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 임마누엘 (마 1:23)

  • 잡초 잡초
  • 535
  • 0

첨부 1


- 설교 : 임경택 목사

요즘은 브랜드 전쟁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브랜드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의 브랜드를 비슷하게 도용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삼성’ ‘현대’ ‘LG’ 이런 기업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해 온 것입니까? ‘NIKE’라는 상표 이름 하나의 값어치가 70억 달러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COCA COLA’라는 상표 이름은 ‘NIKE’의 10배 정도가 되는 700억 달러나 된다고 하니, 이름의 힘은 대단 한 것입니다.
그 이름은 그 사람이나 기업의 자체입니다. 그 만큼 애쓰고 노력한 그 자체인 것입니다. 아무나 잘 되는 기업이나 사람의 이름을 본 딴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에 따라 그들의 별명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슈바이쩌는 “밀림의 성자”라고 부릅니다. 에디슨은 “발명 왕”이라고 부릅니다. 카네기는 “강철 왕”이라고 부릅니다.

1. 최고의 이름 임마누엘

이름 중에 최고의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 무슨 뜻입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닉네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메시아’이십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이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둘 다 “구원할 자”란 의미를 갖고 습니다.

또 예수에 대한 이름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자기 백성인 우리가 죄에 빠져 살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약해지고 사단에게 끌려다니며 무서워 떨고, 죄의 종노릇하고 . . . 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반복되는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헛것이었습니다. 자꾸만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심하였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혈서를 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면도칼로 손가락 끝을 조금 베어 냈습니다. 피가 흘렀습니다. 그는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혈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책상위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작심 삼일이었습니다. 삼 일만에 다시 그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는 혈서 앞에서 울었습니다. 혈서를 쥐어짜면서 몸부림치면서 울었습니다.
그는 죄의 문제는 결심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님이 베드로 말을 들이시고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 날 밤 예수님이 로마 병정들에게 잡히셨습니다. 끌려 가셔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울어도 못하네 눈물많이 흘려도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회개하면 됩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두고 결심하였습니다. 죽을 지언정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심으로 안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어린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때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서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개하였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뻔뻔스러워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반드시 끝장이 있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회개하면 죄가 이기기 않고 회개가 결론이 됩니다. 그러면 회개가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죄의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 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 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죄를 다 용서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십니다. 용서 받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임마누’는 ‘우리와 함께 하시다’는 의미이고 ‘엘’은 ‘하나님’이란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마1:22-23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여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 그 이름은 능력의 이름

‘빙점’의 주인공 미우라 아야코 간증에 보면 어느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에는 불교와 같은 염불이 없습니까? 뭐 나무아미타불 같은 것 말입니다. 있습니다. 불교의 나무아미타불과는 달라도 우리는 임마누엘 아멘이 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뜻이지요. 나는 이 기도를 통하여 늘 평안을 얻습니다. 내가 병으로 오랜 요양생활 가운데 힘들고 외로울 때면 ‘임마누엘’ ‘아멘’을 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하고 힘이 솟아 납니다. 나는 ‘임마누엘’ ‘아멘’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면 나쁜 생각도 사라지고 기쁨이생기고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그 이름에 큰 힘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 끝 부분에 붙이는 수식어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위대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죄를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마귀가 물러가는 권세 있는 이름입니다.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인가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느니라”

요1:12 “영접한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10:9ㅡ1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가운데서 살리신것을 네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또 막16:17ㅡ18 “믿는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가 내 이름으로 귀신를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름에는 병마를 물리치는 능력도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존재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꾀임에 빠녀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등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죄로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을 예수님의 임마누엘 사건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도록 그 자기 자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지옥’이 될 것입니다. 원수와 함께 있는 것도 보통 곤욕이 아닐 것입니다. 지루합니다.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친구와 함께 있다면 어떨까요? 즐겁습니다. 기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부부가 함께 사는데 지겨운 사람이 있다면 큰 문제일 것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그 이름이 증거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복입니다. 에녹은 300년,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 . 모세 . . .
임마누엘은 인간 회복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복입니다. 믿음의 눈을 뜨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인하시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증거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랬기에 앗수르에, 바벨론에 망한 것 같았지만, 나라를 잃고 흩어져서 디아스포라로 살았지만 결국 잃은 나라를 되찾게 해 주시고, 모든 강대국들은 다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의 강원도만한 이스라엘은 강대국이 아니지만 아직도 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오늘의 이스라엘에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믿는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다윗은 “산이 요동하고 바다가 요동할지라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전 734년에 아하스가 유다의왕이었을 때, 아람의 “르신”과 북쪽 이스라엘의 “베가”가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아하스가 왕이 되기 전 아버지 “요담”때에 일어났던 전쟁에서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을 아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은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이웃나라인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겠으니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라, 적들은 부지깽이나 다름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실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징조도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유다 왕국과 함께 한다는 징조를 보여주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불가능이 없으신 분, 모든 것이 가능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녀를 통해서도 아이를 낳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이십니까?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워 떨며 속수무책으로 있는 아하스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처녀의 몸에서 아이를 낳게 하시는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성탄절은 이런 위로를 증거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붙드십니다. 그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나의 생애에 임마누엘 하셔서 간섭하시고 계시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처참하고, 철저한 상황 가운데 있다 할찌라도 처녀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한 염려할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회의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떤 문제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도전하고 정복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