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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위로 (창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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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은혜로운 복음성가 가운데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멀고 험한 이 세상길 소망 없는 나그네길
방황하고 헤매이며 정처 없이 살아 왔네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위로받고 살고파서
세상유혹 따라가다 모든 것을 다 잃었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쉴 곳 없어 애처로운 몸
쓰러지고 넘어져도 위로할 자 내겐 없었네
세상에서 버림받고 귀한 세월 방탕하다
아버지를 만났을 때 죄인임을 깨달았네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위로 받고자 따라간 곳이 그만 세상 유혹이었습니다. 그 길은 위로가 아니라 도리어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 위로 받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로가 될만한 곳과 진정한 위로를 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사인 무디는 말하기를“너 자신을 믿으라. 그러면 실망할 때가 온다. 친구를 믿으면 죽거나 이별할 때가 올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믿으면 사라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참된 위로를 받을 곳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봉독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로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전쟁 포로로 붙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은 가신 318명을 이끌고 쫓아가 여러 왕들을 파하고 모든 것을 되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강한 힘을 지닌 그들이 또 언제 연합하여 아브라함에 대한 보복 공격을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며 용기와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3-4의 말씀에“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하셨습니다. 거듭거듭 위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위로의 생애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외로운 자와 멸시 받는 자들의 벗이 되시므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범죄한 사람들을 용서하시므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려는 무리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그때 이 여인을 비방하며 돌을 던지려던 무리들은 하나 둘씩 다 떠나가고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없나이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면서 그 여인을 위로하셨습니다. 배신했던 베드로를 다시 찾아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므로 위로하셨습니다.

위로의 하나님은 지금도 위로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마치 길 가는 나그네가 쉬어가는 그늘과도 같습니다.“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시편 121:5-6)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경우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능히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곧 하나님의 품속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있고, 인간의 언어구사 능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세파에 시달려 지친 아브라함을 위로하셔서 그의 갈 길을 다가도록 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나라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그리고 내 곁에 계십니다. 이러한 위로의 하나님이 어려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들을 위로하실까요?

첫째,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셨습니다.

이상이란, 인간의 자연영역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 전달 방법을 가리키는데 육체적 감각이 있는 실제 현상이나 혹은 꿈 또는 환상, 무아지경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미국 어느 흑인 교인이 흑인들만 모이는 교회에 가다가 시간이 늦어서 가까운 백인교회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거절을 당했습니다. 예배당 의자에 앉지 않고 뒤편에 서서 예배를 드릴 테니 오늘만 허락을 해달라고 애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거절을 당했습니다.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 이 흑인은 예배당 밖 계단에 엎드려 서럽게 흐느끼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왜 여기서 울고 있느냐?”하셨습니다.“하나님의 집인데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주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울지 말라, 너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나도 이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에 서있지 않니?”하시면서 이 흑인을 위로하셨습니다. 이 흑인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이상 중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둘째, 성경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하실 때 꼭 이상으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때는 성경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로 이상으로 나타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15:4에는“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따뜻하신 위로의 음성을 듣길 원하십니까? 조용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펴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원하십니까? 시간 시간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는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체계화된 성경공부에 부지런히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지친 영혼이 하나님의 위로로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40:28-31에는“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하셨습니다.

셋째, 사람을 통해 위로하시기도 합니다.

이사야 40:1의 말씀에“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하셨습니다. 괴로워하는 이웃, 외로워하는 이웃이 있습니까? 찾아가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함께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덴마크 부흥의 은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룬트비 목사는 그 아내의 훌륭한 내조에 힘입음의 큼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덴마크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전한 사람은 독일의 안스가르라는 선교사였습니다. 그를 가리켜 북구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이 안스가르가 덴마크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지 1000년이 되던 해에 안스가르 천년 기념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룬트비 목사도 자기 교회에서 이 기념일을 성대히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하롤드 왕과 안스가르”라는 장편시를 출판함과 동시에“축복의 날”이라는 자작 찬송가 3편을 함께 하여 기념식 때에 교회에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룬트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목사감독 클라우센은 그것을 알고 전 교회에 명령을 내려 “찬송가 책에 있는 것 이외의 것은 절대로 부르지 말라.”고 엄명했습니다. 이에 관해 교직자 간 말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크게 놀란 것은 그룬트비였습니다. 그는“만일 교인들이 내가 지은 찬송가를 부르지 못할 것이라면 내가 지어하는 설교도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하고 사직원을 냈습니다. 그것이 1826년 6월이었습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또 많은 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그룬트비에게 있어서는 비장한 결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앞으로 예측되는 고난을 말하면서 그룬트비의 결심을 바꾸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인 엘리사벳 부리카는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도록 했습니다.“당신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걱정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를 주께 맡겨버리세요. 그리고 우리 주님이 당신께 명하시는 대로 충성을 다 하세요. 그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실 방도가 무엇임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아내의 위로와 격려에 힘을 얻은 그룬트비는 <신학 월보>를 발행하게 되고 그 후에 덴마크 부흥의 은인이 되는 큰 업적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에 의한 지혜로운 아내의 말 한마디가 궁지에 몰린 남편을 성공의 자리에 우뚝 서게 했습니다.

2. 이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위로하셨습니까?

첫째,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두려워 말라”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을 누가 감히 해하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만“두려워 말라”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하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여호수아서 1:5-7)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하셨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전에도 말씀하시기를“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을 때 우리는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기를“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3-8)하셨습니다.

둘째, 나는 너의 방패라 하셨습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한 전능자 하나님인 내가 너의 방패가 될테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패를 주시면서 이것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적을 막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친히 적을 막는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이 나아가는 길에 아무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신 아브라함의 삶은 언제나 승리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는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이길 대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히브리서 13:6의 말씀에“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는 이 귀한 진리를 깨달은 다윗은 말하기를“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편 18:1-2)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힘은 잘 변하는 힘입니다. 오래가지 못하는 힘입니다. 우리들이 믿을만한 불변의 힘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실력(實力)도 큰 힘입니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1990년대부터 3년 단위로 인류의 지식이 갑절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2020년이 되면 73일마다 새로운 지식이 배가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어제의 지식이 오늘은 쓰레기가 됩니다. 이처럼 잘 변하는 것이 지식의 힘입니다. 재력(財力)의 힘도 대단해보입니다. 그러나 언제 변하여 나를 떠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돈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권면하시기를“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디모데전서 6:17)하셨습니다. 권력(權力)의 힘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 힘은 10년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며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정대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아무 힘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체력(體力)도 힘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건강관리에 심혈을 쏟고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만 흐르는 세월에는 속수무책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힘은 쉬 변합니다. 영원불변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만이 세상을 이기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신 아브라함의 삶의 특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과 순종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브리서 11:8,11)라고 했습니다. 또 기록하시기를“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브리서 11:17-19)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세상을 이기는 방패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새 예루살렘성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높은 시온산 꼭대기는 새 예루살렘 성을 잘 지었는데 금강석과 홍보석과 녹보석과 가지각색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성이었습니다.“내가 정말 새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왔구나.”하면서 한 걸움 두 걸음 점점 올라가 보니 큰 문이 있는데 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큰 진주로 된 문이었습니다.“야. 내가 새 예루살렘성에 왔구나.”생각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두드리자마자 문이 곧 열리더니 베드로가 척 내다봅니다.“저는 아무 교회에서 온 아무개올시다.”그러니 베드로가 묻습니다.“이 성에 들어오려면 믿음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표 가지가 왔느냐.”이 분이“네. 가져왔습니다.”하며 안주머니를 뒤져 보니 믿음표가 없어졌습니다. 옆 주머니를 보니 거기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믿음표는 없었습니다.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장사꾼이었던 이 분은 사정을 해보았습니다.“나에게는 믿음표가 없지만 아무 교회에 십 년 이상을 다니고 했는데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베드로가 하는 말이“그것은 안되네. 아무리 오래 다녀야 쓸데 있나 믿음표가 있어야지.”“그런 게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그 교회에서 장로 일을 십여 년이나 봤습니다. 그래도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호통을 치면서 하는 말이“아니, 장로 일을 십여 년이나 믿음 없이 했다면 순종은 하지 않고 말썽만 피웠겠구먼. 그게 무슨 쓸데가 있어.”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습니다. 문을 꽝 닫는 소리에 깨 보니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꿈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셋째,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셨습니다.

상은 참 좋은 것입니다. 영광스럽습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올림픽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또한 노벨상의 영광이 얼마나 큽니까?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가 존경합니다. 이 세상의 상도 이토록 영광스러운데,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의 상급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영광 그 존귀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상급이 되신 아브라함의 삶의 결과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지구상의 20억이 넘는 신앙인들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아브라함의 삶을 거울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유일한 상급으로, 하나님을 유일한 기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어떠한 것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가까이 계실 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적인 축복은 저절로 받아 누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비결이 믿음과 순종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절대적인 순종, 절대적인 헌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이 위로하시며 부어주시는 새 힘을 얻어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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