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절] 주께 드릴 가장 큰 선물 (막 10:35-45)

  • 잡초 잡초
  • 349
  • 0

첨부 1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그 생일이 될 친구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가 이 땅 가운데 태어나게 된 것을 기뻐하고, 그 기쁨을 선물로 표현하려면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된다. 정말로 가치 있는 사람을 향한 선물이라면 많은 고민 끝에 사게 된다. 이 선물을 과연 상대방이 좋아하느냐 하는 것으로 말이다.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3000마리 학을 접은 나는 이정도의 학을 받는 자매라면 모두 뒤로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학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그 학을 전해 줄때 그 학 앞에서의 여자친구의 반응은 ‘시간이 많이 남았구나, 공부 좀 하지’였다. 그 순간 그 학을 만들기 위한 나의 수고가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선물은 그 선물을 받을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 운치는 없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선물을 받을 당사자를 데리고 가서 선물을 사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코 실수가 없다.

  성탄절은 그리스도께서 아기로 이 땅에 성육신 하신 것을 축하하는 날이다. 우리는 성탄절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향해서 무언가를 선물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분이 가장 기뻐할만한 선물이 무언지 물어봐야 한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그분을 향한 선물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우리가 그분이 기뻐하실만한 선물을 생각하기 전에 그분께 직접 물어보자. 그분께서 말하는 그분이 가장 받고 싶어 하시는 선물이 무엇일까?

본론

1. 제자들이 생각한 그리스도 (35-4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서기관들과 대 제사장들에게 붙들리어 고난을 당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것에 대해서 3번 언급했다. 바로 오늘 본문 35절 앞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도 주께서 고초당하시고 죽고 부활할 것에 대한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머릿속에는 예루살렘에서 당할 일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그 3번에 걸친 고난과 십자가 예고를 들었음에도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으신다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오늘 본문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그것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인물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다음으로 예수님과 가까운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충분히 예수님을 보필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등극하시면 자신들이 높이 중용되리라는 것을 확고히 하고 싶었다. 예루살렘에 당도하기 전 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의 높은 위상에 대해서 정립해 놓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제자들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향해 “우리를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요청한다. 12제자 들 중에 자신들을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청탁이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너희가 너희의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의 고난의 잔과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라고 물어본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잔’은 스가랴 12:2절의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했던 ‘잔’이다. 세례 역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의 세례는 골로새서의 장사나 로마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세례’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둘을 향해서 ‘나로 인한 고난과 죽음을 너희가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한 잔과 세례를 다르게 이해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정권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잠시 겪는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것까지는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끝날 것이라고, 그렇게 살다가 순교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들은 결국에 잠시 고난 받은 것으로 인해서 나중에 높은 직책에서 떵떵거리며 살 것에 대해서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이러한 착각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당시의 제자들이 생각하건데 예수님은 세상 모든 이의 섬김을 받으러 오신 왕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운 메시아였고 로마와 유대의 잘못된 집권자들을 쓸어버릴 강력한 왕으로 등극을 해야 할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가장 힘들었을 때, 그런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 미래의 엄청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고초는 감당할만한 것이라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던 12명의 생각이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갈릴리 지나는 길에서, 그리고 오늘 예루살렘 올라가시는 길에서 제자들을 향해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이야기 했건만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 위에서 자기의 생각만을 강화시켜나갔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고 그분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어놓은 선 이상으로 넘어서는 주님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혹시 이 제자들처럼 못들체 하면서 실제로도 못 듣고 있지는 않는가? 제자들은 고난과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싫었다. 그래서 그 바로 뒤에 따라오는 부활의 메시지조차 듣지 못했다. 귀가 있었지만 결코 듣지 못한 것이 이 제자들의 상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들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좋은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복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지키신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혹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이 이것이기에 이것만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눈뜬 봉사로 진리를 볼 수 없으며 귀는 있지만 결코 진리를 들을 수 없는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노 하셨다. 성전에 환전상과 장사꾼들 앞에서 그분은 그 상을 엎고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치셨다. 오늘날 예배당 안에서 조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분노도 이정도 아닐까? 예수님은 저주 하셨다. 열매를 주어야 할 무화과나무에 잎만 무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음에 대해서 진노하셨다. 신앙생활을 몇 해째하고 있지만 내 삶에 예수님께 기꺼이 보여드릴 열매가 없다면 내가 그분의 저주의 대상이 되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약자들을 사랑하셨다. 하지만 바리새인이라고 불려지는 위선자들을 향해서 경멸의 욕을 하셨다. 오늘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삶이 완전히 다른 위선에 가득 찬 나를 보시며 그분의 욕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그분 자신이 자신을 향해 증거 하는 그것대로 그분을 믿어 드려라.

2. 예수님께서 말하는 그리스도 (42-45)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을 들을 제자들은 분노한다.(42) 그들은 분히 여겼고 그러한 그들의 마음은 그들을 얼굴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졌다. ‘분히 여기거늘’은 헬라어 ‘아가낙테오’이다. ‘슬픔에 빠지다. 분노하다. 몹시 괴로워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제자들은 세배대의 아들들의 선수에 분노했고 괴롭게 여겼고 슬픔에 빠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나머지 제자들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는 때 그들 모두는 누가 더 높은 곳에 앉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왔었고, 발 빠른 두 형제에게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수준은 다 똑같은 수준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나라에서 높은 자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이것이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3,43) 그리고 이러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역설인 이 사건이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을 들어 ‘내가 ~ 이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신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께서는 자기고 온 이유, 자기가 지금 이 땅에서 제자들과 함께 걷고 함께 숨쉬고 함께 수고해왔던 이유가 섬김과 대속이었음에 대해 밝히신 것이다.

  섬김 : 섬김은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이다. 44절은 누구에나 종이 될 것에 대해 말한다. “모든 사람의”라는 수식을 본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려고 이 땅에 오신 종의 종이다. 그분은 유력한 사람의 종이 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유력하나 무력하나 그들 모두의 종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섬김의 종이었다.

  우리는 매력적인 존재를 섬기는 것을 잘 할 수 있다. 나는 매력적인 내 아내를 섬기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 매력적인 존재는 섬기는 순간에도 기쁘다. 사랑하는 연인끼리는 서로를 섬긴다. 여인을 위해 겉옷을 벗어 줄때, 형제의 마음에는 뜨거운 기쁨이 생긴다. 사랑할만한 사람을 섬길 때 우리는 그럴 수 있다. 존경하는 이를 위해 봉사할 때 역시 우리는 즐겁게 그 일을 할 수 있다. 내게 대단히 존경하는 분이 찾아오신다고 해서 그분을 위해 집을 청소할 때 막 감격이 밀려온다. 몇 달 전에 청파동 성당에 추기경이 왔을 때, 성당 사람들이 다 한복을 입고 와서 추기경을 영접했다. 그분들 얼굴에는 힘듦이 없었다. 그들을 즐겁게 봉사했다. 매력적인 존재, 존경하는 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종이 되고 싶을만한 사람의 ‘종’이 될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분의 제자들을 향한 명령은 명확하다. “으뜸이 되고 싶으냐? 그럼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 종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의 종은 헬라어 ‘디아코네오’이다. 이 단어의 상징적인 뜻은 ‘선생으로)시중들다’이다. 의미가 무언가? 신분상 종이어서, 종의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어서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아닌데도, 종의 일을 꼭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종노릇을 하는 자, 섬기는 자를 향해 쓰는 단어라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신분상 종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스스로 자신으로 남을 섬기는 도구로서의 삶을 살기를 우리 주님은 원하신다. 왜 ? 바로 그분이 그 종의 종이시기 때문이시다. 이 세상에 가장 낮은 사람이란게 존재한다면 그는 예수님과 무척이나 친할 수 있다. 바로 그 사람 아래 그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오 도리어 섬기려 하고” 그리스도는 섬기려 오셨다.

  대속물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下) 대속물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에 쓰였던 제물이다. 구약시대의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의 가장 주가 되는 것은 어린양의 죽음이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한 사람은 양을 들고 제사장 앞에 찾아왔다. 그리고 제사장 앞에서 어린양 위에 손을 얻고 자기의 죄를 고백한다. 죄를 고백하며 그 죄가 다 죄 없는 어린양 위에 부어지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자신의 죄를 다 고백한 그 사람은 스스로 칼을 취해 어린양을 죽여 제사장에게 준다. 제사장은 그 죽은 어린 양의 피를 제단에 뿌리며 사죄를 선언한다. 그리고 그 제물을 하나님의 번제단 위에서 태운다. 어린 양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그 아무 죄 없는 양이 죽어서 태워지는 이유는 오직 인간의 죄 때문이다. 죄로 인해 죽어야 할 그 사람 대신 죄 없는 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그 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의 죄를 인해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죽으셔야 할 분으로 자신을 선정하신 것이다. 인자는 올 때부터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중단 없이 그 길을 걸어가셨다. 예수님께서 가졌던 정체성 바로 그것은 “우리 대신 우리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두 가지로 소개했다. 모든 사람,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낮은곳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했다. 거지왕과 왕거지는 다른 것이다. 거지왕은 거지 중에서 거지들을 다스리는 거지다. 하지만 왕거지는 거지중에서도 가장 거지같은 거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종만도 못한 종들 중에 가장 낮은 곳에서 종노릇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전 인류의 종이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대속물로 자기를 소개했다. 우리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며 하나님께서 죄인을 향해서 하시는 분노와 징계의 매를 대신 그분의 등으로 온몸으로 맞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물, 화목제물 이셨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환상만을 붙들었다. 예수님께서 수차례 자신이 누군지 말씀하셨음에도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분을 보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좋아하는 부분만 부각하여 볼 뿐일 수 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자기소개는 “나는 가장 비천한 종으로 또 가장 커다란 죄인으로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할 자”다 라고 소개하시고 계신다.

  “인자의 온 것은~” 그분은 처음부터 그것을 목표로 오셨다. 가난 아이로 차가웠던 어느날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실 때부터 그분은 철저하게 ‘죽임 당할 어린 양’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3. 예수님께서 받고 싶어 하시는 것(44)

  엄마 아빠는 우리를 향해 일등 하라고 하신다. 그분들은 공부건 체육활동이건 좋은 것이라면 모두 일등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도 그분의 제자들을 향해서 으뜸이 될 것을 요청하셨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44) 예수님의 숨은 의도는 너희가 바로 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가 될 것과 으뜸이 될 것에 대해서 요청하시는 것이다.

  진정한 으뜸, 진정한 왕,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은 바로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향해서 으뜸이 되고 자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방법마저 가르쳐 주셨다. 종이 아니면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 될 것에 대한 요청이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천성의 보좌에서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낮고 낮은 인간들 속에 아기로 오셔서 죄인 중에 죄인으로 조롱받으시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그리스도처럼 너희 그리스도를 주요 구세주로 고백하는 모두가 나를 본받아 섬기는 자가 될 것에 대한 요청이다.

  예수님의 받고 싶은 선물은 바로 ‘우리가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 성경을 펼쳐들지도 말씀을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교회의 건물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본다.

  우리 스스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왜곡되는지 안다. 탐욕스런 그리스도인을 본다. 이기심이 가득한 그리스도인, 부정직한 그리스도인, 표리부동한 그리스도인 .... 그리고 그들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는 왜곡되고 찢겨진다. 그렇다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보여진 그리스도의 모습은 어떠한가?

  신대원 입시 시험 전날, 그 입시의 중압감 때문에 체하고 스트레스로 인해서 떨고 있는 나를 향해서 아내는 “ 지금 오빠에게 믿음은 어디 있나요? ”라고 말했다. 시험지 한 장 앞에서 두려워 떠는 나에게 그리스도는 없었다. 내 모습 어디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담대히 고백하던 예수님은 없었다. 그게 나였다. 나로 인해 그리스도는 시험지 한 장 앞에 두려워 떠는 존재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땠는가? 또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결론

  성탄주일이다. 조금 있으면 우리는 성탄 축하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념행사를 갖는다. 그리고 예수님 생일 축하해요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그분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무엇인가? 멋진 칸타타가 아니다. 멋진 공연이 아니다. 환상적인 찬양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 으뜸 되고자 하는 거룩한 소망으로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들을 섬기는 사람이다. 섬기고 섬기다 더 이상 낮아질 곳이 없을만큼 섬김의 극을 달리는 사람, 그래서 그가 예수님인지, 예수님이 그인지 알아보지 못할만큼 예수님 닮은 사람을 예수님은 오늘도 보고 싶다.

  효창교회 청년부를 통해서 예수님 닮은 사람들이 배출되기를 소원한다. 수천수만의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사막 한 가운데서 믿음을 잃지 않고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는... 굶주린 배를 안고도 찬양할 수 있고, 순교의 순간에 기꺼이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안에서 배출되기를 소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