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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월동 준비되셨습니까? (딤후 4:9-1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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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어제는 하루 종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날씨는 조금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이 맘 때가 되면 우리가 매년 하는 준비가 있죠? 월동준비입니다. 아마 월동준비의 으뜸은 뭐니뭐니해도 겨울 김장을 담그는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 김장 다 준비하셨습니까? 아직 안 하신 분들도 계신다구요? 너무 늦었어요. 빨리 김장 서두르셔야 되겠어요.

  예전의 월동준비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제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거실에 놓을 연탄난로를 꺼내어서 설치하고, 기름으로 잘 닦던 아버님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또 어머니께서는 한 여름내 깊은 장롱 속에 넣어두었던 가족들의 두꺼운 옷을 꺼내셔서 손질을 하고 또 옷을 입을 사람들에게 챙겨 나누어주시던 기억도 납니다. 또 겨울에 찬바람을 막기 위해서 비닐을 창문에 치던 그런 기억도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월동준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폴 트루니에라고 하는 스위스의 학자는 인생을 사계절로 구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봄은 씨를 뿌리고 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절기이죠. 그래서 이 봄이라는 것을 인생으로 보면 소년시절입니다. 10대에서 20대가 인생의 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여름은 성장과 성숙의 계절입니다. 인생으로 보면 청장년시절입니다. 30대에서 40대, 이제 한참하고 자라가고 성숙되어야할 시기가 바로 여름입니다. 또 가을은 한 해의 농사를 수확하는 결실기입니다. 우리 인생으로 보면 장년시절입니다. 50대에서 60대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겨울은 노년기요 결산기입니다. 일생을 정리해야할 때입니다. 우리 인생으로 보면 70대에서 80대가 해당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마지막 여행을 위해서 서서히 짐을 꾸려야할 그런 시기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아름다운 종말과 결산을 위해서 준비해야 될 시기, 바로 이것이 겨울이요 노년기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우리의 앞서간 어른들은 인생의 겨울이라고 말하는 노후에 대한 준비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열심히 낳아서 그 자식을 잘 키워서 결혼시키면 그 자녀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요. 자식들의 입장에서도, 이제는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려는 그런 의식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분들은 스스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자녀에게 노후를 의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의식자체가 가족 의존적이 아니고 독립적입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조금 크면 따로 나가 살고, 또 대학 등록금은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가 충당하지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자기의 노후를 위해 준비를 하는데, 자녀를 의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노후를 위해서 보험을 들기도 하고 또 자기가 들어갈 양로원 비용을 미리 저축하는 분들도 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장례식 비용까지 준비해 놓는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사회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후준비는 일반적으로 40대부터 해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분들은 30대 후반부터 내 노후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준비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부모들은 자녀에게 나눠줄 유산과 그리고 내 노년을 위한 재물을 따로 엄격히 구분해 놓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자녀들이 사업하다가 돈이 필요하다고 와서 손을 벌리면 냉큼냉큼 주고선‘내 노후는 너희들이 책임지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큰아들 집에 내일은 둘째 아들 집에 그 다음 날은 딸집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결국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제가 몇 일전 인터넷 뉴스에서 보니까 그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아들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며느리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시어머니에게 이런 소리를 했어요. “아이, 어머니 목욕 좀 자주 하세요. 어머니 몸에서 냄새가 나요 냄새!󰡓 그 말을 들은 그 어머니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야, 며느리가 나한테 냄새난다고 싫다고 그러는데 나 따로 나가 살게 집 하나 얻어다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경제적인 준비가 없었던지 거절해 버렸습니다. "어머니, 저는 그런 걸 해드릴 수 없습니다" 라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비관하다가 그만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찌 보면 참 불행하지요. 그 어머니가 좀 더 일찍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더라면 적어도 아들에게 의탁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노후준비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가 노후를 준비해야 되는 것만큼 장차 우리에게 임할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지혜에 대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오늘 편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어서 내게 속히 오라’는 내용입니다. 왜 어서 오라고, 왜 겨울 전에 오라고 부탁했을까요?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절에 보면“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라고 말합니다. 이제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 당시 상당히 연로한 나이였습니다. 육체적으로 기력이 쇠하여졌을 거예요. 더구나 지금까지 일생동안 바울을 협력하고 동역하던 많은 이들이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하나 둘 바울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라고 말씀합니다. 데마라는 충성스러운 조력자가 있었는데 그는 이제 바울과 함께 있어봐야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는 그만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레스게와 디도는 아마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복음을 위해서 먼 길을 떠났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던 친구들이 동역자들의 곁을 떠났을 때 바울은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의사 누가만 지금 바울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바울은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다" 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내가 변명한다" 는 것은 내가 재판 받을 때에 나를 후원해 주고 내 증인이 되어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고 그랬습니다. 바울은 지금 사랑하는 친구들이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는 외로움과 고독 가운데 고통 당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백전노장인 믿음의 용사 바울도 죽음 앞에서, 스산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외로움을 몹시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디모데를 한 번 더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이길 겉옷과 마음의 양식인 성경을 가져오라고 디모데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인생의 겨울이 찾아 왔다면 오늘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겨울은 언젠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를 준비하는 그런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인생에 만약 어느 날 겨울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될까요? 우리의 월동준비는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의 인생 길에 동행할 분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겨울이 오면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한 70, 80세 되신 분들이 가끔 친한 분들끼리 만나면 “아니, 그 친구 소식 몰랐어? 아, 그 친구가 2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잖아" "아, 그 친구는 1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잖아" 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많은 분들이 부부로서 행복하게 살다가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 그 고독감, 그 외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가족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장례식을 마치고 빈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먼저 떠난 가족의 자리가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슴 한 구석에 휑하니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세 드신 어른들이 주위에 친구들이 많은 것은 참 축복입니다. 그래도 아침 먹고 만날 친구가 있고, 점심 먹고 만날 친구 있고, 또 저녁 먹고 교제할 친구들이 있다면 참 행복한 거예요. 그러나 주위에 친구가 없다면 한 사람 한 사람 떠나갈 때 우리는 참으로 고통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 분들 사이에서도 보면 만나면 아웅다웅 서로 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싸울 대상이 있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셔야 됩니다. 한 사람만 먼저 세상을 떠나면 그 다음에는 싸울 사람도 없어요. 참 이것이 인생의 비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고독한 인생길에 우리와 같이 동행할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로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실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길에 동행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에게도 엄청난 고독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바울은 모두가 내 곁을 다 떠나갔지만 마지막에 주께서 나와 함께 계셔 주시고 내 곁을 지켜 주신다고, 그리고 나를 사자의 입에서, 그리고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바울이 천국에 들어가는 그 길까지도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찌 보면 인생의 종말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죽음의 터널을 지날 때에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큰 경품을 내걸고 이런 퀴즈를 냈답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영국의 런던까지 가는데 가장 빨리 가는 길이 무엇일까요?" 퀴즈에 대한 상품이 워낙 커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경품대회에 참가했답니다. 그 경품대회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답을 이야기했습니다. "예, 역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 빠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닙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시간을 빼면 그것도 긴 시간입니다. 오히려 고속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닙니다. 승용차를 타고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답은 다 틀렸습니다. 정답을 맞춘 사람이 어떤 답을 했는지 아세요? "가장 빨리 가는 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라는 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인생길에 함께 해주신다면 우리의 인생길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인생길에 동행자로 모셔 들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인생의 겨울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될까요?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 줄 외투, 겉옷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기 나이 드신 어른들이 많이 계십니다마는 나이가 들면 추위를 더 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좀 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좀 더 보온이 되는 옷을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분들은 어른들을 모시면서 ‘어휴, 덥다. 왜 이리 덥냐’면서 불을 다 끄고 낮춥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따뜻하게 모셔야 합니다.

  몇 일전에 제 아버님이 춘천에 있는 형님 댁에 계시다가 저희 집에 다니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양복을 벗으시는데 보니까 내복을 껴입으셨어요. “아, 아버님 내복 입으셨네요?" 했더니 "내복? 그럼, 내복 두 벌씩 입었다!"고 하십니다. 아, 내복을 두 벌이나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내복을 두 벌씩 입으십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한 벌을 입으니까 입은 것 같지 않어" 하시는 겁니다. 또 하시는 말씀이 "아, 옛날 내복은 굉장히 두꺼웠는데 요즘 내복은 얇아서 못쓰겠어". 아버님은 이제 두 벌을 입으셔야 입은 것 같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 아버님이 연세가 드셨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버님의 연세가 올해 팔순이시거든요. 그러니 추위를 많이 타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야 제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구요.

  여러분,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연로한 나이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겨울바람은 굉장히 매서웠을 거예요. 불기도 없는 차가운 지하 감방에서 아침저녁을 보낼 때,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디모데에게 부탁합니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두고 온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도 외투가 필요했습니다. 겉옷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도 마지막 심판의 바람을 막아줄 의의 겉옷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외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의 선악과를 따먹고 그리고 죄가 그 속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끼지요. 벌거벗은 것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숲 속에 들어가 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십니다. 가죽옷을 입고서야 그들의 부끄러운 수치를 가릴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옷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지어진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겉옷을 우리의 몸에 걸칠 때 우리는 죄와 더러움을 감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 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고"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걸어가는 마지막 인생의 심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취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인생의 추운 겨울을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연세가 드시면 마음에 공허감을 느낍니다. 허전함을 느끼죠. 그래서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그런 빈 공간이 우리의 심령가운데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젊어서 많은 책을 지으셨고, 많은 철학서적도 읽고 소장하고 계신 문학교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습니다. 어떤 제자가 그 스승님을 찾아갔더니 그 많던 책들을 다 버려 버리고 방안에 성경책 하나만 딱 놓여져 있었답니다. 그래서 제자가 “아니 선생님, 그 많던 책을 다 어떻게 치우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교수가 하는 말이 "내가 젊을 때는 철학서적도 읽고 문학서적도 읽고 책도 많이 썼지.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말이야, 이제는 그런 게 별 필요가 없어. 난 요즘 신문도 안 본다네. 내가 뭐 늙은 것이 정치를 할건가? 나는 이제 성경만 본다네. 내가 가야할 마지막 길을 생각하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내게 필요하고 유익한 말씀이라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성경말씀만 보고 계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심령의 공허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뭐라고 부탁합니까? “가죽 종이에 쓴 책을 특별히 가져오라󰡓고 말씀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그 책은 바로 성경책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의 공허를 채워주고 또한 우리의 인생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이사야 40장 8절에 보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아주 공부를 많이 한 대학교수가 한 번은 시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큰 강을 건너는데 아주 나이 많은 뱃사공이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할아버지는 여기서 태어나서 평생을 여기서 사셨겠네요?" "그렇습니다" "이 동네에는 학교도 없는데 그럼 초등학교도 못 다니셨겠네요?" "어이구, 초등학교가 뭡니까? 저는 글씨도 모르는 까막눈입니다" 그러자 대학교수가 "아이구, 그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사세요? 신문도 못 보면서 무슨 재미로 사세요? 저는요, 최고 학부를 나왔구요 유학도 갔다 왔고 박사학위가 세 개씩 됩니다". 이러면서 자기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뱃사공 할아버지에 대해서 우월감과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강을 지나가다가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배가 기우뚱거렸습니다. 대학교수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헤엄을 못 쳤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결국 그 소용돌이 속에서 배가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했을까요? "여보시오, 당신이 가진 그 많은 지식들, 박사학위, 그것이 뭐가 필요 있소? 자기 생명 하나 구하지 못하는 것을". 그리고 할아버지는 여유 있게 헤엄을 쳐서 그 강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랑하는 많은 것들이 정말 우리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영원한 구원의 길로,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영원한 안식의 처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준비된 집이 있으십니까?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그랬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처소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 나라에 가면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집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 23편은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한 사람이 일생을 순례자로써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그의 목자가 되어주시고 그를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기도 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함께 지납니다. 그 마지막 고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멘. 이것이 바로 시편 23편의 결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사도바울은 주님이 자신을 천국으로 구원하시고 인도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야할 집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영원을 보낼 안식의 처소가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런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겨울에 가장 고통당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영세민들,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은 분들, 그리고 쉴 곳이 없는 노숙자들, 이런 분들의 겨울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내 영원한 생애를 보낼 처소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시골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땅따먹기를 하고 놀아요. 묵주를 가지고 쳐서 금을 긋고 땅뺏기를 합니다. 조그만 땅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데 저녁노을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 엄마가 나와서 “철수야, 밥 먹자. 이제 그만 놀고 집에 들어가서 손 씻고 밥 먹자󰡓철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인사합니다. "야. 우리 아침 다시 만나자. 내일 만나 또 놀자"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학교 운동장 쓸쓸한 벤치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이 와서 "넌 왜 집에 안가니? 왜 여기 있니?"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네, 저는요 갈 곳이 없어요. 저는 고아예요"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고아여서 갈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처럼 비극적인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인생의 겨울을 위해서 영원한 안식의 처소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내게 오라고,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오라고 말씀합니다. 왜  겨울 전에 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필이면 그 때 말입니다. 혹 디모데가 늦게 오면 바울이 이미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집행이 되어서 세상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를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디모데가 건너야 될 지중해는 10월부터 4월까지가 겨울입니다. 겨울의 계절이 되면 태풍이 불어오고 파도가 높이 일어서 배를 항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는 항해할 수 있는 겨울 전에 어서 속히 내게 오라" 고 디모데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어서 속히 내게 오라!" 고 말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인생의 마지막 심판이 오기 전에 내게 어서 오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니까. "사람에게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길, 이제 주님과 함께 걸어가시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팔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고 싶지 않으십니까? 찬송가 458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님은 오늘 그 큰 팔을 벌리시고 여러분을 향해서 “어서 내게 오라! 인생의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내 품으로 돌아오라!” 고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품으로 나오셔서 주님의 품속에 안기시고 주님을 우리의 심령 속에 영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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