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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지 말라 (렘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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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피영민 목사

5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
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서론)

  지금 TV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야망’이라는 단어가 공통적
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야망의 계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제가
그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드라마는 공전의 히트를 친 아주 큰 인기
를 끌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제가 암송하고 있는 영어는 바로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
져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큰 야망을 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주 허무맹랑한 꿈이었지만 그 야망으로 인해서 오랜 시간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는 저마다의 야망이 있습니다. 과거 헬라의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나, 프랑스의
군사적 천재인 나폴레옹,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 같은 역사의 한 획을 크게 그은 사람
들만 야망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신
의 인생을 위한 저마다의 야망이 있습니다. 전 유럽을 정복하였던 알렉산더의 야망과
조그마한 시골의 이장님의 야망에는 양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야망의 질적인 차
이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
든 사람들의 헛된 야망을 향하여 강력하게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별
히 본문 5절의 전반부에서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
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위인들은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말하지
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신의 친구이자 제자이며 서기관인 바룩이
라는 한 사람에게 준 메시지입니다. 예레미야 45장 1절을 보시면 바룩이라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제 사년에 네리야의 아
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이 모은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
가 그에게 말하여 가로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바룩이라는 사람이 유다 왕 여호
야김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서기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
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을 책에다가 기록하
는 일을 하였던 사람이 바로 바룩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룩은 하나님의 말씀을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거룩한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룩이 살고 있던 시기는 정치적으로 참으로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유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하시기로 계획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 바룩은 개인적인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분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거룩한 서기관이었지만 바룩은 자신의 욕망을 위한 원대
한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룩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책에다가 기록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하! 우리의 죄악으
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겠구나!”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예레미야
선지자의 뒤를 따라다녀도 이 나라가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한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국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바룩의 개인적이 야망이 처참
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실망하고 낙담하고 있는 바룩을 향하여 하
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
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개인적인 야망이 가장 컸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가롯 유다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가롯 유다는 야망을 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온갖 기적이 일어나자 신이 났습니다. 조만간 로
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평화가 올 줄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뒤만 따라다
니면 자신에게도 정치적으로 큰 자리가 주어질 것이라고 확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정치적인 분야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내가 곧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만을 반복적으로 강
조하셨습니다. 가롯 유다는 개인적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3년이다 따라다
녔는데, 예수님은 자꾸만 가롯 유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길로만 들어가셨습니다. 자
신이 야망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롯 유다는 비참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그
감정이 예수님을 향한 미움으로 바뀌게 되었고 은 30냥에 그만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가롯 유다는 스승을 판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신
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마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의 이기적인 야망은 큰 불행을 초래한다는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룩이 바로 그러한 이기적인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레
미야 선지자는 바룩의 개인적인 야망을 바라보면서 탄식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 유대 땅을 심판하시고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작정을 하셨는
데, 바룩아 너는 너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만을 먼저 생각하고 있느냐! 그것을 더 이
상 경영하지 말라!” 
  바룩은 서기관이라는 거룩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야망에 사로 잡
혀 있었던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도 이
기적인 야망이 거룩한 일을 통하여 다가올 수 있는 하나의 유혹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바룩처럼 이기적인 야망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왜 예레
미야 선지자는 자신의 친구이자 제자인 바룩을 향하여 이기적인 야망을 품지 말라고
경고하였을까요? 이 질문에 관하여 네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1. 야망은 영원히 달성되지 않는다.
  첫째, 인간의 야망은 영원히 달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B.C.333년에 유럽과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한 위대한 정복자였습니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된 알렉산더는 불과 10년 만에 유럽과 아시아를 정복하는 대 위업을 달성
한 왕이 되었습니다. 30세가 되자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게 된 알렉산더 대왕은 이
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내가 정복할 나라가 없으니 이제 나는 심심해서
어찌할고!” 이처럼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을 달성하였으나 더 큰 야
망을 품고 괴로워하다가 그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둘째, 인간의 야망은 달성한 순간에 변질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야망
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야망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야
망은 변종 바이러스처럼 새로운 야망으로 순식간에 변질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죄성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야망은 달성
되는 순간에 또 다른 야망을 낳고, 계속해서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욕심에 사
로잡혀 버리고 맙니다. 어떤 청년이 자신의 은행 통장에 1억원을 저축하기 위해서 열
심히 땀을 흘리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수년 동안 남들 놀때에도 놀지 아니하고 먹을
것 안 먹고, 좋은 옷도 사지 않고 저축을 하여서 드디어 1억원이라는 큰 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통장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1억원이라
는 돈이 그렇게 크다고 생각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야망을 품게 되었습니
다. 그 야망은 10억원이라는 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남들 결혼할 때에 결혼도 하
지 아니하고 따뜻한 가정의 소중함도 느끼지 못한 채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나이 40이 되어서 드디어 목표한 10억원의 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망을 달
성한 기쁨도 잠시 잠깐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10억원도 그렇게 큰 돈이 아니라
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세금을 떼고 한 달에 나오는 이자를 계산해 보니까 그 동
안 수고하고 노력한 것에 비하여 큰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래
서 새로운 야망을 품었습니다. 이번에는 100억원의 돈을 목표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돈을 벌고 저축을 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나이 60이 되어서 자신이 품은 야망을 달성
하였습니다. 100억원을 모은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제안을 합니
다. “지금 200억원만 있으면 큰 사업을 할 수가 있는데, 혹시 200억원이 있으면 투자
를 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100억원을 모은 사람이 이렇게 땅을 치면서 탄
식하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지금 내가 200억원이 있으면 큰 사업을 할 수가 있는
데, 나에게는 돈이 100억원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이처럼 사람의 야망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기적인 야망을 품고 부와 명예와 권력
과 쾌락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향하여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레미야 선지자
는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지 말라!”

2. 야망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다.
  프랑스 불세출의 영웅인 나폴레옹은 자신을 위해서 대사를 경영했던 사람이었습니
다. 나폴레옹이 가진 비전은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그의 야망은 유럽전체를 무력으
로 정복하고 통일하여 단일국가로 만들고 자신이 황제로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에는 그 꿈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여
러 나라를 차츰차츰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 과정 속에서 너무나 많
은 것들을 파괴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품고 있던 온유함과 겸손함이 사
라지고 그 마음속에는 루시퍼가 가지고 있는 교만함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
로 야망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누구라도 처형
을 시켜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현실에 보이는 야망에 집착하다가 정
작 중요한 내세의 생명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
을 바꾸겠느냐” 여기에서 ‘잃으면’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해치면’이라는 뜻입니
다. 즉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온 천하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속에서
영혼을 해치게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게도 나폴레옹은 자신
의 야망을 달성하다가 그만 영혼을 해치고야 말았습니다. 결국에는 그 영혼이 멸망하
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대에 서고야 말았습니다. 틀림없이 지옥에는 역사에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님들이야 지옥에 가고 싶
어도 못가시지만, 그곳에는 나폴레옹도 있을 것이요 히틀러도 있을 것이요 알렉산더
대왕도 있을 것이요 김일성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위대한 야
망을 품은 사람들이 먼저 지옥에 가서 자리를 딱 잡고 있다가 새로운 사람들이 올라
올 때 마다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하하, 너도 별수가 없구나! 너도
우리처럼 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았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오고야 말았구나!”
  이처럼 세상의 이기적인 야망은 진실로 귀하고 값진 것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생각
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분별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아주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래
서 이기적인 야망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세상의 조그마한 것을 얻게 하는 대신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영혼을 대가로 지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한자성어
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합니다. 제가 바라고 믿기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
든 믿음의 성도님들 중에서는 세상의 작은 것을 탐하다가 가장 중요하고 큰 영혼을 잃
어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안 나올 줄로 믿습니다.

3. 진실로 큰일은 간접적으로 달성된다.
  그러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 어떠한 야망도 품어서는 안 되는 것
일까요? 지금 제가 여러분을 향해서 무조건 야망은 나쁜 것이라고 강조만 하고 있습니
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얼마든지 야망을 품
으십시오. 가정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서 많은 돈을 열심히 저축하십시오. 자녀들의 성
공을 위해서 원대한 비전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에 정치적인
권력을 얻기 위한 야망을 품은 분이 계시다면 그 꿈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야망을 이기적인 욕심으로 달성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큰일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때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았던 사울왕은 처음부터 자신이 야망을 품고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겠
다고 노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전혀 몰랐던 지극
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사울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 속한 보잘것없는 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 매우 겸손한 사람이 바로 사
울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서 수일 동안 헤매다가 도저히 그 나귀를 찾을 수가 없게 되자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소문난 사무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마리의 나귀를 찾기 위해서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 위해
서 사무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 나귀를 찾기 위해서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린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즉
사울은 지극히 작은 일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다 보니까 어느 날 아주 자연스럽
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역사적인 사건은
직접적인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얼마든지 간접
적인 일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문학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까 자신들이 스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원대한 야망을 품고 그들이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어느 날 우연히 눈을 떠 보니까 그동
안 자신이 정성을 다하여 쓴 작품들이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칭찬을
듣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성공은 이기적인 야망에 달려 있는 것
이 아닙니다.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위해서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인생의 성공이라는 문에 도달하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일본에 가서 아주 유명한 우동집에 가서 우동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 우동
집의 사장은 원래는 동경대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교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이 우
동집을 창업하게 되었고, 자신의 아버지도 대를 이어서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들아, 이제는 교
수직을 그만두고 가업의 대를 잇기 위해서 네가 이 우동집을 운영하도록 하여라!” 그
래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업을 잇기 위해서 그날부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우동
집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서 우동집을 운영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고 자신은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림
도 그리고 아주 자유스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우동집에 온 사람들이 맛있
는 우동도 먹고 멋있는 그림을 보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손님들의 입 소문을 타서 그
만 이 우동집의 일본 오사카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이 사장이 돈을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처럼 유명한 우동집이 될 수
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문의 기업을 잇기 위해서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
신의 일과 취미생활에 최선을 다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재물도 따라오고 명성도 얻은
유명한 사업가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성공은 이기적인 야망을 통해서 직접적으
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
연스럽게 간접적으로 오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느덧 우리 교
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서 온 지도 1년 6개월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강남중
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오기위해서 개인적인 야망을 품고 세상적인 친분을 이용해
서 노력을 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 강단에 서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담
임목사로 오기 전까지 우리교회의 성도님들 중에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고, 세상말로 연줄이라는 것을 통하
여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가끔씩 다른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것이 전부였습
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저 자신이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강대상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저는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확실히 깨닫
게 되었습니다. “아하, 성공이란 것은 내가 이기적인 야망을 품고 손에 움켜쥐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자꾸만 옆으로 도망을 가버리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성공이 자연스럽게 내 품으로 다가오는구
나!”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6장 25절을 통해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
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
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다보면
결국에는 멸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충성스러운 성도의 삶을 살아가다보
면 우리 하나님이 살리시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 으뜸이 되는 권세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
을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서 살 수 있을까?”하는 결심을 내리
시기 바랍니다. 주를 위해서 죽으리라고 결심하는 분들에게는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와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20년 전에 대구에 있는 어느 침례교회에 그만 불이 나서 예배당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이 큰 상심에 잠겨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집사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에게 교회 성전 건축을 위해서 써 달라고 거
금 1,000만원을 헌금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헌금을 갖고 오신 집사님은 시장에서 조그
마한 모판장사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가정형편이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1,000만원은 꽤 큰 돈인데 20년 전이야 엄청난 거금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부
담감을 느끼신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집사님, 제가 집사님의 형편
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 귀한 돈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집사님
의 헌금을 받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냥 갖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러자 이 집
사님을 목사님을 향해서 버럭 화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
님,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제가 40년 전에도 모판장사를 하였고, 20년 전에도 모
판장사를 하였고, 지금도 시장에서 모판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수십 년
간 노력을 해 보았지만 모판장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한
번 예수님을 위해서 망하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지고 온 돈을 자꾸만
거절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데에 헌금으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결국
목사님은 이 집사님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 귀한 헌금을 교회건축
을 위해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까지 이 집사님은 건강한 몸으로 잘
살고 계시고 그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훌륭한 사람으로 잘 성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인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이기적인 야망을 품고 노력을 하면 결국에는 망하게 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
을 위해서 망하기를 작정을 하고 최선을 다하여 성실한 삶을 살아가면 언젠가는 인생
의 진정한 성공과 행복의 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도 이 집사님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망하리라고 하는 거룩한 야망을 품고 살아가시는 가운
데에 하늘의 놀라운 상급과 축복을 받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 큰 야망은 큰 슬픔을 가져온다.
  한 사람의 이기적인 야망은 죽을 때까지도 결코 달성될 수가 없는 헛된 꿈에 지나
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야망을 품은 자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결과적으로 고
통과 슬픔밖에 없습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조차도 ‘지식에 대한 큰 야망은 그 사람
으로 하여금 큰 번뇌를 안겨 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들 눈에 아름답고 선하게
보이는 지혜도 한 사람의 야망 앞에서는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게 마련입니다. 전도서
1장 18절을 보시면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
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고, 세상
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권세와 권력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도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에 가서는 이 세상의 삶이 모두 다 허무하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의 유명한 어떤 영화배우도 인생의 최후에 가서는 “속았구나! 속았구나!”를 반복해
서 외치다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세상적인 야망들로 가득 차 있
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그 이기적인 야망들을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에 전부 다 못박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 야망은 결코 우리들에게 참다
운 평강과 기쁨과 안식을 가져 다 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야망으로 하여금 우리
들의 인생을 불평과 걱정과 근심과 슬픔으로 가득 채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갈망만큼은 우리들에게 슬픔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간
절히 찾는 갈급한 심령을 가진 자들에게는 반드시 참다운 기쁨과 평안을 안겨 다 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시편의 기자는 시편 42편 1절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
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
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결코 슬픔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
은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갈급한 심령을 갖고서 하나님
을 찾는 성도들을 단 한 순간이라도 외면하시는 무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사랑
하셔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1년 365일 불철주야 사랑하는 자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
고 평강과 희락의 길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
이심을 항상 믿으시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인간의 야망은 어떠한 형태이든지 악한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
이 거룩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거룩함’과 ‘야망’은 어울리
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사악한 탐심으로 뭉친 마음에다가 거룩함을 사
탕처럼 달콤하게 발라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믿음의 성도님들도 이것
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한다
고 하면서도 “내가 이러한 헌신을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틀림없이 좋은 복을 내려
주시겠지!”, “내가 이만큼 충성하고 봉사하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믿음을 인
정하고 칭찬해 주겠지!”라는 야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신앙
의 기초가 잘못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최후의 순간까지 달려가야만 하는 신앙
생활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
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복음을 들고 힘찬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일입니다. 그
리고 이와 같은 믿음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
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피조물로 지음받은 우리의 마땅한 본분이요 당연한 도리인줄
로 믿습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도 내려주시고,
이 세상의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허락하여 주시고, 갖가지 신령한 은혜와 은사들로 우
리의 삶을 풍성하게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로 구원받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먼저 살아가야만 합
니다. 그것이 우리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이기적인 야망에서 해방 받은 영혼이야말로 하나
님의 크신 축복을 받은 복된 인생이라는 진리를 오늘 이 시간에 확실하게 깨달으시기
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슬픔과 아픔을 당하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야망 때문
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인간의 헛된 야망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곤고
하고 궁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야망으로부터 해방을 받은 사람을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야망으로 해방되는 강도만큼 느끼는 마음의 행복지
수도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이
사회의 갈등의 원인도 바로 이기적인 야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하
고 아무리 세속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어나는 원인은 바로 이기적인 야망입니다.
그 옛날 솔로몬 시대에 이기적인 야망으로 인하여 큰 갈등과 번민을 경험하였던 아삽
이라는 한 사람은 시편 73편 25절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늘에
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교회의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도 아삽처럼 하늘을 바라보아도 하
나님만을 사랑하시고, 이 땅을 바라보아도 하나님만을 사모하는 참으로 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의 자세를 갖고서 세상의 이기적인 야망을
담대히 싸워 물리치고 선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우리 사랑의 하나님
께서 진정한 행복과 기쁨의 삶을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선포되어진 이기적인 야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
아가는 자에게 진정한 야망의 기쁨과 즐거움의 축복이 쏟아진다는 이 역설적인 진리
의 말씀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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