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길이 바뀌어야 인생이 바뀝니다 (막 10:41-45)

  • 잡초 잡초
  • 294
  • 0

첨부 1


- 설교 : 송기현 목사

  오리길을 가면 오리 인생이 되고 십리길을 가면 십리 인생이 됩니다. 길이 바뀌어야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미국의 성공 철학자 「나폴레옹 힐」은 훌륭한 교수였는데 카네기를 만난 다음에 이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평생 그것을 연구하는데 바친 사람으로 리더쉽 전문가입니다. 그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역사, 성공하는 역사는 오리보다 십리를 걸어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오리 인생이 되지 말고 십리 인생을 살아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보다 더 많이 하면서 살라는 얘기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거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 기대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댓가를 받습니다. 댓가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누가 너로 하여금 오리를 함께 가자고 하면 십리를 함께 가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오리만큼의 수고를 요구하면 십리만큼의 수고를 해주라는 것입니다마(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이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신앙생활,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직장에서 늘 지각하고 걸핏하면 조퇴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 - 오리도 못가는 사람들이죠. 정확하게 제시간에 출근하여 땡하고 퇴근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오리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여 하루 일을 설계하고 성실히 일하다가 뒤늦게까지 자신이 맡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일을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십리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리길 인생이 되지 말고 십리길 인생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가는 길이 바뀌어야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길이 있습니다. 길을 벗어나면 탈선이요 법을 어기면 불법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정도가 아닌 길에는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하며, 잘못된 길로 유혹하는 것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된 길은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방법은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사명자는 사명의 길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목회자의 길이 있습니다. 직분자는 직분자의 길이 있습니다. 믿는 자는 믿는자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가지 않으면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믿음에도 길이 있고 은혜 받고 복을 받는 데도 길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고 보여주셨고 제시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가야 정도로 가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벗어나서 길을 가는 일이 없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잘못된 길이라면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길을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성공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길을 바꾸어야 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서 그 답을 찾아볼까 합니다. 우리 함께 길을 찾아 떠나봅시다.

  1. 높아지는 길은 낮아지는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꿈과 야망은 조금씩이라도 높아지는데 있습니다. 결코 낮아지는데 꿈이 있거나 자신의 야망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높아지는 길은 자기가 높아지고자 하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낮아질 때 높아지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진리 중에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깊은 산중에서 산불을 만나 타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궁리한 끝에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 다음에 자기가 그 안에 들어갔더니 불의 피해를 막고 살아 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를 버리는 것이 자기가 사는 길이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남도 살고 자기도 사는 길입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34)고 하신대로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이 수십배 수백배로 사는 길입니다.

  모든 죄악의 열매가 자기(Self)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셔서, 자신도 부활하시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항복 (Self surrender)시키는 것이 참으로 승리하는 길입니다.

  그럼으로 빌 2:3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소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1.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후렴>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고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2.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혀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혀주질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후렴>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고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21세기 리더쉽은 낮아짐의 리더쉽입니다. 섬김과 봉사의 리더쉽입니다.
  주님은 낮은 자리에 오셨고 낮은 곳에서 자라셨으며 낮은 신분으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왕이 되신적도 없었고 선지자가 되신 적도 없었고 제사장이 되신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낮아지신 주님은 왕이시며 선지자시며 제사장으로 높아지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 영광의 나라에서 첫째자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은 처음 왕으로 물망에 오를 때 어린아이처럼 짐짝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박수와 환호성에 오히려 두려운 마음을 가겼기에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높여주셨습니다(삼상 10:22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스스로 자신을 작게 여길 때에는 높임을 받았으나 스스로 높아져 불순종할 때에는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삼상 15: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2. 강해지는 길은 약해지는데 있습니다.

  약한 것을 통하여 더욱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사도바울은 약한 것을 자랑하고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을 고백했습니다(고후 12:10).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는 자들은 그 것 때문에 반드시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자들에게는 그 약한 것 때문에 반드시 강해지고 성공하게 됩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주님의 제자들 중에는 주님이 마신 잔을 우리도 마시고 주님이 받은 세례를 우리도 받을 수 있다고 능력있게 말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너무나도 많이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에게 닥쳐오는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하면서 준비치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실패했습니다. 강한척하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강한 자처럼 기도하지 않다가 믿음을 잃습니다. 강한자처럼 주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주님으로부터 점점 멸어지고 맙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강한 말이나 들소나 어미 나귀를 타지 아니하시고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아직도 내 강함을 자랑하며 거들먹거리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를 약하게 해주십시오 하는 청원과 같습니다. 강하고자 하면 약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래야 강하게 하십니다.

  3. 의인이 되는 길은 죄인임을 아는데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롬 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게 되었을 때 롬 8:1에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큰 기쁨과 확신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자기 스스로 만족과 안위를 찾는 자가 아니라 성전 뒷켠에서 머리조차 들지 못한체 자신을 밉고 추하게 보며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세리가 하나님 앞에서 더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죄인처럼 죽어주시므로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진정으로 죄인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우리는 도저히 갚을 힘이 없는 빚진 자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빚을 갚아주셨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혼돈스럽습니다. 혼돈의 때일수록 바른 길을 가는 교인들이 필요합니다. 혼돈의 때일 수록 바르게 하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누가 무어라 해도 주님이 말씀하신 길을 고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스스로 강하다고 자랑하고 스스로 의인인체 하는 것을 경계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낮아지고 스스로 약해지고 스스로 죄인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우리를 높여지고 강하게 하시며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