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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신 10: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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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지난 주일에는 “고통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한 분이십니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으시는 분이시고 고향과 집을 떠나 유리 방황하는 나그네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으시는 이상한 분이십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는 주제를 가지고 18번 째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하게 느끼고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의 동생들이 셋이나 있었는데 어머니는 저를 제일 많이 사랑했습니다. 제가 사랑을 받을만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방 청소도 했고 이불도 잘 개었고 공부도 잘 했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서 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가 집에 밤 늦게 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시골에서 잠시 살았고 제가 초등학교 1,2학년이었는데 제가 밭에 나가서 조그만 배추를 뽑아다 배추 국을 끓여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놀라면서 저를 많이 칭찬해주셨습니다. 제가 사랑을 받을만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저를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려면 사랑을 받을만한 짓을 많이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사랑 받을 받을만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시는 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나그네들을 사랑하십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한 평생 장막을 치면서 나그네 생활을 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창23:4). 아버지 아브라함을 본 받아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팠던 이삭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창26:22-24). 고향과 집을 떠나 한 평생 타향살이와 나그네 생활을 한 야곱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고향과 집을 떠나 한 평생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한 요셉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아기 때부터 부모의 품을 떠나 이곳 저곳으로 쫓겨 다니면서 한 평생 나그네 생활을 한 모세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사울왕을 피하여 이곳 저곳으로 도망 다니며 나그네의 생활을 한 다윗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시39:12).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29:15).

  신약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고향과  집을 떠나 한 평생 장막을 치면서 나그네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집을 떠나 땅에 오셔서 나그네 생활을 하셨습니다. 아기 때부터 애굽으로 피난 가서 나그네의 생활을 하셨고 소년 시절에는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수의 일과 집 짓는 일을 하셨고 공생애 때에는 머리 둘 곳이 없는 나그네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소리를 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사도들은 모두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생활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문자 그대로 장막을 치면서 나그네 생활을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루디아도 브리스길라도 에바브로디도도 모두 고향과 집을 떠난 나그네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라 선교사는 고향과 집을 떠나 한국에 와서 한 평생 나그네의 삶을 살았고 저들은 물론 저들의 자손들까지 한국 땅에서 살다가 한국 땅에 묻혔습니다. 저들의 묘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있습니다. 우리 허충강 선교사나 박윤애 선교사나 남현숙 선교사도 고향과 집을 떠나 5년 10년 15년 나그네의 생활을 했고 황인범 군은 수 개월 동안 캄보디아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주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나그네의 생활을 하고있는 황인범 군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사랑하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특별하게 사랑하실까요? 나그네의 생활이 외롭고 괴롭고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보다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그네란 말은 ‘떠난 사람’이란 말입니다. 고향과 친척과 부모와 집을 떠난 사람이란 말입니다. 고아는 부모를 떠난 사람이고 과부는 남편을 떠난 사람이고 나그네는 고향과 집을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떠난 사람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푸신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세상에 붙어서 살 존재가 아니라 조만간 떠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떠남을 미리 실천하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그네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나그네들을 특별하게 사랑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면 문자 그대로 선교사들처럼 나그네의 생활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나그네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신자들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했고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소 아시아 곳곳에 흩어져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1:1,2). 그리고 그들에게 “나그네와 행인 같이”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즉 떠남의 삶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육체의 정욕으로부터 떠남의 삶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땅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그네처럼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밷후3:11-13).

  사도 바울도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분부했습니다(골3:2). 한 평생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나그네로 살았던 사도 바울은 세상과 세상 일에 대해서 허무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세상의 물건과 사업과 가족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떠나는 초연의 삶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7:29-31). 좀 지나친 입장같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나그네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과 천국에 집착하여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다고 생각합니다.

  나그네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세상과 사람 의식에 사로잡혀 살지 않고 하나님과 천국 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과 사람 의식이 점점 사라지고 하나님과 천국 의식이 점점 충만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제 새벽 다윗의 하나님 의식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아니 한 주간 동안 매일 새벽 다윗의 하나님 의식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다윗은 노래를 하든지 시를 쓰든지 기도를 하든지 온통 하나님 의식으로 충만했습니다. 어제 새벽에 읽은 시144:1-3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12 가지로 묘사했습니다. 입을 열면 그저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허무하게 기술했습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144:4). 시편39편에서도 다윗은 세상과 인생을 허사뿐이고 그림자 같고 헛되다고 기술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대화는 거의 하지 않고 정치 경제 건강 음식 여행 농담으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세상 의식에 사로잡혀서 사는 땅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목사는 물론 장로나 권사들이 모여서 무슨 대화를 하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정체성이 정해진다고 하겠습니다. 항상 하나님 의식에 사로잡혀서 사신 박윤선 목사님은 교수들이 모여서 이 세상의 이야기를 하며 농담을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항상 주님과 천국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일은 시시하게 생각하면서 한 평생을 나그네로 사셨습니다. 돈에 대한 애착도 없었고 집에 대한 애착도 없었고 명예에 대한 애착도 없었고 놀러 다니고 구경 다니는 것에 대한 애착도 없이 오직 ‘주님, 주님’ 하고 중얼거리면서 나그네로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기풍 목사님이나 이성봉 목사님도 세상에 대한 애착은 모두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천국을 바라보면서 나그네로 한 평생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나그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10:19). 하나님은 자기의 모습을 따라서 그리고 자기의 분부를 따라서 나그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신약 성경 요한 3서에 가이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가이오가 하나님의 칭찬과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유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나그네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요삼5,6). 결국 가이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과 삼중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몸과 영혼이 강건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칭찬과 축복을 받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받을 사람들이 세상에서 한 일들 중에 하나는 나그네를 영접하고 대접한 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저는 최근에 여러분들과 함께 중국에 있는 200여명의 고아 학생들과 고향과 집을 떠난 나그네 조선족 동포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일에 참여하면서 얼마나 큰 기쁨과 보람을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들이 보내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얼마나 큰 감동과 보람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동아려 량신복 렴춘희 리예란은 저에게 가끔 편지를 보냅니다. 여기 리예란 학생이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그리운 아버님께: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옥체건강하시는지요? 오늘도 그 어디에선가  묵묵히 세상 불행아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님이 무척 그립습니다. 저는 그동안 아버님의 크나큰 사랑의 힘에 의지하면서 근심 걱정 없이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현재는 겨울 방학이라 저는 스스로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저 아르바이트도 하고 가정교사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님, 오라지 않으면 한해동안에서 제일 큰 명절인 설입니다. 올해 따라 명절을 맞는 기분이 예전과 완전히 다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비근심, 생활근심에 더욱이는 마음 구석에 정신적인 의지가 부족하여 외롭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쓸쓸한 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아버님의 존재가 저에게는 크나큰 정신적 의탁과 행복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저는 아버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더욱더 충실하게 살아가고, 더욱더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으로 아버님께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아버님, 저는 이렇게 저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준 아버님을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아버님과 맺은 이 인연을 하늘이 저에게 준 축복과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아버님, 저는 이 은혜를 꼭 잊지 않을 것이며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한해에는 저와 같은 불행아들이 더욱 많은 사랑을 받을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빌겠습니다. 끝으로 아버님의 하시는 일이 뜻대로 되시길 바라고 옥체건강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고맙습니다.  2005년 2월 6일 딸 예란 올림.”

  “사랑하는 딸 예란에게, 예란이가 보낸 메일을 벌써 반갑게 받아보았지만 요사이 너무 바쁜 일이 많아서 이렇게 답이 늦어졌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주 잘 있다. 예란이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고 지금 아르바이트도 하고 가정교사도 한다니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예란이는 생각이 깊고 마음이 착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예란이를 더욱 더 사랑한다. 그리고 이번 설을 행복하게 보낸다니 너무 좋다. 예란이가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하고 있는데 특히 강변교회의 백경자 집사님에게 감사를 하기 바란다. 백경자 집사님이 예란이를 많이 사랑하며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성경책을 구해서 요한 복음부터 열심히 읽기를 바란다. 새해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사랑한다. 2005년 2월 12일 김명혁 목사” 

  하나님은 고아와 나그네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향해서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와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그네로 살든지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든지 나그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느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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