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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앞에서 (왕상 1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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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예용범 목사 (여의도제일교회)

네덜란드의 화가 고흐는 목사의 아들입니다.
그가 화가가 되기 전에 한 탄광에서 광원으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한광원이 포장지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등 뒤에 「취급주의! 깨지기 쉬운 물건임」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고흐는 이 문구에 크게 깨우침을 받고 자신의 연약함은 주께 의지하고 타인의 연약함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서 큰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1) 엘리야

오늘의 엘리야를 보십시오.
◦ 하늘 문을 열고 닫는 능력의 종입니다.

◦ 하나님에 관한한 열심이 특심이었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위기가 왔습니다.
약함과 두려움이 몰려온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엘리야 혹은 특정 인물에게만 국한된 상항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양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런 모양이 있었다면 믿겠습니까?

  고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여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2) 문제

왜 이런 약함과 두려움이 옵니까?
왜 이런 위기가 옵니까?

① 환경적 요인이 있습니다. (10절)
엘리야의 경우 우상이 만연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 영적으로 어둡던 시대에 언제나 빛의 사자로 산다는 것이 고상한 만큼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어떤가요?
경쟁의 시대입니다.
아이들은 입시경쟁
어른들은 생존경쟁
교회 역시 부흥경쟁
여기에 너나 할 것이 없이 탈진되고 낙오될까봐 불안하여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습니다.

② 심리적 요인이 있습니다(2절).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묘합니다.
조석변개합니다.
◦ 무엇을 보느냐?
◦ 무엇을 듣느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지금의 엘리야는 이세벨 왕후가 「정녕 죽이리라」하는 말에 큰 낙심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많이 봅니까?
무슨 말을 많이 듣습니까?

살겠다, 살수 잇다 보다는 죽었다 죽겠다 죽을 것이다 하는 모양과 소리를 듣고 보니 나도 위축됩니다.

③ 믿음의 요인이 있습니다.
앞선 두 요인들이 일반적 이라면 믿음의 요인은 오직 성도에게만 국한된 요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적 요인이든 심리적 요인이든 다 요동쳐도 믿음만 요동치지 않는다면 성도는 오히려 안연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요동치면 성도일지라도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게 되어 버립니다.

지금 엘리야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 육체가 지쳐서 탈진 되었습니까?
전에도 그랬습니다.

◦ 마음이 낙심되었습니까?
전에는 850명의 거짓 선지자 앞에 당당히 서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제는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는 모습은 나약하다 못해 가장 큰 불신자의 모습입니다.

3) 문제 해결

이러한 문제들을 과연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습니까?

상담학에서는 내담자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구별하는 방법부터 배웁니다.
바른 진단만이 바른 해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 문제는 무엇입니까?
◦ 영과 육의 탈진이 문제이고,
◦ 불신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탈진된
① 육체를 위해서는 먹고 자고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떡과 물을 갖고 엘리야를 방문 한 것은 먹고 쉼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국민소득이 낮을 때는 쉬지 않고 일만 했습니다.
지금은 놀기만 하려고 합니다.

일만 한다거나 놀기만 하려고 할 때는 참 쉼과 재충전이 되질 않습니다.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쉼의 조화가 있어야 됩니다.

유감된 것은
성도들 중에는 쉼을 낭비로 생각하여 죄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현대는 「일 중독증」이 허다해서 도무지 쉴 줄 모르는 성도가 있습니다.

오해 하지 마십시오.
노는 것과 쉬는 것은 다릅니다.
노는 것은 소비적이라면
쉬는 것은 생산적입니다.
노는 것은 금물일지라도
쉬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감독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 폴리캅이 자고새 한 마리와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비아냥거렸습니다.
「감독님은 성자라고 하면서 어떻게 새와 놀며 시간을 보냅니까?」
이때 폴리캅 감독은 달리 얘기했습니다.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 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매어 두면 몹씁니다.」

만물이 그러하듯,
육체를 가진 인간은 한계적 존재이기에 적절한 쉼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쉬셨던 것입니다.

  와상 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② 상한 마음의 치료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경기도 양평에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의 「모새골」이란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 모새골의 운영자요 대표자는 한국 대표 장로교회의 당회장 출신되는 목사입니다.
그가 목회 중에 마음을 상함 받았습니다.
결국 목회도 목사직도 사임하고 스위스 칼읍정신연구소에 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워져서 새 사명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경우
대체로 「억제된 분노」를 갖고 있습니다.
「분열된 정신」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병, 정신의 병 어찌 보면 육체치료보다 더 절실한데도 불구하고 감추거나 무시함으로 더 큰 병을 키웁니다.

특별히 ◦ 마귀의 역사라고만 보지 마십시오.
    ◦ 부정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몸에 감기가 오듯이 마음과 정신에 이상이 온 것뿐입니다.
이때 「내과」가듯,
    「정신과」가서 약 먹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③ 믿음의 치료를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때로는 그 하나님 앞이 「산」일 수 있고,
「교회당」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하나님 앞에 있을 때
◦ 바람도 불고
◦ 지진도 일어나고
◦ 불같은 현상과 체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을 세워주는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사니?
◦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깨우쳐 주십니다.
이때
◦ 주님과의 첫 사랑이 회복되고
◦ 죄 사유함의 감격과
◦소명이 회복됩니다.

성도는 육체도 마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욱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이 때 쉬고 잡수고 해야 합니다.
그중 믿음의 충전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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