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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속이 상할 때 (시 1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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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송기현 목사

  우리가 사는 동안에 속이 상할 때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속상한 일을 당해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번 태풍으로 인해서 손해를 입은 가정들은 무척 속이 상할 것입니다. 아이를 유산한 우리 교회 새가족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속상할 줄로 생각합니다. 병들어 누워있는 자식이나 가족을 두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하겠습니까? 받을 돈이 있는데 이리 핑계저리핑계되면서 예수님은 사람이 사랑이 없다고 도리어 큰 소리를 칠 때,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빚지고 없어서 줄수 없는 사람은 또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려는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 속상한 분도 있고, 물질적인 관계에서 인간적인 관계에서 영적인 관계 속에서 속상한 일들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속이 상하면 제일 먼저 마음에 불황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방황도 하게 되고, 속상할 때 자칫 가볍게 행동하는 바람에 후회할 일도 생기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속이 상할 때 어떻게 그 속을 푸느냐하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 그 상한 속을 풀지 않고 내버려두면 결국 그것이 마음과 육신의 병을 만듭니다. 마음으로는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증오가 생기게 되고 육신으로는 모든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옛날 기생(妓生)은 일패(一牌)기생, 이패(二牌)기생, 삼패(三牌)기생으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었는데, 삼패는 몸을 파는 천기(賤妓)요, 이패는 더듬는 것만을 용납하는 가촉(可觸)기생, 일패는 가무(歌舞)나 서화(書畵)를 하는 품위있는 불가촉(不可觸)기생을 뜻하였습니다.

  이처럼 기생에도 급이 있었습니다. 성도에게도 급이 있습니다. 삼패성도는 속이 상할 때 세속적인 방법으로 푸는 성도. 즉 육체적으로 세상 것으로 푸는 성도입니다. 속이 상할 때 악한 마귀사단에게 몸과 마음을 파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세상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버린 성도입니다. 이패성도는 세속적인 방법으로 풀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것을 내 마음을 만지도록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겨우겨우 믿음 때문에 주께 붙어있고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일패성도는 내 속이 상할 때 일수록 더욱 옷깃을 여미고 악한 마귀 사단이 터럭손도 만지지 못하게 하고 오직 주를 향하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성도입니다. 

  속이 상할 때 어떻게 그 속상함을 푸십니까? 어떤 사람은 전화통을 붙잡고 누구에겐가 하소연하고, 어떤 사람은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하고,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을 계속해서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속상할 때 그 속상함을 다른 사람을 속상하게 해서 속상함을 상쇄하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그 상한 속이 풀리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상한 속이 완전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속상함의 파장이 오히려 커져가고 확장되어갈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도 보면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기자도 속이 심히 상한 일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4절을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속상하면 참담하다고 했겠습니까?

  시편기자는 그 마음에 속상함을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먼저 그 속상함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무슨 일에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속상함을 가지고 나감으로서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속이 상할 때 그 속상함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서 하나님과 상의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먼저 자신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속상함이 나 자신의 부덕의 소치이며 내 부족함 때문에 왔다는 고백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허물부터 찾아낼 때 억울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없을 때에는 억울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행사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속상할 때 떠들고 폭음하고 설치지 않고 주님의 행사를 '묵상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의 행하시는 일을 생각함으로써 위로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자꾸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행사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언제나 복되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일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 앞에서 죄인되고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확증하신 그 크신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소란을 피우고 그들을 인도하던 지도자를 원망하기만 했던 적은 어떤 때 였습니까? 지난날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잊어버렸을 때였습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그 행하신 능력을 기억해야 합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기쁠 때나 속 상할 때나, 그 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상한 인생들이 치유 받는 비결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고 주님이 당하신 고초를 생각하다보면 저절로 나의 속상함은 사라지게 되고 위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힘이없고 네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이름 부르는 모든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모든 염려주께 맡겨라
  슬플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찬미예수.1167)

  주님을 향하여 손을 폈습니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면 해결될 줄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손을 하나님을 향하여 폈습니다. 무엇을 움켜 잡아보려던 시도를 멈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야합니다. 주님을 향하여 주먹을 쥐고 하늘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하늘을 향하여 발길질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 나쁘다고 바위를 차 보세요. 바위가 상처를 입습니까? 차는 발길이 상처를 입습니가?
  주님을 향하여는 손을 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속상함을 가져오고 이 속상함을 나쁜 쪽으로 사용하려는 악한 마귀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속상할 때 사단의 종노릇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느대로 초대교회는 핍박이 오면 오히려 피를 흘려가면서 대항해내고, 시험이 오면 온 성도가 함께 모여서 기도로써 그 위기를 극복해내곤 하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초대교회가 부흥하고 발전을 이룩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예전에는 시험이오면, "소나무 뽑으러 가자"며 산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심장을 쏟아붓곤 하였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 이불을 펴놓고 기도하는 식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오면 오히려 기도의 불길이 타올라 더 부흥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기도할 줄 모르는 성도가 너무 많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제직들이 기도가 겁이 나서 기도 시간을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않습니까? 라면집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 믿고 3년 정도 되면 기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에 겁을 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엔진을 켜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함대를 내 인생의 거친 바다 위에 당당히 띄우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함대를 발진시키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비행을 시작하십시오.
기도의 날개를 달고 영적 세계를 날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심리학들은 말하기를 '못난 척하고 사는 사람, 없는 척하고 사는 사람, 모르는 체 하고 사는 사람보다 잘난 체 하고, 있는 체 하고, 아는 체 하는 사람이 10배 이상 더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손으로 과학 문명이라는 거대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분수를 알지 못하고 생각한 대로 다 될 것으로 착각하고 살면서 무슨 일이 안될 때마다 좌절과 공허에 빠지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은 점점 상하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사모하며 손을 펼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울고 돌아오는 탕자를 버선발로 뛰어가 품에 안고 위로해 주시듯이 진정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얻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속이 상할 때가 있습니까? 아직도 속이 상해 화가 나신 분들이 있습니까? 괜히 속이 상해 속이 끓고 있는 분들이 있으십니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아픔이나 상한 심정을 노출시키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처럼 마음 상할 때마다 겸손히 나의 모든 형편과 내 부족함을 우리가 섬기고 우리가 속해 있는 하나님께 아뢰며, 주님의 행사를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내게 이전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내 모든 속상함을 주님께 내어놓습니다.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여 긍휼을 배풀어주시옵소서" 기도하시고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하면 반드시 속이 상한 것이 속 시원하게 풀려나가게 될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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