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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멜리데 섬을 향한 하나님의 준비 (행 2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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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설교 : 유흥준 목사

뇌성마비와 소아마비로 태어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하고 살면서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입에 연필을 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몸으로 자유롭게 신앙 생활하고 있음에 대해 감사해 본적이 있습니까?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당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부상당한 사람들이 사고 버스에서 빠져 나오면서 뭐라고 말했을까요? 재수가 없어서 사고가 났다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 머리가 다치지 않고 팔다리를 다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고 없이 건강한 몸으로 신앙 생활하면서 왜 감사가 없습니까? 왜 불평이 끝이지 않습니까?

바울과 같은 기적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까? 기도해서 병 낫은 것이 기적이라면 건강한 것은 더 큰 기적이요 더 큰 축복입니다.
교통 사고 속에서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더 큰 축복, 더 큰 은혜, 더 큰 기적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좋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서 그 곳에서 구함 받은 뒤 감사하지 말고, 그런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건물이 붕괴되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게 감사고, 사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지 않았다는 게 감사입니다.

276명이 14일간의 풍랑과 사투하다가 구원받았습니다. 죽는 줄만 알았는데 살았으니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위험이 없었으니 더 감사한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바울보다 더 큰 감사가 당연한 것입니다.
감사합시다. 항상 감사하고 모든 일에 감사합시다. 지금 내 몸이 건강함에, 오늘도 굶지 않음에, 큰 사고가 없음에, 구원받아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있음에, 자녀들이 잘 자라 주고 있음에 … 감사 감사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만큼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많을수록 감사도 많은 것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감사에 대해 강조를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자신에게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성경에 소개된 어떤 인물보다도 크고 많은 환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온통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어 쓰임 받았으며 그리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1. 바울과 호송단 일행이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로부터 환대를 받습니다(1-2)

1절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276명이 14일간의 사투를 벌린 끝에 도착한 것은 멜리데 섬이었습니다.
멜리데란 <피난처>라는 뜻을 가진 가나안 어입니다.
그들이 왜 그곳에 도착했을까요? 이리저리 풍랑에 휩쓸리다 그냥 도착한 곳입니다. 276명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 섬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것은 하나님의 준비한 피난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일 중 무의미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 우리 모두가 포함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멜리데 섬에 발을 딛으면서 바울이 맨 처음에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이 바울의 입술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힘든 과정을 겪었는데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분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그분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절 보세요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원주민들이 환대를 받게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멜리데 섬에 맨몸으로 상륙했습니다. 배가 파선되었고 배 안에 있던 물건을 하나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양식까지도 다 버렸습니다. 갈아입을 옷가지 하나 없는 상태 즉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섬에 발을 딛었습니다.
또한 멜리데 섬은 바울 일행과 아무 연고도 없는 곳입니다. 더군다나 시기적으로 무척 추운 때이기에 집도 필요하고 먹을 양식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그 숫자는 276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입니다. 살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도록 모든 준비를 갖춰 놓으셨습니다.
토인들에게 동정하게 하는 마음을 주사 추운 날씨와 젖은 옷을 위해 불을 피우게 하셨고, 본문을 계속 살펴보면 석 달 동안 그 섬에서 생활하게 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게 하십니다.
그뿐입니까? 10절을 보시면 로마로 다시 향하게 될 때 쓸 것을 배에 올렸다고 했습니다. 로마에 가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까지 다 그들이 뒷바라지를 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즉 준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에게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될 사명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해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일을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십니다. 어떤 때는 사람을, 어떤 때는 물질을,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그래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바울을 살펴 오지 않았습니까? 바울을 살피면서 느낀 게 무엇이었습니까?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셨습니다. 곳곳에 돕는 자를 준비해 놓으셨고 곳곳에 동역자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생활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 주셨고 필요도 채워 주셨습니다.
바울에게만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오지에 파견되어져 기적처럼 살아가는 선교사들의 얘기를 전해 듣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개척교회들이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승리의 현장, 기적의 현장이 되고 있음을 듣고 보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개척 교회, 미자립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더욱더 많이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명 미만의 교회가 많습니다. 어른들은 한사람도 모이지 않고 아이들만 몇 명 모이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가족들끼리만 예배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기적이겠습니까?

여러분이 해야 될 일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일할 수 있도록 다 준비해 놓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해야 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 분명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준비해 놓으십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2.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아무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3-6)

3절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갈수록 태산입니다. 겨우 섬에 상륙을 했습니다. 그리고 토인들의 동정으로 불을 피워 추위를 쫓고 젖은 몸을 말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만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고 엄청나게 재수(?)도 없습니다. 쉴 틈도 없이 고통의 연속입니다.

4절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토인들은 바울이 살인죄를 범한 사람이기에 천벌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죽습니까? 아닙니다.
5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바울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왜 죽지 않았을까요?
마가복음 16:17-18절이 기억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으며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 약속은 믿는 자라고 해서 다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독사를 집는다거나 독을 마신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꼭 필요할 때 그런 기적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해야 될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사의 굴속에서도 안전하게 해주십니다.
그보다 더한 어려움 속에서도 기적을 베푸사 안전하게 해주십니다.

바울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로마에 가야 합니다. 해야 될 일이 있으니 하나님이 지켜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뱀에 물렸다 해서 하나님의 일이 중단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폭풍이 찾아오고 뱀에게 물린 것처럼 어려움이 쉬지 않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질병이 오고 사업이 어려워지고 사고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고 …
그러나 그 어떤 문제가 생긴다 해도 여러분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 주십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광풍이 몰아칠지 모릅니다. 아니 몰아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걱정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광풍 속에서 지켜 주시고  환난 속에서 안전하게 해주십니다. 

6절 <그가 붇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바울이 죽지 않자 토인들은 바울을 사람이 아닌 신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을 비롯하여 섬의 병자들을 치유합니다(7-10)

7절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그 섬에서 제일 높은 보블리오라는 사람의 집에 초청을 받아 3일이나 유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초청을 했을까요? 뱀에 물렸지만 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뱀 사건이 없었다면 초청했을 리가 없습니다. 초청 받아 집에 가보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안수기도를 통해서 치료를 받습니다.

8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좀 전에 막 16:18을 살폈습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으리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약속대로 손을 얹었고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러자 소문이 퍼져 모든 병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 모두 다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의사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병을 정확히 진단하여 열병과 이질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치료는 바울이 했습니다. 치료의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다면 의심하지 말고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병 치료의 능력이 나타날까요?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을 믿고 손을 올려 기도하는 자에게 치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의심하는 자, 믿지 못하는 자에게 치료의 능력은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을 통해 나타났던 능력이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수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을 통해 나타났기에 우리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지금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능력이 나타나고 있기에 이곳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해집니까?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어떻게 보여줍니까? 바울을 통해 나타난 능력이 필요합니다. 보블리오는 그 섬의 최고의 권세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치료됐으니 그가 바울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토인들의 모든 질병도 치료됐으니 그 결과 복음 전파, 복음 확장은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섬 전체가 복음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이 치료되자 모두의 마음이 열렸고 열린 마음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능력이 복음화를 이루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특정한 사람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의 것입니다. 능력은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믿습니까?
전승에 의하면 보블리오가 멜리데 섬의 최초 감독이 되었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멜리데 섬에서 초대 교회가 박해를 피해 예배드리던 지하 묘지 카타콤이 발견됨으로써 멜리데 섬이 복음화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 일행을 멜리데 섬에 도착케 하셨을까요? 로마도 중요하지만 멜리데 섬의 영혼도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그 섬의 원주민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과 섭리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섬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하시고 섬에 도착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왜 연이어 뱀에게 물리는 고통을 주셨을까요? 섬에 도착한 것만으로 복음화 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뱀을 도구로 사용하신 게 아닙니까? 
하나님은 무의미하게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바울 일행에겐 유라굴라 광풍이 엄청난 고난이었지만 섬 주민들은 바울을 만난 결과 영혼을 구원받는 엄청난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고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우연히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 듯 보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연히 고난 당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에 의해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참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심적 육적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무가치하게 생각했을지 모르나 결과는 그 고난이 결코 무가치한 것도 아니고 그 고난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 가족은 무론 애굽과 그 주변 국가들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 냈던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의 사건은 바울과 실라에게 너무 억울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힘으로 인해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받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혹 여러분이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 고난 역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고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난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인하여 이루실 일들을 기대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이 당한 고난은 여러분을 멸망과 파멸 가운데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구원과 은총 가운데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든 것 때문에 누군가가 축복을 받는다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게 힘들지만 그 힘든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사명 감당하는 것이 힘들지만 내가 힘든 것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기관과 구역이 든든히 서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질병이 찾아올 수 있고 실패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질병은 나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주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 도구 때문에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길 수 있고 믿음이 좋아지는 계기가 되며, 교회와 하나님나라에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쉬임 없이 문제가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왜 또...?>하면서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결국엔 그 문제 때문에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니 교회가 더욱더 성장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들의 교회에 문제가 없다면 평안하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하지 못하는 평안함이라면 그게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마치 겉으로 보기엔 잔잔하고 깨끗해 보이는 호수이지만 물 속을 들여다보면 각종 쓰레기가 쌓여서 썩어 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10절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많은 대접을 받다가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배가 항해를 시작해도 괜찮은 시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행 배를 타고 출발합니다.
그때 <우리의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하였습니다. 섬에 사는 3달 동안은 섬사람들에 의해 필요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가서는 누가 채워 줍니까? 섬사람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에 채워 줌으로 그런 걱정을 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후히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실 때 그 방법은 오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동원하여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방법을 바라보면서 놀라서 입만 크게 벌릴 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흥의 방법이 없습니까? 그러나 전도만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기막힌 방법을 동원하시어 분명히 부흥을 주십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북 받을 길이 없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기적 같은 방법을 동원하사 복을 내려 주십니다.

바울 일행이 멜리데 섬에 도착할 땐 달랑 몸 하나뿐이었지만 이제는 앞으로 쓸 것과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하여 떠납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 기가 막힌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 광성교회와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4. 멜리데에서 로마까지 여정을 밝혀 줍니다(11-14)

11절을 보십시오.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석 달 동안 섬 생활을 끝내고 다시 출발합니다. 항해할 수 있는 계절이 되었기에 출발하지만 한편으론 멜리데 섬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역지를 찾아 다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중단되어선 안됩니다.
4, 5년 열심히 했다고 좀 쉬겠다는 자세를 가져서도 안됩니다. 내가 해야 될 일이 있고,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이 있는 이상 우리는 쉬지 않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탄 배는 수라구사를 거쳐 레기온에 이르렀다가 보디올에 도착했습니다. 보디올은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로 로마까지는 육로로 약 220Km입니다.
바울은 이제부터 항해가 아닌 육로를 이용하여 로마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바울이 로마 형제들의 영접을 통해 큰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15)
15절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로마로 가는 도중에 로마에 있던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바울을 마중 나왔습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15절의 압비오 <저자>라는 말은 압비우수 광장에 있는 시장을 말합니다. 로마로부터 65Km 떨어진 지점으로 이 광장은 늘 주위의 천박한 세금쟁이와 벳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시장이었습니다. 
<삼관>이란 지명은 세 개의 숙소란 뜻으로 세 여관이란 뜻입니다. 로마로부터 50Km 떨어진 곳입니다. 

그토록 사모했던 로마로 들어서면서 바울의 마음이 엄청나게 설렐텐데 더 나아가 로마에서 65Km 에 떨어진 압비오 저작까지 50Km 떨어진 삼관까지 환영 나온 믿음의 형제들까지 만났으니 바울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밖에 없었고, 또 믿음의 형제들이 로마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더욱 더 담대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기다리고 있었던 압비오 데로는 로마로 향하는 길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도로 가운데 하나로 특히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에 승리하고 개선 할 때에 군중들이 열렬히 환영하고 맞이하던 길이었습니다.
이제 그 길을 죄수 바울이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입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 장군들의 개선로인 압비오 대로에서 이와 같은 성도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바울 자신이 복음의 개선장군으로 로마에 입성이 곧 승리의 입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왜 승리의 입성인가? 노울링이 묘사한 바울의 입성 장면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입성은 일종의 승리의 입성이다. 해전에서 이긴 황제와도 같이 바울은 그 가장 장엄한 도시에 입성하였다. 그는 이제 그의 면류관에 더 가까워졌다. 로마는 그를 결박된 모습으로 받아 드렸으나 황제의 면류관을 쓰고 승리자라 선포된 그를 보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 아래 유라굴로라는 바다의 괴물과 싸우고 승전한 끝에 로마에 당당히 입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마치 로마 군대가 해전에서 승리하고 귀환하는 것과 대비되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이와 같은 바울 사도의 모습을 통하여 복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바울 사도 같이 복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로 살아갑시다. 비록 그러한 삶이 우리에게 많은 고난과 역경을 안겨 줄지라도 기꺼이 그러한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패배나 실패가 없는 승리의 삶을 항상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4일간의 죽음의 고비, 그리고 3달간의 섬 생활을 통한 멜리데 섬의 복음화 그리고 드디어 로마입니다.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다 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고난 앞에서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 광풍이 몰아오지만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을 기어이 로마에 세우고야 마신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어 놓고야 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광성교회의 소망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시기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날마다 더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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