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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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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우리교회에서는 다음 주일인 11월 첫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자 합니다. 이 귀한 절기를 앞둔 오늘은“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하신 본문 15절 말씀을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봉독해드린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신앙인의 생활덕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 사랑, 그리고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것은 감사에 대해서만은 세 번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감사함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함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은 인간이 행해야 하는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것은 신앙인의 덕목 중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 1:3)라고 하셨습니다. 감사란 받은바 은혜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소와 나귀보다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평신도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말하기를“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감사가 사라진다고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의 심령은 피폐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신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불평하는 마음에 마귀가 거합니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가버립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조건이 오고 불평하면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1.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보다 불평을 더 잘합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죄 된 인간은 감사를 모릅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일은 다 자기 탓이라 생각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자기가 건강조절을 잘해서 된 일로 압니다. 먹을 것이 넉넉하면 자기가 사업을 잘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가정이 평안하면 자기가 가정관리를 잘해서 되는 줄로 압니다. 이것이 죄인 된 인간의 심사입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땐 책임을 전가하며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러한 죄인의 본성에 대하여 성경은 기록하기를“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로마서 1:21)하셨습니다. 미련한 사람의 마음, 거짓이 많아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은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약성경 유다서에는“이 사람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유다서 1:16)하셨습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타락한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평을 일삼고 감사를 모르는 것이 죄인 된 인간의 특성입니다.

미국의 정치가 가운데 웹스터(Daniel Webster, 1782-1852)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상하 양원에서 의원을 지내고 국무장관을 두 차례나 지낸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것저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럴 때 웹스터는 찾아온 사람을 다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은 낯이 있으면서도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웹스터가 정해두고 묻는 말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전에 불평하시던 일이 어떻게 종결되었습니까?”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설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렇게 저것이 저렇게 되고...하며 설명을 하는 동안에 웹스터는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늘 불평이 있고 그 불평을 토해낼 기회를 주면 누구나 본색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죄인의 특성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 12절 이하에는 다음과 같이 교훈하고 있습니다.“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하노라”(신 8:12-14)“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신 8:18)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일이 잘 되면 교만하여 져서 자기를 자랑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을까 두렵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2. 참된 믿음의 사람은 감사함을 잊지 않습니다.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생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사람은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해 본 사람이 음식에 대한 감사를 압니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사람이 생명에 대한 감사를 압니다. 병에 걸려 고생해 본 사람이 건강에 대한 감사를 압니다. 죄 짐에 눌려 애써본 사람이 용서에 대한 감사를 압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압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감사를 압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압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하셨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 가운데“찰스 슐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만화는 사람의 생활 형편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의 만화 그림을 신앙인에게 도움을 주는 내용이 종종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만든 만화 가운데“스누피”라는 개가 종종 나옵니다. 추수 감사절이 되었습니다. 스누피는 개니까 감사절에도 개밥을 먹었습니다. 주인집 사람들은 모두 칠면조 고기를 먹는데 스누피는 개밥을 먹습니다.“이럴 수가 있나?”하고 스누피는 자기 집 지붕에 오라가 누워서 생각합니다.“감사절에 집안 식구들은 다 칠면조를 먹는데 나는 어쩌다가 개가 되어서 개밥을 먹는고? 세상이 참 불공평하구나! 내 신세가 이게 무엇이람?”그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내 신세가 더 나빴을 수도 있지!”하는 생각입니다.“내가 개가 되지 않고 칠면조가 되었더라면 오늘 죽었을 것이 아닌가? 내가 만약 칠면조였다면 오늘 사람들에게 잡혀 먹혔을 것이 아닌가! 야! 내가 칠면조가 되지 않고 개가 되어서 살았구나!”그러고 보니까 감사했습니다.
영어의“감사하다(thank)”라는 말과“생각한다(think)”는 말은 비슷한 어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감사하려면 생각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얼핏 볼 때에는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생각해보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얕은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숨겨진 마음의 보화입니다. 그래서 유태인 신학지인 몬테 피오레는“생각하고 감사하라.(Think and Thank)”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온통 은혜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외국 어느 교회에 예배당 뒷동산에 교회 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인이 세상을 떠나면 예배당 뒷동산 무덤에 한분씩 순서대로 묻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가 끝나면 가족들이 무덤을 방문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노인이 친구 장례 하관예식에 참석하고 나서 예배당 뒤뜰 무덤 비문을 하나씩 하나씩 읽으며 점검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목사님, 여기 묻힌 사람은 나와 같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사람입니다. 5년 전에 여기 묻혔습니다.”“이 부인은 내 중학교 동창 부인이었습니다.”“이 청년은 내 동생의 아들 조카인데 군인 갔다가 죽어서 이리로 왔습니다.”이렇게 한동안 설명을 하고 나서 그 할아버지 하는 말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보다 여기에 더 많습니다.”라고 하고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하는 말이“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걸 내가 생각하면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오늘 햇볕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군요!” 이 노인은 그때에 비로소 80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하늘의 햇볕이 잔등에 따뜻하게 비추며 준 것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했습니다.

하늘의 햇볕이 여러분의 잔등에 몇 해나 따뜻하게 비추어 주었습니까? 몇 해 동안 여러분은 건강하게 살아오고 있습니까? 배곯지 않고 지붕 밑에 머리를 두고 가족들과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온 것이 얼마입니까? 평화로운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살아온 것이 얼마입니까? 모두가 감사한 일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감사입니다.


3.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에 이르시기를“오직 성령이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에베소서 5:18-20)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 곧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의 증거는 감사함으로 나타납니다. 아무리 잘 믿는 것 같아 보여도 그에게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 있다면 그는 믿음이 병든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그에게서 떠났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도다.”(시 119:11)라고 하셨으며“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여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 119:67)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어려움 중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곧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어떤 부인이 신경쇠약에 걸렸다가 나은 후 글로 자기의 경험을 썼습니다. 그의 신경쇠약은 우울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리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세월만 보내게 되었습니다. 세상일에 아무런 관심이나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모든 일이 두렵고 앞이 캄캄하고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조언을 청했습니다.“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목사님의 말씀이 “감사를 실천해 보십시오.”하고 전했습니다.“그것이 무엇 입니까?”“첫째,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둘째, 당신에게 지금까지 덕을 입혀준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셋째로, 그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표시해 본 일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글쎄, 제게 덕을 입혀준 사람이야 많지요. 그러나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해본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그러면 그 중에서 우선 한 사람으 택해서 그에게 늦게나마 감사하다는 글을 써 보내보시지요.”이 사람은 한동안 생각한 끝에 고등학생 시절에 자기에게 문학을 가르쳐준 여자 선생님을 생각하고 그에게 편지 한 장을 썼습니다. 편지 속에 그 선생님이 자기의 고교시절에 좋은 영향을 끼쳐 주었다는 것과 그 덕으로 자기가 문학에 취미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늦게나마 그가 자기에게 끼쳐준 은공을 감사하기 위하여 이 글을 써 보낸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회답이 왔습니다. 화답을 보니까, 늙은 사람이 떨리는 손으로 써 보낸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내용에“고마운 제자여! 자네의 글을 받고 내가 너무 감격해서 흐르는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오. 내가 자네를 기억하는 것을 자네가 교실 한편 끝에 앉았던 젊은 학도의 모습이지요. 그런데 자네의 편지가 다 살이 빠진 내 늙은 마음에 따듯한 옛정을 돋우어 주었소. 내가 30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가르쳤으나 자네와 같은 온정의 편지를 보내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소. 감사하기 이를데 없소. 나는 자네의 귀한 편지를 죽을 때까지 잘 보관할 것이오!”
이 회답을 받고 우울증 환자의 어두운 마음에 밝은 희망의 빛이 스며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속에 감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즐거운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 이 사람은 자기에게 덕을 입혀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또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게 해서 감사의 편지 500여 통을 썼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우울증 증세는 다 떠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감사는 은혜 받는 양약이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를 창조하사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이 더 좋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주신 예수님께 감사함이 그렇습니다. 나를 감동케 하사 주님의 교회를 인도하신 성령님께 감사함도 그렇습니다.

감사하십시다.
감사를 모르는 것은 죄인 인간의 특성입니다.
감사를 아는 것은 믿는 사람의 증거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성령 충만의 증거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사랑의 보자기를 들고 찾고 계십니다.
축복의 보자기를 들고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사람이 이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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