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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가져 가리이다 (요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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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윤빈 목사 <[email protected]>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사건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첫 새벽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계신 무덤에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무덤 밖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울고 있는 마리아를 향해서 물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마리아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누가 내 주님을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하여 울고 있습니다."
이 말을 끝내고 되돌아서는 순간 마리아 앞에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기 앞에 서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빨리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으며 누구를 찾느냐고 묻습니다. 마리아는 묻는 그 분이 예수님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곳을 지키는 동산 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주여 당신이 우리 주님을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15절)하면서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여기 내가 "내가 가져 가리이다" 하는 이 말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져가리이다"는 말은?

1. 주님을 찾고 있다는 말입니다.

앞에 20:1-10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요한)은 달려와서 정말로 막달라 마리아의 말 데로 무덤이 비어있는 지만 확인하고 10절에 보면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찾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15절에 보면 "주여 당신이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고 하면서 찾고 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였다면 찾아야 되는데 그냥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기고 있습니다.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이 말은 주님을 찾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이런 말이 막달라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나와야 되는 게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주님을 찾았다는 말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주님의 일을 찾아서 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시키는 일도 안 하는데 어떻게 찾아서 하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꼭 시켜야 하는 사람이 있고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그러나 주님의 일은 찾아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의 능률도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찾아서 해야합니다.

2. 부담되고 맡기 싫은 일이지만 하고자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있어도 내가 싫은 사람은 옆에 있는 것도 부담입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옆에 있으면 즐겁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죽으면 가까이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여기 막달라 마리아는 죽은 예수님인데도 불구하고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했습니다. 부담되고 싫은 일이지만 하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먹는 일, 노는 일은 누구나 하기를 좋아하고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꼭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부담되고 하기 싫은 일이 있습니다. 주방 일, 청소하는 일, 전도하는 일, 기도하는 일, 임원을 맡는 일 부담이 되고 하기 싫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됩니다.
교회 일은 부담은 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3. 자원해서 했다는 겁니다.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이 말이 자원해서 나온 말이지 누가 시켜서 억지로 나온 말이겠습니까?
주님의 일은 자원해서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자원해서 하시기 바랍니다.

4.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참 사랑이 배어 있습니다.

이 말이 간단한 말 같지만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 속에는 주님께 대한 마리아의 진실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죽어 있는 시체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진실 된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리아는 특별히 예수님께 남 다른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눅8:2 막달라 마리아가 귀신에 들렸을 때, 그 귀신을 내어 쫓아 주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주변을 따라 다녔고 예수님께 정성을 다했습니다. 요19장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이 막달라 마리아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일찍 예수님의 묘지를 찾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 진실한 사랑으로 주님의 시체라도 보살피려고 했는데 그 시체가 없어진 겁니다. 예수님의 몸에다 뿌려 드릴 기름을 들고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가 없자 마리아는 무덤 안에 서 있는 두 천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시신을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사실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데 이것을 모르고 그 예수님께 그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던 겁니다. 이것은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말입니까? 무섭고 떨리는 일이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리아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넘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져 가리이다" 라고 합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두려움도 쫓아냅니다. 사랑하면 고통도 수고로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새벽 미명에 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무덤을 향해 갔다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마음에 가득하지 않고서야 어찌 갈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만 있으면 그 어떠한 두려움도 쫓아 낼 수 있습니다.
어느 아이가 자기만큼이나 커 보이는 아이를 업고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얘야! 그 아이가 무겁지 않니?" 그때 그 아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내 동생인 걸요!"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자기 힘에 부치는 벅찬 일을 하면서도 피로를 모릅니다.

교회 일은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교회의 물건 하나하나를 아끼고 교회를 정성껏 보살핍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관심도 나타내지 않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보다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충성합니다. 사랑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태도가 다릅니다.

5. 마리아의 "책임감"이 들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이 묻혀 있던 곳으로 가서 자기가 책임지고 정성을 다해서 잘 모셔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가져 가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주님의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그 책임감이 주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인데 지금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친히 모시겠다는 것이니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 대한 책임감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는 영광을 체험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 마리아와 같이 어려운 일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을 받는 일보다는 십자가를 지는 일에 앞장서는 그 신앙이 더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조국에 전쟁이 발발하면 먼 외국에 있는 젊은이들이 제일 먼저 귀국하여 입대를 자원한다고 합니다. 그런 저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강대국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지만 이겨 나갈 수 있었고 나라를 지탱시켜 가는 국력이 된 겁니다.
십자가는 내가 지고 존귀 영광은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고 아름다운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1여전도회가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6. 궂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사람은 깨끗하고 산뜻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누가 더럽고 추잡한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마리아는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헌신자의 자세는 이런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먹고 노는 일, 좋은 일에만 얼굴을 내밀었다 험하고 궂은 일에는 숨어버리는 것은 참된 헌신이 아닙니다.

7. 마리아에게는 솔선수범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찾으라고 하지 않고 자기가 찾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솔선수범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안고 자기가 솔선해서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솔선해서 내가 하고 싶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마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남도 하닌까 나도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히 한결같이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는 안 됩니다. 남이야 어떻게 하든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들로 먼저 법궤를 메고 앞장서서 요단강에 들어서게 할 때 물이 갈라졌습니다. 솔선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장애물은 제거되고 길이 열립니다.
교회는 솔선 수범하는 성도들이 많아질 때 밝은 미래가 열리고 어떤 큰 일도 감당해 낼 수 있는 그런 성도가 됩니다.
마리아가 부담되는 일이지만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한 책임감을 가지고 남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먼저 솔선하는 심정으로 "내가 가져 가리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주님을 첫 번째로 뵙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을 오늘 다같이 기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1여전도회가 헌신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배우고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부담되는 일이지만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한 책임감을 가지고 남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먼저 솔선하는 심정으로 "내가 가져 가리이다"라고 하는 우리교회와 1여전도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의 영광이 있는 교회,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는 교회,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그런 교회가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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