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리니 (행 3:1~10)

  • 잡초 잡초
  • 281
  • 0

첨부 1


- 설교자 : 손상률 목사 

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교회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기관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곧 죄와 마귀의 횡포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과 소망을 가지게 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고 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 이 일을 수행하였습니다(막 10:45).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네게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분부하십니다. 한번은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어릴 때부터 계명들을 다 지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율법사는 재산이 많은 부자인고로 그 말씀을 듣고 근심하였다는 것입니다(눅 18:18-23).

여기 베드로와 요한은 재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 앞에서 손을 벌리고 있는 사람은 은과 금을 요구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없는 것을 달라고 하는 앉은뱅이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었지만, 저희들이 가진 것을 그에게 줌으로써 사실상 가장 큰복이 되게 하였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교회가 가지는 특수한 은사를 발휘하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말씀 중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행 1:4). 그것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생명적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Ⅰ. 구걸하는 앉은뱅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을 비롯하여 경건한 성도들은 정한 시간에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행 10:3). 베드로와 요한도 제 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1절). 그는 평소 사도들이 자주 드나드는 미문에 앉아 그곳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며 구걸하는 자입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돈을 얻을까하여 구걸하였습니다.

(1)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

이 사람은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일어서거나 걸어다닐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 그곳까지 이동하는데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본문 말씀 2절에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기 혼자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직장이나 생업을 가질 수 없었고 결국 남에게 구걸하여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체적 기능이 정지된 사람은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구걸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경우 영적 기능이 마비되어 있어서 자기 스스로 온전한 생각과 행동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롬 1:21-23).

(2) 은과 금을 요구하였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매일같이 그 자리에 나와 있으면서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무래도 성전으로 나오는 사람일 경우 선한 마음과 자선하는 행동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3절에 보면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5절에도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하고 그 사람의 기대를 무색하게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자가 되거나 세상적 욕구를 충족시킬 것처럼 잘못 생각합니다(눅 12:13-15).

(3) 현실적인 욕구 충족을 기대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보시고 진노하시면서 그들을 모두 내어쫓으신 일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16에 보면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령한 기관으로써 그 특수성이 지켜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신령한 일보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일해주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여기에 발맞추어 끝도 없는 사람들의 욕구성향에 맞도록 환경을 만들고 여러 가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만족을 주려고 애를 씁니다.
세상적인 문화에 편승하여 대중적인 인기나 육신적인 만족을 꾀하므로써 교회 목표를 오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성도가 하나님의 의도를 읽지 못하게 되면 베드로처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마 16:23).

Ⅱ. “우리를 보라”는 주문

4절에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은과 금을 요구하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는 “우리를 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그때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를 보라고 하는 사람과 거기 따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결국 사람은 만나고 대면하여 교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사도(?π?σтоλο?)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띄고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여기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고 하였지만 그 말속에는 저희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에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사도들은 자기들에게 은과 금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대답입니다. 그들의 수중에 은과 금같은 세상 재물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솔직하게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상대방이 제게 실망을 하거나 아니면 무시해 버릴 것같기 때문입니다. 이 앉은뱅이도 그의 기대가 무산되면서 몹시 실망했을 것입니다.
사실 사도들에게서 은과 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그의 판단이 잘못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2:13-14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형에게 부모의 유산을 동생과 나누어 가지도록 명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하시며 크게 나무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재물 나누어주라는 사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구걸하는 자에게 나누어줄 만한 재물이 없었습니다.

(3)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그들은 앉은뱅이가 요구하는 은과 금은 줄 수 없었으나 자기들에게 있는 것으로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제게 있는 것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찌기 예수님 앞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로부터 대단한 칭찬을 들었습니다(마 16:16-17).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이 있었으며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도 제게 있는 그 믿음의 도리를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행 10:34-43). 베드로는 유대교 지도자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면서 예수를 전했습니다(행 4:12).

Ⅲ. 손을 잡아 일으키는 능력

베드로는 “내게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와 동시에 앉은뱅이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이적입니다. 베드로의 선언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1) 예수의 이름으로

여기 이 앉은뱅이가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서기는 하였지만 사실은 베드로가 선언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능력이 행사된 것입니다. 이 일 후에 유대인 사회에서는 그 일이 큰 화제가 되었고 그때부터 베드로는 이적의 주인공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본인인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하였습니다(행 3:12).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행 3:13). 그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이적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에 기인한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 성령의 사역입니다.

일찌기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남겨두신 자기의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게 하는 이적과 능력은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를 받들어 땅 끝까지 그의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부여하신 권세입니다(행 1:8).
사도행전 2:41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권능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자가 하루에도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는 성령 받은 성도들을 통하여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변화된 삶이 이루어졌습니다.

8절에 보면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선 앉은뱅이가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게 된 앉은뱅이는 이때부터 그의 삶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성전 문간에만 앉아 있던 사람이 사도들과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겨우 성전 문 앞에서만 맴돌던 사람이 그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령한 세계를 발견하였습니다.

또 자기 입으로 하나님을 찬미하였다는 것은 신앙의 체험입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서 이동하던 사람이 자기 스스로 서고 걷고 뛰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적인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17). 처음 앉은뱅이가 요구했던 대로 은과 금을 받았더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이 원하는 은과 금을 주는 기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복음의 산실입니다. 은과 금은 없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되고 그 이름으로 새로운 삶의 소망을 가지게 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