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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제자들 시리즈 설교 ⑥>체험적 신앙인 도마 (요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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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체험의 함정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F.Bacan)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망상을 우상이라고 표현하고, 대표적인 네 가지 우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그것입니다. 그는 참된 경험과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 우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종족의 우상’이란 맹목적인 습관, 감정, 신앙에서 오는 편견을 뜻합니다. ‘동굴의 우상’이란 개인적인 취미, 성격, 환경에서 오는 편견을 뜻합니다. ‘시장의 우상’이란 인간의 접촉, 언어에 의하여 나타나는 편견을 뜻합니다. 마지막 ‘극장의 우상’이란 전통, 역사,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믿는 편견을 뜻합니다.

철학자들은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이 네 가지 우상도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공감이 가는 내용들입니다. 지금 네 가지 우상을 다 설명할 시간은 없고 이 가운데 두 번째 우상인 ‘동굴의 우상’만 생각해 봅니다. 이 ‘동굴의 우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치 동굴 속에 묶여 있는 포로들처럼 자기가 있는 좁은 세계만 바라보고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말에 아주 이 ‘동굴의 우상’과 딱 들어맞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뭘까요? 바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입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는 우물이 세상의 다인 줄 알고 삽니다. 하늘도 자기가 보는 우물 입구의 둥그런 부분만 하늘인 줄 알고 삽니다. 그래서 이 ‘동굴의 우상’이나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은 모두 자기의 경험과 지식만 의존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편견, 넓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 ‘동굴의 우상’이나 ‘우물 안 개구리’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중세의 사람들은 모두 지구가 평편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평편한 지구 끝을 지나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자기네가 사는 유럽대륙만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갈릴레이가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했을 때 이단으로 몰아붙여 재판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 뿐 아니라 자기가 체험한 것만 인정하고 자기 경험에 비추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 믿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지금부터 살펴보려고 하는 예수님의 제자 도마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경험만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으로 자신이 직접 보지 않고 만져보지 않으면 믿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도마를 ‘의심 많은 제자’라고 부릅니다만 엄밀하게 따지면 이 도마는 의심이 많다기보다 자기 체험에만 의존하는 편협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체험주의자에서 체험신앙으로

지난주에 빌립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서 인용했습니다만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 천국으로 가야하지만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요 14:5)라고 묻습니다. 한 마디로 그 길이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 도마는 ‘디두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요즈음도 이 도마와 쌍둥이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못 믿겠다, 있다면 한 번 보여줘 바라. 그래서 천국에 가봤다는 사람들이 뭔가 천국의 증거를 대보려고 이런 저런 책을 많이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책이 뭐가 필요합니까? 안 가 보면 없는 것입니까? 저는 중국이나 영국은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당연히 있는 줄 압니다. 어떻게 아나요? 있다고 배웠으니까 있는 줄 아는 것입니다. 솔솔 부는 바람은 눈으로 본 적이 없지만 분명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안 봤어도 바람을 몸으로 느끼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 봐도 얼마든지 느끼고 믿을 수 있는데도 어리석게 천국은 내가 안 가봤으니 있는지 없는지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입니다. 도마와 쌍둥이 벌 되는 사람들이지요.

또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 때 하필 도마라는 제자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도마가 나중에 나타나자 제자들은 기쁜 마음에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도마가 어떤 사람입니까? 안 보면 절대 안 믿는 사람이라고 했지요? 그러니 도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

교회에서 보면 꼭 이런 분이 있습니다. 소위 ‘당당한 결석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모임에 안 와서 중요한 말 할 때 못 듣고 나중에 와서 “왜 나 없을 때 그런 중요한 말 했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 모처럼 선물을 줬더니 “왜 하필 나 없을 때 선물 주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결석은 왜 했습니까? 그 자리 지키고 있었으면 받을 것 다 받고 아무 문제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저는 예수 믿은 후 교회에 한번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나 없을 때 은혜 받으면 어떻게 하나, 나 빼놓고 전부 다 은혜 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재미있는 이유지만 건전한 신앙인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은혜도 받지요.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 나타나셨을 때 결석하고는 남이 하는 말 안 믿고 우기는 것입니다. 사실 하필 자기 없을 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말씀도 가르치고 성령도 주셨는데 얼마나 손해가 막심합니까? 그런데 도마는 이 사실을 안타까워하지는 않고 난 못 봤으니 못 믿겠다고 우기기만 합니다. 정작 받을 은혜는 못 받은 채 내 눈으로 안 보면 못 믿겠다니 참 답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오늘 본문 26절을 보니 그로부터 8일이 지난 후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한번 나타나십니다. 왜 다시 한번 나타나신 것일까요? 특별히 도마를 만나기 위해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27절부터 보면 도마하고만 대화를 나누신 것입니다. 어떤 대화입니까? 27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도마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네가 못 보고 못 만져보면 안 믿겠다고 하니 한번 직접 보고 직접 만져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이 말씀 속에 왜 주님이 다시 나타나셨는지, 왜 특별히 도마를 만나기 위해 오신 것인지 이유가 나타납니다. 맹목적인 경험주의자 도마를 변화시켜서 주님의 사람으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각기 다른 성격, 다른 특성을 지닌 제자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만나 설득하고 변화시켜 각자 위대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생깁니까? 28절을 보세요.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에게 어떤 변화가 온 것입니까? 여전히 도마는 체험을 중요시 합니다. 자기가 직접 보고 직접 만져보더니 그제야 “당신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입니다.”하고 고백합니다. 체험을 중요시하는 자세는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그의 태도는 변합니다. 어떻게 변하는가? 자기 체험만 믿던 맹목적인 체험주의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경험만 믿던 어리석은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후 건전한 체험신앙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체험신앙’입니다.

체험의 힘

이와 같이 영적인 세계에서 체험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도마는 자기 눈으로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자기 손으로 직접 예수님 손의 못자국,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본 후 그 놀라운 체험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사도가 됩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신앙은 체험입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그저 머리로만 믿는 것이기 때문에 뿌리가 없고 조금만 시련이 와도 금방 무너집니다.

우리도 체험신앙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직접 체험해야만 은혜를 진심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체험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도마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제자는 다 예수님을 직접 보았는데 그 열한 명이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다고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도마 한 사람 설득하지 못합니다. 체험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경험 해보셨을 것입니다. 부흥회 가서 은혜 받았는데 부흥회 안 간 남편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는데 내가 만난 주님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상대방은 고개만 갸우뚱,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답답해도 할 수 없지요. 이 체험이라는 것이 말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체험만 하면 아무리 의심 많고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반드시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보는 체험만 하면 제 아무리 도마 같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벤허’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 많을 것입니다. 본디 이 ‘벤허’라는 영화는 루이스 월리스라는 퇴역군인이 쓴 소설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월리스는 1827년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의 아들로 태어나 변호사를 거쳐 남북전쟁 때에는 북군의 장군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월리스가 어느 날 한 친구와 대화하던 중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임을 밝히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메시아니 초능력적인 인물이니 하는 허구를 다 벗기고 순수한 인간 예수를 조명하는 것이 그의 집필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기독교는 얼마 후에 이 세상에서 존재를 감출 것이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에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소설을 쓰면서 예수님의 생애를 추적하고 연구하며 그 배경을 알려고 성경을 읽는 동안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게 되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믿게 되었습니다. 월리스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고스란히 소설의 주인공에게 투영시켜 1880년 ‘벤허’라는 제목으로 출판합니다. 이 소설이 1959년 영화화돼 많은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특히 불신자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월리스는 성경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의 사랑과 구원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체험이 담긴 소설과 영화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그들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러 나온 힘, 이것이 바로 체험신앙의 능력입니다.

나만의 체험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영적 체험을 가지고 계십니까?

체험이라고 하면 다들 겁부터 먹습니다. “체험은 무슨 체험, 난 그런 거 없어. 남들은 죽을 병 걸렸다가 살아난 체험도 하고, 완전히 망했다가 다시 일어난 체험도 있다지만 난 그런 체험 없다구. 그냥 교회 나가고 그냥 믿는 거지 뭐.” 맞습니다. 우리에게 거창한 체험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간증할만한 거리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도 누구에게 간증할만한 큰 체험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목사님들 보면 죽을 병 걸렸다가 기도하면서 나았다는 분도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분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런 체험은 없는지 몰라도 나름대로 참 귀한 체험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주님의 은혜를 뜨겁게 느낀 일, 말씀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진 일, 어렵고 힘들 때,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주님이 까마귀를 보내주셔서 도움을 주고 힘을 주신 일들 등등 비록 초자연적이고 남에게 자랑할만한 대단한 체험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저만의 체험, 제 나름대로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체험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주님을 만난 체험을 했습니다. 영적으로 주님을 만났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고3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영적으로 십자가를 체험했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데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하는 찬송가 136장 가사처럼 저도 영적으로 그 십자가의 현장에 서있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보았습니다. 나를 위해 찔리신 그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보고 나를 위해 흘리신 그 보혈의 피를 느껴보았습니다. 이만큼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영적인 체험이 어찌 죽을 병 나은 체험보다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이런 체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저 자신의 성격을 보면 감성적인 면보다 이성적인 면이 더 발달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빌립이나 오늘 본 도마처럼 이성적이고 차분하고 때론 냉정하며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편입니다. 자칫하면 차가운 이성주의자나 체험주의자가 될 위험이 많은 성격이지요. 그런데 이런 저의 성격이 이 작은 체험들을 통해 뜨거움을 경험하고 변화된 것입니다. 목회에 열정을 가지고 뜨거운 은혜와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목회자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체험이 꼭 있어야 합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연약합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인은 정말 불행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신앙은 체험입니다. 도마처럼 체험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좁은 경험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체험이 없는 신앙 또한 정말 위험합니다. 건전한 신앙적 체험을 통해 우리 신앙이 탄탄해지고 뜨겁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고 자기 체험만 믿다가 체험적 신앙인으로 변화된 도마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도마는 성령강림 이후에 페르시아를 지나 인도까지 가서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인도가 힌두교 국가라고만 알고 있지만 인도 남부지방에 가면 소수의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이 세운 교회가 있습니다. 다 도마의 후예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마는 열두 제자 중 가장 멀리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정말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종해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된 사람이 도마입니다. 그는 마지막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허리에 창을 찔리신 것처럼 자신도 창에 찔려 순교한 것입니다. 내 삶으로 예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고, 또 내 죽음으로 주님의 고난을 그대로 체험한 사람이 도마입니다. 오늘날 인도 마드라스의 케나이 공항 근처에 도마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자그마한 언덕도 있고 그를 기념한 성 도마 교회도 세워져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체험적 신앙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 머나먼 인도까지 복음 들고 가서 순교까지 당할 수 있는 능력은 그의 특별한 체험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머리로만 믿지 말고 체험적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다른 어떤 체험보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 예수님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보는 체험, 나도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서 보혈의 피를 느껴보는 경험을 하기 바랍니다. 이런 체험을 하면 어떤 근심이나 두려움도 사라지고, 어떤 제약이나 장애물도 걱정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체험신앙의 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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