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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 있으라 - 새벽에 주시는 은총 (막 6: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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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휴 목사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 속에서 지난밤을 평안히 하시고 이렇게 좋은 새날을 허락하시어 하나님 앞에서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시어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주시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답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주시어 늘 새롭게 하시고,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풍성한 유익을 끼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헛된 소리에 귀기울이지 말게 하시고,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께서 걸음마다 동행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가 주님 안에서 희락과 평강으로 이어지게 하시고 말씀을 증거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맡겨진 일에 성실과 최선으로 임하게 하시고 건강을 더하여 주시어 힘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만나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선포>
밤을 구분할 때 마가복음 13:35절을 보면 저녁, 밤중, 닭 울 때, 새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새벽은 밤 4경으로서 오전 3-6시의 때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새벽의 의미가 특별하게 기록된 경우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전투하는 경우, 특별행동의 개시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출 14:24, 수
6:15, 삿 16:2 등).
둘째는 병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힘들고 지루한 때입니다(욥 7:4, 신 28:67).
셋째는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찬송과 기도의 때입니다(시
57:8, 119:147).
그래서 시편 기자는 ‘청년’을 ‘새벽이슬’로 묘사하기도 했던 것입니다(시 110:3).

오늘 본문 역시 새벽에 일어난 사건 기록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을 일으키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으로 오르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같은 사건을 요한복음에서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 이후에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상황을 인지하신 예수님이 이와 같은 유혹을 물리치시고 세상에 오신 본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언제나 그렇지만 예수님은 인류 구원의 사명이 있음을 아셨고, 따라서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배척 당하심과 죽임 당해야 함을 잘 아셨기에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적 무장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우리들의 삶에서도 마차가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본문에 기록된 사건의 내용처럼 몇 가지 고난의 물결을 맞게 됩니다.

첫째는 바람이 거슬리는 고난입니다.
48절 상반 절입니다. “바람이 거슬리므로”갈릴리 바다는 지중해보다 200m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변 협곡을 통해 회오리 같은 바람이 가끔 불어오면 파도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의 바람은 역풍(逆風)으로서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여간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인생이 그렇습니다.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을 경험하고서도 금방 역풍을 맞으면서 항해를 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일을 경험하고도 금방 고난을 맞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Life is Voyage~~~

둘째는 괴로이 노를 젓는 고난입니다.
48절 중반 절입니다.“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종종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돈으로, 지식으로, 권력으로, 힘으로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은 교만한 사람들이 있지만 오늘 본문이 깨우치는 것은 인생여정의 고난 앞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 행복해 보여도 인간의 삶이란 어느 누구를 무론하고 괴로이 노젓는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는 밤 사경의 고난입니다.
48절 하반 절입니다.“밤 사경 즈음에”이미 위에서 말씀 드렸지만 밤 사경이란 새벽 3-6시입니다. 전날 저녁 때 빈들에서의 은총을 경험한 제자들이 밤 사경에 이르기까지 물결과 싸우면서 괴로이 노를 젓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긴 고난의 세월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의 고난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질병이든, 가난 문제이든, 가족 관계이든, 이웃 관계이든 그렇습니다. 경제적인 밤 4경도 있고, 육체적인 밤 4경도 있습니다. 살아가노라면 다양한 밤 4경의 고난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새벽에 주님의 은총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새벽의 은총
그렇게 제자들이 밤 4경의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이 오셔서 바람을 멎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어떤 삶이 고난 중에서도 주님이 오르시면 모든 것이 평안하고 축복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 이루어진 사건인가? 새벽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고난에서 평안으로의 전환은 새벽의 은총입니다. 어떻게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하게 되었는가?

첫째는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48절 하반 절입니다.“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로 오사”바람으로 인해 일어난 물결을 두려워하고 괴로이 노를 젖고 있을 때 주님이 그 현장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51절 말씀을 보십시오.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그렇습니다. 어떤 풍랑일지라도 주님이 오르시면 잔잔해 집니다. 주님이 오시면 그 고난의 현장은 평안으로 바뀝니다. 두려움의 풍랑도 주님이 오시면 평안이 임합니다. 요한복음 20장에는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있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평안을 주셔야 합니다.
50절 말씀입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요한복음 14:27절 말씀입니다.“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새벽의 은총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은 밤 4경과 다를 바 없습니다.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평안을 주셔야 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밤 4경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새벽 미명의 은총이 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입니다.

성경에는 새벽에 일어난 축복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진 시간도 새벽입니다(창 32장). 출애굽기 14장의 홍해 사건도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은 시간이 새벽입니다. 여리고 성읍이 무너진 시간이 새벽입니다(수 6장). 다니엘이 갇힌 사자굴 돌문이 열린 시간도 새벽입니다(단 6장). 시편 46:5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옥문이 열린 시간도 새벽입니다(행 16장).

예수님이 습관적으로 기도하신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막1:35)
그래서 주님도 새벽의 은총의 중요성을 마가복음 13:35절에서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새벽의 은총입니다. 이 새벽의 은총이 우리 나라와 민족, 그리고 우리 교회와 만나공동체의 모든 성도들에게 범사에 오늘도 내일도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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