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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창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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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위대한 걸작입니다. 사람들이 미술, 건축 등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이 대단합니다. 도예가 들은 좋은 흙을 고릅니다. 그 흙을 짓이깁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듭니다. 거기 그림이나 글씨를 씁니다. 자기 이름을 씁니다. 그 흙덩어리를 불에 굽습니다. 그걸 끄집어내어 자기가 의도한 대로 되었을 때에 대단히 만족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마에서 끄집어내어 망치로 부숴버립니다. 실패작이란 뜻입니다. 요즈음 세계적인 화가들의 그림 한 폭이 몇 억이 된답니다. 아마 세월이 더 흘러가면 더 비싼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스스로 “좋다” “매우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작품 중 최대의 걸작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인간을 보시고 “매우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곧 실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또 사람을 그도 자기 동생을 죽이는 끔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땅 위에 사람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못된 생각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왜 내가 사람을 만들었던가?”하시며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지어낸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 쓸어 버리리라. 공연히 사람을 만들었구나. 사람 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조리 없애 버리리라. 공연히 만들었구나.”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사람은 늘 실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죄와 실수 투성이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쫒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모방을 좋아 합니다. 좋은 것을 본 받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본 받지 못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본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살전 5:21’에 “범사를 헤아려 좋은 것만 취하고 모든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습니다. 즉 좋은 것은 본 받지만 나쁜 것은 본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본 받으라는 것이 많습니다. (고전 11:1, 엡 5:1, 히 13:7, 약 5:10) 그러나 분명히 본 받지 말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왜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까?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입니다(마12:39, 막 8:38). 즉, 죄악의 세상입니다. 음란하고 더럽다고 하셨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 세상이 악한 것은 오직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다. 마치 악한 집이란 그 건물이 악해서가 아니고 그 집 속에 사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노아 시대가 그랬습니다. 술 취하고 방탕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과 생명을 죽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왜 사람을 만들었던가?” 하시며 한탄하셨습니다. 이 시대가 노아의 때와 비슷합니다. 아마 하나님이 보시면 틀림없이 낙제생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신 것입니다. 오늘 저도 ‘하나님은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받고자 합니다. 


조선 시대 정치가요 시인이었던 정철의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강호에 둥실 떠 노는 갈매기야 내가 우연히 뱉은 침이 잘 못해서 갈매기 등에 떨어졌구나. 백로야 침 뱉었다 해서 성내지 말라. 세상의 꼴이 하도 아니꼬워 침을 뱉은 것이지, 결코 너보고 침 뱉은 것은 아니로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대가 아니꼬운 세대입니다. 악하고 음란합니다. 이 세상이 향락의 도구입니다. 사치는 생활의 방편이 되었습니다. 사기가 처세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살인, 강도, 절도, 사기, 별의 별 무서운 사건이 신문 사회면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습니다. 지금 사람이 비뚤어졌습니다. 점심을 굶는 어린이에게 2,500원 짜리 도시락은 주는데 그것도 부정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무섭고 더러운 것은 잘 전염 됩니다. 노아 시대도 부패했습니다. 오죽하면 모든 인간과 동물을 죽여 버리시겠다고 하셨겠습니까? 꼴이 말이 아닙니다. 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빛이며 소금입니다. 어둠으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갈팡질팡 합니다. 저는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의 말은 “예수님 오실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추워서 사람이 얼어 죽습니다. 어떤 곳은 겨울비가 너무 많이 내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난번 인도네시아의 지진을 보세요. 이번에 163,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 가장 위험한 곳이 일본이랍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14번째로 지진 위험국가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모든 상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술 취하고 방탕한 시대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금방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호멧은 “세상의 가장 추한 것은 타락한 신자”라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것이 “이 세대를 본 받는 세속화 된 교회” 입니다.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자신하면 위험 합니다. 사탄의 힘은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 입니다. 이미 성경은 다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성공을 원하더라도 하나님은 실패케 하십니다. 나는 얻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성경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는 악합니다. 악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무지 본 받을 것이 없습니다. 1858년 6월30일 세계적인 줄타기 선수 찰스 브론딘을 보려고 미국 쪽 나이아가라 폭포에 사람이 구름 때처럼 모였습니다. 밑은 수백 미터 깊은 물입니다. 폭포의 상공에는 캐나다 방향으로 1,100피트 길이의 줄을 메었습니다. 그는 40파운드의 장대로 균형을 잡으면서 아무 보호 장치 없이 줄타기를 시작했습니다. 세찬 바람이 붑니다. 물보라가 휘날립니다. 관중은 가슴 조이며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사히 건넜습니다. 우뢰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밑을 보면 죽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수하면 죽습니다. 어쩌면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건너는 사람보다 더 긴장된 나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브론디가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 내 어깨 위에서 이 폭포를 건널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흥분된 순간입니다. 그때 어떤 청년이 “제가 당신의 어깨에 타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긴장된 순간입니다. 그 청년이 “헨리”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깨에 탔습니다. 그런데 거의 더 건널 무렵이었습니다. 한 주정뱅이가 그만 줄을 끊었습니다. 굵은 줄이 한 부분이 끊어졌습니다. 줄은 마구 흔들렸습니다. 그때 브론디는 헨리에게 “청년이 균현을 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저 내 어깨에 걸터앉아만 있으면 됩니다.” 그가 어떻게 왔는지 발을 땅에 닿는 순간 줄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둘 다 살았습니다. 우리는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타락합니다. 죽습니다. 불행해집니다. 비극의 출발은 세상을 기웃거리는 것입니다. 위험합니다. 노아시대도 타락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중대 결심을 하셨습니다. 다 죽이시겠다는 것입니다.

Ⅱ. 하나님은 한탄 하셨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후회를 많이 합니다. 시행착오를 많이 일으킵니다.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말도 실수합니다. 행동도 실수 투성이입니다. 수 없이 뉘우칩니다. 후회합니다. 이를 악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작심3일도 못갑니다. 이것이 저와 우리 전체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상한 갈대입니다. 꺼져가는 심지 인생입니다. 우리의 결심이 과연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이 세상 돌아가는 것 우리 잘 아시지요. 불안합니다. 모습이 노아 시대의 몇 십 배나 타락했습니다. 하나님 많이 참으십니다. 또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인간과 모든 생물을 몰살 시키시겠습니까? 저는 이태리 폼페이란 곳에 두어 번 가 보았습니다. 화산이 폭발해서 사람과 모든 것이 다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용암이 삼키고 말았습니다. 정말 비참했습니다. 타락한 폼페이를 이런 방법으로 심판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폼페이의 타락은 지금도 그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허둥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괜히 인간을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병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다만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인간은 굉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죄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죄가 차고 넘쳤습니다. 학살, 살인, 강도, 기근, 별의별 사건이 터지고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지구의 모양이 어떻지?”라고 물었습니다.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아버지가 엉망이래요”라고 대답했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항했습니다. 가장 초보적인 자세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음 속에서 추잡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 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실망하신 것입니다. 괜히 인간을 지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인간의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곳은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또 어떤 곳은 눈이 많이 와서 야단입니다. 하나님이 아마 인간에 대한 심판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전쟁, 기근, 전염병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우신 하나님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을 호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너무 실망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균형을 잃었습니다. 도덕적 기준도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구토를 느낄 정도 이상이었습니다.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인간을 왜 지었을까 하나님은 한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패한 쓰레기 같은 인간을 다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삶은 깨끗했습니다. 그와 그 가족들은 살리시기로 뜻을 정하셨습니다. 120년 후에 하늘에서 비가 밤낮으로 내리고 땅에서 물이 솟아 다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20년이라는 긴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만큼 하나님은 길이 참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문제아입니다. 영적인 문제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길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비틀거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넘어지면 하나님이 상처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왜 저런 사람을 택했을까? 내가 왜 저걸 목사 시켰을까? 하나님이 한탄하시면 어떡하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할 때 마다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아프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그 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 문화에 젖어 감각을 잃은 것입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부교역자들과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육은 철저히 예배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늘 최선입니다. 최고를 다 기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많은 후회를 합니다. 자기의 생각, 말, 행동이 마땅치 않을 때입니다. 또 자기의 기대나 다른 사람의 평가가 형편 없을 때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이 많습니다. 말을 적게 하라는 뜻에서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입에 재갈을 먹이라.” 그 뿐 아닙니다. 많이 반성하라는 뜻의 격언도 많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인간 이외의 만물에 대해 나무라시거나 실망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너무 실망하셨습니다. 아담, 가인 때문만 아닙니다.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별의별 죄가 많았습니다. 여러 번 경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120년 후에 인간과 생물을 몰살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 때문에 실망하시거나 후회하시지 않으시도록 살아 오늘도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1.30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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