 우리 백성과 모세의 율법을 공박하면서 자기의 교리를 전파하는 사람입니다.”(21:28) 그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율법과 성전과 백성은 거룩의 3대 요소였습니다. 그들의 자존심입니다. 자랑입니다. 특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자칭 천국백성입니다. 선민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시내산에서 받은 절대적 계명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메시야 왕국의 중심입니다. 바울은 이 세 가지를 다 부정하고 훼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느 하나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훼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선동에 도시가 소란했습니다. 그들은 종교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내용보다 형식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드로비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에베소교회에 구제금을 가지고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에 온 사람입니다.(21:29)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정말 신사적인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정말 어느 사회나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 확인도 하지 않고 남을 어렵게 하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상담학에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상담자가 상담하러 온 사람의 대화 하면서도 그 분의 말뜻을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때 그냥 본 뜻을 모르면서 지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나는 당신의 뜻이 군에 입대 하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는 “아닙니다. 군에 입대 한다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마치고 군에 입대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묻고 지나면 오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이 헬라 사람이 성전에 들어간 것이 맞느냐? 고 물었다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선동하는데 따르지 않으면 모세의 율법에 대한 불 충성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더 악랄하게 바울을 괴롭혔습니다. 이미 군중들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군중들은 바울을 붙잡아 성전 밖으로 나가자 성전 문이 곧 닫혔습니다. 그 문은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 있는 문으로 성전 맡은 자가(4:1) 관속(5:22)들을 시켜서 닫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군중에게 맞아 죽을 것으로 알고 성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Ⅱ. 하나님의 도우심

군중들은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 온 깡패들입니다. 그들은 이번에는 꼭 바울을 죽여야 했습니다. 바울이 율법의 파괴자로 알았습니다. 너무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온통 성전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헬라인이 성전에 들어갔다고 오해했습니다. 괜히 트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다면 그들도 거룩해야 합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다면 거룩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난동을 부렸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죽도록 때립니다. 예루살렘이 소란하다는 소문을 천부장이 들었습니다. 그는 군인들과 백부장을 거느리고 성전에 왔습니다. 그러자 바울 때리는 것을 그칩니다. 정말 하나님은 이방인을 통해서도 사역자를 돕습니다. 천부장이 와서 소란을 중지시켰습니다. 로마 군인은 6천명을 한 열대로 편성했습니다. 연대장 밑에 6천명의 천부장이 있었습니다. 총독은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천부장을 파견해서 치안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성전 서북쪽에 있는 안토니아 영 (Toiwer Antonia)에는 로마의 상비병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지역 경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성전 경비를 맡은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Claudius Lysias)가 부하를 거느리고 와서 바울을 두 쇠사슬로 결박했습니다. 루시아는 돈을 가지고 로마 시민권을 산 로마 장교였습니다.(행 22:28) 바울에게 대하의 악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천부장은 치안 유지를 위해 출동했으나 사도를 위급한 중에서 구한 것은 교회를 위해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의 법과 군대도 이럴 때 사용하신 것입니다. Antonio 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서 군중들이 바울에게 또 다시 폭행하려고 합니다. 근인들이 바울을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없애버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도 이 뜰에서 재판 받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천부장에 의해 위기를 면했습니다. 그는 천부장에 의해 군대 병영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천부장에게 “한마디 말씀을 드려도 좋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천부장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어떤 경우에도 다만 복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왔습니다. 그가 여기 오기 전의 사건을 압니다. 사람들이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예언도 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바울이 체포되었습니다. 아마 천부장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는 안토니오 영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섰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그는 유창한 헬라어로 말합니다. 보통 유대인은 아람 말을 사용했습니다. 헬라어는 문화인들에게 통용되는 세계어였습니다. 천부장은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통역을 통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무식한 폭도의 두목 정도로 알았습니다. “당신이 얼마 전에 반란을 일으키고나서 폭도 4.000명을 이끌고 광야로 나갔던 그 애굽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의하면 선지자로 자칭하는 애굽 사람이 주후 54년경 3만 명의 유대인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 모여 살며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성 안으로 쳐들어간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렇지만 총독 벨릭스에 의해 400명이 죽었습니다. 200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는 지취를 감추었습니다. 반드시 다시 온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천부장은 네가 바로 그 장본인이 아니냐고 물은 것입니다.

맺는 말 : 바울은 선교사입니다. 키가 작고 얼굴이 좀 험상궂게 생겼답니다. 인상이 좀 나빠서 이런 오해를 받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종교 깡패들에 의해 성전에서 죽을 뻔 했습니다. 바울이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 안에 갔다는 것이 외형적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숨은 내용은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바울도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원정을 온 건달들입니다. 바울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그때 이 소문을 듣고 천부장이 군대를 보낸 것입니다. 천부장이 직접 바울을 심문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울이 제단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성장과정을 이야기 합니다. 왜 여기 이런 상황이 벌어 졌는지 처음부터 설명을 했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체 안토니오 뜰에서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불신자(이방인)에 의해 구출됩니다. 이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4.8.1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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