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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삶의 지혜 (약 4: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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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삶의 지혜
오늘을 사는 삶의 문제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이 물질의 문제입니다.
요즘 뉴스와 신문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는 문제가 사실은 경제문제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도 경제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돈을 바라볼때 우리는 2가지의 극단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우선은 돈을 최고로 쫓는 물질주의적인 인생관의 관점이 있습니다.
대체로 세상사람들은 현재의삶에서 최고로 추구하는 것이 돈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라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물질주의적인 관점이라고 합니다.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돈을 모으는 것에 목적을 두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다음은 금욕주의적인 관점에서 돈을 보는 관점입니다.

돈을 악의 요소로 봅니다. 거룩한 사람은 돈을 만져서는 안되고 돈을 말하거나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도 안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런 분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돈을 가져서는 안되고 목사는 돈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돈을 전부라고 보는 물질주의적인 관점도 문제가 있고 돈을 현실적으로 더럽다고 부정하는 관점도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돈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돈은 그 사람에 따라서 선하게 사용할수도 있고 악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 물질적인 어려움들을 겪을 수 있습니다.만족하지 않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대하여 갖는 태도도 왜곡된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는 물질과 관련하여 2종류의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돈이 부족하여 현실적으로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아마 우리들 중에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하실 것입니다. 돈에 대한 부족함과 불편함으로 현재를 사는 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꿈은 미래에 많은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습니다.혹시 우리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나의 현재의 불편과 어려움이 오직 물질때문이라고 보고 미래의 꿈을 물질에 거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현재 물질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분에서 주님이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는 물질과 관련하여 넉넉하신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부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자의 기준을 어느정도로 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10억 정도의 재산이 있다면 부자라고 합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과연 가난한 자라면 부자라고 한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 가난한 자가 오늘을 사는 지혜의 삶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라고 합니다.
여기 야고보기자가 대면한 초대교회 공동체의 지체 중에서 현실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있엇습니다. 그들은 현실에서 물질로 인해서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현실적으로 물질이 없어서 겪는 고통과 불편함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생각하기를 나에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겠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여기 가난한 사람들의 태도에 무엇이 문제입니까?
지금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내가 인정하는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물질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 만족한 현실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힘든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해야 할 것이 지금 가난한 현실입니다.

내가 비록 가난한지만 물질로 어려움을 겪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내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도 하나님이 주신 현실입니다. 만약에 고통의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장사하여서 많은 돈을 버는 어떤 나의 상황만 내가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 만족을 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지금 물질이 없고 고통스러워서 내가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 미래의 계획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할 것은 지금 내가 낮아지는 경험없이 지금 내가 낮아지는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함이 없이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의 요셉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요셉이 형들 때문에 외국에 종으로 팔려가서 그가 겪는 삶은 너무 고통스서운 현실이었습니다. 요셉이 졸지에 남의 집에 종살이를 할때 그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남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우등생으로 남의 집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지만 그 속에서도 우등생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럽지만 현실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결국은 미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가 가난하고 고통스럽지만 여기에서 먼저 승리하여야 합니다.
가장 많이 낮아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낮아진 경험의 사람들이 결국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섬길 수있습니다. 그런데 낮아지는 경험을 하찮게 여기고 자존심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안에 미래에 대한 욕심만으로 가득차있게 되면 현실에서 분리된 살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속에서 믿음 생활을 하면서 봉사를 권하면 “나는 나중에 돈많이 벌어서 크게 봉사하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나중에 돈많이 벌면 내가 교회 피아노도 사고 교회 건축할때도 내가 멋잇게 한몫하겠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 봉사는 멋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봉사는 이름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조건 많은 돈을 벌 내일일만 기대하고 매달리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4절에 ‘내일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내니라’
여기 너희 즉 우리 인생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인생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우선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합니다.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내일을 계획하고 내일을 준비하지만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은 안개와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중 아무도 언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일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라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에서 내가 인생에 책임을 감당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오늘에 책임을 지면서 살 수 있습니까?

바로 마음을 잡는 일입니다. 먼저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무엇으로 마음을 잡습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나의 욕망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면 자꾸 나의 마음이 떠버립니다. 그러면 풍선처럼 마음을빼앗겨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흔들그리면서 불안정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 가난하고 어렵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현실에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난한 지금 여기의 삶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 선을 위해서 행동하셔야 합니다.
17절 “사람이 선을 행할 줄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합니다.
비록 가난하고 어렵지만 선을 행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행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나의 야망으로만 오늘을 사는 사람은 현실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뜻을 자꾸 연기할 위험이 많습니다. 현실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작은 것들을 무시할 위험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더 많이 배워서 하겠습니다. 내가 더 많이 벌어서 하겠습니다. 내가 더 건강해지만 하겠습니다. 내가 더 많이 여유로와지면 하겠습니다.그러나 그때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선이라면 하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가난으로 인해서 마음까지 초라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의 가난으로 인해서 믿음에 초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욱 자신을 지금 여기에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먼저 드리시기를 바랍니다.비록 가난하고 고통가운데 있지만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2. 부자가 오늘을 사는 지혜의 삶입니다.

부자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자들의 삶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은 부자에 대하여 경고하십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다 같은 부자가 아닙니다. 두종류의 부자가 있습니다.
우선 정당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정당하게 부자가 될 수 있는가? 한국적 상황에서 정당하게 부자가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여기 정당하다는 것은 내가 열심히 일을 하고 그 댓가로 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내가 정당한 이윤을 남기고 장사해서 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렇게 돈을 모았다면 깨끗한 부자 청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이런 부자가 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전도5:18-19에 보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그 일 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번 부자도 있습니다.

남의 것을 도둑질해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리대금업이나 장사의 폭리나 매점매석을 해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모았자면 부정한 부자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 사회는 이런 부정한 부자가 많은 현실을 부정할 수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솔직하게 이런 류의 부자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부자를 향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여 정당하게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복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문제는 정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경고하는 부자는 바로 두 번째에 해당이 됩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5장 1절에서는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설명할 수 없는 부정한 부자들을 장차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부정한 부자이든 정당한 부자이든 하나님께서 이땅에서 물질을 가진 부자들의 삶을 향한 지금 여기에서 현재에 원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부자들이 여기에서 행해야 할 선 하나님의 뜻은 바로 물질을 바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2절-3절에 보십시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라고 합니다.여기 재물이 썩었고 옷이 좀먹고 금과 은이 녹이 슬었다라고 하는 것은 이것들을 사용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입니다. 사용하지 않은 재물은 썩습니다. 가령 쌀을 곡간에 쌓아놓고 먹지 않아 보십시오. 썩어버립니다. 옷을 사서 입지 않고 농장안에 넣어 보관하여 두어보십시오. 좀이 쓸어서 입지 못합니다. 보석이 보석으로 사용하지 않고 깊은 장롱에 넣어두어 보십시오. 빛을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부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용하지 않는 죄입니다. 선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를 위하여 물질을 쌓아둔 것이 죄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바르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을 바로 잘 사용만 한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이 되겠습니까?

성경에서는 돈을 버는 것보다는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강조합니다.
어떻게 누구를 위해 돈을 쓸 것인가?  성경에서는 돈을 3가지 특면에서 사용할 것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돈을 벌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십일조는 내가 번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여서 감사헌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각종 선교헌금이나 장학헌금이나 목적헌금들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헌금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이렇게 드려진 헌금들은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사용이됩니다. 한번은 우리집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교회에서 헌금을 다 하면 목사가 다 갖는다”면서 자기 반에 어떤 친구가 막 비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드리는 헌금 중의 일부가 목회자 생활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밖에도 매우 의미있는 일에 모든 헌금들이 귀하게 사용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드려지는 헌금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면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우고 섬기는데 귀하게 사용이 됩니다
다음에는 우리의 물질을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 고아나 과부나 약한 자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할수 있는 대로 후하게 사용하라고 합니다. 딤전6:18에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구제를 하고 베풀고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말씀합니다.

셋째는 자기와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자기와 가족이 즐겁게 먹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거주할 집도 살 수 있고 또 타고 다닐 자동차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잘 교육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적당한 오락과 안위를 위해서 돈이 사용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3가지 용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3번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3번째가 너무 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쓰지 않고 오직 자기가족과 자기자신만을 위해서 열심히 쓰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아니 오히려 남에게 줄것이 있는데로 주지 않고 자기의 부를 챙기려고 하는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도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십시오.“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됩니까? 가능한 남에게 줄돈은 주지 않고 받을 것은 악착같이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기업들을 보십시오. 결재할때에는 어음으로 합니다. 3개월 6개월 어음으로 끊어줍니다. 그리고 돈은 쌓아놓고 높은 이자를 받습니다. 품삯도 가능한 늦게 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줍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는 것이 일반적인 이땅의 부자들의 삶의 법칙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돈을 사용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할 수 있는대로 줄 것은 먼저 주어야 합니다. 받은 것은 천천히 받더라도 남에게 줄 것이 있느면 먼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돈의 사용을 해서는 안됩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기업과 노동자와의 관계가 나쁜 나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자본가들이 우리나라에서 공장을 세우기가 싫다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노동자들이 워낙 강하게 권리를 주장하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전에 우리나라 기업주들이 악독하게 기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봉급은 주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습니다. ‘기업은 죽어도 기업가는 죽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뒤로 돈을 다 빼돌리고 회사는 부도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인들중에도 이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잘 되는 기업이나 사업채들을 보십시오. 기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투명하게 돈의 흐름을 알고 함께 하나되는 기업들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기업하시는 분들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철저하게 봉사정신을 갖고 해야 합니다. 내가 이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것도 목적이지만 우선 목적은 내가 이 이 일을 해서 사회에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매사를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밝히면서 하면 결국 인심을 다 잃고 맙니다.
이 시대에 부자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5절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돈으로 지금 여기에서 부자들이 사치하고 연락하고 부정축재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부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이 시대에 자기 주신 물질로 남을 위해서 살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주신 물질을 바로 베풀수 있는 아름다운 삶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 부자나 더 많이 알고 있는 지식인들이나 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을 향한 더큰 도덕적인 의무가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더 많이 섬기고 베풀고 나누어주는 삶입니다. 내가 부자가 되기까지 내가 지식인이 되기까지 나를 축복하여 주신 하나님과 이웃 사람들에게 그것이 바로 보답하는 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지금 현재의 삶에서 정말 조심할 것이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사치하는 것 연락하는 것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돈을 내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청지기정신으로 책임있게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 세대에 마음을 두지 말고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에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주신 물질을 잘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늘의 백성입니다.
신령한 주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기준을 하늘에 두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땅에서 잠깐 살고 있는 동안에 그 기준을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지금 가난하더라도 믿음의 가난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자일지라도 땅의 기준으로만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오직 하늘의 소망을 갖고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삶을 살아가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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