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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창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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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피영민 목사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4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지 수일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서론)

미국에 유명한 잡지 가운데 하나가 ‘Leadership Journal’이라는 잡지입니다. 이 잡지에 John Cheever라는 분이 Article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부요를 누리고, 교육을 받고, 문화적인 혜택을 받고 살고 있지만 중년층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실망(disappointment)’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실망’과의 전쟁입니다. 사업을 크게 해서 성공을 해보려고 하지만 실패할 경우 실망하게 됩니다. 자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래보지만 형통치 못한 경우 또 실망합니다. 또 사람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 사람이 배반하게 되면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실망은 하나님께 대한 실망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시지 않으셨든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했는데 도리어 고통과 환난이 오게 될 때 하나님께 대해 실망하게 됩니다. 신앙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 하나님에 대한 실망, 이 두 가지는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싸워야할 난제입니다. 고로 사람이 성숙하고 성장해 간다고 하는 것은 이런 실망들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와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0장의 요셉은 이 두 가지 실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하는 꿈을 꾸었지만 요셉의 삶은 점점 더 악화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가정 총무가 되었을 때는 약간의 소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만 아무 허물도 없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다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노예로 시작해서 감옥 생활까지의 기간이 무려 13년이나 됩니다. 우리는 한 달만 발에 족쇄를 채우고 쇠사슬로 묶여 지내기만해도 실망, 낙망, 좌절 등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무려 13년이나 이렇게 지냈으니 얼마나 실망감이 가득했겠습니까! ‘하나님 그 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해와 달과 열 한 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렇게 요셉은 하나님께 물으며 하나님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실망 중에 희망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감옥의 동료 중에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 좋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머리 위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그 가지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려서 자기가 그 포도송이로 즙을 짜서 바로 왕에게 드렸다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이 무슨 꿈인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그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포도나무 세 가지는 삼일을 의미하는데 삼일 만에 당신이 전직을 회복할 것이라.” 결국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꿈 해석대로 복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꿈 해석을 해 주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14절, 15절을 보겠습니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억울한 누명을 벗겨 달라는 인사 청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했습니까? 잊었습니까? 23절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얼마나 실망스럽습니까? 요셉은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과 사람에 대한 실망, 이중의 실망으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잊혀진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이중의 실망감을 극복해 나갑니다.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 가운데 실망으로 인해 낙심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어떻게 실망감을 극복해 나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리라고 확신했다.

첫째, 요셉은 실망하는 상황 중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 자기를 떠나시거나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실망하는 상황에서도 확신했던 것입니다.

영국에 유명한 작가로 기독교를 변증하는 책을 많이 저술한 C. S. 루이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1940년에 ‘The Problem of Pain(고통의 문제)’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행복에 즐거워하면 하나님은 우리 영혼에 속삭이신다. 우리가 양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은 우리 영혼에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에 처하면 하나님은 우리 영혼에 큰 소리로 외치신다(God whispers in our pleasure, God speaks in our conscience, but God shouts in our Pain).”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에 처하게 되면 우리의 가까이에서 더 큰 소리로 말씀해 주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실망하고 고통 중에 있을 때 요셉을 떠나시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요셉과 함께 하셨고, 환경과 상관없이 요셉의 삶을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요셉의 영혼에 큰 소리로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셉아! 내가 너를 택하였노라. 요셉아!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요셉아! 내가 너를 잠시 고통에 처하게 하지만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노라. 내가 너에게 소망을 주고 축복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요셉의 영혼에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부르짖음이 요셉이라고 하는 한 사람에게 국한된 특권입니까? 아닙니다. 구약 시대이든, 신약 시대이든,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동일한 약속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그것은 구약의 말씀이 아닙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만 신약에도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수많은 구절 중에서 신, 구약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을 떠나시거나 버리시는 것보다도 천지가 개벽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운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약속이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약속을 받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이 약속을 받는 자녀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함께 계신다고 하시면서 요셉에게 실망, 절망,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요셉의 경우에는 요셉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을 성숙한 그릇으로 만들어 애굽의 총리로 일하기에 합당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연단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절망을 이겨내야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망의 세월을 지나봐야 성숙하게 되는 법입니다.

2. 요셉은 절망스러운 상황을 남을 돕는 기회로 사용했다.

둘째, 요셉은 절망스러운 상황을 도리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기회로 사용했습니다. 요셉이 있는 감옥에 하루는 지위 높은 두 사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고, 다른 사람은 떡 굽는 관원장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왕에게 드릴 술을 먼저 맛봅니다. 독이 들어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또한 왕에게 정치적인 상담을 하는 상담자의 역할도 합니다. 왕이 고민이 있을 때 가까이 있는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주 묻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술 맡은 관원장은 왕의 생명을 보존하고 왕의 정치적인 자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왔는데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하여금 이 두 사람을 수종들게 합니다. 성경에 “요셉이 그들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감옥에도 선후배가 있습니다. 요셉은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늦게 들어온 이들을 섬겼습니다.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남을 도운 것입니다. 하루는 그들의 얼굴빛을 살피다가 근심어린 표정을 발견하고 이유를 묻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꿈 얘기를 하고 요셉은 꿈 해석을 해 주게 됩니다. 최고의 도움을 베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을지라도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찬양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송명희 자매가 쓴 ‘나’라는 시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어려서 뇌성마비를 앓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송명희 시인이 2004년까지 28권의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입니다. 또 200여 편의 찬송시를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송명희 시인은 기독교 최우수 저작상도 받았고, 복음성가 작사 대상도 수상했습니다. 이렇듯 온전한 신체를 지닌 10명의 사람들보다도 송명희 시인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은 없는가? 내가 도울 일은 없는가?’를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을 섬기고 도우면 두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연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남을 돕는 것만큼 슬픔을 빠르게 극복하는 방법도 없습니다. 남을 돕다보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요셉이 감옥의 한 귀퉁이에 쭈그고 앉아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탄식하며 밥도 안 먹고 지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냥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 있는 동료를 돕고 섬기는 가운데 자기 연민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남을 도우면 그것이 도리어 구원의 길이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는 일이 당시에는 큰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사사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요셉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꿈을 해석하는 자가 바로의 궁중에서 꿈을 해석하게 되고, 그 꿈 해석으로 말미암아 애굽의 총리가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남을 돕다보면 그것이 나에게 축복이 되고, 구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이 그냥 남을 돕는 것으로만 끝날 때도 있습니다. 도와줬는데 아무런 이득이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떡 맡은 관원장의 꿈도 해석해 주었습니다. 떡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해석대로 삼일 만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셉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떡 맡은 관원장의 이야기가 왜 성경에 등장하는지 생각해 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떡 맡은 관원장은 ‘조연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맡은 관원장의 꿈만 해석했다면 요셉의 꿈 해석은 우연히 맞춘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떡 맡은 관원장의 꿈까지도 정확히 맞췄기 때문에 술 맡은 관원장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요셉이란 자의 꿈 해석은 정확하다!’ 하나님은 조연 배우까지 등장시키셔서 요셉의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남을 돕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요셉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다.

셋째 요셉은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오로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전직을 회복했음에도 요셉을 잊었을 때 요셉은 그러려니 했습니다. 2년의 세월 동안이나 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술 맡은 관원장에게 소망을 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 중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소망을 두는 위치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소재(所在)를 중요한 것입니다. 소망을 인간에게 두면 결국은 절망이 옵니다. 소망을 물질에 두면 결국은 망망이 옵니다. 소망을 어떤 지위나 인기에 두게 되면 결국 그것이 사라질 때 소망도 함께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은 영원히 그 소망을 잃지 않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로마서 8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실망, 절망, 좌절을 가져다 좋은 재료로 삼으셔서 우리 인생을 위대한 하나의 선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흰 실도 필요하고 검은 실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결론)

우리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오는 실망, 절망, 낙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망이 올 때 요셉처럼 꿈(Dream)을 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처럼 소망의 꿈, 희망의 꿈, 비전 있는 꿈을 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에게 소망 두지 마시고, 물질에 소망 두지 마시고, 오로지 하나님께 소망(Hope)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때가 되면 나를 건져내시고 내게 기쁨과 평화와 축복을 주실 것이라 믿고 기다리시기(Wait)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고 작은 일이라도 남을 돕고 섬기면서(Serve) 사십시오. Dream, Hope, Wait, Serve, 이 네 가지가 실망을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소망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꿈을 꾸시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고, 인내하며 기다리시고,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아간다면 실망이 큰 기쁨으로, 큰 축복으로 바뀌는 것을 볼 날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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