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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성령 사건 (행 2: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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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난센스 퀴즈, 비오는 날 빗자루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뭐라고 할까요?
< 쓸데없는 사람 > 나는 하나님 앞에 쓸데 있는 사람인가 쓸데없는 사람인가?
하나님 앞에 쓸데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쓰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에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나도 성령 받으면 쓸데 있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결론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32절에 [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로다 ] 라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충만 받으면 하나님의 쓸데 있는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36절에
"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 라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전한 이 진리의 말씀이 불덩어리가 되어 말씀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가슴이 찔리고 어찌할꼬 하는 통회가 일어나고 그날 삼천 명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가 미워했고 욕했고 괴롭히며 급기야 죽였는데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첫 반응은 37절에 [ 마음에 찔려 ] 라는 반응입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는 말은
본래 [ 날카로운 것으로 후벼파다 ] [ 찔러 관통하다 ] 라는 의미로 예리한 칼로 베임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예리한 칼에 베여 보면 베인지 안 베인지 표가 안 납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피가 나고 살이 벌어지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찔린 사람들 겉으로는 표가 안 나지만 감추어진 마음이 드러납니다.
히4:12-13절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말씀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면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내어 놓습니다.
바로 성령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이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될 줄 믿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상한 심령인 것입니다.

왜 저들의 마음이 찔렸을까요?
1) 성령을 모독하고 거슬렸기 때문에 마음이 찔렸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왜 이 설교를 합니까? 성령의 역사를 저들이 비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비웃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외면하던 사람이 어느 날 말씀을 듣다가 성령이 역사하면 찔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사 회개를 합니다.

2) 그들의 마음이 찔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죽였지, 로마 군병들이 죽였지, 나는 그 자리에 없어서 라고 변명하던 그들이었는데
[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가 주가 되셨느니라 ] 하니 마음에 찔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예수 십자가의 죽음과 아무 상관없던 자가 어느 날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 앞에서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내 죄 때문이다 ] 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음에 찔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 사건은 십자가의 사건과 연관된 사건인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 사건은 먼저 십자가 사건을 동반한다는 것 필수과정입니다.

신학자 바르트는 본문의 설교를 하면서 어떤 몽유병 환자의 예를 들었습니다.
몽류병 환자가 밤중에 자기도 모르게 거리로 나가서 정신없이 걷다가 소지한 흉기로 사람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새벽잠을 잔 후 아침에 평상인과 같이 깨었습니다. 그때에 경관들이 들이닥쳐 그를 잡아 살인한 현장에 데려 갔습니다.
어김없는 증거를 통하여 사람을 죽인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발아래 대지는 흔들리며 눈앞이 캄캄하여 그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의 몽유병에서 깨어나 십자가 사건 현장에 서서 내가 주범인 것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반응은 [ 우리가 어찌할꼬? ]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이 어찌할꼬? 가 없는데 있습니다.
어찌할꼬 없는 은혜, 은사는 바로 성령운동의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어찌할꼬 없는 축복은 기복이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어찌할꼬? 가 무슨 말입니까?
1)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말입니다.
어딘가 믿는 데가 있는 사람은 어찌할꼬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돈 좀 있는 사람은 어찌할꼬 라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돈이 바닥나야 어찌할꼬 합니다.
좋은 직장, 배경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건강 있는데 뭘 하면 못 살아 하고 어찌할꼬 라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 건강 배경 등이 모두 바닥나야 어찌할꼬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굉장히 답답해하십니다.
어찌할꼬 고백이 나와야 하는데 그 입에서 고백이 안나오니깐 갖고 있는 것을 자꾸 뺏으시는 것입니다.

빅톨 위고의 작품들은 <레미 제라불 즉 쟌발장>과 같이 신앙적 교훈을 주는 작품들입니다.
그는 본래 문호로 그 이름을 날렸으나 개인 생활은 문란했습니다.
그의 심한 주색과 타락된 생활은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1841년 어느 여름 날
그의 사랑하던 딸 레오폴디느의 시체가 파리 세느 강에 떠올랐습니다.
딸은 아버지가 바른 생활로 돌아올 것을 간청하는 편지를 남기고 세느 강에 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위고는 "이 비극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심판이다." 라고 외치며 어찌할꼬? 하며 며칠을 울고 회개하였습니다.
딸의 희생은 아버지와 온 가정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위고는 정부 관리로 들어가 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후생사회국에서 일했습니다.
공무원으로서가 아니라 진짜로 몸을 바쳐 남을 도와 주는 자세로 일했으므로 그는 남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았으며 문교부 장관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국기인 3색기 파랑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강은 박애를 나타내는 제정의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그의 작품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극심한 방탕생활에서 문자 그대로 180도 전환하여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프랑스와 전세계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게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 어찌할꼬? 가 아니라 성령의 은혜 앞에 어찌할꼬 하고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말씀 가운데 어떤 말씀들은 설교를 듣거나 주석을 봐도 자신이 체험하기 전까지는 바로 깨닫지 못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어찌할꼬? 입니다.
왜? 그 입에서 어찌할꼬? 가 나옵니까?
눈앞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 때문입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은 내 앞에 밝은 빛으로 다가옵니다.
너무 너무 밝은 빛이 비취니 내 눈앞이 캄캄해 진 것입니다.
깜깜해져 깜깜해진 것이 아니라 밝은 빛 앞에 눈이 감겨져 버린 것입니다.
이런 것 있지요, 옛날에 속 내의를 벗어보면 이란 녀석이 갑짜기 밝은데 노출데니
숨는다고 하는 것이 궁둥이는 들고 머리만 쿡 쳐 박고 있는 것 있지요.
청년 사울이 바로 행9장에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 사건을 경험하고 사도 바울로 변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십자가 사건을 체험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군에 제대하고 인생에 철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공부해서 서울 대학을 가야겠다고 공부하던 중
어느날 부흥회 참석하여 히4:12절 말씀에 찔림을 받고
엎드려져 회개를 하는데 갑짜기 내 앞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너무 너무 강한 빛에 그 앞에 엎드려졌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 우야마 좋겠노? ]
[ 어떻게 살며 좋겠나? ] 라는 탄식이 터져나와요
이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서울대학 나오고 미국 스텐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은 안수 집사님
자기 말로 그래요. [ 세상에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 있거든 나와보라 해 ]
그도 그럴 것이
나이 마흔에 대학 교수 가 아니라 공대 학장으로 스카웃되어 왔어요.
그런데 이 분이 부흥회 참석하여 십자가의 사건을 체험한 것입니다.
강사 식사 대접을 하면서 저 한테 하는 말이
[ 목사님 내 마음이 왜 이래요 내 마음이 왜 이래요
내 인생 50년 공든 탑이 와르러 하고 무너진 것 같네요 ]
그렇습니다. 내게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어떻게 살꼬? 탄식이 나올줄 믿습니다.
어떤 설교자는 어찌할꼬? 라는 말을
어떻게 살아야 바로 살꼬? 라고 의역합니다.
은혜 받고 나니까 이때까지 살아온 것이 잘못 살았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살꼬?.... 어찌할꼬. ] 해답은 성령입니다.
모든 문제는 내가 풀려고 하지 말고 성령이 풀 수 있게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어찌할꼬.” 고백할 때 성령이 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가 정체 내지 침체일로에 서 있는 것보다
교인들이 초대교회 성도들 같이
[ 우애 바로 살꼬? ] 하는 고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 성령 하면서도
한국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주지 못하며
교인들은 많지만 예수의 증인되는 제자는 그렇게 많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생애에 십자가의 사건이 일어나
어찌할꼬? 탄식을 경험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탄식에 성령으로 응답받는 내일의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답을 합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찔림을 받아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38절에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 고 합니다.

1) 베드로의 응답은 우리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기독교의 최대 메시지는 회개의 복음입니다.
세례 요한도 첫메시지가 마3:2절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 입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도 마4:17절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입니다.
구원은 회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회개 없는 축복도 없습니다. 회개 없는 성령의 임재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의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에게 [ 너희가 회개하라 ] 고 합니다.

한 청년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3년 만에 척추결핵으로 쓰러졌습니다.
큰 수술을 네 번이나 하게되었는데 네 번째 수술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습니다.
1) 건강만 주신다면 하나님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3) 내 집 마련하기 전에 당시 집 한 채 값을 감사헌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수술 후에도 하반신 마비가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5년만에 완쾌했습니다.
그러나 건강해지니 언제 하나님 앞에 서약을 했나 싶을 정도로 잊어버렸습니다.
신문, 잡지 총판매 관계 일을 했는데 경영의 경험 부족으로
95년도에 10억이나 빚지고 절망의 늪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때 부인이 남편에게 권면합니다. <6>
[ 우리에게는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리 힘으로 안 되는 것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때까지
교회 가서 기도합시다 ]
그래서 그때부터 철야기도를 시작했답니다.
하나님이 생명 건져주실 때 서약, 지키지 못했던 것 철저하게 회개를 하면서 하나님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2년을 철야기도를 하면서 눈물로 회개를 하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도록 나타났습니다.
친구가 이민을 가게되었는데 그린벨트 안에 있는 자기 땅을 헐값에 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못산다고 했더니
언제든지 주어도 좋으니 외상으로 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외상으로 샀는데
곧 그린벨트가 풀리면서 땅값이 폭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빗을 갚고 나니 다음에는 열차 안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홍익회에 납품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50대 초반의 젊은 장로가 되어 선교타운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그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이렇게 간증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실패를 통해 내게 가르쳐 주신 것이 두 가지 있다.
1)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2) 기도로 사업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더라도 성도는
인간적인 방법 회개하고 기도로 사업하면 절대 성공할 줄 믿습니다.

2)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고 합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겠다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례란 내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고백이요 선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 있어서 세례란
바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징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 살리시어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지 못하면
바로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죄사함이 일어납니다.
왜? 우리가 죄사함을 입어야 합니까?
(1) 죄사함 받아야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자기가 죽지 않고 세례를 받고 교회 생활을 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늘 조롱을 당하고 농락을 당합니다.;
그러나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나면
(2) 속함 받은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됩니다.
(3) 구원의 확신이 있어면 자원하는 심령이 있어
주님께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나면
죄사함과 아울러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여기에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말은
성령의 은사,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교회 직분자들
직분 감당하려면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 받으면 저절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전12:에 성령의 은사를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말합니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의 이 말씀은 당시 각국에 모여든 유대인들에게만 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 나의 인생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가정생활 직장생활 자녀교육 돈 버는 일,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하고 최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 받는 일입니다. 나의 삶에 성령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최우선 순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가 문제를 당하고 위기를 당할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위기에서 구출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그 분이 창조주요 왕이요 주권자요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인도 회개하고 성령 받고 나면
나의 삶에 우선 순위가 하나님이 되고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받아 하나님이 우선이고 예수님이 주인이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윤달신앙인 이란 글이 있어요
음력으로 윤달이 되면 세상의 사람들은 무탈 즉 탈이 없는 달이라고 해서 여러 행사를 하기에 좋은 길일로 여긴다고 합니다.
저들의 말로 이야기하면 매월마다 그 달을 관장하는 신(神)이 있는데 윤달에는 신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재앙이나 신의 노여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신(神)이 없어서 좋은 길일이라면 그 신(神)은 이미 좋은 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백이 재앙이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것이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 받아
일년 내내 예수님이 주인인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성령의 은사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39절 [ 이 약속은 너희와 저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 곧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 뿐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이 약속과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1)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역시 성령 받은 베드로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 41절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나 세례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럼 누가가 이 사실을 기록한 것이
그러므로 우리도 베드로처럼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하루에 3천명 5천명 전도하자 입니까?
물론 이런 의미를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한다면
아직도 성경을 너무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54절 이하에 보면
스테반 집사가 설교할 때 역시 말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은 저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고 했습니다.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달려 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행7장은 그 유명한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베드로보다 능력이 부족하여 돌 맞아 죽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에서는 3천명이 회개하는데
동일하게 성령이 충만하여 설교한
스데반의 설교에서 나타난 반응은 돌로 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고 스데반은
일개 집사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역시 능력의 차이 입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베드로가 여기 와서 설교하여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의 설교를 사람들이 듣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을 통하여 증거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 회개하여 예수를 믿는자들이란
하나님께서 부르셔야 되는 것임을 39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여러분의 실력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항복시키셔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약속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약속이기 때문에
지금 베드로는 모여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40절에 보면
[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 고 합니다.
여기에 베드로가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했다는 것은
누가가 기록한 것 외에 많은 말로 설교를 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확증이나 권하다는 말의 원문에는
강조하는 접두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의 메시지가 아주 강조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 강조한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 는 것입니다.

패역한 세대가 무엇입니까? 하니님을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빌2:16절에 [ 어거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 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패역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인들이 뭔가 착가하고 있는 것이
나도 회개하고 성령 받아 세상에서 성공하게 하옵소서
그 성공의 기준이 뭡니까?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구원이란 세상에서 구출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사람이 되면 세상에 너무나 잘 동화된 사람이 아니라
패역한 세상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패역한 세대에서 구출받을 수 있습니까?
알코올 중독자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가 술을 끊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느 날 술집 않을 지나가면서 윈도우에 진열된 술병들을 보았을 때 마시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윈도우에 비치는 건너편 우유상점의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25센트만 내고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우유가 있습니다.'
그는 즉시 그 우유 상점에 뛰어 들어가 우유를 배부를 때까지 마셨습니다. 그가 우유상점을 나와 술집을 지나쳤을 때에는
진열된 술병들로 인하여 더 이상 유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 하나님 우유도 실컷 마시니 술이 들어갈 때가 없는데
성령님 내게 충만 충만하게 부어 주소서 ] 라고 부르짖었는데
이상하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니 술이 뚝 끊겨지더라는 것입니다.
어찌 술 뿐이겠습니까?
패역한 세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온갖 나쁘고 잘못된 습관
성령받아 뚝 하고 굴레가 끊어지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고 회개한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고 합니다.
제자들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는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6. 세례 받은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는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합니까?(41절)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렇게 설교하였더니
마음에 찔려 3천명이나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신앙적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부흥과 성장은 회개를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부흥과 성장은 회개를 전제로 이뤄집니다.
진정한 성령 사건은 회개를 전제로 나타납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는데 첫 불길은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로 보고 있습니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의 주역은 길선주목사였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매년 신년 초에
전국적으로 특별집회를 갖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평양에서도 신년특별집회가 열렸습니다.
1907년 신년집회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약 1500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주일 저녁 집회가 시작되었는데
당시 강사요 신학생인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가
강단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약 1년 전에 내 친구 중 한사람이 임종시에 나를 불러서 말하기를
‘길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지만 내 집 살림을 돌보아 주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미망인의 재산관리하면서 미화 100불 상당의 금액을 사취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그 미망인에게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길선주목사가 회개하자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밤 예배는 7시에 시작하여 새벽 2시가 지나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집회에 직접 참석하였던 정 익로 장로는
“그날 밤 길선주목사의 얼굴은 위엄과 능력이 가득 찬 얼굴이었고,
성결로 불붙는 얼굴이었다”고 후에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했던 1907년 대부흥운동은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 얼마나 교회도 많고 교인도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이 서울의 야경을 보고
[ 도심에 웬 묘지가 이리도 많으냐? ] 고 하더랍니다.
외국에는 묘지에 십자가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냥 듣고 넘길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죽은 십자가가 아닌 산 십자가’가 세워진 교회는
회개하고 심령이 사는 역사가 나타나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진정한 회개운동이 중단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회개운동으로 시작되는 한국의 예루살렘인 대구의 부흥운동이
내일교회 안에서 회개운동으로 시작되기를 소망합니다.


2) 초대교회 교인들은 출발이 제자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예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예수 믿으면 바로 제자로 출발합니다.
왜? 신앙생활의 출발이 제자로 시작합니까?
진정한 회개와 아울러 성령 사건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바로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변화되었다는 말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 따르기로 결심한 것을 말합니다.

< 결론>
진정한 성령 사건은
마음에 찔림으로 시작됩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발단됩니다.
십자가 사건은 내게 우리가 어떻게 살꼬? 라는 절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진정한 성령 사건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내일교회와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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