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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선택에 담긴 역설 (삼상 16: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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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황요한 목사 

지난 한 주간은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수도 서울을 옮기는 이전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음으로써 충청권 지역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를 위해 정권을 걸고 준비하던 여권은 허탈감과 실망감에 무척 힘들어 하는 모습입니다. 더구나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어 무척 당황하는 가운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느라 고민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리에 앉으면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이 기본이라고 정부여당의 한 책임자도 민심을 보고 놀라워했지만, 사실 돌아보면 비판을 일삼는 일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의 역할도 요즘처럼 크게 도전받는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위치가 얼마나 불안하며,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어느 성도는 아파트보다는 땅을 밟고 다니면서 사는 것이 좋다면서 새로지은 단독주택을 구입하였는데, 여닐곱 가정되는 입주자들의 성화에 두 손 바짝 들고 더 이상은 단독 주택에 살지않겠다며 아파트로 이사 간 분도 있었습니다. 몇 사람, 몇 가정을 리드하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든데 한 나라를 이끄는 일이겠습니까?

우리 평안의 성도1.200명을 이끄는 담임목사 자리도 결코 쉬운 자리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요구가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영적 칼라도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사회봉사와 같은 부분에 중점을 두기를 바라고, 어떤 이들은 개인 전도에 힘을 쓰기를 주문합니다. 어떤 이는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심지어 심방도 원치 않고, 어떤 이들은 조그마한 일에도 철저하게 목회자가 돌보아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양한 성도들의 목회적 요구에 공통분모를 찾아 가며 리더쉽을 발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떠났다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불행을 예고하는 메세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난다는 것은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 멀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떠난 자리에 악령이 들어왔습니다.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악령이 지배하는 사울에게서 신하들은 그가 정상이 아님을 알아채기 시작했습니다. 염려하고 고민하던 그들은 용기를 내어 사울 왕에게 치료를 위한 건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악기를 잘 타는 사람을 불러다가 수금을 타게 하면 왕이 치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들의 건의는 받아들여져서 사울 왕은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찾아 오도록 했습니다.

즉시 젊은 신하 한 사람이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다윗을 추천했습니다. 18절에 소개된 그에 대한 추천 내용은 크게 3 가지로 구별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이 음악적인 재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음악적인 달란트는 인생을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외로울 때 음악은 좋은 위로자의 역할을 해 줍니다. 참기 어려운 슬픔의 자리에서도 음악은 깊은 내면을 어루만져 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을 다닐 때 제일 부러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채플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와 특송을 부르는 사중창 혹은 복사중창을 하는 동료들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소위 '홀리 보이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말만 들어도 왠지 은혜스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리톤이나 베이스톤의 음색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우리 교회 이형훈 장로님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거칠어지기 쉬운 양치는 목자의 생활 속에서도 수금을 타고 피리를 불면서 자신의 정서적 갈증을 메워나가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환경은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풍성한 음악적 재능을 통하여 자신을 다듬는 기회로 선용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추천의 내용은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담력이 있고 용기가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말에 있어서 조리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17장 36절에 보면, 사울왕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오리까?' 라며 당당하게 고백하는 장면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다윗에 대한 추천의 내용은 그가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신하가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음악적인 재능이나 무용이나 담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추천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으로 추천된 다윗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을 다른 사람이 추천할 때 여러분들을 뭐라고 추천하겠습니까? 1부예배 시간에도 그런 제안을 드렸어요. 집에 돌아가시면 이제 좀 쓸쓸하니까 보일러 트시고, 따뜻해지면 배 깔고 엎드려서 종이 한 장 가지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한 번 써 보라고 그랬어요. 나를 추천한다고 한다면 고스톱 제일 잘 치는 집사, 제일 술 좋아하는 권사, 시장에 가면 제일 잘 깎는 깍쟁이 집사, 그런 것으로 혹시 특징 되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전도를 많이 하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생활 전도법 중에 하나가 시장에 가서 절대로 깎지 마세요. 깎는 것도 백화점 가서는 깎을 생각도 못 해요. 몇 십만원짜리는 깎을 생각도 못하면서 콩나물, 시금치, 천원, 이천원짜리는 그거 깎으려고 들고, 그거 한 줌 더 집어가려고 들고, 그 분들이 그거 팔아서 얼마나 남습니까? 그 분들이 돌아서서 저 여편네가 도대체 어디 사는 여편네야? 평안의교회 집사야?

여러분들이 수백만원 수천만원 들여서 계속 전도하고 있잖아요. 전도물품 들고서 발품을 팔며 25층을 다니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쪽에서는 많은 돈 들여서 수많은 수고의 땀을 흘리면서 전도를 하고 다니는 사람, 이 쪽에서는 오백원, 천원 깎느라고 하나님의 자녀 교회 이미지 다 버려놓고, 전도의 문 다 닫아놓고, 이거 너무 어처구니 없잖아요.

전 여러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전도의 마인드가 있다면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절대로 시장에 가서 그것도 재래시장에 가서 물건 좀 깎지 마세요. 평안의교회 교인들이 오면 절대로 물건을 깎지 않는다.

어떤 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가르칩니다. 시장은 반드시 시장이 끝날 무렵에 가십시오. 그래서 떨이는 다 떨이해 오십시오. 사실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은 오늘 못 팔면 버려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그냥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사면 그냥 하루 이틀은 씁니다. 장사하는 분들한테는 굉장히 마음 졸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떨이를 조금 싸게 팔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그 교회는 교육을 시켰어요. 시장에 갈 때는 저녁시간에 파장 때 가서 떨이만 사십시오. 그 교회는 그렇게 해서 시장에 장사하는 분들을 거의 다 전도를 했어요.

전도를 아파트 25층만 가야 전도입니까? 오히려 전도의 문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 내가, 우리가... 제발 오백원, 천원 좀 깎지 마세요. 몇 십만원짜리는 깎아도 괜찮아요. 그건 이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적은 것은 이윤 얼마 없습니다. 그거 깎아서 뭐 할려구요? 그거 안 보는 사이에 얼른 하나 집어다가 그거 감 하나, 사과 하나 집어넣고 얼른 달아나는 거예요. 그 뒤에 대고 욕을 해 댑니다. 그거 살림 잘 하는 거 아닙니다.

사람들이, 더구나 함께 사는 지역의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평가할까? 인색한 사람, 아무 신앙적인 면에서 덕이 없는 사람, 그렇게 평가를 받는다면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가로막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 성장학자들은 교회 성장을 가로막는 적이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게 모르게 교회 문을 가로막고, 전도의 문을 가로막고 살면서 그 사람들이 언제 또 전도합시다 하고 전도지 들고 나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전도입니다. 아무쪼록 평안의 성도들은 지역사회에서 여러분을 아는 가까운 이웃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는 지금 젊은 신하가 왕에게 다윗을 소개할 때에 이렇게 좋은 재능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바로 여러분들의 평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왕도 18장 28절에서 다윗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왕이 보고 알았다. 신하도 보고 알았고, 왕도 보고 알았습니다. 사무엘하 5장 3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하여지니라. 제삼자가 보아도 다윗이 잘 되는 이유, 다윗이 강해지는 이유, 다윗이 승리하는 이유가 있는데,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이라...

다윗이 잘 되고, 다윗이 형통하고, 다윗이 강해진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았고, 사울왕으로부터도 선택을 받았습니다. 신하들에게도 인정을 받았고,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오늘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말씀의 제목에서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에 담긴 역설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다윗은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왕인 사울은 점점 지는 해처럼 그렇게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갑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부각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악령이 들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고, 다윗은 그를 치료하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윗을 소개받은 사울왕은 한 눈에 반했습니다. 사실은 수금을 연주하는 것으로 한번 초청을 받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울왕이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 옆에서 병기 든 자로 선택을 해 버렸어요. 요즘 말로 하면 왕을 근접 경호하는 측근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왕 옆에서 병기를 들고 왕을 지키는 자로 뽑힌 것입니다.

다윗은 왕을 지키는 자로, 사울은 지킴을 받는 자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수금으로 왕을 위해서 치료하니라. 그 왕을 위해서 치료하는데 놀랍게도 지금 사울왕이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함으로써 고통을 받을 때 신하들이 왕을 보면서 왕은 치료가 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수금을 타는 사람을 초청해서 그 수금연주를 들으면 치료가 될 거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제안입니다.

우리 나라의 뮤직테라피 즉 음악치료요법이 소개된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을 만큼 생소한 분야입니다. 제가 2000년 3월에 상담대학원에서 음악치료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강의하신 분이 연대교수였는데 최근에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 왔노라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생소한 학문입니다만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니까 왕의 측근들이 음악치료법을 사울 왕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우리가 현대에 살면서 발견했다, 발명했다, 그런 것들을 보면 다 성경 속에 나와 있어요. 오늘 사울은 음악치료를 통해서 사울이 유행가를 연주했을까요? 저는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가대는 음악치료의 선봉에 있는 분들이예요. 여러분들의 찬양을 통해서 상처받은 심령들이 상처가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목회의 보조자가 아니라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줄로 믿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니라" 사울은 다윗에 의하여 세가지 분야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첫째, 정신적 치료였습니다. 상쾌하여 졌습니다. 둘째, 육체적으로 치료였습니다. 몸의 질병과 고통이 나았습니다. 셋째, 영적인 치유를 받았습니다. 악신이 그에게서 떠났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백합니다. "너희가 주님 오실 때 몸과 영과 혼이 흠없이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몸과 혼과 영이 흠없이 보존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금 사울 왕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 다윗을 통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자로서의 다윗과 치료를 받는 자 사울의 모습이 아주 잘 대비되고 있는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주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에게 충만하다면, 언제나 하나님의 영을 떠난 사람들이 사탄으로 인하여, 악령으로 인하여 고통받을 때, 여러분들이 치료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육신이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 우리의 정신이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 그리고 영이 치료되어야 할 사람들이 널려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다윗을 소개하면서 바로 우리 자신이 이 시대의 다윗으로 치료자로써 쓰임받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치료자로써, 그리고 사울은 치료를 받는 자로써, 다윗은 지키는 자로써, 사울은 지킴을 받는 자로써 살지만, 사울은 왕이라고 하는 지위를 가지고, 끊임없이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한 번도 사울을 미워하거나, 사울에게 기회가 왔을 때 죽이려고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회가 동굴에서 왔을 때에도 측근들이 단칼에 복장을 관통시키겠다고 그랬을 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지 아니하다. 그는 그 주어진 환경적 절호의 기회조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치료자의 자리에 있었고, 위로자의 자리에 있었고, 섬기는 자의 자리에 있었고, 신실한 삶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윗이 오늘날 크리스찬 우리라고 비유를 한다면 사울로 비유되는 세상에 권세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사람들을 미워하고, 까닭없이 핍박하는 그들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유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끝까지 치료자로써의 위치를 잃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신 그 시대에 다윗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는 메시지 인 줄로 믿습니다.

달라야 합니다. 다윗이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으니, 오늘 우리가 성령의 사람인 것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그를 미워하고, 그에게 어려움을 주었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써 치료자로서, 위로자로서의 삶이 곧 평안의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치료자로써 부름 받은 다윗입니다. 왕으로나 이웃으로나 여러 사람들의 평가가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이웃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로써 부족함이 없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파괴자가 아니라 치료자가 되게 하시고, 아버지 언제나 그들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하시고, 온유함과 사랑으로써 그들에게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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