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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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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익로 목사

영국에 제임스 심프슨(1811-1870)이라는 산부인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본래 스코틀랜드에서 빵을 만드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영리하고 공부를 잘해 에딘버러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의학을 전공하여 29세의 젊은 나이에 그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심프슨은 항상 환자들이 수술을 할 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던 중에“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세기 2:22-22)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의사의 상식으로 볼 때, 사람의 몸에서 갈비뼈 하나를 떼어 내는 것은 매우 큰 수술인데, 아담은 잠에서 깨어나서 고통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하와를 보자“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창세기 2:23)고 했습니다. 그래서 심프슨은“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듯, 환자를 잠재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는 없을까?”하고 고민하다가 수술용 마취제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1847년 11월에 심프슨은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제를 발견하고 논문을 통해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1853년에 영국의 빅토리아 황후가 왕자를 분만할 때 이 약을 사용하여 분만에 성공함으로써 이 마취법은 널리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스코틀랜드 출신의 의사로서는 처음으로“경”의 작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말년에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를 할 때, 한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큰 발견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 제자가 이렇게 질문하면서“심프슨이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발견한 것이 내 생애에 가장 큰 발견”이라는 대답을 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심프슨은 뜻밖에“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신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무엇 입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를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대신 말씀, 빛, 생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셨는데 이 말씀은“태초에 예수께서 계시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라 하지 않고“말씀 즉 헬라어로 로고스”라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목회하면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곳은 에베소였는데 그곳에는 헬라(그리스)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들의 언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곧“로고스 즉 말씀”입니다. 이 로고스란 헬라철학에서“세상을 움직여 가는 이성적 원리”라 표현했습니다. 헬라인들이 말하는,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원리 즉 로고스가 무엇인가 그분이 곧“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태초 즉 만물이 있기 전에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분은 곧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셨고, 그분에게 생명이 있고, 그분은 사람의 빛인데 이 빛이 우리에게 비취었는데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영적인 의미에서 제2의 창세기라 합니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셨습니다. 이 창조는 사탄의 방해로 인해 타락했고, 죄악의 어두움에 짙게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역사 즉 인간 재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예수 믿고 거듭나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으로 이 창조에 의해 점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재창조를 말합니다.

창세기에 만물을 창조하기 전 즉 생명이 있기 전에 창조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빛이었습니다. 빛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그 빛에 의해 다시 생명이 창조 되도록 하셨습니다. 빛이 없이는 생명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은 곧 생명입니다. 사도요한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먼저 빛을 보내셨는데 그 빛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 세 가지가 있는데 생명, 빛,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가 요한복음의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생명이란 단어가 54회, 빛이란 단어가 23회, 사랑이란 단어가 60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시작은 말씀이며, 그 말씀이 곧 빛이라 하셨는데 이는 비유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태양에 의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면서 빛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1. 빛은 생명을 줍니다.

엄동설한에도 햇빛이 잘 쪼이는 담장 밑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며 산속의 바위 밑에는 진달래가 핍니다. 이처럼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빛이 없는 곳, 그늘지고 습한 곳에는 여러 가지 더러운 벌레들이 우글거립니다. 이처럼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논에 있는 벼도 며칠만 날이 흐리거나 비가 와서 햇빛을 보지 못하면 도열병이나 다른 병충해가 극성을 부립니다. 햇빛이 내려 쪼이는 곳에는 벌레들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미국에는 켈리포니아산 사과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특별히 맛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역적으로 비가 적고 햇빛이 많이 쪼이는 곳이라 사과에 벌레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스프링클러로 물을 줄 정도로 비가 적어 소독할 필요가 없으므로 켈리포니아산 사과는 안심하고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곡식이 성장하는 데에도 일조량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듯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지 않는 곳에는 여러 가지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어두움은 죽음을 의미하며 죄와 타락과 부끄러움을 의미합니다.

2. 빛은 생명을 자라나게 합니다.

생명은 성장하는 것이 특징인데 성장하는 데에는 빛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빛은 살아있는 것은 더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지만, 죽은 것에는 햇빛이 쪼일수록 더 마르게 합니다. 나무나 풀의 경우 밑둥치를 잘라놓았을 때 햇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말라가지만, 살아있는 풀은 햇빛을 통하여 더 자라게 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나의 인도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주님의 능력이 내 삶 속에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영혼이 무럭무럭 성장하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품을 닮아가서 이 세상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되는 것입니다.

3. 빛은 먼 곳을 보고 분별하게 합니다.

빛이 없는 어두움 속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분별을 못합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길을 잃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먼 곳까지 밝히 보고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어두움의 매임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하셨습니다. 빛 가운데에서는 우리가 가진 힘을 다 발휘할 수가 있고 지혜가 있는 대로 다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곧 창의력입니다. 그 증거가 선진국입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선진국의 대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일찍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나라들입니다.

빛이 있는 생활은 미래를 직시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늘나라입니다. 사후의 두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시고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죽음 후의 두 세계란 무엇입니까? 천국과 지옥입니다. 그 증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유일한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19의 말씀에“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생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축복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임을 밝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생명을 걸고 증거한 복음의 핵심도 하늘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까닭을 가장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곳이 요한복음 3:16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멸망이란 지옥의 형벌을 말하는 것이며, 영생은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 부활하신 예수께서 먼저 가 계신 곳을 가리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우리들의 미래를 주님의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5:24의“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신 말씀입니다.

미래가 훤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 가서 보면 입석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지정좌석 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차의 점이 개찰이 시작될 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지정좌석 표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천천히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입석표를 손에 든 사람들은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밀치고 뛰며 야단법석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쪽은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고 한쪽은 교양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라 그럴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차 승차권에 지정 좌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입니다. 입석표를 가진 사람은, 자리를 잡지 못하면 먼 거리를 서서 가야하는 고역을 치루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즉 미래의 확실한 보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여유가 있게 되고 자신이 있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면 불안하고 초조하여 다툼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으로 인해 자신의 앞날을 환하게 바라본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에도 그는 말기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7-18)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순교를 눈앞에 둔 순간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6-8)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면서 그는 하늘을 보았고, 두 팔을 벌리고 그를 환영하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에게 돌을 던져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나라에서 누릴 미래의 영광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인이 남편에게 10년 동안을 전도했는데,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저녁 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또 2차로 자기 집으로 와서 늦은 밤에 술상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이 부인은 아무 불평 없이 정성껏 술상을 차려 대접을 했습니다. 남편의 친구는 이상해서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정도면 자기 아내 같으면 난리가 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대접을 잘해주는지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믿음이 좋은 부인은 자꾸만 묻는 남편 친구에게 대답하기를“제 남편에게 10년 동안을 전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제 거의 포기한 상태인데, 저는 천당 갈 것이고 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겠지요.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이라도 좀 편하게 잘 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얼마 후 두 남자는 다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미래가 확실한 사람, 즉 그리스도의 빛 안에 사는 사람은 삶의 질이 다릅니다. 약속된 미래를 바라보고 살기에 오늘의 생활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부하고, 병들고 건강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영원한 세계를 내다보기 때문입니다.

4. 빛은 가치를 깨닫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가치가 무효가 됩니다. 빛이 없다면 여러분들이 곱게 차려입은 옷의 아름다움이 무효입니다. 예쁘게 화장한 여 성도님들의 모습이나, 멋있는 남자 성도님들의 모습이 다 의미가 없습니다. 왜요? 전혀 분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빛은 그 자체가 지닌 가치를 분명하게 들어나게 합니다. 빛을 잃으면 가치를 모릅니다. 부자가 더 말썽이 되고, 머리 좋은 것이 더 걱정이 됩니다. 건강, 재능, 물질, 권세 등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가치 있게 사용할 줄을 모릅니다. 보람되게 사용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을 위해 보람되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산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언제 확인할 수 있습니까? 빛이 있을 때입니다. 산이 아름다워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다가도 해가지고 어두워지면 그토록 어름답던 산들을 불안과 공포의 현장으로 변하고 맙니다. 산이 변해서 그렇습니까? 산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빛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모든 것이, 언제나 어디서나 아름답게 보입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부정적입니다. 불안해합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로 가득하게 됩니다.

한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질병으로 반신불수 상태였습니다. 질병 치료를 위해 많은 돈을 빌렸으나 이를 갚지 못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 절망적인 순간에도 그는 악보를 펴놓고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이 사람이 세계적인 음악가 헨델입니다. 그가 감옥에서 만든 작품이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할렐루야”입니다. 무엇이 이토록 그의 삶을 빛나게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존귀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빛을 따라 살아가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 빛을 따라 살아가면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게 됩니다. 이 빛을 따라 살아가면 모든 것을 분별하게 됩니다. 이 빛을 따라 살아가면 삶의 바른 가치관을 지니게 됩니다. 이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시며, 그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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