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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라! (호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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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오주철 목사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그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가 이것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사람이 범죄하면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바벨탑을 쌓아서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분열과 무너짐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고통과 죽음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으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 말씀은 범죄한 인간들을 향한 수많은 선지자들의 외침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무리 어둡게 왔고 아무리 힘들게 왔고 답답함으로 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리하면 살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을 하시면 역사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져주시면 내 안에 있는 어떤 고민과 염려도 다 해결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심령을 만져주옵소서. 피곤한 내 영혼을 일으켜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적인 체험들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을 여러분의 인생의 안내자로 인정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신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신다면 우리는 더 건강하고 힘찬 인생 여정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죄 없는 거룩한 사람들만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수많은 문제와, 수많은 고통과, 수많은 아픔을 가진 병든 자들이 찾아야하는 병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그 문제를 가지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내 앞에 어떤 힘든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문제를 지금 하나님 앞에 다 내어놓으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 앞에 문제를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인간에게든 하나님에게든 구하지 않으면 얻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해야 줍니다. 여러분이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두드리십시오. 구하면 주시겠다는 주님의 그 말씀을 믿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주 앞에서 구하십시오. 두드리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어쩌지를 못하십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구하십시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기도하는 집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기도의 역사를 우직하게 믿고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아무 능력도 내는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구경하지 마시고 잘하는 기도든, 못하는 기도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최악의 순간에도 기도만 일어나면 뭔가 잡을 것이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최악의 순간에도 기도만 붙들면 뭔가 건질 것이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선물을 줄 때에도 구별해서 줍니다. 똑 같은 사람에게도 기분이 좋으면 좋은 선물을 주고, 기분이 나쁘면 국물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유별나지도 않고 그렇게 까다롭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대단히 골고루 공평하게 주십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얻지를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구하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전에서 마음껏 구하고 부르짖으십시오.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이 계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지난 일주일 내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뿐이라서, 나는 내 스스로 보고 내 옆을 보아도 정말 하나님 앞에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뜨겁게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마음을 바꾸어보십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들을 다 몰아내십시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가면 어두움은 물러가야 합니다. 어둠이 물러가면 밝아집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모든 어두운 그림자들이 물러가고 밝은 빛으로 환하게 비춰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은 환경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 환경과 저 환경을 바꾸어보았으면, 그래서 저 사람의 환경에 내가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을 해 보지만 그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제 후배 목사님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문득 사모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그럴 일은 절대로 없지만 만약에 당신이 다시 결혼을 한다면 나하고 다시 결혼할꺼야?" 그랬더니 사모님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아니, 나도 한번쯤은 돈 많은 남자하고 살아보아야지" 이 말을 하고 난 사모님이 자기가 좀 너무했나 싶기도 하고 해서 그 목사님에게 되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이 후배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하고 결혼하겠다" 사모님이 목사님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서 그 이유를 다시 물었습니다. "왜?" "나 같은 돈 없는 놈을 당신이 아니면 누가 거두어 주겠어?"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음 날 오전예배 시간에 이 이야기를 했다가 사모님한테 맞아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

저런 사람의 상황과 환경 속에 내가 산다면 …. 그러나 여러분, 내 환경을 지금 당장 바꿀 수는 없습니다. 또 내 여건을 당장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대처하는 내 마음만은 지금 당장에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새겨 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환경을 바꾸려고 하면 낙심합니다. 환경을 바꾸려고 하다가 싸움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환경을 바꾸려고 하면 자포자기하고 말 것입니다. 내게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환경은 내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환경에 대처하는 내 마음만은 당장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마음을 바꾸십시오. 마음을 다시 강하고 담대하게 가지십시오. 그러면 크고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내 삶에 일어난 일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 하는 그 마음 자체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내게는 이런 못된 일만 일어나는가? 왜 내게는 이런 답답한 일 만 일어나는가? 왜 내게는 이런 근심된 일만 일어나는가? 왜 내게는 저런 사람들이 괴롭히는가? 왜? 왜? 왜? 왜 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내게 일어나는 그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에 내가 저들에게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하는 내 마음의 반응이 더 중요합니다.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똑같이 일어나지만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찬송하면서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여유도 없이 믿음도 없이 소망도 없이 사랑도 없이 포기하고 화를 내며 혈기를 부리며 기분적으로 살다가 막 떠내려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을 바꾸십시오. 마음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한 번도 넘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게 하옵소서. 한번도 어려움이 없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관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넘어지더라도 다시금 강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주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무너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내가 수치를 당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산에 가보면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이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을 보고 하는 말입니까? 산이 크기 때문에 아름답습니까? 산이 높기 때문에 아름답습니까? 아닙니다. 산이 크고 높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은 산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저도 건강하던 청년 때에 가야산 정상에 올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올라가 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름에 덮여서 제대로 볼 수도 없습니다. 실제로 높은 산에 올라가 보십시오. 모진 바람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높아서 아름답습니까? 가보면 썰렁합니다. 왜 산이 아름답습니까? 크고 작은 계곡들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크고 작은 계곡이 산 속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계곡 속에서 샘물들이 솟아납니다. 그 샘물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산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크기만 하면 아름다울까요? 2m70cm 정도 되면 아름다울까요? 죄송한 이야기지만 멋없습니다. 그래도 누구처럼 좀 작아야 아담하고 이쁜 것입니다.

산도, 사람도, 공동체도 그 속에 크고 작은 아름다운 생명을 거느리고 보화를 거느린 계곡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아름답습니다. 계곡 가운데 샘물이 솟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큰 풍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또 다른 계곡을 만들고, 거기에 생명을 만들고, 가치를 만들고, 샘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거기에 하나님의 계곡이 만들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일어나서 하늘의 계곡을 만들어가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성령께서 강하게 만져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 밭을 완전히 갈아엎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지금 우리들의 마음 밭에는 증오의 독초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오만과 교만의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욕심의 가라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 시간 내 마음 밭에 성령의 불을 지르십시오. 성령의 불로 지져버리십시오. 태워버리십시오. 증오의 독초를 태우십시오. 교만과 오만의 잡초를 태우십시오. 욕심의 가라지에 불을 지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에 불을 지르십시오. 사람은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의 불이 임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다시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언제나 찬란한 태양 빛만 가득히 비추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떠나지 않는 한, 내 손이 닿는 곳에 내 발이 닿는 곳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강같이 흘러내리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생명이 살려면 어둠도 있어야 됩니다. 비옥함과 풍요와 소출이 있는 땅은 구름도 있고 비도 있고 어둠도 있고 그늘도 있고 밤도 있고 바람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빛과 함께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두운 역경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한탄하지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내 신앙의 자리를 흔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이 넘어지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그곳에서 일곱 번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독수리처럼 날개를 치고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 시간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확신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십시오. 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어나십시오.

실천은 이론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실천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믿고 행해 보십시오. 믿고 저질러 보십시오. 믿고 일어나 보십시오. 논리적으로 풀려야 된다거나 이론적으로 풀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하십시오. 미련하게 믿고 실천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발이 닿는 곳에, 손이 닿는 곳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믿음의 행동 속에 하나님의 증거가 강하게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가끔 신문이나 텔레비젼을 보면 기차가 탈선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차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가다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도 탈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차가 탈선하면 다시 복구를 해서 열차선은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탈선하면 열차보다 복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영영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개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가 탈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그들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세상으로 나갔을 때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은 처음에는 망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종교 행위는 계속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번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치시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멸망을 해버립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오늘 우리 사회의 기독교인들이 바로 거의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잘 진단이 되지 않는 이유는 교회에 오면 기독교인이지만 세상에 나가면 철저하게 세상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진 오류였고,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오류입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타락은 위선적입니다. 겉으로는 타락하지 않은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 두 사람의 경우가 아니고 전체적인 문제가 될 때에는 사회 전체가 날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세상 전체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미 이스라엘의 멸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공격으로 망합니다. 대영박물관의 앗수르관에 가보면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벽화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언제든지 그들의 마음속에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바로 주저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고 계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이 망할 때에는 끝까지 하나님과 겨루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끝까지 겨루다가 망합니다. 그런데 은혜가 회복되면 자꾸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죄짓는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이제 거짓말하는 것도 싫고 정말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놀라운 은혜를 준비하고 계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세상으로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지금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집에서 쫓겨나서 집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자식에게 부모가 "빨리 들어 오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놈아,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 들어와" 이때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라는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5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본문을 계속해서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돌아오는 그들에게 이슬 같은 은혜와 회복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회복됩니다. 망하기 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풍성한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다"는 말씀의 의미는 그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조용히 찾아오신다는 뜻입니다. 회복되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조용히 찾아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데, 회복의 속도가 그렇게 빠를 수 없습니다.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꽃으로 말하면 백합화와 같고 그 안정성은 레바논 백향목의 뿌리와 같습니다. 가지는 감람나무와 같습니다. 가장 무성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곡식처럼 많이 열립니다.

본문 6절에 보니까 그 향기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겠다고 했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향기는 그윽해서 은근한 가운데 감동을 줍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이 향기는 거룩한 것, 깨끗한 것, 사랑스러운 것, 의로운 것, 충성된 것, 믿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향기는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상쾌하게 합니다. 그리고 향기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향기는 보이지는 않지만 사방에 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맞으면 우리가 있는 곳에 자연히 향기가 퍼지게 됩니다. 무언중에 감화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의 성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솔직히 믿지 않는 불신자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생활하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이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멸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살아야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이 있는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적인 방법대로 살면 둘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둘 다 잃어버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보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 레바논 백향목처럼 뿌리가 든든한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 삶은 반드시 향기가 나게 됩니다. 이 세상도 그 향기로 기쁨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초목이나 곡식이 자라는 데는 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이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슬을 은혜로 상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2절에 보면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33장 13절에서는 야곱이 요셉에 대하여 축복의 기도를 드릴 때에도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이 그 머리에 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슬과 같은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은혜의 이슬을 날마다 받아서 윤택해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어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슬은 낮에 내리지 않습니다. 이슬은 밤에 내립니다. 욥기 29장 19절에 보면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내 가지는 밤이 맞도록 이슬에 젖는다"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밝고 모든 것이 형통하는 낮과 같은 때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때로는 어두운 밤과 같은 역경의 밤, 환난의 밤, 슬픔의 밤, 실패의 밤, 좌절의 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편에서는 지척을 분별할 수 없는 처지요 희망의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 밤이지만,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이 캄캄한 밤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이 내릴 때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50편 15절에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캄캄한 밤에는 유난히도 별빛이 찬란함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어두움에 처할 때는 은혜의 별빛이 빛나는 때라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러한 때가 은혜의 이슬이 우리의 지친 심령에 흠뻑 내리는 축복의 기회인 것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금 비전을 붙잡고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 우리 속에는 어둠도 있습니다. 교란도 있습니다. 혼란도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 내 영혼의 날개에 힘이 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사람이 정말 그 믿음이 강하여 질 때가 언제인가? 그 믿음 정말 깊은 진수가 일어날 때가 잘 될 때인가? 아닙니다. 어둠 가운데 있을 때, 환란 가운데 있을 때에 그 영혼의 날개에 무서운 힘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 환난과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의 영혼의 날개에 힘을 얻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슬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나는 다시금 비전을 붙잡고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도 이슬같은 은혜를 흡족히 내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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