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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행전 29장의 주인공들 (행 2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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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흥준 목사

북한에 살던 한 할아버지가 50년 만에 남한 땅을 밟았습니다.
남한에 살던 한 중년의사가 50년 만에 북한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50년 동안 헤어졌던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감격이 어땠을까요?
오직 헤어진 가족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은 죽을 수 없었고 아플 수 없었습니다. 삶을 포기할 수 없었고 이를 악물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얼마나 불러 댔을까요?
매일매일 남녘의 하늘을 바라보고, 북녘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죽기 전에 기어이 내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큰절을 올리고야 말리라,
꿈에도 잊지 못할 내 자식새끼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 없노라> 그러한 소망을 가슴에 품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견디고 견디다가 드디어 50년 만에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요? 남북관계가 조금만 진전이 되면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가 그게 꿈이었을 뿐이라는 사실 앞에 좌절했던 게 몇 번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만났습니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이산 가족들의 만남의 모습을 눈물로 지켜봤습니다. 그들의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피눈물을 나누며 오열하는 모습, 꿈이 현실로, 기어이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꿈은 이뤄집니다. 꿈은 분명히 현실로 바뀝니다. 현실이 암담하기에 꿈이 이뤄지지 않는 게 아닙니다. 꿈을 가진 자,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현실로 분명히 다가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습니까? 
요셉의 꿈이 여러분의 꿈이 되고, 바울의 꿈이 여러분의 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그림을 마음 속에 자꾸 그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
바울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험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에 입성한 것입니다.

1. 바울이 경비병 한사람만 딸린 채 가택에 연금 되는 관대한 조치를 받습니다(16)

16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 이 한마디 말씀에 이제까지의 바울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일생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바울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꿈 중의 꿈인 로마에 첫 발을 딛었습니다. 바울의 느낌이 어떠했을까요?

1) 그러나 누가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짤막하게 한마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그러나 그 속엔 무한한 내용이 숨어 있습니다. 바울의 감격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어진 사건,
1, 2, 3차 전도여행, 수 없는 죽을 고비, 핍박,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한 것, 감옥 생활, 40에 하나 감한 매, 결박, 재판, 14일간의 죽음의 항해 등등은 모든 것이 <로마에 들어가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그토록 감격적인 사건을 왜 간단히 표현했을까요?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래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까지 행했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맡은 구역이 부흥됐습니까? 헌금 좀 했습니까? 교회 위해 금식 기도, 작정기도 많이 했습니까?
여러분의 뒷모습을 돌이켜볼 때 너무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할 것 없고 떠들 것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니 간단히 한마디로 표현하면 되고 오직 겸손뿐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오기까지 과정을 설명한다면 책 몇 박스는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마디뿐입니다.

하나님은 간단한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단 한마디였습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싫어하신다 했습니다.
식탁 위에 반찬을 많이 늘어놓지만 실속이 없는 것보다는 한가지이지만 맛있으면 밥 잘먹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우리 광성교회가 큰 일을 많이 함을 믿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자랑하지 말고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오직 한마디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말만하도록 합시다.

바울의 꿈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닌 것처럼 우리의 꿈도 갑자기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강해를 시작하면서 교회 부흥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뤄지기 위해선 여러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100명에서 어느 날 200명이 되는 게 아닙니다. 100명이 되기 위해선 먼저 20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잘 나오던 사람이 다른 교회로 옮길 수도 있으며, 재정적으로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목사와 성도의 부딪힘, 성도들끼리의 불화... 등등은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10명→20명→30명이 되어 갑니다.

사도행전도 1년 8개월 동안 사도행전을 공부했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수많은 과정,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반드시 이뤄짐을 믿고 특히 성령역사의 회복과 결국인 부흥되어짐을 믿습니다. 

16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로마에 도착한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바울 곁에는 군사 한 명만 있을 뿐입니다.

2. 바울이 로마에 거주하면서 지도층 인사들을 청하여 자신이 로마에 오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17-20)

17절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드디어 로마에서 바울의 사역이 시작됐습니다. 그는 먼저 동족인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자신이 로마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여기서도 바울의 동족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먼저 동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동족에게 받았던 고통이 어떠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죽도록 고통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로마서 9:1-3절을 보시면 바울의 동족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혈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자신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이 구원받는 것 때문에 자신이 지옥에 가야 한다면 기꺼이 가겠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보통의 사랑이 아니고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가족을 사랑하십니까? 이 땅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사랑은 예수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사랑도 예수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큰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이 다 믿었다면 범위를 넓혀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꾸자꾸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믿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여러분은 나쁜 부모입니다.
그리고 부모님 중에 믿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나쁜 자식이요 불효자입니다. 반드시 좋은 부모 좋은 자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3. 셋째 유대 지도자들이 바울의 강론에 엇갈린 반응을 보였습니다(21-29)

1) 바울이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선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23절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바울이 전한 것은 두 가지 내용,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쳤습니다. 전파함과 가르침은 복음 전도의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전파는 믿음을 심어 주는 기능과 가르침은 그 믿음 안에서 성장과 성숙하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23절을 보면 로마에 입성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자를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바울에게 한꺼번에 갈 수 없으니 예약을 한 뒤 정해진 시간에 바울을 방문했다는 것이고, 바울은 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찾아가는 복음이 있고, 찾아오는 복음이 있습니다.
①우리는 복음을 들고 찾아 나서야 합니다. 즉 전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가는 것은 적극적입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부흥되길 원한다면 적극적인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가서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처럼 가서 데려와야 합니다.

②그러나 한편으론 찾아오게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프로 축구에 관중이 몰리고 있습니다. 왜 몰립니까? 가 볼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 강해 설교로 큰 영향을 끼친 데니스레인 목사님은 교회 부흥을 위해 필요한 3가지를 ①기도 ②회개 ③설교라고 하였습니다.
꽃에 향기와 꿀이 있을 때 벌이 찾아 드는 것처럼 살아 있는 말씀, 능력의 말씀, 은혜로운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라면 찾아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돌면 미식가들은 그곳이 어디이든 찾아갑니다.
하물며 영적인 양식이 맛있는 곳이라면 더욱 더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③그럼 어떻게 해야 찾아오게 하는 말씀이 되게 할까요? 참된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가 강하게 선포될 때, 가장 힘있고 능력 있고 은혜 있는 말씀이 되며 그럴 때 찾아오게 됩니다.
교회들이 살기 위해서 또 부흥되기 위해선 복음에 충실해야 합니다. 복음이 약화되는 교회라면 절대로 소망이 없습니다.

오래된 얘기지만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죄에 대해 신랄히 지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 목사님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죄를 지적하는 설교를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총알은 빗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목사님은 강대상 앞에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후 그 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힘있고 건강하게 부흥
하는 좋은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2) 물론 힘있는 복음이 전파된다 해서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24절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바울을 통해 전해진 말씀을 일부는 믿었고 일부는 믿지 않았습니다.
①우리는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전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 이후는 하나님 책임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모든 예배 시간에 여러분들 모두가 말씀을 통해 은혜 충만히 받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도 은혜 받지 못한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일부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설령 이 시대의 최고의 설교자라 할지라도(물론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듣는 사람 모두가 100% 은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전도해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가르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전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해도 은혜 못 받는다 하여서, 또 전도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여서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전도하면 받아들이는 자가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설교 시간에 아멘 하는 성도들 때문에 그들 바라보면서 더 힘을 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우리 탓이 아닙니다.

②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에 결코 설득하려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설득하려 하면 믿음을 강요하므로 복음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또 논쟁에 빠져서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전도자는 다만 복음의 증인으로서 자신의 믿음과 체험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실수는 자신이 구원자가 되는 것처럼 복음 듣는 자를 설득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안되면 실망하게 되고 다시는 복음을 전하여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에게 구원자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설득자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달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임무입니다.

거기서 지나쳐서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그것은 교만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우리가 받은 복음을 전하고,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던지 안 믿던지 상관하지 말고 오직 증인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하는 자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집 주인이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종들이 나가서 사람들을 청합니다. 그 중 오는 사람이 있고 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고 안 오고는 종의 책임이 아닙니다. 종은 가서 주인의 초청을 전하기만 하면 할 일을 다 한 셈입니다.
전도 열매 거두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택한 자는 믿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택함 받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전할뿐입니다.

31절 보시면 바울이 담대히 전파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담대히 전파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가장 복된 소식을 전하고, 가장 큰사랑의 선물을 전하는데 부끄러울 게 무엇입니까?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가장 귀한 일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담대히 전파해야 합니다. 또 담대하게 전파할 때 좋은 결과를 맛볼 수 있습니다.
4. 넷째 바울이 2년 간 로마 억류 생활 중에 복음 사역    을 요약합니다(30-31)
30-31절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 유하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데 바울의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요?
그토록 기다리던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엄청난 기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순식간에 로마를 복음으로 물들게 하고야 말리라는 큰 꿈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로마에 들여놓고 말리라는 약속까지 해 주셨으니 그런 기대를 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을 기다린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넓은 광장에 수많은 인파를 모아 놓고 복음의 열변을 토한 게 아니라 겨우 조그마한 셋집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전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2년이라는 긴 기간동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모습을 보면 그런 환경에 대해 불평한다거나 실망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 큰 꿈이 있을 것입니다. 그 꿈이 속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속히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느 날 갑자기 큰 것 한방 터트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결국엔 큰 꿈이 이루어집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기다린다면 꿈은 절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학생이 반에서 1등을 목표로 세웠다면 목표를 세운 그 날부터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해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 날 1등이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만, 기초를 시시하게 여기면서 공부는 하지 않고 꿈만 가지고 있다면 1등은 언제까지나 꿈에 머무를 뿐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1년에 10명 또는 100명의 전도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단숨에 100명 채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 사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100명의 목표에 비하면 한 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한 명을 전도했을 때 100명도 있는 것이지 한 명이 없이 100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서두르지 말아야 하고 또 큰 것만 생각하면서 작은 것을 소홀히 해서도 안됩니다.
바울의 환경은 셋방살이의 환경입니다. 셋방에 갇혀서 전도하면서 언제 로마를 복음화 시키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서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도 않았고 최선을 다해서 뿌렸습니다. 바울 자신이 거둘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거두지 못한다 해도 계속 뿌린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죽은 다음에 복음은 꽃을 피웠고 바울이 씨를 뿌린 뒤 2백 수 십 년이 지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 드렸습니다. 로마 전체가 복음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하게 생각 말아야 합니다. 1년에 1000명되고, 2000명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큰 것만 생각하면 1명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지금 10명 모이는 개척 교회가 1년 안에 100명 채우겠다고 한다면 무척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20명을 채우겠다면 쉽지 않겠습니까?
10명 전도 목표가 적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10명에서 1년 뒤 20명이 모이면 100% 성장입니다. 부흥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100% 성장은 엄청난 기적과 같습니다.

한국의 5만 교회가 1년에 10명씩만 전도해서 등록시킨다면 1년이면 5만이요 10년이면 500만 명의 어마어마한 교회 부흥입니다. 20년이면 1000만 명이요 그러면 복음화율 50%가 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현실에 충실합시다. 큰 교회, 특별한 교회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충성하도록 합시다.
내 가족 중 믿지 않는 한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고 구원키 위해 눈물과 땀을 흘립시다.
그러면 어느 날 우리 고장이 다 예수님 믿게 되고 어느 날 우리 민족이 모두 다 예수님 앞에 돌아와 있음을 보게 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2년 동안 셋집에 유하며 자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영접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는 말로 사도행전을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사역은 이처럼 로마에서 2년을 머물면서 복음 전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와 목회서신과 많은 교회 문서들은 로마에서 연금생활을 벗어나서 한차례 더 광범위하게 순회 선교 사역을 행한 후 다시 투옥된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세기 로마 교회의 교부였던 클레멘트에 의하면 바울은 서바나로 전도여행을 떠나 서바나, 그레데, 밀레도, 골로새, 에베소, 빌립보, 니고볼리 등을 여행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주후 67-8년경에 다시 투옥되어 순교한 것을 보여집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의 기록이 끝났다고 해서 바울 사도의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었으며, 또 그밖에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의 사역이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끝났진 만 사도행전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역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도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집도 가족도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던 삶과 복음 전하는 것을 자기 인생의 최대 목표로 여기며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우리 역시 그와 같이 지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도 안일한 생활에 빠져 있습니다. 핍박을 받지 않아도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음을 포기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 가운데 카타콤에서 밀실에서 생명 걸고 드렸던 예배를 오늘날 성도들은 너무나도 쉽게 빼먹습니다.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생명과 같았던 기도가 우리에게는 귀찮고 짜증나는 수고로 여겨집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28장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사도행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의 29장을 써 나가야 할 책임이 나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베드로, 바울 등의 행적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의 행적이 사도행전 29장에 기록되어야 하고, 우리 광성교회의 행적이 초대 교회의 행적처럼 기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삼으사 사도행전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강해가 1년 8개월의 긴 세월을 끝으로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80주에 걸쳐 뿌린 복음의 씨앗이 지금 썩어 가고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사도행전 강해를 처음 시작은 작은 겨자씨 같았지만 이미 자라나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욱 더 자라서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1년 8개월이 바울의 로마에서의 2년 세월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로마의 복음화가 이뤄지듯 이 땅의 복음화도 속히 이뤄짐을 믿습니다.

사도행전 28장의 강해가 오늘로서 끝이 나지만 진짜 사도행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광성교회 성도들이 부흥의 열망이 타오르고, 성령을 사모함이 날마다 더 해 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속히 이루어지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진행해 가실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는 도구로서 오늘까지도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쓰임 받았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광성교회와 여러분을 행29장의 주인공으로 사용하실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다  21세기의 베드로와 바울이 되어 제한 없이 쓰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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