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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비극 (마 25:24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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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우리는 인생을 통해서 무언가를 투자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인생에 무엇을 투자하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요즘 부동산이 한물갔다고 합니다. 한때는 주식에 투자하다가 팔자를 고치기는커녕 팔자가 망한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게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피아노나 바이올린이나 수영 등 보통 아이들은 두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지요.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뭔가를 투자해서 그 아이의 미래를 밝게 하고 부모에게도 기쁨이 돌아오게 하는 그런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투자는 잘 해야지 잘 못하면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저녁 예배 때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이 기억납니다. 신문에서 읽은 내용인데 어느 아가씨가 대기업에서 한 10년 동안을 일하다가 퇴직하면서 5,000만원을 퇴직금으로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마주 앉아서 이 5,000만원을 어떻게 10억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하고 연구를 했습니다. 역시 주식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주식을 샀습니다. 그러나, 주가가 떨어지는 바람에 폭삭 망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돈이 1,000만원인데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느냐, 역시 뭐 밖에 없습니까? 로또 복권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0만원을 전액 로또 복권을 다 샀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안됐다고 합니다. 그리곤 수중에 2, 3 만원 밖에 안 남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이걸 가지고 소주 몇 병을 사다가 먹고 죽자고 둘이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딸이 주거니 받거니 잔을 나누다가 딸이 술 취해서 먼저 약을 먹고 돌아가셨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같이 따라 죽으려고 하다가 술 취해서 그냥 자버렸습니다. 깨어보니 딸만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살 방조죄로 구속되었답니다. 여러분, 이것이 올바른 투자입니까? 오늘도 이렇게 헛된 일에 인생을 낭비하고 물질을 낭비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 그런가 하면 요즘 시중에서 많이 읽혀지는 감동적인 책이 있는데 "희망을 푸는 두레박"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규근' 이라는 분이 쓴 책입니다. 원래 이름이 '오규근' 인 이 분은 예수를 잘 믿어서 인생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삶 속에서 이제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희망적인 삶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어지면서 자신의 이름을  '오 아볼로' 라고 바꾸었습니다. 성경에 아볼로가 나오지요.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신다" 고 할 때 바로 그 아볼로입니다. 그는 이 아볼로라는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이 바뀌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에 50통에서 100통의 편지를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무려 50만 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절망한 사람들에게, 이혼직전의 부부에게, 자살직전의 사람들에게, 탈영직전의 젊은이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 편지를 받고 서로 왕래하면서 희망을 얻고 용기를 얻고 자살을 중단하고 이혼을 중단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이 '오 아볼로' 씨는 1952년 생, 한국 나이로 52세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의 병은 '골혈성 부전증'입니다. 그 병이 무엇이냐면, 뼈가 너무 약해서 부딪히기만 해도 그냥 뼈가 부러지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뭔가 만지기만 하면 뼈가 부러지는 것입니다. 뼈가 한 번 부러지면 그것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몇 달 혹은 1년씩이나 걸립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이 육신을 사용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그는 일급지체 장애인입니다. 7년 후에는 교통사고로 또 두 다리가 절단되어서 의족에 의지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키는 1m도 안됩니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어른들로부터 늘 듣는 말이 "쟤는 안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던 애다. 자기도 고생이고 남도 고생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장 가슴에 박힌 상처가 되었습니다. 잘 있다가도 이웃집에서 누군가 손님이 오면, 엄마가 "야, 넌 뒷방에 가있어, 뒷방에..."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뒷방에 혼자 있다가 손님이 가면 나오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전도사님이 심방을 와도 뒷방신세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형이 집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 오늘은 집에서 형이 결혼식을 하는 것도 보고, 형수 얼굴도 보겠다" 하고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결혼식이 시작되자마자, 엄마가 이리 나오라고 하면서 그를 데리고 옆집에 가서 옆집 뒷방에 앉혀 놓더라는 것입니다. "너는 결혼식 끝날 때가지 여기에 있어야 된다" 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그는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뀌어 졌습니다. 이제는 복음 편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희망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라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그 '오 아볼로' 씨에 비해서 우리는 얼마나 가진 것이 많습니까?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는 오늘도 비록 장애인이지만 희망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편지 선교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소개되어서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달란트, 이 재능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가를 발견할 때부터 내 인생의 가치는 빛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내 인생은 진짜 보람있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값진 인생을 사는 비결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서 달란트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달란트를 가지고 나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열심히 장사를 해서 곱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주인이 올 날을 기다리게 되겠지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땅 속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할 때, 회계할 때 두 종은 자랑스럽게 곱절의 이윤을 남겨 놓았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칭찬했습니다. "잘했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너희들에게 큰 일을 맡기겠다. 이제는 주인의 즐거움에 너희가 참여할 것이다!" 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내 놓는 이 게으른 종을 향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그런 냉혹한 인간인줄 알았더냐! 이 종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그리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아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하여라!" 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비유의 배경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하나님의 보좌로 돌아갔습니다. 제자들에게 복음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들에게 귀한 사명과 재능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다시 돌아오십니다. 재림하실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심판장 앞에서 결산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해서, 어떻게 투자해서 어떤 영적 이윤들을 남겼는지 우리는 그 분에게 상세히 보고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14절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그 종들을 불러 누구의 소유를 맡겼습니까? "자기 소유"입니다. 자기의 소유는 종의 소유입니까? 주인의 소유입니까? 주인의 소유입니다. 종들에게 주인은 자신의 재물을 맡겼습니다. 달란트를 맡긴 거예요. 여러분, 그것은 바로 종의 것이 아니라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과 이 생명과 은사와 이 모든 기회와 시간은 다 하나님의 것이고 주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할 때, 건강이 내 것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건강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두둑히 있을 때 그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이 그 재물을 가져 가셔서 내가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아! 재물은 내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생명이 자기의 것인 양 살아갑니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암 선고를 받고 이제 죽음이 임박해 올 때, '아! 생명은 내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주신 그 분께서 다시 생명을 거둬 가시기 때문입니다. 품안에 있을 때, 그 자녀가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자녀가 성장하여 출가해서 부모를 떠날 때, 그 자녀가 내 소유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일생동안 주님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예가 '콘도'입니다. 휴가 때, 여러분이 혹시 대명 콘도나 한화 콘도에 한 2박 3일 간다고 생각 해보세요. 콘도에 일정기간에 맞는 돈을 치르면 그저 콘도는 내 아파트처럼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내가 다 쓸 수 있습니다. 냉장고도 마음대로 쓰고, 가스도 마음대로 쓰고, 에어콘도 쓰고, 텔레비전도 보고, 샤워도 할 수 있고 마음대로 내 것처럼 쓰지요. 그러나 일정이 끝나고 떠날 때는 다 두고 떠납니다. 쓸 때만 내 것이지, 떠날 때는 내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쓰고 있는 동안에는 내 것입니다. 그러나 떠날 때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격이요 축복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임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이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달란트라는 말은 원래 무게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어집니다. 그래서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 1 데나리온은 농사를 짓는 노동의 하루 임금, 하루 임금을 50,000 원으로 계산하여 6,000 데나리온이면 얼마입니까? 1 달란트는 약 3억원에 해당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이 달란트라는 말 그 자체는 오늘날 '재능, 은사' 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들을 뭐라고 그럽니까? 탈렌트라고 합니다. 왜요? 재능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두 각자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신 것입니다.

  본문말씀 15절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각각 각기 다른 재능대로 하나님께서는 달란트를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양의 많고 적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특이한 성품대로 개성대로 재능과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불평합니다. 누구에게는 많이 주고 왜 누구에게는 적게 주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주인의 뜻대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맡겨진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주어진 그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의 삶을, 또한 투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청지기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혹 내가 받은 것을 더 받은 사람과 비교해서 열등감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보다 덜 받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신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 중에는 후천적으로 더 발전하고 개발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바꾸어지는 것이 있지요? 공부를 할 때 더 노력하면 공부를 더 잘하게 되지 않습니까.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은 하루 30분 씩 매일 일정한 산보를 한다든가 걷기를 한다든가,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하면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내가 투자하면 건강하게 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내 노력을 통해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꿀 수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를 바꿀 수 있습니까? 못 바꿉니다. 자기 조국을 바꿀 수 있습니까? 못 바꿉니다. 혈액형을 바꿀 수 있습니까? 못 바꿉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바꿀 수 있습니까? 대답을 왜 안 하십니까? 못 바꿉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렇듯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키를 바꿀 수 있습니까? 작은 키가 커질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큰 키가 작아질 수 있습니까? 안 되요. 그러면, 외모는 바꿀 수 있습니까? 또 대답을 안 하시네요. 아주 지혜로워서 대답을 안하고 계시네요.

  요즘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천국에 갔더니 줄을 길게 서 있더랍니다. 그래서 입장이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왜 안되냐 그랬더니, 한국 사람들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있는 사진하고 실물하고 대조하다 보니까, 대조 작업이 상당히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사진하고 얼굴이 하나도 안 맞는다는 거예요. 다 고쳐버려서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부모가 주신 얼굴은 바꿀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각기 다 다릅니다. 저하고 얼굴이 똑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하고 목소리가 똑같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만 독특하게 주신 개성과 내 인격과 내 외모와 내 음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달란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2장 6절에 보니까,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은사대로 그 재능을 투자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교훈은 반드시 회계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계라는 것은 결산할 때, 심판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19절입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주님은 철저하게 회계하시는 분이십니다. 대충대충 봐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 때는 뭐, 잘못하면 용서를 빌고,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다시금 기회를 주십니다. 제 2, 제 3의 기회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순간은 에누리도 없습니다. 일절! 엄격하신 심판장으로 주님은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을 보세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칭찬받고 더 큰 보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땅 속에 그 한 달란트를 파묻어 두었던 게으른 종은 아주 엄격한 심판을 받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있는 것마저 빼앗겨 버리고 밖으로 내어쫓아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거기는 전혀 인정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자유롭지만 심판의 시간이 시작되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주님 앞에 다 보고하고 우리는 그 한가지 한가지에 대해서 질책과 지적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CEO 중에 '잭 웰치' 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제 1 위의 기업이라고 말하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회장이었고 최근 은퇴하신 분입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모두 '잭 웰치' 라는 것입니다. 얼만 전에 이 GE의 잭 웰치 이후의 회장이 우리 한국을 방문했는데 딱 하루 방문했습니다. 방문하면서 그는  30명 이상을 만나고 갔습니다. 국내 유수의 총장들을 만나면서 30분 이상 만나지 않았습니다. 총리도 20분 이상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상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왜요? 너무 바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잭 웰치는 그처럼 바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문어발식 경영으로 거품뿐인 부실한 기업을 인수해서 그가 회장으로 취임해서 그 기업을 세계 최고 우량기업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올해도 미국의 최고 수익이 많은 회사 중 하나라고 합니다. 자,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라고 기자들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양손에 비료와 물을 가지고 정원을 가꿉니다. 꽃들에게 물을 주고 비료를 줍니다. 꽃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면 나는 더 열심히 돌봐주지만 그들이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잘라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독특한 경영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잭 웰치는 그가 출근하면 팔만 오 천명의 고위직 관리들, 사원들의 명단을 모두 펼쳐 놓고 그들을 일일이 평가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그가 얼마나 회사에 기여하고 있나, 얼마나 실적을 내고 있나, 얼마나 충성하고 있나, 그 모든 것을 두루 점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등급, 이등급의 사람들은 따로 모아서 그들에게는 스톡옵션을 주고 포상을 주고 얼마든지 보상해 줍니다.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 밑의 하위에 15 프로에 속하는 4등급의 사람들은 '요주의' 라는 딱지를 붙여 놓는다고 합니다. '요주의' 의 사람들은 매일 감시하면서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맨 아래의 15프로의 사람들, 5등급의 사람들 8,500명은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 이라고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해고 1 위인 것입니다. 철저하게 사원을 관리해 가는 것입니다. 우수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지원해 주고 게으른 사람들은 가차없이 내어쫓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살벌하고 냉정한 회사입니까. 저는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장에 내려서시면 아마 이 잭 웰치보다 더 엄격하시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들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실 것이고 주님은 일일이 지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 앞에 섰을 때, 일등급짜리 이겠습니까? 삼등급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오등급을 받지는 않을까요? 만약에 우리 옆에 '이 사람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이라고 주님이 표시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많은 분들이 신앙 생활을 취미생활처럼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낚시가 취미고 등산이 취미이면, 날씨가 좋으면 가고 날씨가 나쁘면 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나면 가고 바쁠 때는 가지 않습니다. 교회를 꼭 그렇게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오고 시간이 안 나면 못 오는 것이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취미생활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지 취미생활 정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엄격한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보니까,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로, 사용하지 않으면 잃어버린다는 교훈을 생각해 봅니다.

  본문말씀 28-29절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보세요. 어떻습니까? 이 종은 사용하지 않고, 투자하지 않고, 활용하지 않고 땅 속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을 활용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마저 빼앗겨 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팔을 자꾸 쓰면 이 팔 힘이 세어집니다. 근육이 발달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쓰지 않고 근육을 그냥 내버려두면 아주 외소 해지고 아주 연약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재능의 축복이 커지는 것입니다. 두뇌를 자꾸 사용하면 두뇌가 발달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쓰지 않고 계산기만 누르면 머리가 점점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매를 예방하려면 암송을 많이 하라고 합니다. 성경암송을 많이 하는 것이 치매예방에 1 위입니다.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하세요. 교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암송하는 것입니다. 암송을 열심히 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 속에, 내 심령 속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자꾸 사용하셔야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들, 달란트들, 은사들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우리 양 집사님이 지휘를 참 잘하십니다만 이 지휘를 그만두면 그 재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 녹슬어 버리는 것입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성악을 잘하는 분들도 계속을 성악을 해야지 그냥 안하고 10년 동안 방치해 두면 그 좋은 소리, 다 잃어버립니다. 집에서 낫을 쓰더라도 쓰지 않고 방치해 두면 녹슬어서 부식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자꾸 활용하셔야 더 크게 더 아름답게 발전하고 복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시간은 죽은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루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가치있게 보람되게 쓸 수 있는데, 이것을 그냥 낭비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은 죽은 시간입니다. 잃어버리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재능을 잃어버리고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열 달란트를 곱절로 장사를 해서 이윤을 남긴 사람은 한 달란트를 덤으로 받았습니다. 열심히 활용하는 사람은 덤으로 더 많은 것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세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축복이 주어지지만 그 재능을 활용하지 않고 땅 속에 파묻어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국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겨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어버립니다.

  여러분,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종,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는 주인을 잘 몰랐습니다. 주인을 악하고 냉혹한 사람으로만 알았습니다. "굳은 사람이라..." 그것은 바로 냉혹하고 잔인한 수전노와 같은 인물, 그런 뜻입니다. 자기 주인은 엄격하기 때문에 '만약에 장사를 하다가 혹 이것을 잃어버리면 내가 주인에게 매 맞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냥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이 본전만 드리면 우리 주인이 좋아 할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투자하고 활용하기를 주인은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주인의 의도를 오해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그는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투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오늘 성경 25절에 보니까,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이라는 것 이것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뭘 하려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이구, 이거 하다가 실패하면 어떡해요? 그냥 가만  있으면 본전치기나 하는데. 하이구 사업을 확장하면 어떡해요? 괜히 이거 실패하면 큰일나는데..." 하는 두려움이 있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들은 마귀가 의심을 줍니다. 그래서 뭘 하려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어, 내게는 그런 재능이 없어' 라는 소리를 마귀가 내 영혼에 뿌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때에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선생님이 "5 더하기 5는 뭐니?" 라고 묻는 데 아무도 손을 안 들어요. 그런데 나는 분명히 그 답이 '10' 이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손을 들려다가 그만둬요. 왜요? 혹시 내 답이 틀릴까봐서입니다. 의심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가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또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합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성가대석에 앉으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비웃을까? 내가 갑자기 전도한다고 전도지를 들고나서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비웃을까?' 하고 그것이 두려워서 새로운 일을 도전하지 못합니다. 잠언 29장 25절에 보니까.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이 뭡니까? 믿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에 보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 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고 히브리서 11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내어쫓으시고 믿음으로 투자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한가지, 이 악한 종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주인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주고 왜 나에게는 한 달란트 밖에 안 주느냐?" 그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사실 한 달란트가 적은 액수는 아니잖아요? 그것은 아주 소중하고 값진 은사요 재능인데, 그것을 통해서 또 얼마든지 보람있는 삶을 갈 수 있는데 그는 열등감과 증오심에 빠져서 비관하고 불평하다가 인생을 다 낭비해 버리는 것입니다. 참 그런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가끔 집회에 가보면, 뭐 시골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에 갈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 교회에 가서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러십니까?" 그 목사님은 계속해서 "작년에 우리 교회에서 장로선거를 했는데, 아 그 김 집사가 열심히 봉사해서 그 분이 될 줄 알고 했더니 엉뚱한 박 집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는 것입니다. 김 집사는 몇 표 차이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로 선거에 떨어지고 나서 김 집사가 얼굴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앞자리에 앉지도 않고 저 뒷자리에 앉았다가 가버리고, 불평 불만이나 하고 그리고 교회에서 뭐 할 것이 있으면 뭐라고 하느냐면 "아, 그런 거야 5 달란트 받은 장로님들이나 하는 거지, 우리 집사들이 뭘... 1 달란트 받은 사람이 뭘 그런 걸 합니까?" 하고 불평분자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는 주님의 책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내게 주신 한 달란트,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봉사해야지 자꾸 남과 비교하고 남과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다보면 결국 주님의 질책 앞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통해서 투자해야 될 가장 귀한 분야가 뭘까요? 저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한 번 투자해 보세요. 여러분의 재능을 활용해 보세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의 인생을 드릴 수 있다면 절대 그것은 후회하지 않을 일입니다. 그것은 최고의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는 그런 복된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자기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요즘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결승 끝났는데 며칠 전에 일본하고 준결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 : 2로 가다가 마지막 승부차기로 끝을 내는데 후반전 연장전에서 박주영 선수가 한 골을 넣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신선하더라구요. 하나님이 저런 박주영 선수와 같은 촉망받는 유망한 선수들을 크리스천으로 세워주셔서 골 넣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좋은지, 그는 그의 달란트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있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보지 못했지만 어제도 뉴스를 보니까, 박주영 선수가 두 골을 넣어서 우리가 중국에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참 박재홍 선수 보면 너무 멋있어요. 이원희고 문대성이고 그렇게 크리스천 선수가 멋있는지 몰라요. 박성화 감독도 얼마나 멋있어요. 그 분도 기도하는 집사님 이래요. 선수들 전장에 보내놓고 그리고 쿠알라룸프르에 있는 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드리고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참 그런 훌륭한 감독들이 크리스찬으로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내게 부끄러운 일입니까? 자기 달란트를 발휘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우리 백성들에게 돌려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저는 잘 울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마음이 그렇게 독해진 건 아닌데, 우는 일들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그 영화를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밥 먹다가도 엉엉 울었어요. 승복이가 너무 불쌍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울었던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미워도 다시 한번' 을 우리 아버지 손을 붙들고 제가 영화관에 가서 봤는데 그 아이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새 엄마가 와 가지고 당하는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세 번째로 제가 울었던 기억은 지난 추석 전에 우리 교역자들하고 가족들하고 같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꽃피는 봄이 오면' 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짧게 '꽃 봄' 이라고도 하는데 여러분도 한번 기회 있으면 보세요.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 영화에는 '현우' 라는 젊은이가 나오는데 그는 트럼펫 연주자입니다. 영화배우 최민식씨가 그 역을 맡았습니다. 그는 트럼펫 연주자로 어디 들어가려고 오디션만 가면 떨어집니다. 복장이 그래서 그렇고, 가르친 스승이 누구고 해서 다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강원도 시골 '도계 중학교 관현악단 지도교사' 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음악교사로 자원해서 갑니다. 가보니까 낡은 창고 같은 관현악 연주실에 찢어진 악보들, 다 망가진 악기들, 뭐 이런 속에서 아이들 모아 가지고 관현악단을 재건합니다. 또, 올해 우승하지 못하면 해체 위기를 당하는 그런 밴드부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그는 열심히 자기 재능을 발휘해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따라오고, 기쁨이 넘치고, 보람을 찾아갑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트럼펫 밖에 없는데 그것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을 보니까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결과는 무엇인지, 저는 그걸 보다가 울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연주를 해야하는데 아버지가 못하게 합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광부인데 '너는 공부해서 출세해야지, 너 악기만 가지고 빵빵대다가 굶어 죽으려고 그러냐 이놈아' 이러면서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비가 오는 날, 아버지들이 일을 하고 막장에서 껌둥이가 되어서 나오는데 그 앞에서 비를 맞으면서 아이들이 그 관현악으로 연주를 하는데, 얼마나 그것이 감동적인지...그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가만히 보니까 다 우는 것 같았습니다. 사모님들은 다 우는데 우리 교역자들은 냉정해서 그런지 아무도 안 울어요. 이렇게 감동적인 광경 앞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가 안돼요. 저는 그것을 보고 정말 울었습니다. '이야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있나. 자기 달란트를 가지고 뭔가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이웃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여러분 한번 봉사해 보십시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큰 영광 돌리는 믿음의 청지기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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