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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자유 (요 8: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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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누구나 다 자유를 원합니다.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가요! 그러나 그 자유가 나를 망하게 할 수도 있고 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유를 사용할수록 점점 자유가 줄어들 수도 있고 점점 자유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병든 자유로 후자는 건강한 자유라 분류해봅시다.

좀 더 설명해 볼까요? 피곤하면 누워서 잠 잘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그럴 수 있지요. 아니 매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돈은 얼마든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매일 누워 잠자고 쉬니까 좋을 것 같죠? 천만에요. 점점 더 피곤해지고 지루해지고 우울해집니다. 마음은 어두워지고 나쁜 것만 생각합니다. 병든 자유가 됩니다.

매일 누워서 빈둥거리다 보니 몸이 약해집니다. 체력이 점점 떨어집니다. 뼈도 근육도 줄어들고 체중은 점점 늘어요. 정신이 약해집니다. 이제는 더욱 더 빈둥거리고 싶어집니다. 병든 자유는 더 많은 병든 자유를 요구합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건강한 자유를 억압하게 됩니다. 나가서 뛰고 싶고 골프도 치고 싶지만 그럴 엄두가 안 나게 되는 거지요.

1. 죄인의 자유는 망하게 한다

그러니까 중독으로 가는 것은 모두가 다 병든 자유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 같아도 결국에는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지난 번 학부형 회의에 가보았더니 한 젊은 아버지가 담배를 피면서 말합니다. “우리 애가 이거만은 안 배웠으면 좋겠어요. 중독이 되거든요.” 성인이라고 마음대로 하다 보면 그 자유가 곧 구속으로 돌아옵니다. 자유가 고통을 줍니다.

마음대로 한다고 독약을 먹거나 불에 뛰어드는 바보는 없지요?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살 싸이트에 빠지거나 마약을 하거나 가정을 버리고 방탕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닙니다. 병든 자유를 따라가다가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괴로워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습관이 되어 못 벗어납니다.

사실상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자유스러운 것 같지만 모두가 노예입니다. 처음 사람은 완전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었습니다. 자유를 바르게 사용했었더라면 하나님처럼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자유의 상실입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줄어들었어요.

그의 자유를 어떻게 사용했나요? 하나님이 되려고 도전합니다. 정당한 바른 자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병든 자유를 사용했습니다. 사단의 권고를 따릅니다. 하나님께 도전하여 금하신 과일을 먹습니다. 분명히 자신의 자유를 사용했어요. 하지만 그 자유는 참 자유를 빼앗습니다. 오늘날 방종과 방탕의 자유가 행복의 자유를 거두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병든 자유와 건강한 자유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하나님 명령을 선택하면 건강한 자유가 시작됩니다. 사단의 유혹을 따르면 병든 자유가 됩니다. 같은 자유가 이렇게 다릅니다. 같은 물이 독사에게는 독이 되고 소에게는 우유가 되는 것과 같아요. 얼핏 보면 건강한 자유는 억압 같아요. 그러나 병든 자유는 쉽고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억압이에요.

병든 자유는 사용할수록 더욱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 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 .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 .죄의 죄 법으로 나를 사로 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19, 23) 자유가 사망으로 이끕니다.

남편이 속 썩이니까 어떤 부인이 말합니다. “칼로 죽이고 싶어요.” 완전히 매였습니다. 하루 종일 남편 생각만 하는 겁니다. 그것도 나쁘게요. 벗어나질 못해요. 어떤 분은 돈 잃은 것만 생각하고요 어떤 분은 자식만 생각합니다. 남편이 늦게 오면 잠 안 오고 속상합니까? 식탁에다 적어놓으세요. “김치는 냉장고에. 나는 내일 새벽기도 위해서 먼저 잠.”

사람은 우주 만물의 주인입니다. 물론 자기 삶에서도 주인이지요. 사람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자유로워야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삶의 노예로 나타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3) 아무리 수고해도 결국 무의미입니다. 이 무의미의 자유가 인간이 가진 자유 전부입니다.

2. 건강한 자유에 머물기

우리는 너무도 병든 자유에 젖었어요. 실제 사실을 영화로 만든 내용입니다. 어떤 부부가 아프리카에서 길 잃은 사자 새끼를 만납니다. 데려다가 길렀어요. 잘 자라납니다. 얼마 뒤에 큰 사자가 됩니다만 성품은 완전히 복실이에요. 입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고 사람을 보면 그렇게 좋아해요. 누가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굶고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이 부부가 생각 합니다. “이 애가 사자로서 자유롭게 살려면 야성을 찾고 힘을 찾아 다시 사자로 돌아가야 한다.” 차에 실어 들판에 가니까 수사자가 있어요. 이 쪽도 알아보고 가서 애교를 부립니다. 그러나 저 쪽에서 냄새를 맡고는 금세 알아요. 전혀 상대를 안 합니다. 자꾸 귀찮게 하니까 화를 내고 물어요. 다른 사자들에게 시도해도 여전히 그래요.

그냥 들판에 놔두니까 거의 굶어죽을 상황이 됩니다. 그렇게 몇 년 부부와 사자가 죽을 고생으로 결국 백수의 왕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에 수사자를 한참 떨어진 곳에 두고 자기 새끼들을 데리고 자기 길러준 부부를 만나는 장면이 눈물납니다. 부부에게 달려들어 애정을 표현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 갑니다.

집안에 있는 사자는 싸울 필요가 없어요. 먹을 것 준비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나 사자는 넓은 들판에서 사자와 같이 있어야 사자이지요. 사자는 사자 일을 해야 사자이지요. 빠른 스피드와 용기로 들판을 지배해야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전에 하지 않던 일도 해야 하고 춥고 배고픈 들판에 나가야 합니다. 이 일을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왜 오셨나요? 왜 죽으셨나요? 이 못난 사자 같은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대신 당한 겁니다. 우리 사슬을 풀기 위해 자신이 사슬에 묶였습니다. 우리를 죽음의 저주에서 건지려고 자신이 죽음으로 들어갑니다. 많이 불렀던 노래 있지요?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주 말씀하시길 죄 사슬 끊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그 자유가 어떤 자유입니까? 마음대로 하는 겁니까? 사단이 마음대로 한다면 그건 오직 악뿐입니다. 예수께서 마음대로 하시면 오직 선뿐입니다. 가시나무는 힘을 낼수록 가시가 많아집니다. 포도나무는 힘을 낼수록 포도가 많아집니다. 먼저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세요. 예수 마음으로 마음대로 해보세요. 그러면 오직 건강한 자유만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의 자유가 어떤 것일까요? 야심이 일어나고 욕심이 일어납니까? 미운 놈이 욕먹고 망하기 바랍니까? 이성 보면 이상한 마음이 일어납니까? 걱정 근심이 끊이질 안나요? 그래서 잠을 못 자나요? 예수는 자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성을 자매로 대합니다. 아무 것에도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고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유지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선을 행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병을 고치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줍니다. 간음한 여인이 회개하고 일곱 귀신 들린 사람이 변합니다. 폭풍을 잠잠하라 하고 죽은 자를 일으킵니다. 보리떡 몇 개로 오천명을 먹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음을 이기고 지옥을 깨뜨립니다. 그가 말합니다. “나를 믿으면 너희도 나처럼 자유롭게 된다.”

3. 제자와 건강한 자유

예수의 건강한 자유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온 세상 사람이 어둠의 그늘에 눌려있습니다. 예수는 건강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려 오셨어요. 남이 잘 되는 것 보고 배 아프지 않고 기뻐해주는 넉넉한 자유, 육신 마음대로 하지 않고도 행복한 자유를 누리고 싶지 않으세요? 예수의 그 건강하고 복된 자유를 누리고 빛나게 살고 싶은가요?

그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여기 참된 자유, 건강한 자유가 나옵니다. 진리를 알 때 그 힘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진리를 안다는 것은 경험해서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여인이 남자를 아는 것과 같아요. 머리로만 피상적으로 아는 게 아닙니다. 힘을 발해야지요.

그러려면 그의 말에 거해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라는 말에는 훈련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제자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3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적용하며 실습을 한 것이지요. 병든 자유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앞의 사자도 여러 날을 적응 훈련을 했습니다. 그래서 초원의 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지요.

건강한 자유는 훈련해야 됩니다. 발레하려면 간단합니다. 자연스런 포즈를 취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게 쉬운가요? 그냥 하면 다 어색한 포즈가 됩니다. 죽도록 연습을 해야 조금 자연스럽게 됩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강수진이 세계적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서운 훈련이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발레의 혼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늦게 열두 살에 시작했지만 37세 된 지금 유럽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어요. 독일 공익광고에, 새로 개발한 난에 그의 이름이 있어요. 그의 연기는 참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아무렇게나 해도 완전한 조화가 있고 힘과 영감이 있습니다. 무서운 훈련이 중요합니까? 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발레가 그의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건강한 자유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설교 하나 하더라도 피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자유의 능력을 발하려면 피나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훈련만으로는 자유에 도달 못해요. 자유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입니다. 예수처럼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의 말씀에 거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먹고 자고 움직이세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5) 한 구절에만 집중해도 엄청난 능력이 나옵니다. 예수와 나는 같은 신분이요 한 몸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통해 말하시고 행동하시고 병 고치심을 늘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변하고 병이 나아요. 마음이 예수처럼 되어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부디 그렇게 되세요.

QT질문: 1. 나의 힘만으로도 건강한 자유를 발휘할 수 있는가? 2. 내게 습관된 병든 자유는 무엇이 있는가? 3. 예수가 발휘하고 누린 자유는 어떤 것이었던가? 4. 내가 원하는 건강한 자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누릴 수 있을까? 5. 강수진이 발레의 달인이 된 과정과 근본적인 원동력은 어떤 것인가? 6. 신앙과 아름다운 삶의 자유를 위한 내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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