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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사람, 바르실래 같이 (삼하 19: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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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우형 목사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네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함께 요단에 이르니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 세라 저는 거부인 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누를 끼치리이까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 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내가 너의 좋아하는 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바르실래의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비니 저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길르앗에 바르실래는 부유한 사람이어서 다윗 왕이 마나하임에 거할 때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윗이 왕위에 올라 그 아들 압살롬에 의하여 북으로 쫓겨 갈 때에 그가 나타나서 눈물을 흘리며 왕을 전송하였습니다. 얼마 후 다윗이 전쟁에 이기고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바르실래가 나타나서 왕을 맞아 함께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80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변함 없이 왕을 공궤하는 바르실래가 다윗 왕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함께 왕궁으로 가서 노후를 함께 지내자고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내 나이가 80인데 무슨 영화를 더 추구하겠는가 하고 사양하고 요단 강가에서 입맞추고 이별하였습니다. 다윗은 비록 전쟁에 이기기는 했지만 아들과 싸워 이겼으니 그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아들은 죽고 아들에게 반역을 당한 다윗의 마음은 참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때에 옛날 젊어서부터 공궤와 사랑을 나눈 바르실래를 만났으니 참 마음이 크게 위로가 되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은 우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며 다윗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지난주는 그립던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민족의 명절 설을 지냈습니다.
그립고 좋은 부모와 형제와 친지를 만나서 그동안 삶에 찌들어 여러분들의 무겁던 마음에 많은 위로와 기쁨을 찾으셨을 줄로 압니다. 이렇듯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축복이 있으므로 평생을 더불어 살아야하는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을 꼭 누리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사람되셔서 여러분을 만나는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아울러 여러분도 좋은 사람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윗이 만난 좋은 사람 바르실래를 소개하며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들으시고 그렇게 사셔서 참좋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좋은 사람은 언제나 변함 없는 사람입니다.

바르실래는 80세의 노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젊을 때에 어려움에 처한 다윗과 교분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김을 당하던 시절에 바르실래의 도움이 다윗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는 넉넉히 짐작이 됩니다. 그래서 그때의 교분을 본문 32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 세라 저는 거부인 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삼하 19:32)
그리고 후에 다윗은 왕이 되고 그 후에 또 다윗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북으로 쫓겨가게 되었습니다. 이때에도 바르실래는 북으로 쫓겨가는 다윗을 마중 나와 눈물로 전송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다시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요단강을 건너는 다윗을 도와주기 위하여 또 다시 나와 왕의 도강을 돕게 되었습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네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함께 요단에 이르니(삼하 19:31)
참 다윗에게 있어서 바르실래는 너무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권세가 있을 때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어려움이 없을 때에는 조용히 고향에서 지내다가 다윗 왕이 어려움을 당하기만 하면 왕을 찾아와 물질적으로 마음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이 변함 없는 삶이 바로 좋은 사람의 표상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업을 돕고 교회가 어려울 때는 교회를 헌신적으로 돕고 교회가 평안할 때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숨어 봉사하며 충성하는 바르실래 같은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이 살맛 나지 않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이런 좋은 사람이 너무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권세 있고 조금 재산이 있으면 주변에 사람이 들끓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고 어려움에 처하면 언제 그랬느냐 하고 세상 인심이 변하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너무도 많이 경험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소망이 가득 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땅에 우리를 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일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주인을 섬겼던지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바로 아브라함의 가정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이제 엘리에셀은 주인의 재산을 상속할 상속자의 자리에서 다시 종의 자리로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신세를 한탄하고 이삭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변함 없이 무려 40년이 지나도록 그의 충성은 변함이 없이 아브라함을 섬기고 충성했습니다. 그 후로 그런 엘리에셀을 보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여 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며느리 감을 구해오는데 자신이 늙어서 못 가면 아들을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의 변함 없는 충성을 보고 그는 자신의 마음과 뜻을 너무도 잘 알 것이라고 믿고 그 어려운 사명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리브가라는 좋은 며느릿감을 구해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참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이 명절 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바르실래 처럼 변함 없이 남에게 덕을 끼치고 행복을 주는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좋은 사람은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바르실래의 이런 변함 없는 헌신을 경험한 다윗은 그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신의 왕궁에서 함께 살자고 권면했습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삼하 19:33)
이런 놀라운 영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 아들만 되어도 그 옆에 붙어 아양떠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생기는데 왕궁에 가서 왕 같이 살수 있는 일이 어찌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노년에 부귀영화와 권세가 함께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르실래는 이 다윗의 제의를 사양하였습니다.
사양한 이유를 바르실래는 본문에서 몇 가지로 설명합니다.
1) 자신이 늙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바르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삼하 19:34-35)
2) 자신이 늙어 왕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누를 끼치리이까(삼하 19:36)
3) 어떤 대가를 바라고 충성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 뿐이어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 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삼하 19:36)
자신이 늙어 노후를 집에서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나이 많음이 왕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대신 오히려 누를 끼칠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자신의 충성은 신하된 도리로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하며 다윗의 선대를 사양하는 바르실래의 모습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의 표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면서도 또 다른 때에는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복을 받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고 또한 내가 바로 그 좋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감은 화학색소를 사용해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때입니다. 얼마나 색소가 진하고 강한지 일을 마칠 때가 되면 온몸이 검둥이가 됩니다. 어느 날 중학교 3년 동안 단짝인 친구가 서울에 와서 제게 전화를 해서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연탄불에 물을 데워 머리와 얼굴을 씻고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버스를 탔는데 안내양이 돈 받으러 와서 넋을 잃고 내 얼굴을 쳐다봅니다. 커피숍에 가니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와서 주문은 안 받고 내 얼굴을 정신 없이 쳐다봅니다. 저는 제가 너무 잘 생겨서 아가씨들이 정신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혼자서 차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잘 생겼기에 아가씨들이 정신을 잃는가 하고 거울을 봤습니다. 세수나 머리를 감을 때 눈을 꼭 감고 하지요? 화학색소가 속 눈썹 위에 까지 날아와 앉았는데 눈을 감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니까 거기의 색소가 않 씻어지고  오히려 물기를 먹어 더 검게 칠해진 겁니다. 요즘 여성들이 마스카라라는 눈화장을 하는데 지금부터 40년전에 남자가 그 화장을 하고 나갔으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미친 사람인가하고 쳐다본 것인데 저는 제가 잘 생겨서 그런 줄 알고 퇴계로 대한극장 앞을 활개치고 다녔습니다. 자신을 모른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바르실래 같은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신의 장점도 알고 자신의 단점도 알아서 장점을 발휘할 때에는 앞장서서 충성하다가 자신의 단점이 부각될 때에는 겸손히 뒤로 물러서서 더 좋은 일을 이루는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좋은 사람은 더 좋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바르실래는 다윗 왕이 외롭고 힘든 처지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신하들은 분명히 옳지 않은 압살롬의 행동을 보고도 앞으로는 다윗의 세력은 떨어질 것이고 젊은 압살롬이 왕이 될 것이기에 그 압살롬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부귀영화를 얻고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따라 불의를 행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다 벌한다면 전쟁보다 더 큰 환난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함께 정치를 하게 될 때에 다윗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답답함을 함께 이야기하고 마음을 풀 사람으로 바르실래의 동행을 요청한 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이 다윗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잠깐의 마음을 푸는 늙은 자신보다는 왕을 도와 더 큰 정치를 할 젊은 일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김함이라는 젊은 일꾼을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삼하 19:37)
그래서 다윗은 바르실래의 마음을 알고 김함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의 세 번째 요소는 나만 제일이고 내가 하는 일은 좋고 남이 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트집잡고 비방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볼 줄 알고 그들에게 내 일까지 맡겨 더 큰 역사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르실래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은 어려울 때마다 그의 도움을 받았고 위로를 받았으며 힘을 얻고 좋은 인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바르실래 같이 좋은 사람을 볼 줄 알고 그런 사람을 내가 가질 좋은 자리에 추천하며 내 자리를 양보할 줄 아는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디옥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자 예루살렘교회에서 바나바를 초대 교역자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신실한 사람인지라 열심히 목회하여 교회가 부흥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바울을 불러와서 함께 사역하자 안디옥 교회는 더욱더 부흥하여 교회의 중심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오는 놀라운 열매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한 바나바가 바로 좋은 사람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많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옆에 있는 사람도 좋은 사람 좋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40년 전에 서울 고척동에 사는 친구 집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옛날이니까 그곳은 시골보다 더 낙후된 동네인데 친구 방에 30와트 전기가 들어왔는데 불빛이 너무 흐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기회사에서 보내는 전기가 아니고 동네 큰 고목나무에 전깃줄을 매어놓으면 전깃불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나는 도무지 믿어지지 아니해서 친구와 같이 전깃줄을 따라 가보니 정말 고목나무에 전깃줄을 매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친구네 집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전깃줄을 나무에 매어 쓰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어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돌아왔습니다. 작년에 책을 보다가 40년 만에 의문이 풀렸습니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곳에 가까이 다른 전선을 놓아두면 전류가 그 줄로 옮겨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전자기 유도현상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고목나무 위로 고압전기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무에 전깃줄만 매어놓아도 전기가 흘러 들어가 방에 불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전자기 유도 현상이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믿음이 좋아지고 조는 사람 옆에 있으면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졸게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그 옆에 계속 좋은 사람이 유도현상을 따라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결단하셔서 변함 없는 사람, 자신을 아는 사람,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면 우리 교회는 모두 좋은 사람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좋은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어려운 교육관 건축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르실래 같은 좋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좋은 사람이 이 제단에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내가 바르실래 같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하시고 그렇게 행하셔서 모두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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