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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둑과 보물 (눅 12: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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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요즈음에는 아이들이 컴퓨터를 갖고서 게임을 하면서 놀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많이 놀았다. 땅따먹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손이 찢어지도록 활짝 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차지하려고 했다. 땅따먹기 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얼마큼의 땅을 먹었는지 상관없이 어머니가 부르시면 모두 뒤로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간다.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했는지 모른다. 구슬을 잔뜩 따가지고 와서 비밀 창고를 만들어 그곳에 모아 놓고는 그것이 좋아서 자다가 깨서 들여다 보고, 그 중에 왕 구슬도 골라 보고, 잘 튕기는 구슬도 골라보면서 재미있게 지내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구슬과 딱지를 잔뜩 만들어 준다고 해도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구슬과 딱지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어렸을 때에는 구슬과 딱지가 나에게 보물과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딱지와 구슬은 어렸을 때에 잠시 필요할 뿐이지 나에게 계속되는 보물은 아니다.

요즈음에 청소년들은 핸드폰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른들보다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핸드폰이 훨씬 좋다. 청소년들이 돈이 많아서 좋은 핸드폰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기를 지날 때에 단지 핸드폰에 관심이 있으니 좋은 핸드폰을 갖고 싶어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핸드폰을 산다고 할찌라도 그 핸드폰은 시간이 조금 지나기만 하면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잠시 동안 필요할 뿐이지 핸드폰 자체가 계속되는 보물이 될 수는 없다.
남자 어른들은 자동차를 좋아한다. 어떤 모델이고, 배기량이 어떻고, 관심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차를 산다고 할지라도 그 차는 잠시 동안 필요할 뿐이지 자동차가 계속되는 보물이 될 수는 없다.

여자들은 자신의 아름 다움을 소중하게 여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이런 말이 있다. 20대는 화장이라고 하고, 30대는 분장이고, 40대에는 변장, 50대에는 가장, 60대에는 위장이라고 한다. 여성의 아름다움도 결국에는 아무리 아름답게 꾸미려고 해도 60대에 화장하면 위장이라는 말을 듣게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 가장 마지막 까지 남는 보물은 무엇일까?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장난감, 자동차, 좋은 옷, 좋은 집, 학위 등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잠시 우리에게 필요한 보물과도 같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보물이 될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믿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우리는 집도 갖고 갈 수 없도, 차도 갖고 갈 수 없고, 핸드폰, 컴퓨터 등을 갖고 갈 수 없다. 오직 한 가지 예수를 믿는 믿음 만을 갖고 간다.

그러기에 믿음이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귀한 것일수록 눈독을 드리는 도둑이 많다는 점이다. 가난하게 보이는 집에 강도가 들어가겠는가? 돈이 없어 보이는 거지에게 쓰리군이 다가가겠는가? 돈이 있고, 뭔가 중요한 것을 지닌 사람들에게 도둑이 접근한다.
악한 영은 어떤 존재인가? 도둑과도 같다. 악한 영이 보기에 가장 중요한 보물은 우리의 물질도 아니다. 우리의 재능도 아니다. 우리의 건강도 아니다. 우리의 쾌락도 아니다. 악한 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물은 우리의 믿음이다. 그러기에 믿지 않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들에게 악한 영의 유혹과 시험이 많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악한 영이 보기에 보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훔칠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보물이 있기에 악한 영이 도둑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가장 소중한 믿음의 보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악한 영이 도둑처럼 우리의 믿음의 보물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지켜야 하겠는가?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나의 마음이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

여행을 하면서 이 호텔 저 호텔을 옮겨가면서 잠을 자게 된다. 호텔에 짐을 풀면 내 마음은 그곳에 가서 있다. 아무리 좋은 호텔보다는 나의 물건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 옷 몇 가지가 있는 곳에 내 마음이 머물러 있는데 나에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내 마음이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150년 된 산삼을 발견하였다. 얼마나 귀한가? 가격으로는 4500만원 되는 산삼이다. 이것을 캐다가 자기 집 뒤에다 심어 놓고 잘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몇일 전에 휴가 온 사람들에게 민박을 시켰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술에 취한 김에 뒷 마당에 있는 산삼을 캐서 먹어 버렸다. 이 사람은 그것이 산삼인 줄도 모르고 얼떨결에 먹었는데 알고 봤더니 그것이 4500만원짜리 산삼이었다. 졸지에 이 사람은 4500만원짜리 산삼을 먹었으니 그것을 물어 내야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산삼 주인이 뒷 마당에 산삼을 심어 놓고서 그 마음이 늘 뒷 마당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귀한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믿음을 지키려면, 믿음의 보화를 잘 유지하려면 내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머물러야 한다. 내 마음이 교회에 머물러 있어야 우리는 믿음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런데 악한 영은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자꾸만 물질에 머무르게 한다.

어떤 사람이 대낮에 시장에 있는 금은방 탁자 위에 큰 황금덩어리를 움켜 잡고 도망을 갔다. 사람이 많은 시장에서 도망을 쳤으니 당연히 잡혔다. 그 사람을 잡은 다음에 묻기를, “당신이 이 대낮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시장에서 그것을 훔쳐 도망가면 안 잡힐 줄 알았습니까?” 그 질문에 이 사람이 대답하기를, “황금을 보니까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금을 보니까 다른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금덩어리만 보이더라.” 부모가 유산을 남겨주면 자녀들이 그 물질 때문에 분쟁이 일어난다. 싸움이 일어난다. 그 이유는 물질 때문에 눈에 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질 때문에 때로는 우리는 믿음의 보화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악한 영은 우리의 믿음의 보물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물질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한다. 물질을 통해서 믿음이 보이지 않게 한다.

그러기에 반드시 믿음을 지키려면 물질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 왜 십일조를 바치는가? 십일조를 구별해서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있다. 야자나무 같은 통에 입구를 좁게 만들고는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쌀이나 음식을 집어 넣는다. 그러면 원숭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꺼내려고 그 안에 손을 넣는다. 일단 통 안에 있는 것을 잡기는 잡았는데 움펴쥔 손을 빼자니 입구가 좋아 빠져 나오지 않는다. 손을 펴기만 하면 쉽게 빠져 나오는데 움켜쥔 것을 놓지 않고서 손을 빼려고 거기에 정신이 모두 팔려 있다. 그러는 중에 옆에 사람이 와도 인식하지 못하고 붙잡힌다.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내 눈 앞에 놓인 욕심을 놓지 못해서 그것을 잡으려다가 결국은 악한 영에 내 믿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 믿음의 보물을 빼앗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많은 물질을 쌓아 둘 때에 내 마음이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되고, 믿음의 보물을 잘 간직하게 될 줄로 믿는다.
도둑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의 보화를 잘 지키려면 “깨어 있으라”고 강조한다. 도둑은 예고 없이 온다. 도둑이 예약하고 오는 것을 보았는가? “도둑이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 말씀은 결국 예고 없이 나타나는 도둑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말씀이다. 악한 영은 우리의 믿음을 빼앗기 위해서 도둑처럼 예고 없이 임한다.

잠이든 자와 깨어있는 자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잠이든 자는 계속해서 미룬다. 조금만 더 자자. 조금만 더 있다가 충성하지. 조금만 더 있다가 예수 믿지. 조금만 더 있다가 끊지. 조금만 더 있다가 하나님께 바치지. 이렇게 내일로 미루다가 결국에는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일로 미루는 중에 악한 영이 내 믿음을 도둑질해 간다.
그러나 깨어있는 자는 미루지 않는다. 지금이 중요하다. 여기서가 중요하다. 내가 지금 악한 영으로부터 영적인 도둑질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내일로 미루는 게으른 자는 영적인 잠을 자는 자이다. 톨스토이가 이런 얘기를 한다. “게으른 자의 머릿 속은 악마가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나태와 게으름은 주의 일을 파괴시키는 자이며 영혼의 살해이다. 그것은 사람을 가만히 그리고 고요하게 죽인다.” 악한 영에게 나의 믿음이 빼앗기지 않으려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잠을 자는 상태는 내일로 자꾸 미루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깨어있어야 한다. 잠자는 자는 계속해서 내일로 미루지만 깨어있는 자는 오늘 여기에서 주를 위해 충성한다. 깨어 있어야 믿음의 보물을 지킬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 귀한 것일수록 훔치려는 도둑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물질이 가장 귀한 줄 알고 물질을 훔치려는 도둑이 많다. 그러나 이 물질도 세상 사는 동안 잠시 필요할 뿐이다. 악한 영은 물질보다 우리의 믿음이 더 소중한줄 알기에 믿음의 보화를 도둑질 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 믿음을 지켜야 한다. 내 마음과 관심이 주의 성전에 있기를 바란다. 나의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내일로 미루는 잠자는 자가 되지 말고, 오늘 여기에서 충성하는 깨어 있는 자가 되기 바란다. 믿음의 보물을 잘 지키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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