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삶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라! (마 6:25-34)

  • 잡초 잡초
  • 1118
  • 0

첨부 1


- 설교 : 오주철 목사

지난 화요일 저녁에 감격스런 월드컵 첫 승리를 전하면서 송재익 아나운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을 이렇게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축구'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감격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월드컵의 감격은 시간이 지나고 때가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이 감격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이 감격,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주님의 전에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오셨습니다.  이 시간 앞뒤, 좌우를 돌아보면서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보세요" 라고 축복의 말을 하십시다.
오늘 이 시간, 주 앞에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성령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리더십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세계 정상의 인기 강사이면서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 가운데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출가한 딸과의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딸은 출가해서 세 번째 아이를 낳아 기르는 중이었습니다.  딸이 어느 날 아버지 코비 박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저는 너무 너무 속상해요.  제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빠도 아시지요?  그렇지만 이 아이는 제 모든 시간을 빼앗고 있어요.  저는 이 아이 때문에 아무 것도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답니다."
이때 아버지 코비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딸아 그냥 마음을 편히 가지려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그 아이를 그냥 즐겨.  아무도 너 만큼은 이 아이를 사랑할 사람이 없지 않느냐?  그렇다면 이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겠지."
그러면서 그 다음에 이 사람은 경영에 아주 탁월한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도자답지 않은 충고를 딸에게 이렇게 합니다.
"딸아, 시간 관리, 이런 것 다 잊어버려.  달력, 보지도 마라.  다만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겨라.  그리고 네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고 벽에 걸린 저 시계에는 얽매이지 말아라"
네 내면에 있는 나침반을 따르고 저 벽에 있는 시계는 보지도 말아라.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지만,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켜 줍니다.  그러니까 코비 박사는 그의 딸에게 시간 관리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 그것은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설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매우 바쁘게 서둘러 하는 일들, 그러나 그 일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을 위해서 대부분의 우리의 시간을 사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의미 있는 인생은 시간을 따라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은 우선 순위에 따르는 인생이다 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이런 가치 있는 인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인생은 바로 하나님께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삶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의 인생이 이러한 우선 순위의 삶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선 순위를 따라가는 삶을 살려면, 첫째로 중요한 것은 염려를 극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짤막한 본문에서 무려 다섯 번에 걸쳐서 "염려하지 말라, 염려를 그치라, 염려를 중단하라"고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주 실제적인 이유인데, 염려한다고 해서 염려하는 문제가 전혀 해결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아주 파괴적인 것입니다.  염려는 전혀 비생산적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2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한다고 키가 자라날 수 있느냐?  물론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열심히 자라날 겁니다.  그러나 우리 성인들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염려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염려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염려는 전혀 비생산적인 것입니다.

본래 '염려'라는 단어는 희랍어에서 '나눈다'는 뜻과 '마음'이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라는 이 단어가 쓰여졌을 때 주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것은 마음을 나눈다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이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게 되면 중요한 한 가지 결과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나누어지다 보면 어떤 일도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염려하다 보면 그 염려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런 인생은 생산적인 어떤 성취를 기대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상황 속에 처했던 한 여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시지 않았습니까?  마리아는 너무 너무 기뻐하고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마르다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대접할까?  그래서 밖에 나가서 이 일, 저 일을 합니다.  그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니, 나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무엇을 하고 있나?  마리아가 나를 왜 안 도와주나?"  생각하니까 화가 나고, 또 화가 나다 보니까 마음들이 마구 나누어지기 시작을 합니다.  전전긍긍하고 당황하고 있었던 마르다의 모습을 주님께서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니 …"  여기에서 염려한다는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의 염려한다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니, 즉 마음이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밖에서 봉사하는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엔조이하고 있었다면 주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 저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어느 일도 집중하지 못하고 열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네가 많은 일로 네 마음이 염려하고 근심하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절에 보면 "네가 몇 가지만 하든지, 아니면 한 가지도 족하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라."  그렇습니다.  실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염려 그 자체는 우리 인생에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신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먹는 일에 대한 필요, 입는 일에 대한 필요, 또 어디에서 사느냐, 의식주의 동일한 필요를 안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그런 문제에 관해서 불신자들이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일한 염려의 짐을 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 다음 절입니다.  3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것들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에서 살까, 부단히 의식주의 필요, 직장의 필요, 사업의 필요 등의 문제를 가지고 그들도 계속해서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들도 똑같이 염려하고 있다.

여러분, 지금 주님께서 어떤 의도로 이 말씀을 하십니까.  그렇다면 불신자와 꼭 마찬가지고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너희들이 이방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 말입니다.  다른 것이 뭐가 있느냐?  신앙의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  예수 믿을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신앙이 우리의 삶 속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차이를 가져 올 수가 없다면, 우리의 삶 속에 전혀 어떤 변화와 우리의 삶에 역동성과 어떤 희망을 줄 수가 전혀 없다면, 왜 믿으십니까?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왜 시간을 바치십니까?  이것은 분명히 시간 낭비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 말입니다.  뭔가 좀 달라야 할 것이 아니냐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도전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 앞에 와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고 고백을 하는 이런 믿음의 삶이 시작되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염려하십니까?  아직도 걱정하십니까?  그렇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뭐가 다릅니까?  예수 없이, 복음이 없이,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말입니다.  크리스챤이라면 무엇인가 좀 다른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달라지십시다.  우선 염려를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염려를 그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염려할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염려가 어떻게 극복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인생의 우선 순위를 어떻게 추구할 수가 있습니까?

두 번째 중요한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염려 그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인생의 우선 순위를 추구하려면 하나님을 견고하게 신뢰하셔야 합니다.  왜 염려하고 있습니까?  왜 염려할까요?
"이거 어떻게 되지?  이러다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되지?  내 직장은 어떻게 되지?  내 사업은 또 어떻게 되지?  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여러분, 그러나 이러한 모든 염려의 밑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까?  "하나님, 내 인생의 주인되신 하나님, 나는 변함없이 당신을 신뢰합니다.  당신은 전능자이시며,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믿으십니까?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왜냐구요?  본문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는 이것들보다 더 귀한 존재가 아니더냐?"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만물에 대해서 책임을 지십니다.  들의 백합화를 가꾸시는 하나님,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에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예수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선택된 나의 삶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것을 믿느냐?' 이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이것을 믿느냐?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나 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시는 안타까움을 주님께서 지적하시지 않습니까?
3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렇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무슨 말씀이 나옵니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믿음이 적은 자들아 ….
주님은 주님을 따라오는 제자들이 당신을 믿고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래서 염려하고, 그래서 방황하고, 그래서 걱정하고 있지 아니한가?  하나님을 신뢰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아주 재미있는 베드로의 성격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는 아주 염려가 많습니다.  아주 격정적인 사나이이기 때문에 감정적입니다.  오늘은 그냥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다가도 그 다음 날에는 죽고 싶다고 인생을 비관합니다.  물 위를 걸으라고 하니까 물 위를 걷다가 이상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나 죽습니다'하고 허우적대던 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 중에 누군가가 나를 판다고 하셨을 때에 제일 걱정하는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누가 팝니까?"  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가면서 그의 삶이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성숙되어가면서 아마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중요성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는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라.  주가 돌보신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하시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잘 보시기 바랍니다.  공중에 나는 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부지런히 영양을 찾고 해야 할 일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를 아무 것도 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조용히 우리의 삶의 현장에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서 걸어가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열어 주실 것입니다.  내 삶의 길을 여시고, 홍해 바다에 그 강을 마르게 하시고 나갈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손길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꾸만 염려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자기 어린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자주 했던 이야기 가운데 '참새와 물새의 대화'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물새가 참새 보고 "야, 저 사람들 봐, 저 인간들….  그냥 먹고 살려고 허둥대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고민하고 저 인생들을 보라."  그러니까 참새가 물새 보고 하는 이야기가 "맞아 맞어.  쟤네들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없는 모양이야."  그런 대화의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보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역사의 주관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십니까?  그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인 것을 고백하십니까?  그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십시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일어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제 먼저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선 순위를 분명히 확립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는 제자들의 삶의 승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승리가 소극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거은 염려입니다.  염려를 하지 말아라.  염려를 묶어 두어라.  그러나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의지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최선을 다 하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먼저 구할 것, 너희는 먼저 무엇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  주께서 다스려 주시는 삶.

여러분, 염려할 일이 생겼을 때에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염려하고 있는 그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고 계시는가?  그래서 내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 인생의 진정한 우선 순위를 두면서 살고 있는가? 라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가 이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게 될 때에 제일 염려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는 그 일 자체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염려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누구인들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염려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 염려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염려 속에 빠져 들어가게 되면 염려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염려하는 그 문제, 그 상황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맙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가 주인일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내 삶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삶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염려하게 되면 그 염려가 끝이 없습니다.  한 신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염려는 무저갱이다."  성경에 보면 무저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저갱, 끝이 없다. 바닥이 없다.  염려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끝이 없는 염려 속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염려하다 보면 내일까지 염려하게 됩니다.  내일 염려하다 보면 모레까지 염려하게 됩니다.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끌어다가 오늘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구절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십니까?  34절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염려하기 시작하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미리 염려하게 됩니다.  내일까지 염려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십시오.  그대로 그냥 놔두십시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하십시오.  오늘의 우선 순위, 오늘 내가 집중해야 할 것, 정말 나와 하나님과의 사이가 바른 관계가 맺어져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 내 인생의 우선 순위가 그려져 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염려가 극복이 됩니다.  정말 그럴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걱정할 수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난관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고 해야 될 일,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 오늘 이 순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업가였던 록펠러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 사람이 33세가 되었을 때 최초로 백만불의 순이익을 얻습니다.  그리고 43세에 미국에서 제일 큰 회사를 갖게 됩니다.  53세에 아마도 이 사람은 그 당시에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억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는 아직도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53세가 되었을 때 그는 성공한 사람, 부요한 사람이 되고도 아직도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록펠러는 탈모증과 녹두병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머리가 다 빠지는 겁니다.  눈썹도 빠지고, 몸이 초췌하게 말라 가는 그런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한 주에 백만불, 어떤 때는 하루에 백만불을 벌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이 먹는 식사는 밀크와 크랙크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나 많은 사업의 경쟁자들과 이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든지 늘 주야로 보디가드를 동원하고 다니면서도 마음속에 안심이 안됩니다.  먹지도 못합니다.  어디를 마음 놓고 가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잠도 못 잡니다.  그리고 병은 점점 악화됩니다.  드디어 의사의 진단이 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1년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이 진단을 받던 날 밤, 록펠러는 깊은 고뇌 속에 빠졌습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입니다.  내가 죽으면 ….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때 아내가 그를 향해서 드러누워서 독백처럼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돈은 전부가 아니야."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이렇게 소리를 치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돼!"  "God is everything"
그는 고민하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나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도 이 사람이 교회에는 왔다갔다했지만, 이제 그는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기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어서 드리고 싶다는 소망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워진 교회가 뉴욕에 가면 리버사이드 처치라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돈이 정말 가난한 사람들과 소중한 일들을 위해서 쓰여지도록 록펠러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 결단을 내린 다음에 그가 잘 자기 시작합니다.  잘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54세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을 받았던 록펠러가 몇 살을 산지 아십니까?  98세를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에 우선 순위가 조정되자 삶의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유명한 크리스챤 부호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합니다.  하이더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도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사업하다가 부도를 맞습니다.  그리고 빚을 갖게 됩니다.  당시에 십만불의 빚은 적지 않은 빚이었습니다.  이 빚더미에 있을 때 그는 이 빚더미 속에서 고민하면서 이 사람도 자기 신앙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에서의 고난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이 사람이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이더가 제일 먼저 결단한 것이 "내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 보자.  교회 생활도 제대로 하자"였습니다.  그래서 주일 성수도 합니다.  제대로 십일조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파산 나고 부도 나서 십일조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데리고 있었던 회사 참모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사람을 비판하기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빚더미에 앉아있으면서 이제 도대체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그것이 정당한 십일조입니까?  이건 진정한 헌금이 아니야."
그때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아직도 진정한 헌금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드리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나의 첫 번째 채권자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께 먼저 빚을 갚아야 하네"
자기의 삶이 혼란해 지고 무너져 가는 삶의 와중에서 그는 하나님은 나의 첫 번째 채권자이시다.  나는 먼저 그분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야 하네.

IMF를 당하면서 시작되었던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아직도 이 땅을 휩쓸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구조조정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전능하신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금년 안에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단하십시오.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신앙, 이 생활로는 주 앞에 드릴 수 없지 않겠습니까?  좀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의 방향이 바로 세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에 모든 것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