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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라 (삼상 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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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한용근 목사

  제가 전도사로 있을 때에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에서 물놀이 사고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섬기던 교회의 학생은 아니었지만 중학생 학생 한명이 물에 빠져 겨우 인공호흡을 시켜 살려 냈습니다. 몇 분이 지나자 이번에는 급한 물살을 따라 섬기던 교회 학생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물살이 빠른지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불과 1-2분 사이에 수 백 미터를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모두 소리를 지르고 어떻게 하느냐?고 하지만 손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 그 학생은 수영을 할 줄 아는 학생이었습니다. 물살이 급속하게 흐르는 대도 당황하지 않고 물가 쪽으로 서서히 몸이 쓸려 내려가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그 녀석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수영해 나갔다고 했습니다.

  짐승들은 수영을 배우지 않아도 수영을 잘합니다. 어떻게 이들이 이렇게 헤엄을 잘 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물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서서히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수영을 아주 쉽게 배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지 않을 정도의 깊이의 물에 들어가서 숨을 들이마시고 가만히 몸을 물에 맡기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라앉는 것 같지만 조금 있으면 물에 다시 뜹니다. 물에 뜰 때 손발을 아주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겁먹지 말고 몸을 물에다 완전히 맡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생활이란 얼마나 하나님께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맡기느냐에 있습니다.  “항복”이라는 말 혹은 “복종”이란 말을 사람들이 좋아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네가 나를 믿느냐? 그러면, 너는 나에게 먼저 항복해라. 너는 나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C.C.C. 세계 총재인 Bill Bright 박사는 세계 대학생회를 통해 많은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신 분입니다.  그에게 “빌, 왜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시고 당신의 삶에 그렇게 많은 복을 주시는 걸까요?”라고 어느 분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젊었을 때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나는 직접 계약서를 쓰고 그 밑에 서명을 했는데 거기에 ‘바로 이 날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 믿는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항복하고, 말씀대로 복종하면서 살 것을 서원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몸 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 앞에 항복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께 맡기고 복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우리는 밤을 새워 근심하며 온밤을 새워 부르짖으며 슬픔 중에 기도하는 사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밤을 새워 그렇게 근심하면서 기도하게 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 그가 나를 배반하고 나를 좇지 아니하고 내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사용하시기로 작정한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물엘 선지자를 통해서 사울에게 “이번 아멜렉과의 전투에 나가면 모든 아멜렉 사람들이 가진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모두 없애십시오. 남자와 여자 심지어 아이들과 젖먹이 어린이도 살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 등 모든 그들의 가진 재산은 하나도 남겨서는 안됩니다.”(삼상1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양과 소와 아름다운 보물과 기름진 소와 양과 낙타와 젊은 여인들과 노예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가 너무나도 아까웠습니다.

  그는 선지자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생각과 뜻을 포기하고 항복하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아 29:11절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것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보고 계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이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고, 때로 순종을 강요하시고 때로 회초리를 들어 그 몸을 때리시기까지 하면서 순종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어린아이의 장래와 미래를 위해 아이를 교육하는 것과 같습니다. 장래에 그것이 아이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에게 순종하고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합니다. 결국, 그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언제나 알아야 할 것이 인생에서 노인의 지혜를 따를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번 야유회에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제가 볼 때 청팀이나 백팀이나 실력을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청팀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청팀이 승리할 수 있었던 아주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청팀은 세운 리더에 말에 그 열이 흩어지지 않고, 응원을 하면서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백팀은 리더는 떠들어라 나는 내 생각대로 나의 길을 가련다하면서 My way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니 그 조직이 깨지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어도 자기 고집대로 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사회 조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인정받을 수없습니다. 그 리더는 전체를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조직에 있는 사람은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조직 안에서 리더가 이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체를 보고 판단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의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끝이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축복을 받고 그 인생이 형통하겠습니까?

  저희 교회 시찰장이 되는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 권사님이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컴퓨터를 기증하기로 하셨답니다. 당시는 컴퓨터가 귀할 때였고, 권사님께서는 자기 집에 사용하던 것이고, 새로 컴퓨터를 사게 되어 낡은 것을 교회에 기증하기로 했답니다. 해서 주일 예배 광고 시간에 모 권사님이 교회에 컴퓨터를 기증하게 되었다고 광고도 하고, 준다는 날이 되어 교회 청년과 함께 가지러 가는 날이 아침에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그 컴퓨터는 교회보다는 조카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이 얼마나 황망한 일입니까? 교회에 전체에 광고를 하고 주일학교를 위해 컴퓨터 교육을 하기로 계획을 세운 목사 얼굴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무척 마음이 상했지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목사님은 자신의 사비를 들여 조용히 컴퓨터를 청년과 함께 구입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그 권사님이 손녀가 100일 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그 아이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교회에는 뜻하지 않은 소문이 퍼졌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하나님이 그 아이를 데려 가셨다.” 아마 그 옆에 있었던 청년이 교회의 몇 사람들에게 당시의 일을 이야기했고, 몇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 후에 권사님은 크게 회개하고 교회에 필요한 전자 제품은 그분께서 완전히 담당하는 분이 되었답니다.

  목사로서 가끔 목회를 하면서 제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보는 것 같아 아플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저희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가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커서 교회를 섬기게 되면 절대로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 목사님의 마음을 크게 위로하는 자가 되라. 그것이 너희의 장래에 큰 복을 쌓는 것이 된다.”

  사람들이 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영적인 지도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형통한 자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의 임금이시며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인생이 형통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지혜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 세운 선지자를 밤을 새워 기도하게 했고, 울부짖게 했습니다. 그 인생이 평탄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네”하고 순종하면 그 인생이 평안할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라고 하면 그 일을 그대로 하면 됩니다. 종은 주인에게 항복한 사람입니다. 종은 자신의 생각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12절에서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13절에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사울은 아멜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의 힘으로 그가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약속하셨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를 위해 갈멜산 위에 기념비를 새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순종하지 않은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을 통해 여러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초점이 잘 못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바벨론의 왕이었던 느브갓네살 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세계를 점령하는 위대한 왕이 되었지만 무려 7년 동안이나 들짐승과 함께 지내면서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머리털이 독수리 털처럼 되었고, 손과 발이 새 발톱과 같았다(단4:32-33)고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초점은 하나님께 맞추어져야 합니다. 야고보서 4:6절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서 무슨 하나님의 은혜가 있겠습니까? 분명히 성경을 말씀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잠3:5-6).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시리라”(잠4:8).

  여러분들이 인생이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며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길을 열기도 하시며 닫기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그 세운 하나님의 사자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했던, 가인으로 시작해서 육신의 사람이었던에서 그리고 모세를 대적하였던 고라 자손들, 여호수아시대의 물질주의자 아간, 예수님 때의 가룟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흔적을 가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교회를 대적하였던 초대 교회의 후메네오와 알렉산더, 교회를 분열시키고 싸움했던 유오디아와 순두게 등 수 많은 이들이 인생의 괴로움을 당하였습니다. 분명히 히브리서 13:17절에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을 흘려보내는 대나무와 같습니다. 물을 잘 흘려보내려면 속에 가로막힌 칸막이가 다 없어져야 합니다. 고통스러워도 가로막힌 속을 다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육에 속한 자아와 고집과 교만이 깨어지고 하나님께 오직 초점을 맞추고 항복해야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귀하게 사용하는 그릇이 되고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내가 순종할 때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내 인생이 형통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께 내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라고 결단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예사랑 교회는 무엇보다 순종과 사랑을 중요시하는 교회입니다. 예사랑 교회의 “예”가 바로 “순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아멘하고 예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며, 불순종은 사술의 죄이며 우상 숭배의 죄와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하고 순종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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