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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령한 복 (엡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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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예용범 목사

오래전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루한 여인이 악기점을 찾아와 먼지 묻고 헌 바이올린을 5달러에 사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악기점 주인은 동정하는 셈치고 그 악기를 사주었습니다.
그녀가 사라진 후 악기점 주인은 바이올린을 켜 보았습니다.
그러자 생긴 것 하고는 다르게 밝은 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먼지를 털고 보니 「안토니오 스크라디바리 1704」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바이올린은 그동안 행방불명되었던 바이올린의 명품이었던 것입니다.
악기점 주인은 얼른 나가서 그 여인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의 무지가 복덩어리를 몰라보고 가난하게 살게 한 것입니다.

마치 소설속의 얘기이지만, 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면 믿겠습니까?

1. 신령한 복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우리가 받는 복은 길에서 줍거나 복권방에서 긁는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임에도 불구하고 이 복에 대한 믿음의 무지로 인하여 땅의 복만 찾고 있으니 불행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신령한 복!
무엇인가요?

  시 133:3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2. 영생

이러한 영생은 만져지거나 볼 수는 없어도 실제적 삶속에서 누릴 수는 있습니다.
①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사
② 우리를 예정하사
③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④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되게 하셨으니

구체적으로

  로마서 5:3~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인생 중
누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자기 집처럼 들어갈 수 있습니까?

또한 어떻게 하나님 영광을 바랄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의 시각과 근원이 영생의 복에서 말미암습니다.

이러한 영생은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신령한 복인만큼 취소되지도 않고 반납될 수도 없고 어느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요 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흔히 영생하면 죽은 후 천국 삶을 생각하는데,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천국 삶의 생명을 여기서 이미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 각가지 재앙에서 망하지 않았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물이 침몰치 못했습니다.

애굽이라는 땅!
홍해라는 바다가 특별나서가 아니라
애굽에 살아도
홍해를 건너도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영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명심합시다.
가나안에 들어갔기에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애굽에서부터 영생을 가졌기에 위기와 환난을 뚫고 마침내 가난안을 정복한 것입니다.

  고후 4:7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주안의 성도라면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영생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많은 성도들이 왜 절망하나요?
이 복의 진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왜 많은 성도들이 죄악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진수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우리의 복은 돈이 대표했습니다.
배금주의 사상이 가득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아제는 「건강」이 대표 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웰빙 바람이 그 증거입니다.

나중에는 또 무엇으로 바뀔련지 모릅니다.
시대적 의식과 상황윤리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생들이 치우칩니다.
타락한 군상들의 모습입니다. 

  시 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그러나 영생을 소유한 자의 가치관은 다릅니다.

  시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현대의 여인사 중 대표적 두 여인이 나옵니다.
유치원 보모였지만, 일약 황태자비가 된 다이애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
◦ 성공한 여인이요
◦ 복 받은 여인이라고 추앙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었는데 남편의 사랑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도 사랑 찾아 길 떠났다가 영원한 길로 갔습니다.
이제는 그녀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불쌍한 마음은 갖습니다.

◦ 다른 여인은 테레사수녀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녀를 주목하지도 않았고, 복 있다 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딱 한 가지 예수 생명 가졌기에 평생에 나누어주는 부자로 살다가 천국 갔습니다.

누가 성공한 것입니까?
평생 보석과 귀족의 명예를 휘감고 살면서 만족을 찾았던 다이애나입니까?
평생 가난하지만 예수 사랑 실천한 테레사 수녀입니까?
두 여인은 복을 구하는 모든 인생들의 대표적 모습입니다.
진자 복은 쌓아두는 전시품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도 계속 파생되는 생명력입니다.

3. 문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① 신령한 복은 주안에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공기!
좋은 물은 청정지역에 가야 얻을 수 있듯이
신령한 복은,
주님 안에만 있습니다.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믿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경외함으로 머물 수 있습니다.

  시 1:2-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은혜에 들어가길 바랍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길 바랍니까?
주안에 머무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응답과 인도와 기적의 산 증인됩니다.
 
② 감취어 있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강원도 정선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폐광된 동굴을 보았을 때,
금을 캐기 위한 광부들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금값이 비싼 것은 흔하지 않기에,
큰 희생의 대가를 지불했기에,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 천국의 모든 벽은 각종 옥으로 되고 12문은 진주 문이요, 정금 길인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요?
힘들게 찾은 신앙의 결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현대는 수고를 싫어합니다.
대충, 대강, 적당히 등…….
요령주의가 판을 칩니다.
신앙도 영향을 받아 감춰진 것을 찾고 얻으려는 모습이 결여됩니다.

커피도 팔팔 끓는 물에 끓어야 커피 맛이 좋거늘.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적당주의로 대충 누리려 한다면 실패합니다.

◦ 응답 받기를 원한다면
  초대 교회처럼 - 간절히 빌었더라.

◦ 인도 받기를 원한다면
  안디옥교회처럼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 30, 60배의 풍성함을 누린다면
  마케도냐교회처럼 - 환난의 많은 시련 속에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함이 있어야 되고,

◦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여인은 바이올린을 몰라봐서
소장의 의미도
연주의 가치도
판매의 대금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한기 식사 때문에 명품을 포기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령한 복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지요?

신령한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 최대의 복입니다.
복중의 복이요
복 주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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