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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니느웨로 가라 (욘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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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백장흠 목사

우리 교회는 87년 동안 독립문교회의 이름으로 선교, 교육, 치유, 섬김의 사명을 다하여 왔으나 창립 87주년을 맞이하여 이름을 한우리 교회로 개명되었습니다.  한우리 성도님들과 우리 교회를 기억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통계청의 보고에 의하여 우리나라는 하루에 평균 30명이 자살한다고 합니다.  인구 10만 명 당 24명이라는 말인데 놀라운 것은 20-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데 있습니다.
자살 이유가 경제위기, 가정파탄 등이며 사회지도층의 자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이 너무 잘 팔린다고 합니다.  직장인 4명당 1명은 술 중독 초기라고 합니다.  음주로 인하여 경제손실, 질환, 범죄 등 우리나라에 연간 경제 사회적 비용도 14조 5000천억원이라고 합니다.  왜 자살하고 술 마시고 의욕을 상실하고 있는가? 화가 나서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는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아들에게 기대를 걸고 대학에 보냈는데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형편없는 여자들과 놀아나고 카드 빚을 지어서 가정 경제가 파탄 난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보세요.  아들에게 그러면 안되지 그렇게 말하니까 괜찮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옆에 친구 아들은 대학시절에 고시에 합격하였다고 하는데 뒷집아이는 전에는 잘 못하던 공부를 지금은 정신 없이 학업에 열중하여 성적이 올라가 어느 회사에서 이미 취업을 보장 받고 있는데 우리 아들만 시장 잡배 하고 놀아나면서 미래는 생각지 않는 아들을 둔 부모님이라면 얼마나 울화가 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서민들은 서민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합니다.  본문을 보면 살기가 힘든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 오랜 시간 시달리고 어려움을 당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느 날 요나를 찾아와 니느웨로 가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갈 수 없는데 가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할 수 없는데 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좋은 믿음으로 나오시는 분들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느 분은 습관적으로 나오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충성하는 마음으로 천국의 소망을 위하여 나오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어느 분은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 힘드는데 전도하세요 봉사하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교회가 싫어진다고 말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그래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요나에게 하시는 말씀과 같이 니느웨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니느웨로 가라 우리는 주여 니느웨로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1.  사랑 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듣고 싶은 단어가 있다면 무슨 말입니까?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잠에서 자고 일어나는 부부가 그것도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는 말 여보 나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면 하루동안은 행복할 겁니다.  우리는 유교문화권에서 살아서 좋기는 좋아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합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났습니다.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흥부 놀부 이야기에서 흥부는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흥부를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애들은 그렇게 많이 낳고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욕한답니다.  자기 몫도 찾아먹지 못하는 박력 없는 못난 이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속담도 달라졌습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를 갖다 놓고 올라가라.  버스 지나 간 다음에 손든다 미친놈 같다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아니래요 버스가 지나갔더라도 손들면 백미러보고 서 준대요.  사랑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것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을 찾습니다.  좋은 동네에서 살고 싶고 좋은 사람 만나고 싶어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남편이 되세요.  좋은 아내가 되세요.  좋은 자녀가 되세요.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됩니까? 한 가지입니다.  사랑하면 좋아집니다.  가정에 사랑이 있으면 그 가정은 좋은 가정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있으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좋은 교회입니다.  남편이 사랑이 많으면 좋은 남편입니다.  여자들이 남편을 향해 불평을 합니다.  이것을 바가지 긁는다고 말합니다.  왜 바가지를 긁는지 아세요.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절규입니다.  사랑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세요.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행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행복을 주시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살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겁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지혜롭지 못하여 행복할 줄 모릅니다.  사랑하세요.  행복하게 됩니다.  목사님이 목회하는데 언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지 아세요.  성도들이 사랑해 줄 때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아내들이 행복할 때가 언제입니까? 남편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올 때 5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해준 게 아니라 사랑을 계속 줄 때입니다.  사랑하니까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한 시간만 지나도 궁금하여 전화합니다.  사랑은 함께 있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표현이 사랑입니다.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가정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생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위하여 시간을 온전히 드립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 하시는 것은 사랑하라는 교훈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요나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앗수르 나라는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세요.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축구를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 지는 것은 용납이 될 수 있지만 일본에게는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근자 과거사 조사하는데 친일파는 조사하고 친중파는 조사하지 않아요? 일본은 가까운 우방이라고 말은 하지만 붙었다 하면 잠도 자지 않고 일본을 이겨야 한다고 응원합니다.  축구하는 일본 선수들의 말을 빌리면 한일전이 붙으면 한국 사람들은 주변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지요.  자신을 향해 돌진 해오는 한국선수를 보면 눈이 독기가 서려있어서 한국과 축구장에서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하여 적대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에게 하나님은 가라 그럽니다. 앗수르 그러면 괜히 기분 나쁜 게 요나였습니다.  앗수르에 대하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망하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이 자기는 잘못되었을 때 남이 잘못되면 위로를 받는 그런 심성이 있습니다.  내 아들이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보다 공부를 잘하던 뒷집 영이네 집에 아들이 대학에 떨어지면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적대감정을 가진 앗수르의 수도가 망한다.  듣기가 괜찮은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여 망하지 않도록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사랑할 수 없는 나라 사람도 사랑하라는 겁니다.

우리 주변이 왜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아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한다고 노래 부르고 구호를 제창한다고 사랑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하면 통해야 합니다.  히틀러라는 사람 아시지요.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미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네 가지 미덕이 있는데 하나는 나라를 사랑하세요.  다음은 지도자에게 충성하세요, 셋째는 국가의 법을 준수하라 그리고 시련을 이겨내는 강인한 용기를 가져라.  만일에 슈바이처가 4대 미덕을 말했다면 무어라 했겠습니까? 사랑, 충성, 용기 그리고 정직하라고 했을 겁니다.  우리는 정직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말도 정직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두 가지 죄를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죄와 거짓말의 죄를 같이 범하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주신 말씀 니느웨로 가라  하심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라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지금 불안한 게 무엇입니까? 서로가 원수로 만들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적입니까? 자기 코드에 맞지 않으면 적같이 대적하려고 합니다.  니느웨로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여라.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 입니까? 사랑해야 할 부모를 왜 사랑하지 못합니까? 내가 내 부모를 내가 사랑하지 아니하면 누가 사랑해 줍니까? 사랑해야 할  주님의 교회를 내가 사랑하지 아니하면 세상의 잡배들이 교회 사랑하겠습니까? 이 나라에 사는 우리 국민이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니느웨로 가지 못할망정 여기에서라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모든 것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어른들을 접대하기 위하여 괜찮은 고급 식당에 모셨습니다.  주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가 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엇 잡수시겠어요.  그러면 대접이 아닙니다.  먼저 주문하시도록 하고 다음은 그분과 같은 것을 주문하는 게 도리입니다.  상대방 어른이 주문하였는데 자기는 더 값비싼 걸로 주문한다면 예의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사랑은 같이하는 겁니다.  미국 인디아나주의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5세의 어린 학생이 뇌종양으로 고통 당하고 있었습니다.  방사선 치료 탓으로 어린 소년의 머리카락이 다 빠졌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하기에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왜요? 자기만 머리카락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동급생의 고통을 지켜본 어린 학생들이 동료의 아픔을 나누기 위하여 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의 뇌종양의 아픔을 나누지 못할지라도 머리카락 없음의 아픔을 나눌 수는 있을 것 같아서 같이 삭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광경이 사진과 함께 지방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슬퍼하며 아픔을 같이 나누는 사랑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교육학자 멕카시(MacCarthy) 박사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안심해도 된다는 한 마디 말로 칭찬했다고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나라는 미래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용서는 관계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엉킨 실타래를 풀고 끊어진 것을 다시 묶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우리는 두 가지 단어가 많이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내가 잘못했습니다와 다른 하나는  괜찮습니다.  내가 용서하였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겁니다.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을 주세요.  물건을 주세요.  사탕 한 알이라도 주려고 하세요.  협력해 주세요.  요즈음 고객느낌에서 만족 더 진하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 기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데요.  사랑입니다.  주는 겁니다.  시간을 주세요.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인정해 주세요.  영국 런던에 있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연구진은 사랑하면 객관적인 사고가 둔화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능력도 줄어든다고 밝혔습니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쁜 것은 보이지 않고 좋은 것만 보입니다.  그러니까 예쁘지요.  자꾸 주고 싶어집니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좋은 것은 보이지 않고 좋지 않는 것만 보입니다.  그러니까 비판만 하게 됩니다.  자꾸 주는 게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니느웨로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사랑하기 위하여 가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2.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은 그들을 살게 하라 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잘 살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북한에 필요한 게 양식입니다.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인권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더욱 필요한 게 복음입니다.  독재자의 마음에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라 이를 위하여 니느웨로 가라 하십니다.  실제로 알고 보면 복음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요나서를 예언서라고 합니다.  무슨 예언이 있습니까? 요나 3:4절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한 절이 예언입니다.  이 한 절 때문에 요나서는 예언서입니다.  요나는 대단한 선지자 같지 않습니다.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지리라 이 말을 한 것입니다.  복음 전도가 무엇입니까? 알리는 것입니다.  이 성이 무너지리라 왜인가?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 증거 한 것입니다.  이 한 말씀을 듣고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듣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심판의 경고라도 들으면 복음이 되는 겁니다.  목사님들이 아무리 좋은 은혜로운  설교를 해도 듣지 아니하면  잘하는 설교가 아닙니다.  잘 들어주어야  잘하는 설교인 것입니다.  요나가 한 말을 듣고 회개할 때에 온 성읍이 사는 길이 열리었습니다.  전하는 것은 마치 농부가 귀한 씨앗을 뿌리는 거와 같습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거와 같이 복음을 전하면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씨를 뿌릴 때 아무데나 뿌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밭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바닥에 떨어지게 해서는 소득이 없습니다.  돌작 밭도 그러합니다.  처음부터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토양작업을 하라고 말합니다.  토양작업이란 사랑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관계를 통하여 예수를 영접하였지  전도지를 보고 혹은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하는 소리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전에 내 마음에 저분도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하여야 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으면 이들과의 관계를 맺는 일을 합니다.  이들과 친해집니다.  그들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들은 적은 모임이나 구역에 초청하여 대환영식을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가를 보여 줍니다.  그 다음에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려고 할 때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주께서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고 또 보고입니다 한 번만 만나고 전도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끈질김이 있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우물을 파는 데 어떤 사람이 그렇게 파는데 물이 안 나는데 장로님이 우물을 파면 어디서라도 물이 나옵니다.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우물을 파도 물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장로님은 우물을 파면 물이 납니까? 비결이 무엇입니까? 비결이 있지요.  저는 나올 때까지 파니까 물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고 또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기 싫은 니느웨 사람도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전도 대상자를 만나면 무조건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칭찬할까? 찾아야 합니다.  젊어 보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좋은 아들을 두셨습니까?  만나면 칭찬하고 세워주고 인정해 주어야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누구라도 멸망 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하십니다.  니느웨 사람들도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지존파 사람들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니까 회개하고 양같이 부드러워 졌습니다.  회개하고 삶의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일찍 복음이 필요하였습니다.  복음만이 변화를 가져옵니다.  복음만이 희망입니다.  보살님이 예수를 영접하고 너무나 감격하여 교회에 식당에서 봉사하면서 속으로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참 나쁘구먼.  그럴 수가 있어 옆에 있던 권 사님이 지금 뭐라고 속으로 말하십니까? 화를 내면서 예수 믿는 이들이 나쁘다고 했어요.  깜짝 놀란 권사님이 왜 그래요 이렇게 좋은 것을 진작 말해주지 않고 저들끼리만 예수 믿고 좋아한 것을 생각하니 나쁘지 않아요? 그러더랍니다.  요나가 한 마디 한 거  이 성이 무너지리라  이 말이 니느웨를 구원하였습니다.
이 말을 하라고 니느웨로 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요나의 예언은 그의 사명은 이 한 마디였습니다.  우리도 가야 합니다.  가기 싫다고 안 갈수 없습니다.  불순종하면 풍랑입니다.

선입관념을 버리고 가야 합니다.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가야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받은 게 있기에 가야 합니다.  미룰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갑시다.  반드시 가야 합니다.  가서 외쳐야 합니다.  증거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며 이렇게 본분을 다하는 교회, 오직 복음 전도에 역점을 두는 건강한 교회가 되고 주님께로부터 칭찬 듣는 귀한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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