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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남의 의미 (요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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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보통 우리가 기독교를 말할 때 오해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기독교를 종교로 보는 것입니다. 종교란 한자어로 “마루 종”에 “가르칠 교”자를 사용합니다. 여기 마루란 국어사전을 보면 산 따위의 높고 길게 등성이가 진곳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종교란 “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교훈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높은 곳의 교훈이 되기위해서 사람보다 높은 대상을 지정하여 숭배합니다. 종교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높은 도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종교는 높은 대상을 숭배하기 위해서 대상을 숭배하는 종교적인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보다 더 초월적인 대상을 숭배하고 그 교훈을 따르면서 더 도덕적이고 더 윤리적으로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기독교에도 이런 윤리적인 가르침도 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형식도 있는 면에서 종교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이런 윤리 형식이 아니라 생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바로 생명입니다. 주님은 단지 우리에게 도적과 철학과 윤리를 주면서 좀 나은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줍니다. 그 생명이 새롭게 주어지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이시간 우리가 함께 다루게 될 주제는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을 한자어로 중생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니고데모는 밤중에 사람들의 낯을 피하여 예수님께 찾아옵니다.그 당시의 니고데모는 유대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주님께 나온 니고데모는 신분적으로는 종교인이었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당시에 유명한 종교적인 집단이었습니다. 대략 6000명정도가 되었고 이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행함에 있어서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기도하는 모범의 사람들입니다. 니고데모는 율법을 잘 알고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또한 니고데모의 직업은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로 말하면 국회의원이었습니다.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교양있고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당시의 기준에서 니고데모는 성공한 인생으로 남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그것들이 주는 이익과 가치로 인하여 그 나름대로 마음에 채워지는 만족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의 마음 속에는 이런 세상것으로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 밤중에 갈증을 안고 밤중에 주님을 찾은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였습니다.“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거듭남이었습니다.
이 거듭남은 니고데모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제일 필요한 주제입니다.오늘 주님 앞에 나온 우리들 중에는 이미 거듭난 분들도 있고 거듭남이 필요한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거듭나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과연 거듭남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1. 거듭남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렇다면 이 말씀은 거듭나면 하나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5절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합니다.
인간은 육으로 난 사람이 있고 영으로 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으로 난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영으로 난 사람으로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반대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갑니다. 육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거나 볼 수 없습니다. 영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2가지 용어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통치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는 보통 우리가 과거에 잘 표현한 천당같은 장소입니다. 여기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2가지를 다 의미합니다.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거듭난 사람이 천당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땅에서 우리는 국적이 있습니다. 해외에 나갈때마다 우리가 가장 귀중하게 챙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권입니다. 대한민국국민이라고 하는 나의 신분을 보장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대한민국국민이 됩니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신분을 갖고 있는 부모들에게서 태어나면 됩니다. 누가 부모인가에 따라서 미국국민이 되고 대한민국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 되려면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야 합니다. 바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조금더 나은 생활을 하는 마음의 의지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신념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이것은 조금 나아지거나 조금 좋아진 것이 아니라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그러한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거듭남이라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애벌레로서 한계가 있습니다.날 수가 없고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나비가 되어야만 비로서 자유로움과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외모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차이가 있습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육의 생명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늘의 영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요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영이 임하여 영으로 거늡난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고 순종하면서 통치를 받고 그 나라 속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결국 그 생명을 소유함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예로서 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난 사람은 이러하니라”고 합니다. 바람은 임의로 부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불어오는 것입니다.성령의 역사하심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반드시 증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듭났는가? 아닌가 ? 어떻게 알 수 잇습니까? 이 거듭남이 우리 속에 찾아오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수 있습니다.
가장 큰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그 순종은 마음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내 안에 왕이신 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서 이루어져 마음에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기쁘고 즐겁습니다.왜냐하면 그 마음에 하늘의 평안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났을 때 성령께서 임재하는 순간 세상의 근심과 두려움의 상황 속에서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을 나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어머니가 신기해 할 정도로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대학때는 "holy group"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듭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목사이며 열성적인 신앙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듭나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마음에 참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어느날 거듭남을 향해 나갈 수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내어주셨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모라비안교도라는 열성적인 신앙인의 무리를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두려움 없이 기뻐하며 찬양을 부러고 있었습니다. 웨슬레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이 폭풍우가 두렵지않소" 그러자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무얼 두려워 하겠소" 웨슬레는 목사인 자신의 신앙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후 고민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거리를 걷다 가 한 집회에 참석케 되었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모라비안교도들이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웨슬레가 들어섰을 때 로마서 주석이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신앙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거듭남을 경험하게된 것입니다. 그 때를 웨슬레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나는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나의 죄들을, 바로 나의 죄까지도 가져가셨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나라의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이 폭풍우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거늡났기 때문입니다. 웨슬레가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마음의 확신할 수 있엇던 것이 바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종교인도 거듭나야 합니다. 지식인도 거듭나야 합니다. 명예를 가진 사람도 거듭나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 이땅에서 참된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당당하게 누리면서 살아가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 거듭남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없느니라 "
여기 거듭나게 하는데 있어서 물과 성령이 필요함을 말씀합니다.
여기 물은 흔히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거듭나는데 말씀과 성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입니다.처음 거듭날때도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삶 속에서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육으로 태어날 때 육신의 두부모 아버지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갖은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영적인 두부모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하나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둘은 하나입니다.오직 성령과 말씀안에서 우리는 거듭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의 씨와 같고 성령은 그 생명의 씨에 생기를 불어넣어 역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역할은 어떤 역할입니까? 우리 인간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있기만 되는 것입니까? 말씀과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나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고전3:9에서 하나님의 밭이라고 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나를 내어드리면 그 밭에 말씀의 씨가 뿌려지고 거기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일어납니다.

저는 고 1때 어떤 누나의 도움 때문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니다가 재미가 없었고 성경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수없었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며 설교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가며 적었습니다. 또 이해를 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특히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없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엇습니다.그때마다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무조건 믿으라”고 하엿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에 복학하기전 10개월 집에 혼자 있으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내 마음 속에서 성경에 대한 사모함이 간절했습니다. 그때 바울서신 중 로마서를 읽으면서 말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그 말씀으로 인한 감격이 찾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자신의 비참함과 내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이 서게되었습니다.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과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확신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는 마음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기쁨이 차고 넘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말씀을 통하여 찾아온 성령님깨서 나의 마음을 역사하였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내자신도 그렇게 내가 변화될줄 몰랐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결코 인간의 이해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하시고 내 마음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때부터 저의 삶 속에 기질들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저의 내면 속에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욕구들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새생명이 들어오면서 내안의 성향들이 바뀌고 내안의 욕구들이 바뀌었습니다. 말씀으로 살고 싶어합니다. 성령으로 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로 거듭난 것입니다.

여러분 거듭나는 데는 2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급진적인 거듭남을 체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사울이 바울이 되는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성령님께서 말씀과 함께 급하게 역사하는 경우입니다.이런 경우에는 늦게 믿는 분들의 경우가 그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다음은 어릴적부터 교회를 다니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되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저의 경우처럼 계속하여 점진적으로 서서히 깨닫게 하시다가 어떤 때에 결국은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하시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급진적으로 되든지 점진적으로 되든지 거듭나게 되면 그의 인생은 180도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삶 속에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기를 소원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삶 속에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3. 거듭남은 십자가의 생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여기 거듭나야 할 니고데모에게 주님이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15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십자가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거듭날 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예수님이 믿어집니다.
거듭난 사람은 2천년전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직접 믿음으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천년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간 사건이 내가 믿어지십니까? 거듭난 사람은 그것이 믿어집니다. 인간적인 논리대로라면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내가 지은 죄를 주님께서 용서하여줄 수 있습니까? 그 엄청난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며 역사의 수많은 사람들의 죄가 어떻게 용서가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시고 주님이 구약의 모세와 뱀 이야기을 하십니다.
민21:4-9에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반역하다. 하나님께 죄를 범함. 그 벌로 불뱀(독사의일종)이 사람들을 물어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모세가 기도해서 하나님의 치유책을 받습니다. 그것은 광야에 놋뱀을 매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어리석어 보입니까? 불뱀에게 물렸는데, 놋뱀을 보다니...
하나님께서 이런 구원의 약속을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들려주었을때 적어도 두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부정하고 안보는 사람들은 죽어갔습니다.
(2) 그래,하나님의 방법이므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구원과 회복을 얻은 사람들.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죽어가면서도 약속을 믿지 못하여서 결국 멸망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 십자가의 약속을 믿는 자마다 거듭나게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이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축원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이 갈보리 십자가의 하나님의 약속를 믿고 바라봅니다.그 약속의 말씀이 나의 말씀으로 그 주님이 나의 주님으로 믿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속에 지금 나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내가 만납니다. 내가 마음에 믿음으록 영접합니다. 그분을 오늘 여기에서 직접 영으로 체험하게 된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십자가의 그 피가 나를 위해 흘리신 피요 십자가의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신 것이 믿어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믿음 생활을 하면서 자꾸 우리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거듭난 사람이고 정말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이상하고 별스러운 체험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주님을 체험한 사람은 별스러운 체험을 기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가고 십자가를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남들은 십자가를 따르는 것이 고통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기쁩니다. 나는 그것이 행복합니다. 바로 나에게 십자가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거듭남이란 무엇입니까?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거듭난 사람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맛보면서 살아갑니다.
거듭난 사람은 십자가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누구보다도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십자가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거듭남의 축복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십자가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시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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