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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을 격려하는 교인이 됩시다 (히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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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복음을 듣고 진리를 배우고 깨달아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은 자가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재산과 생명까지 바쳐가며 봉사하고 수고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도우시고자 은혜와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큰일을 해주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격려 하여야 합니다. 믿음이 약하여 억지로 봉사하였다면 그것은 오직 '나'만을 돌보려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교회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표어아래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사랑을 나타내고 공급하고 격려하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12:3"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신앙의 가장 기본적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못하면 환란과 핍박과 시련이 오면 넘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충만한 믿음으로, 확신에 찬 믿음으로 예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것은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30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불려 올라간 스코틀랜드의 목사 로버트 멕케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그의 형 데이비드였다. 소년 시절 데이비드는 온순한 성품의 소유자로 일찍이 그리스도를 믿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나, 로버트는 세상 쾌락을 즐기며 술에 만취해 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러기에 데이비드는 그 동생을 위해 줄곧 기도를 했었다. 그러던 중 로버트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집을 떠나 살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전보가 왔다. "데이비드 위독, 급 귀가." 고향집에 돌아온 로버트는 그만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형은 죽음을 앞두고도 줄곧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로지 동생을 위한 사랑으로 죽음을 맞은 형의 모습을 본 로버트는 결국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목사가 된 로버트는 성심성의껏 교회를 섬기다가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중 하나님의 뜻을 따라 눈을 감고 말았다. 로버트는 눈을 감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그 분을 위해 일하고 죽을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나의 형 데이비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인터넷 정보클럽- 멕케인 목사의 가장 소중한 사람)

우리에게도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믿고 사랑을 격려 하며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앤더슨 선교사님은 자기가 만난 한 사람의 믿음을 이렇게 소개 합니다. 1948년 7월 중순의 일입니다. 당시 모택동은 팽창해가는 그의 제국에 5억의 인민을 다 포섭하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국민들은 이에 충격을 받아 동요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일주일동안 머물고 있었던 천진(天津)의 외곽도시에는 이미 5만의 중공군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천진이 아직 중공군의 손에 함락되지 않았던 것은 다만 거기에 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한 주일 동안에 천진에서 가장 저명한 실업가의 한 사람인 이(李)따렌(大人=先生)의 환대를 받는 특별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출업자로서 주로 미국과 거래해서 큰 재산을 만들었고, 자기 동포 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바쳐온 사람이었습니다. 일주일째 되는 날,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상해로 떠나기 바로 직전, 이따렌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따렌은 언제 천진을 떠나시렵니까?" "떠나다니요?" 그는 마시던 찻잔을 입에서 떼며 탁자너머로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아니 저는 일시적인 여행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따렌과 부인께서는 언제 천진에서 피난 가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저는 천진을 떠나지 않으렵니다." "그러나 따렌, 미국 군대가 불원간 이곳을 철수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터이고 그렇게 되면 중공군이 곧 이 도시를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행장에서는 몇 대의 비행기가 시간마다 피난민을 싣고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비행기의 좌석 하나를 구하는데는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따렌은 부인과 자신의 좌석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 그는 원한다면 비행기 한 대라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따렌이 대답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말하면, 지금 때는 몹시 긴박합니다. 만일 우리가 생명을 염려한다면, 저와 처는 곧 천진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에는 약간 붉은 빛이 떠올랐습니다. "선교사님, 제 회사에는 많은 종업원이 있습니다. 시급히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 친구들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그들에게 구원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그들이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피할 수 있는 넉넉한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부자가 아니므로 천진을 떠나지도 못하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끌려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에 돌아가신 후 천진이 함락했다는 신문보도를 보시거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요. 그제서야 비로소 저는 제가 발견한 이 기쁨, 즉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기쁨을 그들과 나누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저의 유일한 소원임을 우리 종업원들과 친지들에게 증명할 수 있는 다시 없는 좋은 기회를 얻게될 것이니까요. 그때에야 그들은 저의 진의가 자신의 평안을 도모하고 나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 돌아 온지 얼마 안 되어 신문은 천진의 함락을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신문보도들은 그곳에서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바쳐서 그리스도를 끝까지 증거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틀림없이 나의 친구 이따렌도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인터넷 정보클럽-이따렌(李大人)의 믿음 -앤더슨)

우리도 주님께서 함께 하심 믿고 맡기신 사명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랑을 격려하며 함께하는 모두가 됩시다.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내세이 영원한 소망 가운데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갓 시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전도한 사람을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그만 두려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고통스런 일들이 훨씬 많아졌어요." 전도자가 새신자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습니다. "사과나무에 잔가지와 나뭇잎이 너무 많아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새 신자가 대답했습니다. "쓸데없는 가지와 나뭇잎을 잘라내야지요" 그러자 전도자가 말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삶의 불필요한 부분들을 잘라내고 있어요. 조금은 아프지만 곧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시련이 있을지라도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주님 바라보며 사랑을 격려하여야 합니다.

미국의 한 중환자 병동에 심한 화상으로 생사의 기로에 처한 10대 초반의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병원에는 청소년 환자가 많아 이들이 치료받고 학교에 돌아갈 때를 위해 공부를 가르쳐 주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처음 봉사를 나온 대학생이 중환자실의 환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병실에 들어가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던 이 소년의 상태가 기적처럼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의 붕대를 풀던 날 소년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소년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대학생 형이 다음 학기 영어시간에 배울 문법을 가르쳐주기에 저는 확신했죠. ‘아, 의사 선생님들이 내가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붕대를 친친 감고 있는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줄 리가 없지.’ 그때부터 기쁘고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은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줄 믿고 움직이지 말고 사랑을 격려하는 모두가 됩시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바다를 건너던 배가 갑자기 거센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던 배는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노인은 평화로운 얼굴로 기도만 드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지금 배가 뒤집혀 다 죽게 되었는데 당신은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내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큰딸은 몇 년 전에 죽었고 지금은 작은딸을 찾아가고 있는 길입니다. 만약 이 배가 뒤집혀 죽게 되면 천국에 있는 큰딸을 만나게 될 것이고 다행히 배가 무사히 항구에 닿게 되면 작은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풍랑이 높이 이는 삶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합니다.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질 때 소망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과 복음 전파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사랑을 격려하는 모두가 됩시다.

  서로 돌아보아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격려와 돌봄은 공동체의 일원들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고 소망을 굳게 지켜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하며 친교와 확신을 북 돋우는 자극제가 됩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사느라고 지쳐있는 사람에게 격려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약한 형제에게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합니다.

슬픔, 곤궁, 질병, 실업, 그 밖의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들, 진학문제가 뜻대로 안 된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위로와 격려의 말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기대하고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친절한 말 한 마디는 진흙 구덩이에 빠진 사람에게 아주 훌륭한 밧줄이 됩니다.

어려움을 만난 사람을 위로하면 어려움을 만나기 이전보다 더 훌륭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혈을 하면 피가 필요할 때 우리도 도움을 받게 되는데 격려할 줄 아는 사람, 평소에 남을 잘 격려하는 사람이, 필요할 때 격려를 받습니다. 격려는 격려를 확대재생산합니다.

  트루게네프라는 철학가가 어느 겨울날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돈을 주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트루게네프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그 걸인의 더럽고 터진 손을 잡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걸인은 밝은 얼굴로 아니라고 선생님은 오늘 나에게 무엇보다도 큰 도움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어느 기독교 대학의 야구 선수 하나가 슬럼프에 오래 빠져 있었습니다. 야구팀이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게 되어 교목이 선수들을 앞에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선수는 기도가 끝난 다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교목은 그 선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는 자네의 팬일세. 나뿐만 아니라 내 아내도 자네의 팬이고 우리 딸도 자네 팬일세. 우리 가족은 오늘 자네의 경기를 지켜보며 자네를 응원할 걸세"라고 격려했습니다.

이 선수는 그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습니다. 경기가 끝난 다음에 이 선수는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의 격려 덕분에 제가 힘을 얻어 연타석 홈런을 날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페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교목은 축하한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네가 알지 모르겠네만 나는 30년 전에 이 학교 사학과의 학생이었다네. 그런데 공부하기 싫어서 의기소침한 나날을 보냈지. 성적은 떨어지고 학생들과 교수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지. 그런데 하루를 지도교수가 이런 말을 하더군. '나는 자네의 형편도 잘 모르고 자네의 학업태도가 왜 그렇게 부진한지 잘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잊지 말기 바라네. 자네는 우연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일세.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네를 이곳에 인도하셨고 자네를 계속해서 보살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일세' 나는 이 격려에 힘입어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이렇게 모교의 교목이 되어 후배들을 보살피고 있다네. 지도교수의 한 마디 격려가 오늘 나를 있게 하는 큰 힘이 되었고 격려하기에 힘쓰는 사람을 만들었지"  야구 선수도 감화를 받아 격려하기에 힘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중요 인사 한 분이 어느 교회 주일 저녁 예배 와서 이스라엘의 교육법에 대해 강연한 일이 있었답니다. 대사였는지 사업가였는지 그 분의 직함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분의 강연 내용 가운데 지금도 기억되는 내용을 소개한 부분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가 담임교사가 부모들에게 보내는 통지표에 학생들을 격려하는 말을 쓰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 아이는 이것밖에 하지 못 합니다" 하지 않고 "이 아이는 여기까지 잘 합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여기까지 할 수 있겠습니다", 마땅히 백까지 세어야 할 학년의 어린이가 백까지 세지 못하면 "이 아이는 2학년이 되었는데도 백 단위 숫자를 모릅니다" 이렇게 쓰지 않고 "이 아이는 십 단위 숫자를 잘 셉니다. 조금만 더 힘쓰면 백 단위까지 셀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적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단일 민족으로는 노벨상 수상자를 제일 많이 배출한 우수한 민족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하리슨은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순진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놀리면서 계집애 같다고 말해도 웃기만할 뿐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리슨은 동내아이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하였습니다. 어른들도 하리슨을 바보 같은 아이로 생각하고 놀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른 한분이 하리슨에게 백동전 한 푼과 은전 한 푼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얘야 이 두 개의 돈 중 너에게 하나를 가지라면 어느 쪽을 갖겠니?" 하리슨은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백동전을 가지겠어요" 옆에 서있던 어른들과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바보같은 놈" 아이들은 하리슨을 바보라고 놀렸습니다. 다음날 동래 큰 아이들이 몰려와 어제처럼 백동전과 은전 한 푼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어느 쪽을 갖겠니?" "백동전" 아이들은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어느 부인이 하리슨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왜 은전을 고르지 않고 백동전을 골랐니? 은전은 백동전보다 작지만 값이 더 많은거야" "나도 알아요" "그런데 왜 그랬니?" "나를 놀리기 위해 백동전을 고르기 원하고 있는데 내가 은전을 고르면 얼마나 무안하고 실없게 되겠어요. 웃고 싶은 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백동전을 고른 것이예요" 그러나 훗날 하리슨은 미국 9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사랑으로 격려하시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시며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눅 7:34)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모든 사람이 돌로 치려하는 여인을 구하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격려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그 뒤에는 틀림없이 정결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도 이중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다섯 남편을 거쳐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 남편들이 모두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여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더운 한낮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과 따뜻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입장에서는 누군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것만 하더라도 반가운 일입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 사람은 자기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와 현재를 다 알고 있습니다. 대화를 더 나눠보니까 그 사람이 자기들이 그렇게 바라고 기다리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격려를 받은 이 여인은 변화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피해 다니던 이 여인이 이제는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격려가 그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함께 달린 강도를 격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는 서로 격려하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얻는 격려는 지난 한 주간 사회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 교회에서 나누는 격려는 다음 한 주간 거친 세상에서의 삶을 이길 수 있는 영양소가 됩니다.

교회에는 위로부터의 격려, 주님이 주시는 격려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옆으로부터의 격려, 성도들이 서로 나는 격려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면 격려의 한 가운데 앉을 수 있어야합니다. 이웃돕기 운동을 늘 하는데 물질을 주는 것이 돕는 것의 전부는 아닙니다. 격려가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랑을 격려 합시다.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서로 돌아보며 사랑을 격려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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