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왜 예수가 필요한가? (요 6:30-37)

  • 잡초 잡초
  • 397
  • 0

첨부 1


- 설교 : 장영일 목사

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뜻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1. 믿을 만한 무엇을 보여 달라는 사람에게

11월을 영적 추수의 달로 정하였습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올 해 우리가 살아온 삶에서 직간접적으로 이웃에 복음을 뿌린 것을 거두어보자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난 봄부터 새생명을 잉태하여 태신자로 키워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그 태신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준 가족과 친지 혹은 이웃들을 이젠 거두어 교회로 인도하실 일이 남아 있습니다. 미리 태신자는 만들지 못했을지라도 여러분들의 삶의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의 교회로 인도하는 달로 정한 것입니다. 이 일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다하여 전도에 힘씁시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사람들이 묻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라! 하는데 우리가 예수를 믿도록 뭔가를 보여 달라!는 요구입니다. 본문에 유대인들도 예수님께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30절)

이미 믿는 우리들은 믿음이란 너무 쉬운 것입니다. ‘왜 믿었느냐?’ 혹은 ‘어떻게 믿게 되었느냐?’란 질문에 얼른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믿음은 저절로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항변이 이상해 보입니다. ‘그냥 오라 하면 얼른 와서 예배드리면 믿음이 생길텐데 . . .’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일반적인 전도의 내용은 “믿어봐 그러면 믿어져!“ 이게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비신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것이 교회 한번 온다고 금방 생기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 눈에는 이상스럽게 보이고 신자들이 다 ‘종교 환자들’ 같아 보인답니다. 그래서 ‘뭔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불신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결국 미친 짓이란 것을 확인시켜줄려고 합니다.

특히 비신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표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1절)

즉 유대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다시 찾는 것입니다. 오늘의 비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기적같은 일들을 요구하는 것은 그 일이 불가능함을 자신하면서 그들의 불신을 옳은 것으로 확인하려하고, 또 하나는 우리들의 신앙이 결국 엉터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 마음에는 기적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종교심의 한 증거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8-19)

여러분!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주눅들지 마십시오. 대신 오히려 기적에 대한 향수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는 전도의 가능성으로 삼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하는 우리들에게 기적을 요구할 때, 우리는 그 기적의 근원이 곧 예수님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본문을 다시 읽어봅시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늘에서 내려진 그 만나 그것이 곧 기적의 중심인데, 그 떡은 곧 생명의 떡이요 그러므로 기적은 곧 생명력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말을 듣고는 그러면 그 생명의 떡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곧장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기적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기적을 보여주려고 날리를 떨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신유나 성령의 불바다를 이룬다는 이상한 집회로 인도해갈 것이 아니라, 곧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십시오. 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기적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겐 은도 금도 없습니다.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곧 나사렛 예수 아닙니까? 이 이름이 성전 미문 곁에서 평생을 앉아 구걸하던 병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그렇습니다. 전도를 통하여 부르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결국 기적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가 됩니다. 전도자의 대부인 바울은 그의 전도 경험에서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는 누구든지 결코 주리지 않게 하실 것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 진리가 전도의 이유이며 전도의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는 교회를 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들을 홍보하는 것이 전도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요즘 전도지가 교회 홍보지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전도는 교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할 것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거나 영적인 체험이 없다면 그 분은 교인은 될지라도 아직은 신자가 아닙니다.

혹 우리 중에도 이런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에는 왔으나 예수님이 없는 분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야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리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야 안식을 누립니다. 평강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누립니다.     

함께 따라 고백합시다.

주님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께 가오니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우리는 이제 믿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시어 우리들의 구주가 되심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생명의 떡을 먹이어 주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기까지 우리에게 참 배부름과 안식이 없습니다. 아멘


3.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쫓아 내지 않으리라

우리가 이처럼 주님께로 나아오고, 이웃을 전도하여 주께로 데리고 옴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을 외모로 구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37절)

누구든지 전도를 받고 나아오면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외모의 문제로 내어 쫓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은 가립니다. 선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단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는 결단코 선별하여 내어 쫓는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전 5:16-17)

4. 이제 전합시다

이제 전합시다. 11월은 전도의 달입니다. 복음에 대한 진심으로 한 사람이 한 영혼을 구합시다. 잃어버린 냉담자들도 찾아 다시 초청합시다.

우리 한국에 개신교회가 들어오기 전에 중국을 통하여 서학이란 이름으로 복음이 전래되던 그 때에 이 벽이란 분이 이런 글을 지었습니다.

아비 없는 자식 봤나 양지 없는 음지 있나
임금 용안 못 뵈었다 나라 백성 아니런가
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있는 천당 모른 선비 천당 없다 어이 아노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