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 술에 취한 사람들 (행 2:1-13)

  • 잡초 잡초
  • 468
  • 0

첨부 1


- 설교 : 김성덕 목사

행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어떤 제자들을 만나
[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 고 하니
[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 고 대답합니다.
[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 고 물으니
[ 요한의 물세례만 받았다 ] 고 합니다.
그러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데
12사람쯤 되니라 고 합니다.
이렇게 예베소 교회에 성령 사건이 일어나니
바울을 통해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며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술과 우상에 점령당한 에베소 도시에
바울과 성령 받은 12명의 제자들 때문에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납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물세례 밖에 몰랐던 교인들이 성령 세례 받아
대구가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순절 성령 강림 역사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기 위해서
예수님이 승천 하신 후 제자들은 3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모였습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며 전혀 기도했습니다.
셋째는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맛디아를 선택했습니다.
저들은 한 곳에 모여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모인 곳이 진동을 하면서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예배가
마가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 강림을 대망하는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한 영적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1절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때를 오순절 날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날이 이를 때까지 제자들로 하여금
열흘 동안 한 곳에 모여 전혀 기도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럼 오순절 날이 어떤 날입니까?
왜? 하나님은 오순절 날을 택하셨습니까? <2>
구약시대에 오순절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행사였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내고 애굽에서 탈출하여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둘째는, 풍성한 수확으로 복 주신 것을 감사하여
밀 추수한 것의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였습니다.
말씀을 받고 첫 열매를 드리는 날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우리 자신들을 첫 열매로 드려진다면
예비하신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할 줄 믿습니다.

그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것이 오순절의 시작입니다.
사도행전인 누가는 오순절 성령 강림 역사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하면
1)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그러니 성령은 현상적으로 임한 것입니다.
겨울 밤 눈 오듯이 밤새 조용히 온 것이 아니라
먼저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도록 들렸습니다.
이것은 한 두 사람이 들었던 환청이 아니라
120명이 분명히 들었던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늘의 바람소리였습니다.
본래 성령이라는 말 『프뉴마』는 바람,숨길,영 이란 뜻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임함을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3:에 보면 유대관원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 왓을 때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사람이 어떻게 거듭 날 수 있읍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즉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낄 수 있듯이 성령의 임함은 느낄 수 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이니깐 강력한 성령의 역사 인것을 말합니다.
이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생기인 것입니다.
생기의 바람이 부는 곳에는 살아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령이 임함을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3>
그래서 성경은 바람 같은 성령, 불 같은 성령, 이슬 같은 성령 기름같은 성령, 비둘기 같은 성령이라는 표현은
성령이 임 할 때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바람은 하나님의 숨결소리요 하나님의 호흡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을 생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2:7절에 보면
[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 고 합니다.
그러니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기 이전에는 흙덩이에 불과했습니다.
즉 죽은 시체에 불과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시니 사람이 깨어났습니다. 살았습니다.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아직 영의 호흡이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호흡 생기가 오늘 말씀과 함께 불어넣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령 받아 하나님의 숨결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 나타난 두 번째 현상은 시각적인 것입니다.
2) 3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원문에는 불의 혀들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불이 타오를 때 보면 불이 하늘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같이 보입니다.
그러니 모인 사람들 위에 불붙은 현상같이 보인 것입니다.
출3: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을 때
불붙은 가시떨기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이 불은 바로 꺼지지 않는 거룩한 불입니다.
무억보다도 불은 먼저 태웁니다.
그래서 히12:28절 [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시니라 ]
마지막 날 세상의 모든 죄악을 소멸하시는 심판의 불이시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욕심을 불로 태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칼빈은 [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의 불은
먼저 제자들 가슴 속에 끈질기게 달라 붙어 있던
세속적 욕망을 불태워버렸다 ]
이 불은 또한 힘 즉 능력의 불입니다.
내 가슴에 이 불이 붙는다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 어떤 권력이나 억압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왕상18:에 엘리야 제단에 내린 불은
[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울 뿐만이 아니라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 850명을 기손 시내에 멸망하는] 능력의 불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란 이론이나 관념이나 교리가 아닙니다. <4>
참된 신앙은 체험을 동반합니다.
듣고 보고하는 체험을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불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이론이나 교리로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속에 생기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USA Today라고 하는 잡지가 하버드대학의 역사와 사회신학 교수인 하비콕스(Harvey Cox) 교수에 대하여 이렇게 평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 일반인들이 하버드 대학은 몰라도 하비 콕스는 알고 있다 ] 라고
평할 만큼 유명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30년 전에 아주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The Secular City"라고 하는 책입니다. 세속도시,
우리말로도 번역이 됐고,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감명을 준책입니다.
그 당시에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잘못된 신학이 있었습니다.
그 신학의 주제는 <죽음의 신학>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 현대 문명 앞에 하나님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대해서 하비 콕스는 말합니다.
비록 세속 도시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역설합니다.
이렇게 역설을 해서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웠는데,
30년 후 오늘에 와서는 또 다시 역설적인 글을 썼는데
"Fire from Heaven, <하늘로부터 오는 불길>이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이것은 오늘 21세기를 향한 많은 과학 문명으로 인해서
여가 문화로 인하여 교회가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그러나 하비 콕스는 말합니다.
[ 애당초 교회는 성령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건 사회학적이고, 정치학적이고, 무슨 세계 변화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
지금도 성령의 역사로 얼마든지 교회는 부흥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성령의 사건이 일어난다면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가 부흥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니 어떤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이제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니
귀에 성령의 바람 소리가 들리고 성령의 불이 머리 위에 보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다가 아니라
그 성령은 각사람의 몸을 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만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5>
우리의 지성 속에도 감성 속에도 의지 속에도 성령님이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내 몸 속에 내 삶 속에 내 머리 속에 내 사고 속에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내 몸 속에 임하니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4절 [ 저희 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말이 달라신 것입니다. 왜 말이 달라졌습니까?
저는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성령충만이란 무엇인가? 라는 답을
[ 성령 충만이란? 내 속에 성령의 구테타가 일어난 것이다 ] 공감합니다.
내 속에 성령의 쿠테타가 일어나니 이제 성령님이 시키는 데로 말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나타난 성령충만의 첫 번째 증거는
[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 는 것입니다.
행2:에 나타난 방언은
고전12: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인 방언하고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고전12:에 나오는 방언은
하나님만 알았듣는 영적인 은사인 방언이요
이 방언은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드시는 기도의 은사입니다.
방언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풍부하게 하며
무엇보다도 영적인 일에 확신을 갖게 합니다.
행2:에 나오는 방언은 당시 각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방언으로
성령충만 받은 사람들이 드디어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입을 여니
각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11절에 하나님의 큰 일 즉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아마 자기 자신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성령사건이 일어나면 자기 자신도 놀라는 것입니다.
혹 방언의 은사를 받으신 분 기억나십니까?
성령의 역사로 방언이 내 입에서 터져나올 때 얼마나 놀랐습니까?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나만 놀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5-7절에보면
그때 각국에서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큰 소리가 나매 각각 자기들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기더라 ] 고 합니다.
소동이란 말 그대로 혼란한 것을 말합니다. <6>
너무나 예상 밖의 일,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으니
도대체 이것이 뭔가 싶습니다. 그래서 놀랬던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나도 놀라고 너도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러한 충격 갈등 없이 살아간다는 것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당연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이런 체험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8절에 보면 각국 사람들이 난 곳 방언으로 들었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사는 나라의 말로 들었다는 것은
1) 인간의 교만과 불신앙의 상징이었던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회복됨을 말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문화의 갈등 언어의 갈등을 회복되게 합니다.
2)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동서남북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을 의미합니다.
9절 이하에 보면 각국 나라를 다 기록해 놓았는데
여기에는 이유가있습니다.

당시 세계관으로 보면 여기에 기록된 나라가
전세계 모든 민족과 언어와 나라를 대표한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바대인 메대인과 엘림인 메소보다미아는 카스피해 서쪽에서 온 사람들로
B.C.8-6세기경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면서
포로되었 갔던 유대인들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가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는
지금 오늘의 터키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입니다.
세 번째는 애굽 구레네 리비야 는 지금 북아프리카 국가들입니다.
네 번째는 지중해를 건너 온 로마로부터 온 유대인과
그리고 아마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레데 섬에서 멀리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그러니 당시 전세계를 말하는 지중해 유역의 국가들을 총 망라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란 한 개인이나 국가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세계를 다 포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하신 말씀
[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는 말씀이
이제 신호탄을 울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사건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전도하게 되고 선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은 교회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교회입니다. <7>
저는 말씀을 준비하다가 이상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이 선교사를 10가정 파송했을 때는
교인 수는 지금보다 반 밖에 안되었지마는
선교비도 풍성했고 또한 제 마음 속에
곧 런던에 뉴욕에 우리 내일 게스트 하우스를 세워서
선교중간 기지로 활용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 청년들 세계로 내어 보내야 되겠다 굉장히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동으로 이전 하면서 교회 건축하고 교육관 짓고 주차장 확보하다 보니
선교의 불도 사그라지는 것 같고 선교 후원도 전에 같지를 않습니다.
내일 가족 여러분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달라고 매달립시다.
다시 선교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도록 일어납시다.
그래야만이 내일교회가 희망이 있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게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
성령 받은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 라는 499장 찬송 가사같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설교자는 이렇게 비유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과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마치 계란의 유정란과 무정란과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정란이나 무정란이나 똑 같습니다.
그러나 암탉의 품 안에 들어가보념 알게 됩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하나는 병아리가 되어 나오고 하나는 썩어 버립니다.
생명이 있나 없나 문제지 생긴 모양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양 문제 가지고
성령 받은 너나 안 받은 나나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보면 압니다. 여기에는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각국에서 모여든 유대인들 저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 일어난 성령 사건을 무시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는고 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부인할 수도 없으면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 야 술 취했는 모양이다 ] <8>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해석입니까?
그런데 맞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꼭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겁이 없어집니다. 놀라운 괴력을 발휘합니다.
내일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포도주로 새술에 취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은 놀라운 일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로리 베리 존스>의 [ 인생 코치 예수] 란 책에 보면
당신이 예수를 내 인생의 코치로 삼는다면
물의 흐름을 거스려 수영하게 될 것입니다. 라는 대목의 글이 나옵니다.
그기에 보면 윌 마트 회장 <톰 코우린>의 성공적인 경영을 이한 수칙 가운데
물의 흐름을 거스려 수영하라는 수칙이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형마트는 대도시에서 성공을 했는데
윌 마트는 처음 농촌에서부터 출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농촌 사람들에게 더 값싸고 편리한 유통구조를 만들자.
당시 유통전문가들은 콧방귀를 뀌었지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부터 출발해
현재 세계3400개의 대형마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로리 베리 존스가 <톰 코우린>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내 인생 코치로 삼는다면
얼마든지 물의 흐름을 거스려 수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비결이 오늘 본문말씀의 성령사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술에 취한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고 보면
세상의 흐름에 얼마든지 거슬려 올라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성령 충만입니다.
지금 나는 얼마나 성령을 사모하며 얼마나 성령충만 받기 위해 힘씁니까?

마11:12절에 [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 ] 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을 갈급해 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화창한 토요일 오후, 조니라는 아들이 아빠와 함께 오랜만에 정원을 손질했습니다.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고, 정원수들도 다듬고 화단의 꽃에다 물도 주었습니다. 조니와 함께 잔디밭 여기저기에 자라난 잡초를 뽑고 있던 아빠는 <9>
잔디밭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조니에게 잔디밭 밖으로 굴려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조니는 있는 힘껏 돌을 굴리려고 했지만 커다란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참동안 낑낑대던 조니는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 아빠, 못하겠어요. 도저히 이 돌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러자 아빠는 조니에게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얘야,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면
너도 얼마든지 그 돌을 치울 수 있단다."
조니는 다시 기운을 내서 돌을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조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자
아빠는 조니의 등을 토닥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조니, 나는 네가 돌을 움직여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단다, 하지만 너는 한가지 사실을 잊고 있더구나. ]
조니의 두 눈이 호기심으로 동그래졌습니다.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 너는 네 옆에 내가 이렇게 서 있다는 것을 잊고 있더구나.
나는 언제든지 너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너는 나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더구나 ]
조니는 금방 눈을 반짝이며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빠와 힘을 합쳐 큰돌을 잔디밭 밖으로 밀쳐낸 조니는 기뻐하며 외쳤습니다.
" 아빠, 우리가 해냈어요"
그렇습니다. [ 나는 언제든지 너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너는 나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더구나 ]
어떻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에도 성령 사건이 일어나
우리가 해냈어요! 할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성경학자 알버트 반즈는 말합니다.
[ 지금도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부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그 날에는
교회사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며
오순절 날에 나타난 것 같은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