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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놀라게한 믿음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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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 주님을 놀라게한 믿음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마 8:5-13)

1. 백부장은 로마 군인장교이었습니다.

부하 100명을 거느린 장교였으니, 우리나라로 보면 중대장 격에 해당되는 장교이었습니다.
평화시대에는 중대장이 뭐 그리 대단한 것 같지 않지만, 전쟁시에는 중대장은 막강한 지휘관입니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중대장은 매우 중요한 지휘관이며 직결처분권까지 부여받고 있는 높은 자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에 정복당한 식민지 국가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하는 약소국가이었습니다.
더욱이 로마황제는 신이라고 하여 그에게 절하도록 강요하였기에, 유대인들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 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저항운동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런 약소국가에 주둔해 있었던 강대국의 군인 장교가 하찮은 정복국의 종교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도와주었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 본문은 이름은 나타나지않고 있지만, 한 로마군인 장교가 예수님으로부터 최대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보아서 우리가 한번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께로부터 칭찬받을만한 믿음이 있는가 하면 책망들을 믿음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 포도원 비유, 목자 비유 등에서 칭찬과 책망이 나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말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의 믿음이 유대인보다 더 위대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 교훈을 찾게 됩니다.
오늘의 유대인은 누구를 의미하고 이방인은 누구이겠습니까?
교회에 적을 두고 사람들 앞에서 외형적으로는 교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교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방인이란 교회에는 적을 두지 않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서 생활 속에서 진실 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숨겨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숨겨진, 진실 된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는 안 나와도 좋다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우리끼리 우리의 믿음을 반성해 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교회에 적을 두고 있으나, 사실 백부장 보다 못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입니다.

2. 백부장은 믿음에 관한한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었습니다.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로마군인의 신분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정복국의 하찮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민족의 종교를 무엇 때문에 신봉하겠습니까?
더더욱 로마군의 장교에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 관하여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로마는 세계를 정복한 국가였습니다.
최강대국가였습니다.
당시 피정복국의 모든 것은 전리품처럼 취급하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유대인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다면 로마군인중에서도 특별한 군인이었습니다.

제가 6.25때 북한에서 본 것과 같은 그런 군인이었을 것입니다.
유엔군과 국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때입니다.
우리 고향은 평양에서 약 120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시골 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시골이니 교회당이 클 리 없었습니다.
1.4후퇴 당시만 해도 북에도 교회는 있었습니다.
기독교연맹에 가입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던 때이었기에 아직도 예배도 드릴 수 있었던 때이었습니다.

그런데 국군이 진격해 들어오는데, 처음 우리는 모두 산으로 피신해 있었습니다.
다음날 내려와 보니, 교회에 몇몇 군인들이 들어와 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장교계급장을 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이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음으로 한편으로는 감격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유대인들로서는 로마 군인 장교이었던 이 백부장이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위한 회당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교회를 지어 주었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로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또 유대인 편에서 보면 로마사람들에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을 개(犬)처럼 경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과는 함께 자리에도 앉지 않았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로마 장교인 백부장을 존경했다면 틀림없이 백부장은 보통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열린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피정복국의 종교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하여 눈이 열렸고,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확고한 메시아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오면 새로운 세계 질서가 생길 것을 미리 내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나사렛 예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3. 백부장은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위가 높아지면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좀 높아지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깔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밑에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지독하게 무정하기 쉽고, 위 사람에게는 아부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기 가족도 아닌 부하가 병들은 것을 보고 예수를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하를 사랑했던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요즘 말로는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권을 무시하는 독재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우리가 민주주의를 신봉합니까?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진 것이 있으면 사람들을 외모로 보기 쉽습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우선 돈을 보고 사람을 평하기 쉽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보고 평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사람을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그는 최대의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대하였습니다.
로마의 높은 권력 앞에 예수가 무엇이 그리 대단한 존경의 대상이 될 수가 있었겠습니까?
솔직히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반성해 보게 됩니다.
그는 주님께 대하여 최대의 예우를 갖추었습니다. 존경하면 그 말투부터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고...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 들일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새번역)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군인이었기에 믿음도 군대식이었습니다.
군대는 명령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었기에 말씀으로만 한 마디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랄만한 믿음이었습니다.

목회생활에서 보면 교인들 중에도 믿음이 여러가지임을 볼 수 있습니다.
심방을 와달라는 사람들 중에는 꼭 안방에 들어와 기도해 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기도하여도 하나님은 다 들으시고 역사하시지만, 사람인고로 직접 와서 만져 주기를 원하는 것이 상정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자기 어린 아이들을 주님이 한번 만져 주기를 원해서 주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것을 제자들이 막았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어린이가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돌이켜 이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로 한 마디 보다는 직접 와서 손을 얹고 기도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백부장의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어느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돼지를 기르는 교인이 갑자기 새끼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안갈 수 없어 가서 기도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강한 높은 지위에 있었던 백부장이 아무런 세상의 권력도 없는 농촌 출신의 젊은이 나사렛 예수를 그렇게 존경하여,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하는데, 감히 내 집에 오심을 내가 감당치 못하겠으니, 다만 말씀으로만 해 달라고 했으니, 이 이상 더 큰 믿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백부장을 향하여 주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할 때 곧 그 하인이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백부장의 믿음은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을 감동시킨 믿음이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것을 보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도 보통 사람들의 믿음과는 달랐습니다.
‘자녀의 손에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하였을 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을 때 주님이 놀랐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믿음은 지금 어떤 믿음이라고 보십니까?
주님께로부터 과연 칭찬을 받을만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덥지도 않은 뜨뜨미지근한 믿음입니까?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열심을 내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새 봄과 함께 우리의 믿음도 새롭게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3월의 대지처럼 생명력을 분출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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