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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빈 무덤 (막 1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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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부활주일이며,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 축하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2월22일부터 오늘까지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는 5가지 목적을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 관한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 원하시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르면 인생을 모르고, 인생의 목적도 모르게 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롬11:3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들입니다.

  이번 목적이 이끄는 40일을 마치면서 일산구역의 김옥선 집사님이 쓰신 간증문을 받아보았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언제나 내가 나의 주인으로 나 중심에 서 있었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어떤 일에도 변화를 두려워하였고, 기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고집하므로 믿음은 자라나지 않고 멈추어 있다고 안타까워 할 때에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캠페인의 여러 가지 활동 중에 소그룹에 참여하면서 같은 구역 식구들과의 만남은 작은 설렘으로 다가왔고, 2시간 넘게 진행되는 그룹 토의 시간은 전혀 지루한 줄을 몰랐고, 서로를 잘 알아 가는 기쁨과 함께 다시 만날 주말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기간을 통하여 저에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동안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생활하다보니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목적을 정립하고 보니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세 번째로 모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는 교제를 공부하면서 함께 모여 앉은 성도들 간에 서로가 느낀 점과 장점을 적어보는 자리 바꿈의 게임 시간에는 쑥스러우면서도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한 주 한 주 우리의 모임이 계속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5가지의 목적을 알아 가는 것은 기쁨과 보람이었습니다.

소그룹을 통하여 같은 지역의 성도들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오랫동안 사귄 친구들처럼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진정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으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이제 이 캠페인을 마치면서 그 책을 깊이 음미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으며,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소그룹 토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는 목적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어린 아이의 신앙으로 멈추어 있었지만, 주님을 닮아가려고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열심을 내지 못한 성경 읽기와 기도생활에 힘을 기울이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예수님처럼 섬김을 삶을 살아가려고 다짐해봅니다.) 간증은 간단하게 줄였습니다.

  우리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소그룹이나 구역으로 모이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다시 모여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구역 활동이 전무하던 교회였습니다.  구역예배란 낮에 시간이 좀 나시는 이들이나 모이는 것으로 알았고, 별로 배울 것도 없는 소모적인 모임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노인이나 젊은이 할 것 없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모임으로 바뀌었습니다. 

  첫 번째 소그룹이 모일 때 171명, 2회: 177명, 3회: 184명, 4회: 186명 5회: 190명이 모였습니다. 가장 재미있게 모였다고 생각하는 구역이 사당동작 구역이었던 같습니다.  사당 동작 구역이 모인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열심히 성경공부하는 사진은 아니고, 마지막 모임에서 친교 하는 사진입니다.  아마 우리 소그룹은 더 재미있었다고 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당신의 새들백 교회에서 40일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이혼직전에 가 있던 6쌍의 부부가 화해하고 가정과 결혼생활을 회복할 수 있었노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한 동리에 살면서 6년 동안 이웃과 담을 쌓고 전혀 대화가 없었는데, 소그룹에 참여하면서 그 담을 허물고, 미워하던 사람을 길가에서 만나 얼싸안고 서로 잘못을 빌고, 용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40일에 걸쳐 찾아보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영원을 위한 준비"라는 세 단어 보다 더 좋은 대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지금 이 시간을 넘어서 영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서 3:11절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영원을 보며 영원을 위해 준비할 수 있습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 전부를 사용하여 영원을 준비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도록 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다음 세상을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정말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도록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을 위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에게 보내진 편지 하나를 읽어드립니다. 

  "오랫동안 저는 제 인생에서 아주 자잘한 일까지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면 모두 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40일 목적이 이끄는 삶 캠페인을 하면서 저는 하나님이 저의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삶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영원에 이르게 될 저의 성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캠페인에서 저를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냥 하나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제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셔서가 아니라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처럼 되어가기로 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복음의 증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존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 남은 삶 전체동안 이기적인 관심과 태도에서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관심과 영원에 나의 관심을 맞추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평생에 걸쳐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입니다. 이 인생의 목적들을 배우십시오.  자,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 기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것을 다시 복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40일 캠페인을 하면서 다섯 가지 인생의 목적들에 대해서 어떤 것들을 이야기 해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섯 가지 목적들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예배"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나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교제"라고 합니다. 다음은 나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가리켜 "훈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 목적은 나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사역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목적은 나는 사명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전도"라고 말합니다. 

  한 줄로 외우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의 가족으로, 그리스도를 닮도록 ,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나는 전도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라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 보람과 기쁨도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의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교제를 통하여 성장하며, 헌신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제와 헌신입니다. 

  우리가 자라가려면 그저 교회만 다니는 것 이상이 필요합니다. 교회만 나온다고 자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배운 대로 행하셔야 합니다. 야고보서 2: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우리는 평생 동안 교회만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 자체로는 절대로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목적을 깨달았으면 그것을 생활에 옮기고 실천하고 헌신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아직 소그룹이 없는 분들은 소그룹을 찾아서 소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제하면서 성장하는 방법입니다.  잠언 27장 17절을 읽어봅시다. 우리 함께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우리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우리의 성품과 신앙은 더욱 성숙하게 되고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0:25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왜 그런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교제를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새로운 봉사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역 박람회을 개최하였는데, 바나바 사역을 비롯하여 10개의 사역에 39명이 자원하셔서 아주 소중한 일꾼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 박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아제르바이잔 레즈긴 부족을 비롯한 16개의 선교 기도후원회를 조직할 수 있게 되었는데, 모두 108명이 참석하였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집니다.  집에 가서 생각해보고 가입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첨석하지 않은 집회에 성령이 임하시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마치면서 함께 읽을 문장이 있습니다. 

  저의 삶은 영원을 위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다섯 가지 목적을 이루면서 인생을 살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이것은 예배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교제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와 같이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훈련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이것은 사역입니다.  "저는 사명을 위해 지음받았습니다."  이것은 전도입니다.  다같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 다섯 가지를 외워봅니다. 예배, 교제, 훈련, 사역, 전도 이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다섯 가지 목적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상한 이론을 펼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제자훈련을 하면서 노르만 앤더슨 박사의 부활의 증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노르만 앤더슨 박사는 법률학 교수로서 기독교와 타종교를 비교하면서 부활을 증명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인 의미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서정적인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았다고 하면 기독교라는 집단은 거짓말쟁이의 집단이 되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면 기독교는 세계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속인 집단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길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빈 무덤에 관한 다른 주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다보니 억측이 난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여인들은 다른 무덤을 찾아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엉뚱한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여러 제자들도 다른 무덤에 간 것이 됩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할 때에 제사장들이나 백성의 장로들이 진짜 무덤을 보여주면서 예수의 시신이 이것이라고 하면 부활의 소동은 잠잠해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환상설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으나 환상을 보고나서 사실인 것처럼 증거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500여 형제들이 다같이 같은 환상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환상이라고 하면 승천한 후에도 종종 나타날 수 있을 터인데, 승천 후에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시체도난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스승의 시신을 훔쳐가고 부활하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설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제자들은 거짓말을 해놓고 그 거짓말을 합리화하려고 12제자들 모두가 순교까지 불사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역사적 부활과 부활신앙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했는지 안 했는지 몰라도 부활신앙만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신앙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 우리의 믿음도 헛 것이요,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모두 헛될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빈무덤을 가진 종교입니다.  세계 여러 종교들은 그들 종교의 창시자의 무덤을 성역화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한 장소를 더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묻혔던 무덤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고 하면 예루살렘에 머물 제자들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죽음의 도시요, 공포의 도시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추종하는 이들을 잡아죽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도시에 머물면서 주님을 부활하셨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작은 부활절입니다.  주님이 주일, 곧 안식 후 첫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구약의 오랜 전통을 바꾸어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까지 2천년 간 기독교회가 존속하는 것은 바로 주님을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영혼 불멸이 곧 부활이 아니라, 육신이 부활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그 몸은 예전의 몸과 똑같은 몸이 아니라, 다시는 사망에 이를 수 없는 새롭고 영적인 몸,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죽었지만 아직 썩지 않은 육신에 단지 생명이 돌아온 원기회복이나 소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 새로운 몸, 영적인 몸, 신령한 몸으로의 살아나심입니다.  이제는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었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었습니다.  과거 육신을 가진 한 사람의 연속성은 남아 있지만 전후 둘 사이에는 생명의 양식과 모양에 있어 전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은 이 세상의 성인들처럼 존경을 받고 후세에 귀감이 되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그는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어떤 분이시냐, 그는 과연 누구시냐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을 사람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제자 중에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데 맹세하면서 예수님에게 저주하면서 부인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나약하며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보고들을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졸장부들이었는데 대장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교회를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하면 교회는 그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 변화되어 일생 복음을 전하고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구원받은 감격과 부활의 산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시가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수이시며 문인으로 활동하신 유안진 교수의 글입니다.
지난 겨울
얼어죽은 그루터기에도 
새싹이 돋습니다.
말라죽은 가지 끝
굳은 티눈에서도
분홍꽃잎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저 하찮은 초목들도
거듭 살려내시는 하나님
죽음도 물리치신
부활의 증거되신 예수님
깊이 잠든 나의 믿음
말라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
해마다 기적의 
증거되고 싶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1943년에 옥중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날마다 같은 기도를 반복했는데“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그가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의를 위하여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곧 능력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9)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우리는 뒤 따라 가는 열매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시는 거룩한 성에 들어가실 때까지 부활의 산소망을 가지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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