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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사 6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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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성진 목사

  1. 하나님의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

부산 -대구 간 고속철도 2단계 공사는 7년이나 걸리는 아주 큰 공사입니다. 고속철도 노선이 천성산(千聖山)을 터널로 관통(貫通)하여 지나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경단체와 불교계에서는 생태계(生態系)를 파괴하게 될 것이라고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을 내어서 작년 3월부터 한 6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재개(再開)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계의 단식농성으로 지난 8월부터 다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공사중단 가처분신청건이 고법(高法)에서 기각결정이 되면서 공사가 다시 시작된 지 1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제가 우연히 아침에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가처분신청이 기각된 다음날 환경단체에 있는 분이 나와서 왜 천성산 터널을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말은 이렇습니다.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면 터널 때문에 물줄기가 끊어져서 천성산 꼭대기에 있는 습지(濕地)가 말라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습지에 살고 있는 도롱뇽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도롱뇽은 도마뱀과 비슷한데 13~14㎝ 정도의 양서류(兩棲類)입니다. 지질공학학회나 토목학회나 환경부 전문가들은 터널에서 산꼭대기까지의 직선거리가 300m 이상 되기 때문에 터널이 습지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환경단체에서는 영향을 주게 되고 습지가 마르게 되고, 그러면 습지에 살고 있는 도롱뇽은 반드시 죽게 된다고 그렇게 지금까지 투쟁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법원에서 기각결정이 났지만 그것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방송을 들으면서 늪지에 살고 있는 도롱뇽의 생명을 위하여 환경단체는 이렇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중들은 단식농성을 하고, 청와대까지 가서 절충을 하고, 1년의 공기(工期)가 늦어지면 2조 원의 차질이 생긴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환경단체는 불과 몇 년 살다가 죽는 도롱뇽의 생명을 위해서 저렇게 애를 쓰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서, 우리나라만 해도 하루에 수백 명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데 ‘너는 무얼 하고 있느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제 가슴에 확 와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는 환경단체들이 도롱뇽을 살리려는 저런 열정을 가지고 영혼들을 살리고 있느냐? 단식하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저처럼 애를 쓰고 있느냐?’ 하는 음성이 너무 충격적으로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요나는 자기가 심지도 않았고, 거름 주지도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던 박넝쿨 하나가 죽어서 자기에게 그늘이 되지 않았을 때에 차라리 나를 죽여주옵소서. 왜 박넝쿨이 이렇게 죽게 만드십니까? 하고 하나님 앞에 항의를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심지도 않고 키우지도 아니한 박넝쿨 하나가 죽음으로 그렇게 마음이 아프냐? 이 니느웨 성에는 좌우를 알지 못하는 십이만 명의 사람과 무수한 짐승들이 있는데 이 성이 멸망당하는 것을 내가 어찌 볼 수 있겠느냐? 내가 그것을 원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요나에게 다그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집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죽어도 마음이 아픕니다. 귀하게 여기던 짐승 하나가 죽어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그 영혼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이 지옥 가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들의 영혼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 아파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아까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십니다. 이사야서 62장 1절에 보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타 오를 때까지 내가 잠잠하지 않겠다, 내가 조용하지 않겠다, 내가 쉬지 않겠다,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이렇게 애쓰고 힘쓰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영혼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아십니까? 영혼이 구원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마 배속에서는 다리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손 없어도 괜찮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는 눈 없어도 괜찮고요, 입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 이 땅에 태어나면 그 사람이 이 땅에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는 예수님 안 믿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 믿어도 사업 잘 하고, 예수님 안 믿어도 시집 잘 가고, 예수님 안 믿어도 장가 잘 가고, 예수님 안 믿어도 아기 잘 낳고, 예수님 안 믿어도 학교 잘 가고, 예수님 안 믿어도 자식 잘 키웁니다.
이 땅에서는 영혼이 구원받지 못해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영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지고,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영혼이 구원되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무로 돌아갑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 자식이 그런 처지에 있다고 하면 부모로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떡하든지 그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시고, 지불할 수 있는 모든 대가를 다 지불해서라도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혼만 구원받는다고 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사람보다도 더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 자신의 영혼구원과 다른 사람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힘쓸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명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해방해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돌아오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적 사건인 동시에 오늘 이 시대에 구원받기 위해서 돌아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우리가 맞이해야 될 것인가 하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성문으로 나가라, 나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참 좋은 성경과 좋은 찬송가들이 많습니다. 찬송가도 보면 그 찬송이 어떻게 작사 작곡되었는지 그 배경도 설명되어 있어서 그것을 보면서 찬송을 부르면 훨씬 더 은혜스럽게 찬송할 수 있습니다.
성경도 어려운 단어라든지, 어려운 구절들을 옆이나 아래에 잘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그런 성경들을 가진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고는 될지언정 100% 맞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해석일 뿐입니다.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제가 가진 성경에도 10절에 있는 성문을 ‘바벨론 성문’이라고 해석해 놓았습니다. 저희 집에도 여러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성경들이 있는데 서너 가지를 다 보니까 다 ‘바벨론 성문’이라고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제가 가진 10권 이상의 이사야 주석(註釋)을 참고해 보니까 거기도 다 ‘바벨론 성문’이라고 주석을 해 놓았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 성문은 바벨론 성문이 아닙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는가 하면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다가 아, 바벨론 성문인데 왜 저 목사가 자꾸 예루살렘 성문이라고 하는가? 그렇게 신경쓰다보면 오늘 설교가 아무 것도 안 들립니다.
이 성은 예루살렘 성입니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성문으로 나가서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사람들이 잘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라, 대로(大路)를 수축(修築)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해서 기(旗)를 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이 해석이 맞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바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아, 성 바깥으로 나가서 돌아오는 내 백성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라>고 아주 바르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표준새번역에도 <백성이 돌아 올 길을 만들어라>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에도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 성이 바벨론 성이라면 <백성이 돌아 갈 길을 만들라>고 했을 것인데 <백성이 돌아 올 길, 올 길을 닦으라>고 한 것을 보면 예루살렘 성에 있는 사람이 나가서 그 길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아 성 바깥으로 나가서 돌아오는 내 백성을 위해서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죽음과 사탄과 죄의 사슬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먼저 믿어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도성(都城)인 예루살렘, 하나님의 교회로 나아오는 사람들이 잘 올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3. 자기 백성만 구원하시는 하나님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을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받을 사람들을 선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죗값을 지불해 구원해 놓았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이름의 뜻을 잘 설명을 합니다. 예수,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는데 그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언지 아십니까? 그것 모르는 분들도 여기 많이 있을 거예요. <예수님>이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다 구원하시려고 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온 인류를 다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만 구원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 구원하시려고 하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전부 지옥에 데려가서 한 시간만 집어넣어서 지옥의 불구덩이의 고통을 당하게 하다가, 또 한 시간 쯤 천국을 보여주고 거기서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시켜준 다음에 “자, 어떻게 하겠느냐? 믿어서 천국 가겠느냐, 안 믿어서 지옥 가겠느냐?” 그렇게 물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믿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면 다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는 온 인류를 다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분>이십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서 피 흘려 돌아가시므로 자기 백성만을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못난 우리를 이것도 저것도 보지 아니하시고 그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생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근거를 좀 더 찾아볼까요? 11절의 말씀을 보면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런데  표준새번역에는 아주 쉽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성경을 보면서 한번 대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아라, 주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딸 시온이 누굽니까?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백성들 바로, 우리에게 일러주라는 말씀입니다. 뭐라고 일러주라고 했습니까?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세우고 오신다.> 그렇게 우리에게 일러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신데 그 하나님이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시고,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세우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그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도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까 3천 명, 5천 명으로 늘어났지, 인간의 노력을 가지고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도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에 구원이 사람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하면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쥐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것을 감사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놓으신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께서 데리고 오실 때에 잘 데리고 오시도록 우리가 길을 준비하는 것, 나가서 맞이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요, 이것이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 - 가라!

오늘 본문 10절로 다시 돌아 가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이 뭡니까?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가라, 나가라>. 돌아오는 하나님의 백성을 영접하기 위해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가야 됩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만민에게 나가야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셨습니다. 누가 가야만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한 주간 동안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그 명령에 의지해서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향해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지 않는 가족에게로, 우리의 이웃에게로, 친구에게로, 직장 동료에게로 나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 - 길을 만들라!

나가서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돌아 올 백성을 위하여서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修築)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해서 기(旗)를 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이 다섯 가지 명령의 공통점이 뭡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오기 쉽게 길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잘 돌아오게끔 모든 장애적인 요소, 돌 같은 것을 다 제하고, 비뚤어진 것은 바르게 하고, 높은 곳은 깍아 내리고, 낮은 곳은 돋우어서 대로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게 나오는데 제일 장애물이 뭐겠습니까?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교회로 나오지 아니하고, 왜 나왔던 사람이 발걸음을 다시 돌리는지 아십니까? 장애물 때문입니다.
그 장애물이 뭔지 아십니까? 먼저 믿은 사람들입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의 이기적인 삶, 본(本) 되지 아니하는 삶, 빛과 소금되지 아니하는 삶이 다른 사람의 장애물이 됩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들이 돌이 되어서 다른 사람이 오다가 걸려 넘어지고, 왔던 사람이 거기 걸려서 다시 나가는 일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도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느니라> 우리가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데 그 사람이 오면 우리보다 더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끔 실족시킨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것입니다. 말 함부로 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본 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일들 때문에 교회를 떠나가게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우리만큼 이렇게 자주 만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상처도 덜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만납니다. 말 때문에 상처받기 쉽고, 또 잘 아니까 그만큼 실망할 것도 많습니다.
전도해 보면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안 믿겠다’고 하면서 안 나오는 가정이 여러 가정 있습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교역자들은 다 알고 있어요. 전도해 보면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 볼 것입니다. ‘누구누구 때문에 나는 교회 못 나가겠다, 그래서 안 나간다’ 그런 사람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나오기 쉽도록 돌을 제하고 길을 넓게 하고, 높은 곳 깎아내고, 낮은 곳 돋우어서 대로를 만들어서 그들이 교회에 편안하게 나올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좀 희생해야 합니다. 내가 미워하지 아니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좀 손해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바보 노릇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텃세를 하면 왔다가도 나간다고요. 

루마니아의 산 순교자인 리처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가 감옥에 있을 때에 늘 자기를 예수 믿는다고 고문하고 괴롭히던 한 악질 형사가 감옥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범브란트 목사님이 계시는 그 감방은 예수님 믿는다는 신앙 때문에 들어 온 사람들이 있는 감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감방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감방에 그 형사가 들어오니까 범브란트 목사님이 놀라서 “아니, 당신이 어떻게 예수 믿는다고 잡혀 온 사람들이 있는 감방에 올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나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며칠 전에 열두 살 먹은 한 소녀가 꽃다발 하나를 가지고 와서 “당신 부인께 드리세요”하면서 주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머님의 생신 때마다 저는 꽃다발을 준비해서 선물로 어머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렸는데 오늘이 바로 어머님의 생신일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다 감옥에 계셔서 드릴 수가 없어서 당신께 드립니다.”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나에게 주느냐고 했더니 “어머님이 언제나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를 잡아 간 원수인 당신을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그러니까 이 악질 형사가 가슴이 뭉클해서 그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는 그것 때문에 이 감방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움의 돌을 치워버리면,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사람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워하기 때문에 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우리 가족들과, 이웃들과, 형제들이 참 많이 있을 것입니다.
더 사랑하고, 더 관심가지고, 더 용서하면, 그런 돌을 제하여 버리면 나올 수 있는 사람 참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제 우리 미움의 돌을 치워 버립시다. 사랑의 도로를 닦읍시다. 그럴 때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와서 새 생명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부산의 장기려(長起呂) 박사하면 모르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성자(聖者)와 같이 인술(仁術)을 펴셨던 신앙적인 장로님이신데 그는 늘 이런 교훈을 했습니다. “주 안에서 바보 되고 주 위하여 손해 보자.” 우리가 좀 더 바보 되고 손해 보아야 대로(大路)가 닦여집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똑똑하고 너무 이해타산에 밝고 손해 보지 아니하고 영악(獰惡)하면 그 사람이 바로 길에 <돌>입니다. 다른 사람이 오다가 거기 넘어져서 돌아 가 버립니다. 내가 좀 바보 되고 좀 손해 보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쉽게 쉽게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예수님 때문에 바보 되고 손해 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제도 어느 부부 집사님께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내가 좀 손해보고 내가 좀 포기했더니 그 분이 교회 나와서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집사님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다른 것 전혀 요구하지 아니하고 교회 나와서 등록하고 예수 믿으면 합의해 주겠다. 그래서 교회 잘 나와서 지금 얼마나 충성스럽게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근거도 없는 말 때문에 사람을 실족케 하고, 너무 영악하게 이해타산을 따져서 교회를 떠나가게 하고, 본 되지 않는 삶 때문에 남을 실족케하는 돌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 주안에서 바보 되고 주 위해서 좀 손해 보라고 하는 장기려 박사의 교훈을 좀 실천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 앞에 돌아 왔습니까?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주안에서 바보 되고 주 위하여 손해 보자.” 이제 주안에서 좀 바보 되고 주 위하여서 좀 손해 보는 이런 삶을 살아 보십시다. 그러면 정말 대로가 닦여지게 될 것입니다.
이 교훈에 영향을 받은 한 분이 차를 타고 갑니다. 가다가 정지선에 섰는데 뒤에서 다른 차가 와서 쾅 박았습니다. 그러니까 앞 차에 타고 있던 이 분이 나가서 보았습니다. 보니까 범퍼가 찌그러졌는데 그렇게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요구하면 얼마의 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주안에서 바보 되고 주 위해서 손해 보자는 심정으로 “네. 됐습니다.”하고 그냥 가려고 하는데 뒷 차의 사람이 내려서 “남의 차를 이렇게 찌그러뜨렸으면 물려주고 가야지 어떻게 그냥 가느냐?”고 자기가 할 말을 오히려 그 사람이 합니다.
보통 때 같으면 “뭐가 어째?”하고 싸움이 날판인데 아, 이것까지도 내가 주안에서 바보 되고 주 위해서 손해 보자 하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차를 타고 갔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주안에서 바보 되고 주 위해서 손해 보는 이런 삶을 살아 보십시다. 그럴 때에 대로가 닦여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쉽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분이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길을 좀 닦으십시다. 이런 돌을 좀 제거하십시다. 그것은 우리가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먼저 선물하고 섬기고 먼저 인사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내가 좀 바보 되고 내가 좀 손해 보는 삶을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오는 대로가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돌이 제거되게 될 것입니다. 길이 닦여지는 역사가, 길이 수축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수많은 연혼들이 돌아와서 새 생명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주일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이 한 주간 동안에 적어도 여섯 번은 찾아가든지, 전화를 하든지, 가서 선물을 하든지 그들에게 가서 이야기 해 보십시다. 내가 좀 손해보고, 내가 좀 희생하고, 내가 좀 바보 되고, 내가 먼저 손잡아 주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하면 오늘도 길이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예루살렘에 살게 하신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먼저 하나님의 자녀 만들어 주신 뜻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아, 먼저 믿은 나의 백성들아, 성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는 내 백성들을 위해서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닦고 돌을 제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성인 이 교회를 잘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길을 닦아야 겠습니다.
또한 나가서 환영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금년 한 해, 나를 통해서 한 생명이라도 주님 앞에 돌아와서 함께 구주 성탄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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