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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존재적 의미 (대하 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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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봉수 목사

  교육인적자원부 조사보고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체격은 좋아졌는데 체력은 나빠졌다고 합니다. 남자를 예로 들어보면 10년 전에 비해 체격을 나타내는 키는 3.87cm 커졌고, 체중은 4.47kg 무거워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체력을 나타내는 100m 달리기는 0.3초 느려졌고, 턱걸이도 2.7회나 줄었고, 던지기도 3.7m 기록저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체력 저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건강한 삶을 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활기차게 자기가 할 일을 해나가기 힘들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설계하며 나아가기가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질병에 쉽게 걸리고 병치레로 허덕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저들의 미래와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청소년들을 오늘의 한국교회에 비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도 체격은 커졌는데 체력은 약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과거에 비해서 외형이 무척이나 켜졌습니다. 모이는 수도 예산도 건물이나 사업이나 무척이나 커졌습니다. 그러나 영적체력은 무척 약해졌습니다. 기도가 과거 같지 않습니다. 철야기도, 산기도, 금식기도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모이는 것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부흥회도 일주일씩, 4일씩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주일 출석도 그렇습니다. 교인들의 봉사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이 과거와 같이 전도의 열매를 맺는다든지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냄으로써 존경과 칭찬을 받는다든지 하는 일을 찾아보기 힘이 들어졌습니다. 교회 안에 조그만 문제가 생겨도 쉽게 큰 문제로 비화되서 교회에 갖가지 갈등소리와 파열음이 들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교회에 대해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도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스스로 전도를 막는 일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며 혹자는 ‘교회 무용론’을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교회라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또 어떤 이는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고 쓴 소리를 내 뱉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라볼 때 걱정스럽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교회는 존재해야 합니다. 가정이 문제가 많고 큰 짐이 된다고 해도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가 문제가 많고 싫어도 나라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문제가 많고 실망스러워도 여전히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지는 때에 더욱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를 부둥켜안고 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가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이 그 어느때 보다도 교회 사랑하기 운동을 벌여야 하겠습니다. 교회 살리기 운동을 벌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성전에 관해 솔로몬이 선포한 내용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구약시대의 성전을 오늘의 교회와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서 가기 위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교회는 주님이 세우셨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솔로몬이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왕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로다.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 비록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는 사람은 솔로몬 자기이지만 정작 성전을 건축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16:18절에 주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직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성전을 세우셨으며,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성전이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초대교회 신학자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 깔뱅은 교회를 한 마디로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 자라가도록 하기 위해 어머니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어머니 없이 아이는 제대로 자라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믿음 지키며 살아가도록 교회를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머니로서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녀를 생산합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듯이 교회는 영적 새 생명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매 주일 15~20명 정도의 새가족이 우리 교회로 오고 계십니다. 아파트 이사로 타교회에서 전입해 오시는 분도 계시지만 생전 처음 교히에 나오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분들은 교회가 파송한 전도대의 전도를 받아서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교회가 이 분들을 복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자녀를 양육합니다.

  어머니가 젖을 먹이며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 아이를 양육하듯이 교회는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가도록 양육합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고 또한 믿음이 자랍니다. 교회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자녀를 보호합니다.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보호하듯이 교회는 교인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보호합니다. 교인들은 교회의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보호를 받습니다. 세상에 미혹되어 믿음이 흔들이다가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영적 교제를 나누며 믿음을 다시 추스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을 지켜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없어서는 안 되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아파트 전도를 하면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됬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새로 조성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 먼 거리로 이주하게 됩니. 그 중에 역시 그리스도인들도 25%가 되겠지요. 이분들 가운데 대부분 교회가 너무 멀어져서 다니던 교회를 다니기 어렵게 된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교회는 정 붙이기 힘이들어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안에는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고 그렇다고 가까운 교회도 다니지 않는 잠자는 영혼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파트 재건축이나 신도시 건설이 주변 교회 가운데 일부교회를 부흥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한국교회라는 큰 틀에서 보면 정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 전도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잠자는 영혼을 불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기회를 통해 전도하여 새신자를 출산도 할 것입니다.




  며칠 전 제주도에 사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이분은 중산간지대에서 귤 농원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남편과 두 분이 농사를 지으시며 사시는데 남편은 아직 예수를 믿지 않으시고 혼자만 믿고 계셨습니다. 이 분에게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박해가 심해서 남편이 잠들고 난 한 밤중에나 성경 읽고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힘이 드는 것은 중산간지대라 민가가 없어 가까운 곳에 교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을 내려와 한 시간을 걸어야만 교회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차로 태워주면 좋으련만 교회 못 가게 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한 형편입니다. 한 시간 걸어 내려오면 한 시간 반은 걸어야 다시 집에 갈 수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매 주일 빠지지 않고 교회를 다니고 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교회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녀야 합니다. 교회가 우리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고 교회가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2. 교회에는 주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내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 안에만 계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만든 건물 안에 갇혀 계시게 되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성전에 계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성전에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셨던 말씀 그 말씀을 새긴 돌비가 언약궤 안에 담겨 지성소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에서 선포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둘째, 예배를 받으십니다.

  성전에는 제단이 있어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정성스런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를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으십니다.




  이렇게 말씀이 선포되고 예배가 드려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 교회에 임재 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회에서 주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고 그 주님과의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에밀 부르너라는 신학자가 “교회의 오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네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째, 교회를 학교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서 교회에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둘째, 교회를 친교하는 곳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기 위해서 교회에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셋째, 교회를 자선단체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에 항거하고 세상을 개혁하는데 앞장 서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넷째, 교회를 사회 개혁을 주도하는 단체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에 항거하고 세상을 개혁하는데 앞장 서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임마누엘 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그분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의미의 핵심입니다.

  저는 신학교 다니며 읽었던 미국의 신학자 폴 틸리히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교인 가운데 10%는 그 영이 이미 죽었고, 80%는 잠들어 있고, 10%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 가운데 10%는 이미 임마누엘의 주님과 영적인 교제가 끊어졌고, 80%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어서 영적교제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비몽사몽 중에 있고, 오직 10%만 주님의 임재를 뜨겁게 체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어떨까요? 이보다는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왠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이보다 훨씬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출석하는 성도 모두가 영이 살아있는 그 10%안에 다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임재 해 계신 곳이라면 우리는 정말 교회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귀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교회를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 마음을 소중히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성자라  칭함을 받는 간디는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어요!” 그래서 예수의 산상보훈은 늘 외우면서도 정작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예수를 성인으로 받들기는 했지만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도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리고 사이버 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는 좋은데 교회에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등록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는 익명의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마치 고아와 같습니다. 믿음이 자라기 힘이 듭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힘이 듭니다. 영적 고아로 너무도 고달픈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많은 경우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비록 교회에 문제가 많아도 교회는 주님이 세우셨고, 주님께서 임재 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찬양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 사랑 나의 사랑 내 맘속에 넘쳐 교회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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