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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리아산 (창 22:1~2, 히 1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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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설교 : 고신일 목사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장 1~2절)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1장 17~19절) 

<목회기도>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맘껏 누리며 살게 하심 감사합니다.
2005년, 벌써 두 달을 살았습니다. 이 주간에 3월을 맞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크신 은혜지만… 3월이 더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평안과 감사가 넘치며 승리의 간증이 있는 삶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병들어 몸이 괴로운 이들이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으로 주저앉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몸살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고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때문에 흔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막히고 묶인 일로 답답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뵈옵는 이 거룩한 예배를 통해 회복과 치유의 기쁨을 주시옵소서.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들에게서 오는 소식이…  복된 소식, 좋은 소식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부족한 종을 세우셨사오니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복된 날입니다.]
옆의 분들과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복된 날입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성경과 찬송가를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비치되어 있는 성경책과 찬송가는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자신의 성경,찬송을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2005년 들어 [산에 오를 자]로 시작하여
- 에덴 동산(아담과 하와)과
- 아라랏산(노아)을 가 보았습니다.
- 오늘은 [모리아] 산에 가서(아브라함)을 만나보려 합니다.
 
구원의 크신 역사와 성경에 소개된 위대한 인물들의 삶은
대부분 산(山)과 관련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오르려는 모리아 산을 통해 여호와 이레('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의 복을
확신하는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의 시험
 
아브라함은 사라와 결혼하여 75세가 되기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창11:30, 12:4)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75세 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는 축복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려면…' 자식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있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더 먹어 늙어 가고 아내 사라의 몸에는
'경수'(經水:월경 경,물 수/생리)가 끊기고(창18:11),
하나님으로부터 후손의 약속을 받은 지도 2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겠다고 다시 말씀 하셨습니다.(창17:16)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창17:17) 했고
아들을 낳을 것이란 소리를 들은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창18:12)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을 넘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은 100살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25년 만에…  아들 '이삭'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기준과 판단, 지식과 경험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랄 만한 은혜로 아들을 얻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늦둥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아들 이삭을
'번제'로 태워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번제(Burnt offering)
 
번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올라'(olah)는
연기가 제물로부터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삿13:20참조).
번제는 버려질 더러운 부분을 제외하고는
희생 제물 전체를 태워 드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완전함 또는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번제를 드리는 방법은, 번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은 출애굽기 29:38~46과
레위기 1장, 6:8~13, 그리고 민수기 15:1~1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제 예배자가 성막 문 앞으로 희생 동물을 가져와
자신의 손을 그 머리위에 얹었습니다(레 1:4).
이는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예배자의 죄가
동물에게 전이된 것을 상징합니다.
그 후 예배자는 희생 동물을 번제단 북쪽으로 가져가 잡았으며(레 1:11),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잡을 때에는
번제 단 위에서 목을 비틀어 잡았습니다(레 1:15). 
번제에 있어서는 오직 새들만이 제사장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나머지는 예배자가 직접 죽였습니다(레 1:5, 11, 15)
 
<번제로 드릴 수 있는 동물>
수소, 수양, 수염소가 드려질 수 있었으며, 가난한 자들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레 1:14; 5:7; 12:8; 14:22).
희생동물은 완전한 수컷이어야 했으며, 반드시 '흠 없는 수컷'이어야
했습니다(레 22:20l 말 1:8). 새들은 암컷이나 수컷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피가 제단 위에 뿌려지는 것은 필수적이었는데,
피는 제사장에 의해 번제단 사면에 뿌려졌습니다(레 1:5, 15).
그리고 예배자가 희생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 지체를
자르고 물로 그것들을 씻은 후, 동물은 모두 제사장에게 옮겨졌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것을 취해 제단 위에 놓고 완전하게 태웠습니다.
동물의 가죽은 봉사의 대가로 제사장이 가져갔습니다(레 7:8).
-「비전 성경사전」참조 - 
 
여러분, 상상이 갑니까?
성경이라고 그냥 읽고 듣지 마시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이 갑니까? 이해가 가요?
그러나 1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2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괴롭히려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앙과 믿음을 보시기 위한 시험(Test)을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존 탬플턴(John M. Templeton)은
"마음에 품은 생각은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입으로, 말로, 표정으로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떤가 확인해 보시려고 시험하셨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까지는 약 80km정도인데
옛날에는 3일정도 걸렸던 길이었습니다.(창 22:4)
우리말에「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라고 답했더라도… 충분히 갈등할 수 있고,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기간(3일)이 필요한 모리아산으로 가라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험은 잔혹한 것이었고 따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
 
순종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에서 제자가 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수도원 원장은 사람들에게 씨앗을 나눠주며 씨앗을 거꾸로 땅에 심으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수도원에 제자가 되기 원하여 찾아온 두 청년은 밭으로 갔습니다.
한 청년은 수도원 원장의 말대로 씨앗의 꼬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심었고,
다른 청년은 씨앗을 심는 방법을 알았기에 원장의 말과는 반대로 바르게 심었습니다.
원장은 두 청년의 행동을 살펴보고는,
두 번째 청년, 꼬리가 땅을 향해 심은 청년을 향하여
"청년처럼 똑똑한 사람은 혼자 가서 사십시오.
  당신은 선생으로서의 자격은 있어도 제자로서의 자격은 없습니다.
  내가 거꾸로 심으라고 했으면 이치에 맞지 않아도 내 말대로 해야 합니다."라고 하며
집으로 가라고 헸습니다.
그 시험은 원장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시험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자신의 생각/경험/지식/판단… 모두 버려야 가능한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믿고 순종하기 곤란한 것으로…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고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았습니다.
토를 달지도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누구와 의논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방법대로 해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받은 명령대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셨다면 그것은 시험이 아니라 숙제입니다.
숙제와 시험은 다른 것입니다.
순종은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유를 말씀하지 않은 이유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3절 보세요.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22:3)
그리고 3일 길을 간 뒤에 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22:6)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순종이 가능했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직접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여러분의 가정의 부모 자식 관계도,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가 있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하나님의 약속
 
믿음에는 두 가지의 큰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면 보응하시는(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19절에 보면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11:17) 했고
18절에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11:18) 했습니다.
여기 "이미" 말씀하셨다는 말씀은 창세기 21장 12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21:12)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 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었습니까?
히브리서 11장 19절을 봅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11:19)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씨로 인해 후손이 퍼져나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삭을 살려 줄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5절 보세요.
  "…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창22:5) 했습니다.
이 말을 영문성경(NIV)에 보면
  "We will worship and then we will come back to you."
이 한 문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담긴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예배하고」--- We will worship
「우리가 돌아오리라」- We will come back to you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We will worship
「내가 돌아오리라」 --- I will come back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오늘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여러분,
인터넷에 접속하여 모니터 앞에 앉아 계신 분들,
비디오 테이프를 보시거나 녹음 테이프를 들으시는 분들, 여러분 모두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확실히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기독교 구원의 진리와 영생의 복이 모두 성경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신앙인(信仰人), 크리스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
우연히 오셨어도… 가정의 화목을 위해 1시간 인내하며 앉아있다고 가려고 오셨어도…
구경하러 오셨어도… 이 교회, 저 교회, 비교해 보려고 오셨어도 좋습니다.
오늘 이후 다시 기둥교회에 발을 디디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 이레
 
여기,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대화를 보십시오.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22:7)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답하기를
  "…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8) 했습니다.
그리고 9절, 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어 단 위에 놓고,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 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3장 1절에 보면, 이삭의 어머니 사라가 127세에 죽었습니다.
그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였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 창세기 22장의 사건은 사라가 죽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묶었을 때는
아브라함은 100세가 훨씬 넘은 노인이고 이삭은 건장한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이삭이 직접 나무를 지고 간 것을 보면
충분히 성인/청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반항했다면 100세 넘은 아브라함이
청년 이삭을 묶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만큼 이삭의 순종도 귀하게 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청년 이삭은 8절에 담긴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 (창22:8)
칼을 들고 이삭을 잡으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11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제 인정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함으로 비로소 온전한 믿음의 단계로 접어 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대로(창22:8)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릴 수양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습니다(창22:13절).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수가 좋았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도 재수도 아닌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땅의 이름을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뜻의
"여호와 이레"(Jehovah jireh, The Lord Will Provide)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가를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2)
또한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허락하시려고 시험하시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마귀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지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여러분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때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신앙심이 있는 흑인이 백인집의 하인으로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사냥을 좋아하여 늘 흑인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가면서 주인이 흑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늘 시험을 당하였다고 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이 없는데."
  흑인이 대답하기를
    "주인이시여, 노하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지금 저기에 있는 꿩을 쏘아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한 쪽 다리에 총을 맞아 달아난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것을 먼저 잡으시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주인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물론 다리에 총 맞고 달아나는 산 놈을 따라가 잡을 것이 아니냐"했습니다.
  그 때 흑인이
  "옳습니다. 주인님은 이미 그 영이 죽었으니 마귀가 잡으려고 시험할 필요가 없고,
    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니까
    마귀가 잡으려고 별별 시험을 다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 시험에 드셨습니까?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흔들어 보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보리가 올라올 것입니다.
<보리 이삭이 잘 자라면 한 포기에 450알이나 열립니다.
그러나 처음 돋아난 줄기는 그렇게 많은 낱알을 떠받칠 수 없고
80알 내지 90알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보리가 싹을 내면 발로 밟습니다. 이 때 허약한 싹은 꺾여집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면서 전보다 더 강한 줄기가 됩니다.
그래서 몇 백알이 열려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보리 싹을 왜 밟는지 모르는 사람은 미쳤다고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밟아주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더 꼭 밟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셨음을 믿습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사람은 멸망의 저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영생의 주인공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찬송가 493장 4절 대로
  "주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따라가리라"고 찬송하는 것이고
401장 1절대로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의 장애를 두려말아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으로 시인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처럼 "믿고 순종"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교회에서 목회자의 가르침에 그대로 따르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 놓치면 큰 일나지'하며 꼭 붙잡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하나님을 붙잡고 사시기 바랍니다.
 
<옛날 한 사람이, 혼자 처음 가는 가파른 밤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그는 넘어지면서 굴러 떨어지다 나무 뿌리를 잡고 매어 달리게 되었습니다. 
겨우 위기를 모면한 그가 소리를 치며 구원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점점 손목과 팔의 힘이 빠져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
결국 잡았던 나무 뿌리를 놓치고 떨어지는 순간
'이젠 죽었구나'라는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높은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높이는 겨우 1미터도 안 되는 곳에 몇 시간을 매달려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붙잡고, 그것을 놓으면 죽는 줄 알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놓아야 삽니다.
여러분이 잡고, 의지하며 사는 것 그것을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순종하며 올라야 할 모리아 산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믿고 순종하며 올라야 할 모리아 산이 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믿고 순종하며 올라야 할 모리아 산이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믿고 순종하며 올라야 할 모리아 산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모리아 산 등정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시편 24편 5절 말씀의 복을 받습니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5)
여러분, 2005년 여호와의 "산에 오를자" 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모리아산에 믿고 순종하며 올랐던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여러분,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귀로만 듣고 그치는 자가 아니라
가슴에 담게 하시고 생활속에 실천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외면하고 다른 것을 붙잡고 있다면
놓고 하나님의 말씀 붙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습관적으로 예배 드리고, 예배에 참석했다 모두 잊고 돌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말씀을 가슴에 담고, 말씀대로 살기를 결단하고 돌아가는
믿음의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2월 27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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